93화. 배신
미나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엿보였다.
‘모범택시를 탔어야 해.’
모범택시는 경력이 많은 검증된 택시운전수만 운전할 수 있다.
그리고 5m 상공으로 날며 운행한다.
그런데 이 택시는 아니었다.
유선형인 디자인 빼고는 엔진구조부터 내부까지 지구의 택시와 거의 흡사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지금은 상대방의 추격을 따돌리고 도망치는 것이 중요했다.
사냥개가 네 발로 거침없이 택시를 쫓았다.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였다.
『네빌! 올라가!』
뒤쪽의 범죄자 중 하나가 사냥개에게 명령했다.
엄청난 높이를 도약하는 사냥개.
녀석이 트렁크 위로 단숨에 올라오더니 컹컹 짖기 시작했다.
조세핀이 사냥개의 짖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다행히 사냥개는 차량의 유리창을 부술 능력이 없었다.
사냥개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차량에서 이탈했다.
『네빌! 이 멍청한 놈! 따라붙어! 따라붙으라고!』
날카로운 이빨, 꽤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뭔가를 부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냥개.
천운이 미나 일행을 살렸다.
그런데 뒤쪽의 오토바이에서 또 한 명이 소리질렀다.
『다들 비켜봐!』
그는 한 손에 멍키 스패너를 들고 있었다.
녀석이 따라붙는다.
미나는 직감했다.
녀석이 접근하면 유리창이 깨진다고.
미나가 앞좌석 계기판에서 뒤쪽으로 이동했다.
슈트를 입은 그녀는 정상인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났다.
뒷좌석으로 간 미나가 멍키 스패너를 들고 추격하는 거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멍키 스패너를 들고 있던 거인의 고개가 푹 하고 떨어졌다.
오토바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자, 뒤쪽에 있던 오토바이 하나도 같이 쓸려나갔다.
1타 2피.
그걸 본 택시운전수가 환호성을 질렀다.
『오! 예! 대단한데?』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미나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한가득이었다.
미나는 알았다.
세 번.
자신의 체력으로는 세 번이 한계라고.
더 이상 쓰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쓰러지면 안 되는데……. 여기서 잡히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녀의 의지로 버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마인드 리딩은 원래 그런 능력이었다.
생각을 엿듣는 것은 그리 큰 소모값이 없었다.
하지만 기억을 지우는 것은 달랐다.
특히 거인의 기억을 지우는 것은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뇌에 과부하가 걸린 미나, 자꾸만 시야가 좁아진다.
자신이 곧 쓰러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인인 조세핀의 어깨에 올라간 미나가 그녀에게 말했다.
『조세핀, 반은 잡았어. 그러니까 겁먹지 마.』
『응.』
『언니가 한마디만 할게. 통신이 터지는 곳에 가면 무조건 어른 불러. 택시 아저씨가 운전하는 동안 빨리 신고해.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야.』
미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조세핀은 주파수가 잡히지 않는 스마트폰을 매만지며 울고 또 울었다.
* * *
같은 시각.
거주지. 정보조 사무실.
지휘부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중계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스터 장명훈은 김만철의 승리를 확인한 후 김건우에게 말했다.
“후우- 대박인데? 너무 잘하잖아.”
“그렇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시간이 흘러 김아람의 차례.
“아람이는 성장 좀 했으려나?”
“슈트의 활용법을 알게 됐다면 조금은 강해졌겠죠.”
“그렇겠지?”
그런데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고.
중계자들이 속보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 오늘 경기는 여기서 잠시 중단해야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본부에서 들어온 속보인데, 범죄자 집단이 1-8지역에서 택시를 타고 있는 신원 미상의 거주자를 뒤쫓고 있다고 합니다. 일단 관객 여러분이나 선수 여러분께서는 지정된 자리를 이탈하지 마시고, 경기장 내부에서 저희 진행요원의 통제에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명훈은 깜짝 놀라 정보조원들에게 물었다.
“범죄자라니?”
“최근 거인들 사이에서 아동납치 범죄가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그 범죄자들인데, 서로 내분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위치는 파악했고?”
“네. CCTV접속해 본 결과 종합경기장 ‘다’ 입구 앞에 3분 전에 도착했고요.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시간을 끄는 것 같습니다. 경관들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있고요.”
정보조원의 분석에 장명훈은 일본 거주지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진기에게 지시했다.
“그래? 진기야. 확인 좀 해 봐.”
“네.”
이진기는 종합경기장 다 입구 지역을 천리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보였다.
너덜너덜해진 택시가.
그리고 그 안의 운전수가.
택시 안을 바라보았다.
천리안이라 모든 곳이 다 보인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있었다.
‘살아있었어?’
이진기는 입을 다물었다.
강백현이 자신을 버리고 구하러 간 여자.
강미나의 존재를 확인한 그는 미나가 살아있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때, 택시가 코너에서 방향 전환을 하다가 뒤집어지고 말았다.
충격으로 차량에서 튕겨나온 택시운전수.
그 거인을 사냥개가 집요하게 물어뜯었다.
택시 운전수의 얼굴이 뭉개졌다.
사냥개의 이빨에 의해 뜯기고 또 뜯겼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악랄하게 물어대는 사냥개.
그런데 사냥개가 물어뜯은 상처 주변이 보라색으로 물들어간다.
이진기는 알았다.
‘독이야. 저 사냥개는 독사처럼 독을 가지고 있어.’
택시 운전수가 발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움직임을 멈추는 택시 운전수.
죽은 것이다.
그때, 경관들이 몰려왔다.
그러자 오토바이에 탄 범죄자들이 도주하기 시작했다.
경관들은 당황한 채로 추적을 시작했다.
그런데 추적을 가로막는 존재가 나타났다.
범죄자들이 가진 펫. 그 중 가장 위험한 존재.
회색 반달곰이었다.
회색 반달곰의 등장에 경관들이 추적을 멈췄다.
원래 크기 50cm 이상은 중앙에서 허락받아야만 펫으로 등록할 수 있다.
물론 검은 구체를 통해 등록할 수는 있었지만 거인 커뮤니티 자체에서 50cm 이상의 펫 등록을 막았다.
더구나 저 회색 반달곰에는 포인트가 투자되어 있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발톱, 가슴 부분은 철판갑옷까지 입은 상태.
걸리면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범죄자들은 자신의 비밀을 퍼트릴 수 있는 동료를 죽인 후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이진기는 미소를 지었다.
차량 사고 이후 강미나가 움직이질 않는다. 뒤집어지는 충격으로 앞쪽 좌석에 부딪힌 후 머리가 깨져버린 미나.
거기에 기이하게 꺾인 목과 다리.
100퍼센트 부러진 것.
목이 부러지면 인간은 죽는다.
이진기가 생각했다.
‘죽었네. 꼴좋다.’
조세핀은 울며불며 미나를 손에 들고 차량 밖으로 기어나왔다.
『미나야! 일어나. 미나야! 미나야! 흑흑. 미나야!』
미나의 죽음을 보고 절규하는 조세핀.
그때 경기장 외부 CCTV에 접속한 한태석이 마스터에게 말했다.
“사람이 있습니다. 안쪽에 사람이 있습니다.”
“뭐?! 확대해 봐!”
“네. 거인과 계약한 것 같습니다. 거인의 품에 안겨 있네요. 그런데 죽은 것 같습니다. 교통사고입니다.”
경관들이 조세핀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병원 가야겠다.』
『동물병원부터 가요.』
『네 펫은 죽었어.』
『안 죽었어! 미나는 안 죽어! 절대 안 죽는단 말이야!』
그런데 갑자기 미나의 몸 주위에서 빛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분명 죽었어야 할 미나가 눈을 뜬다.
기이하게 꺾인 목과 다리가 제 자리를 되찾고.
바깥으로 흘러내렸던 피는 다시 몸속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강미나가 신음을 내뱉는다.
『아…… 흑흑. 아파.』
강미나를 품에 안는 조세핀.
조세핀은 눈물을 펑펑 흘렸다.
조세핀은 미나의 부활을 보며 엄마가 자주 들려주었던 바깥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유아기 때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들려주는 전래동화였다.
* * *
4살 때의 조세핀. 오빠한테 장난감을 뺏긴 후 토라진 채 울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의 엄마가 조세핀을 달랬다.
『조세핀! 또 울 거야? 그럼 엄마가 동화 이야기 안 들려준다? 뚝!』
『뚝!』
조세핀의 엄마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옛날옛날에 우리 선조들은 커다란 세계에 살았어요. 커다란 세계는 정말 커다랬어요. 그곳에서 우리들은 아주 작은 존재였어요. 개미한테도 잡아먹히고, 거미한테도 잡아먹히는 그런 존재였죠.』
엄마의 말에 조세핀이 말했다.
『개미? 무섭다! 거미도 무섭고.』
『엄마 말 끊지 말고 계속 들어! 안 그러면 동화 얘기 안 해준다!』
『응!』
『선조들은 혼자서 먹을 것을 구하지도 못했고, 살 곳을 만들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런 선조들 앞에 진짜 큰 거인들이 나타났어요. 그들은 우리 거인들보다 50배는 커다란 존재였어요. 그들은 자신들과 생김새가 비슷한 우리 선조들을 보며 신기해했어요.』
『아…….』
『우리 선조들은 거인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갔어요. 거인들이 옷도 만들어주고, 기술도 전수해줬죠. 그런데 세상이 어둠으로 물들어갔어요. 태양이 사라지자 빛도 사라졌고, 생명체들은 죽음을 맞이해야 했지요.』
『아…….』
『그때 거인들은 큰 결심을 했어요. 자신들은 죽어도 우리 선조들은 살게 해주자고. 자신들은 몸집이 커서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하겠지만, 크기가 조그마한 우리들은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래서 커다란 방주를 만들었어요. 우리 선조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주. 그들은 그것을 거인의 방주라고 불렀어요. 이제 안전한 곳에서 살라고. 그 이후 우리 선조들은 모두 안전한 곳으로 이주했어요. 그리고 거인들은 우리 선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생명체들을 만들어주셨지. 조그마한 생명체들을.』
『그럼 그 거인들은 죽은 거야?』
『아니, 방주 바깥에 살아계셔. 그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방주를 지키기 위해, 빛이 없는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거야.』
『그럼 그 거인은 평생 우리 못 보는 거야? 우리도 못 보고?』
『아니, 거인들의 왕은 말했대. 죽음 이후 빛과 함께 찾아오는 조그마한 존재가 우리들을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해 줄 거라고. 그런 공주님이 이 세상에 찾아오면 무조건 지키라고. 그럼 거인들은 우리를 원래 살던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동화 속 이야기가 떠올랐다.
엄마가 해주신 이야기.
분명 전래동화일 텐데.
왜 지금 미나가 이야기 속의 공주님이란 생각이 불현듯 드는 걸까?
죽음 이후 빛과 함께 찾아오는 전설의 공주님.
작은 세계와 큰 세계를 연결하는 공주님.
방주와 바깥 세계를 연결하는 존재.
세상의 빛이 될 존재.
조세핀이 흐느껴 울며 미나에게 말했다.
『다행이야. 살았어. 살았어.』
『여기가 어디야?』
『경기장. 경기장에 왔어.』
강미나는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앞에 뜬 홀로그램.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여 소생의 돌이 강제사용 되었습니다. 이제 두 번 다시 소생의 돌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직감한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오빠를 위해서 썼어야 하는데…….’
그런데 경관들의 태도가 이상했다. 웅성웅성.
『방금 이 펫이 말한 것 맞지?』
『응. 나도 똑똑히 들었어. 아프다고. 여기가 어디냐고.』
『연구소에 신고해야 해. 포상금 두둑이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을 거주지에서 지켜보는 한태석과 일행들.
“저 여자. 소생의 돌을 가지고 있었어.”
“소생의 돌이요?”
“그래. 경기에서 우승하면 주는 그 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돌. 저걸 가진 자는 윤아밖에 없을 텐데.”
1-1 거주지. 바키우스의 펫 조윤아.
최근 5년간 3번의 우승.
소생의 돌만 무려 3개나 얻은 최강자.
그런데 저 아이가 그 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마스터의 눈이 돌아갔다.
“저 여자를 잡아야 해. 무조건 여기로 데려와야 해!”
그런데 한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거인들이 저 여자가 거인어를 하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뭐? 저 여자애가 거인어를 했다고?”
“네. 분명합니다.”
“지금 다들 뭐하는 거야! 당장 출동해야지. 아니! 내가 간다. 이진기 씨! 그리고 김건우! 출동한다. 준비해.”
“네!”
마스터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장명훈은 직감했다.
강미나가 불러올 파급효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