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각성
솔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전의를 잃은 탓.
버키의 말대로 조류는 부리가 부러지면 살지 못한다.
김만철의 2번째 투척.
하지만 그건 실행되지 않았다.
버키의 승리.
단, 획득 포인트는 없었다.
그건 상대방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버키는 코치에게 악수를 청했다.
『코치님, 악수는 하고 가셔야죠.』
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코치.
『너! 너! 너!』
그는 솔개를 품에 안은 채, 손가락질하며 경기장을 퇴장했다.
지역 예선이라고는 하지만 거인들에게는 세계적 축제나 다름없었다.
미국의 미식축구, 한국 일본의 프로야구, 중국의 프로축구와 마찬가지로 애완동물 최강자전은 거인들에게 매우 특별했다.
버키가 경기장에서 돌아오자, 동생 바키가 말했다.
『축하해. 형. 이겼네.』
『응. 솔직히 지는 줄 알았어.』
『그래. 쉽지 않을 거야. 본선은 더 어려울 테고.』
프로게이머 바키.
그는 아이스박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형에게 건넸다.
『형, 좀 먹어.』
『됐어. 살 쪄.』
『에이, 형 생각해서 2개 사왔는데…….』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아이스크림 안 먹는 거 알면서 일부러 2개 산 거 아니야? 점원한테 2개 달라고 하면 눈치 보이니까, 내 것도 같이 산다면서 2개 산 거 아니야?』
아이스크림을 먹던 바키가 차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형! 이거 뭐야?』
『응?』
『성장 호르몬인데? 이거 왜 내 이름으로 주문했어?』
『아! 아니, 회사에서 한 사람 이름으로 팔 수 있는 한계량이 있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네 이름으로 주문했지.』
『뭐야? 형! 나보고는 아이스크림 2개 사왔다고 뭐라고 하더니만! 형이 그러고 있었네. 대박! 완전 대박!』
『하하하, 신경 꺼.』
『뭘~ 신경 꺼. 도둑이 제 발 저려서 나한테 뭐라고 한 거구만!』
두 형제는 친했다.
친할 수밖에.
둘 다 아버지한테 버림받은 자식이니까.
『바키야. 이겨라. 같이 본선 올라가자.』
『그래야지. 근데 너무 욕심 부리지도 않을 거야. 한두 해 도전할 거 아니잖아. 오래 보고 도전해야지.』
『그래. 아버지의 벽은 너무 높으니까.』
버키와 바키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너무나 강력한 펫을 가진 아버지.
그를 잡기 위해선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평생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하지만 두 형제는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왜 어머니를 죽게 내버려두셨냐고. 왜 자신들을 버리셨냐고.
* * *
같은 시각.
조세핀의 집.
조세핀과 미나는 TV를 보고 있었다.
때마침 특종.
『최근 아르케 1지역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들에게 비싼 펫을 아끼지 않고 사주고 있는데요. 이걸 노리는 범죄자들이 많다고요?』
『네. 맞습니다. 부잣집 자제들이 타겟이 되고 있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미나는 궁금했다.
『조세핀, 범죄는 불가능하지 않아? 거인의 룰에 따르면 거인끼리 해치는 건 안 되잖아.』
『구체가 없을 땐 가능해.』
『뭐?』
『구체가 없으면 거인의 룰을 집행할 장치가 없어지니까.』
『이상해. 길거리에도 구체가 없을 때도 많잖아. 불러야만 오기도 하고. 그럼 바깥도 위험한 거 아니야?』
『구체는 하나가 아니야. 조그만 구체도 있지만, 하늘에서 대륙 전체를 보는 커다란 구체도 있어. 그래서 길거리를 걸어도 웬만하면 안전해.』
TV화면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사진들이 보인다.
범죄자들은 총 6명이었다.
험상궂게 생긴 거인들.
그리고 그들의 펫들이 나온다.
거기에는 조류도 있고, 파충류도 있고, 포유류도 있다. 심지어 합성종도 있었다.
펫들의 특징을 알려주는 방송.
『이 범죄자들을 목격하신 분들은 검은 구체를 통해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범죄자들을 목격하신 분들은…….』
미나는 그들의 얼굴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조세핀이 갑자기 채널을 돌렸다.
『왜 돌려?』
『최강자전 할 시간이야.』
『최강자전?』
『응. 애완동물 최강자전 지역 예선. 오늘은 1-8지역일걸?』
그녀가 돌린 채널에서는 애완동물 최강자전의 지역 예선을 생방송하고 있었다.
미나는 깜짝 놀랐다.
때마침 김만철과 김아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싸우는 장면.
『생방송이야?』
『어. 왜?』
그걸 보며 미나가 조세핀에게 말했다.
『경기장으로 지금 바로 가야 해. 아는 사람들이 거기에 있어.』
『바키, 버키 형제가 가진 펫을 말하는 거야? 생김새가 비슷하던데…….』
『응. 맞아. 미안한데 지금 갈 수 있어?』
미나의 말에 조세핀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녀의 오빠가 죽었다. 자신 때문에 죽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세핀은 바로 응답했다.
『어. 가자.』
조세핀은 미나를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단정한 원피스와 검은색 스타킹.
시간이 별로 없으니 이 정도면 외출 준비 끝이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그녀의 엄마가 물었다.
『우리 딸? 어디 가니?』
『잠깐 친구 만나러 가요.』
『안 돼! 오늘 엄마랑 옷 사러 가기로 했잖아. 그리고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혼자 못 나가! 멈춰!』
엄마의 말에 조세핀이 자신의 품에 있던 미나를 꺼내며 말했다.
『부탁해.』
『응.』
미나가 조세핀 엄마의 기억을 동결시킨다.
그리고 밖으로 뛰쳐나가는 조세핀.
조세핀은 미나와 함께 있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지내보니 미나는 최강이었다.
친구들이 가진 펫과의 전투에서 절대 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나 앞에만 서면 펫들이 동작을 멈춘다.
갓난아기처럼 움직임을 멈춘 채, 멀뚱멀뚱 바라만 본다.
친구들을 조세핀의 펫을 두려워했다.
그럴수록 조세핀은 미나를 더욱 아꼈다.
택시를 타고 경기장으로 가는 길.
『1-8, 종합경기장으로 가주세요.』
『혼자 가니?』
택시 운전수가 혼자 탄 조세핀을 보며 씩 웃었다.
『네. 엄마, 아빠가 택시 타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 그랬구나.』
택시를 타고 종합경기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조세핀이 갑자기 부들부들 떨었다.
미나는 당황했다.
조세핀은 이런 적이 없었다.
뭔가 두려워하는 눈치.
조세핀이 떨리는 목소리로 택시 운전수에게 물었다.
『아저씨, 이 방향이 아닌데요?』
『응? 맞는데?』
『아니잖아요. 신호등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야 했어요. 그런데 왜 왼쪽으로 가세요! 반대 방향이잖아요!』
산골짜기. 한적하고 외딴 곳에 있는 공장.
택시 운전수가 공장 안에 들어간 후 차를 멈췄다.
차량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조세핀은 갑자기 차량에서 주변으로 몰려드는 거인을 보며 기겁했다.
한 명이 아니었다. 무려 6명.
아동납치 전문 범죄자들.
뉴스에서 보던 그 거인들이었다.
조세핀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걸 본 6명의 거인들이 실실 쪼개며 말했다.
『쉽네. 이번에는 무슨 펫을 잡아왔으려나?』
『좀 비싸게 팔릴 만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목적은 거인이 아니고 펫이었다.
거인에게는 일절 관심이 없어보였다.
6명의 뒤쪽.
푸른 피를 흘리는 거인들이 보인다.
보통 거인보다 체격이 작았다.
조세핀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곰인형을 들고 있는 아이.
로봇을 들고 있는 아이.
책가방을 메고 있는 아이와 과자봉지를 들고 있는 아이까지.
모두가 죽었다.
조세핀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미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빠져나갈 거야. 걱정하지 마.』
『뭐?』
『택시운전수의 기억에서 저 6명의 정보를 지웠어. 이제 동료가 아니야.』
택시 운전수가 멍한 눈을 하고 있다.
미나는 조세핀의 품에서 빠져나와 앞쪽으로 이동했다.
운전석 좌측. 버튼을 누르면 모든 문이 잠긴다.
미나가 버튼을 눌렀다.
그때 6명의 동료가 말했다.
『야! 뭐해? 문을 왜 잠갔어? 야! 야!』
『뭔데?』
『아니, 차 문을 안 여네. 가만히 있고. 쟤 왜 저래?』
울먹이는 조세핀.
그러나 당황하지 않는 미나.
미나가 정신이 돌아온 택시 운전수를 향해 말했다.
『밟아요.』
『어?』
『지금 우리들은 함정에 빠졌어요. 빨리 이곳에서 이탈하세요! 밟으라고요!』
택시 운전수는 자신을 둘러싼 6명의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렸다.
사실은 동료이자 친한 친구였음에도 택시 운전수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엑셀을 꽉 밟아 재빠르게 도주하는 택시 운전수와 조세핀.
그걸 보며 6명의 범죄자가 당황했다.
『저 새끼 뭐지? 쟤 왜 저래? 왜 저러는데?』
『튄다! 잡아! 잡아!』
『실화야? X발! 다들 오토바이 타! 타!』
택시가 공장 밖으로 내지르듯 달리자, 공장 안에 있던 오토바이를 타고 추격하는 6명의 범죄자들.
미나는 조세핀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줄게. 이제 구할 수 있어.』
* * *
도주는 계속 되었다.
택시 운전수는 당황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런데 조세핀이 제정신이 아니다.
미나는 할 수 없이 자신이 직접 나섰다.
미나가 폴짝폴짝 뛰더니 앞좌석에 나타났다.
『으악!』
갑작스런 펫의 등장에 택시운전수가 소리를 질렀다.
『괜찮아요. 해치지 않아요.』
미나는 그를 안정시키기 위해 말했다.
『말을 해?』
『네. 저는 거인의 언어를 알아요. 일단 1-8 경기장으로 이동해요.』
『거긴 왜?』
『지금 애완동물 최강자전 지역 예선이 열리고 있어요. 그쪽에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거기까진 쫒아오지 않을 거라구요.』
미나의 말에 택시운전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제 말을 믿어요! 믿으라구요!』
미나는 한 번 더 능력을 쓸까 고민하다가 그를 설득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능력을 쓰면 추격자로부터 따라잡힐 수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조세핀도 안전하지가 않다.
더구나 지금은 검은 구체가 옆에 없었다.
최악이었다.
검은 구체가 없으면 완전범죄가 가능하다.
숲에 가려져 하늘 위에서 대륙 전체를 감시한다는 구체의 시야에도 포착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택시운전수는 베테랑이었다.
비탈길을 잘도 빠져나갔다.
그런데 오토바이가 추격을 멈추지 않는다.
『잡아! 저 새끼 잡아서 죽여야 해!』
『피넛! 멈추지 못해?』
한편 조세핀은 울고 있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혼자 못 나가! 멈춰!》
서러웠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그런 조세핀을 향해 미나가 명령조로 말했다.
『울지 말고 당장 신고해.』
『흑흑……』
『신고하라고! 경찰이든 경관이든 빨리 신고해!』
조세핀이 스마트폰을 열었다.
그런데 터지지 않는 곳이다.
전파가 닿지 않는 곳.
『스마트폰이 안 터져. 안 터지는 곳이야.』
그때, 갑자기 새가 날아왔다.
차량 앞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까마귀였다.
까마귀가 갑자기 입에서 분비물을 내뱉었다.
차량 유리창에 까마귀의 분비물이 붙어 시야를 가렸다.
미나는 알았다. 저 까마귀는 펫이었다. 범죄자들이 가지고 있는 6개의 펫 중 하나였다.
택시운전수 피넛이 와이퍼를 움직여 분비물을 닦아냈다. 그런데 앞은 급커브길이다.
차량이 곡예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미나와 조세핀이 왼쪽으로 쏠리며 차량 내부와 부딪혔다.
미나는 몸을 일으켜 까마귀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기억 중 나는 법을 지웠다.
그러자 까마귀가 날다 말고 차량과 부딪혀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사이드미러를 통해 추격하는 무언가가 보인다.
오토바이만 따라오는 게 아니었다. 사냥개가 있었다.
미나는 자신의 힘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운전수에게 외쳤다.
『최대한 밟아요. 최대한! 전파가 통하는 곳까지 빨리! 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