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왕자의 계획
쌍봉낙타를 타고 가는 길.
『오아시스 들를까?』
에반의 말에 강백현이 핀잔을 늘어놓았다.
『꼭 들를 필요 있어? 물도 있잖아.』
『목욕 좀 하려고. 넌 목욕했지만 난 안 했잖아. 찝찝해 죽겠어. 간지러워 죽겠고.』
『그러든가.』
어차피 지도가 있다.
인간지도.
미니맵을 볼 수 있는 인간지도가.
사막 오아시스.
쌍봉낙타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올 수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남은 거리는 약 15km.
오아시스를 오려고 좀 돌아온 게 컸다.
낙타의 허리춤에 매여 있던 고삐를 땅에 고정시킨 에반.
일단 옷을 다 벗고 오아시스 안으로 들어갔다.
『오오! 시원해!』
세상만사.
모든 것을 얻은 듯이 행복해하는 에반.
먼저 마실 물을 뜨고 난 후, 목욕을 시작했다.
비누도 없고 샴푸도 없이 단순히 물로 씻는 것이었지만, 그는 불평불만 없이 일을 해결했다.
씻는 것을 마친 에반이 낙타의 고삐를 오아시스 근처로 옮겼다.
그러자 낙타가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사막.
뜨겁기만 할 줄 알았던 사막이지만 어둠이 짙어지자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다.
에반은 낙타의 짐에서 모포와 육포를 꺼냈다.
모포는 모래 위에 깔고, 육포는 입에 넣어 씹으며 말했다.
“여기서 자고 가야 해.”
“응. 잘 생각했어.”
확실히 도시에 들어가면 낯선 여정이 시작될 것이다.
에반은 편하게 누운 채였다.
“육포 진짜 맛있다. 간이 잘 됐어.”
“그래? 나도 줘 봐.”
『응.』
거인어와 한국어를 번갈아가며 대화하는 둘.
모포 위에 누운 채 하늘을 보며 도란거린다.
『에반, 무슨 생각해?』
『수철이.』
『수철이? 수철이는 너한테 어떤 애였는데?』
『너보다 더 악질이었지. 신경질을 많이 내는 편이었고.』
『그래?』
『저번에 말했지. 내가 머뭇거려서 수철이가 죽었다고.』
『그랬지. 그게 뭐?』
『너를 보면 수철이를 살리고 싶기도 해. 매년 각 지역마다 애완동물 최강자를 가리는 지역 대회가 있거든?』
『수철이를 살린다고?』
『응. 끝까지 들어봐. 말 끊지 말고. 애완동물 최강자를 가리는 지역대회는 각 대륙마다 열려. 지역 예선을 거쳐 대륙 본선, 대륙 결승까지. 그 대회에서 우승하게 되면 영혼의 돌이란 것과 소생의 돌이라는 것을 줘. 그 돌은 죽은 애완동물을 살릴 수 있는 돌이야.』
백현은 그 두 개의 돌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백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랑 같이 나가자고?』
『아니! 나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해. 내 목숨이 아니라 네 목숨.』
『……』
강백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얻은 두 개의 돌.
절대 타인을 위해 쓸 생각은 없었다.
하나는 이진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쓸 것이고.
소생의 돌은 만에 하나 동생의 목숨이 위험할 때, 또는 자신이 위험할 때 쓸 생각이었다.
『뭐야? 또 삐쳤어? 내가 너 위험하게 안 한다니까. 사실 아르케 지역하고 여기 도르시안하고는 수준 차이가 많이 나.』
『그게 무슨 말이야?』
『너랑 내가 이긴 상대들. 아르케에서는 진짜 동네 어린애들 수준밖에 안 될 거야. 합성종도 안 가지고 있는 애들이었잖아. 도심지하고 이런 촌하고 애당초 상대가 안 되는 거지.』
백현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경제력은 아프리카 모든 국가를 합쳐도 따라올 수 없다.
최고 중 최고의 상품들이 도심지 중심상권으로 몰려든다.
한국에서 어부가 생선을 잡아도 최상급은 서울로 가고, B급, C급이 현지에서 유통된다.
따라서 가장 맛있고 질 좋은 생선을 먹으려면 모르고 가도 서울이 최고다.
거인의 대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첨단도시 아르케.
이곳에 모든 재화가 몰린다.
펫도 마찬가지.
좋은 펫은 다 수출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쪽은 낙후되어 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비교해보니 에반이 여기서 괜한 자신감을 가지는 게 아닌 듯했다.
그래도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럼 여기서 살지, 왜 아르케에서 살고 있었냐? 그것도 노동자로.』
『묻지 마.』
『뭘 묻지 마. 너랑 나랑 평생 같이 가야 한다며! 널 위해서 목숨도 걸으라며!』
에반의 얼굴 바로 옆에서 같은 자세로 누워 있는 백현의 말.
에반이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아르케 1-1지역에는 바키우스라는 거인이 살아. 그는 아르케를 지배하는 실권자지.』
바키우스라는 말에 백현이 되물었다.
『아르케 이야기를 왜 하는데?』
『그 부하가 우리 신디아 대륙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으니까.』
『뭐?!』
『우리 아버지, 형제들 할 것 없이 모두 당했어.』
『당했다니?』
『녀석의 펫은 어떻게 해도 이길 수가 없었어. 그땐 정보가 부족했지.』
에반의 커다란 눈망울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룩하고 떨어지는 커다란 물방울.
백현은 그를 이해했다.
갑자기 찾아온 부모님의 죽음.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었으니까.
에반이라고 크게 다를 리 없었다.
그도 한 인격체인데…….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자유의지가 있는 생명체인데…….
거인과 인간.
대화를 할수록 느끼는 것은 둘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
에반은 눈물을 닦아내고 백현에게 말했다.
『합성종, 그들은 자신의 펫을 그렇게 불렀어.』
『합성종, 나 알아. 아르케 1지역에 있을 때 학교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것을 봤어. 연구원이 가지고 있는 것도 봤고.』
고양이 인간.
가재 인간.
그 전에 페이즈 3에서 보았던 개미 중 일부도 합성종이었다.
합성종은 대부분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자유의사를 표현할 줄 알았다.
그 합성종이 왜?
『합성종, 합성생물체는 아르케의 연구소에서 만들어져. 그들은 인공생명체로 수명은 짧지만 강력한 힘을 낼 수 있지. 우리 대륙을 정복하러 왔다는 그 녀석도 합성종을 가지고 있었어.』
『그랬구나.』
『응. 결과는 뭐……. 지금 내 꼴이지. 나는 다행히 도망칠 수 있었어. 나를 죽이려는 자의 추적을 아버지가 막아냈거든.』
『분쟁조정을 통해서?』
『그래. 아버지가 시간을 버는 동안 난 도망을 쳤던 거야.』
『그들의 목적은 뭔데?』
『당연히 영혼의 돌과 소생의 돌이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에반이 신기한 이야기를 꺼냈다.
『소생의 돌 50개를 모으면 살릴 수 있어.』
『뭐?』
『펫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나 형제도 살릴 수 있다고.』
소생의 돌 50개.
적지 않은 숫자다.
거인의 목숨 값이 소생의 돌 50개.
인간의 목숨 값은 소생의 돌 1개.
대략적인 크기로 볼 때 거인은 인간의 50배.
크기에 따라 나뉘는 건가?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대답을 지금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소생의 돌을 모으겠다는 거야?』
『1년에 한 개씩 모아서 언제 모은다고. 모은 것을 뺏어야지.』
『뺏는다고?』
『응. 각 황제들은 소생의 돌을 모아두었어. 우리 아버지도 꼭꼭 숨겨두셨지. 소생의 돌은 우리 거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부여해. 죽어도 또 살아나고 죽어도 또 살아나지. 이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야. 우리 조상들도 율리만 섬에 방문해서야 알게 된 거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 소생의 돌이 지닌 가치가 갑자기 상승했다.
거인에게는 애완동물을 살리는 것 외에는 가치가 없었던 소생의 돌.
하지만 거인 자신의 목숨도 살릴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거인들은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올 것이다.
단순한 지역, 대륙 대회가 아닌 살육현장이 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바로 그런 거니까.
드르렁~ 드르렁.
에반이 코를 골기 시작했다.
이제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는데, 소음에 잠이 싹 달아났다.
백현은 미니맵의 남은 시간을 계산하며 동료들의 생존을 확인했다.
미나, 김만철, 김아람, 그리고 정선희가 살아있다.
윤수도 이진기도, 최형우 아저씨도 살아있다.
그런데, 그런데.
장복남 아저씨가 보이지 않는다.
검색되질 않는다.
저택을 살펴보았다.
페트라 가문의 집.
인간들이 전부 사라졌다.
백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어떻게 된 거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
다음 날 아침.
강백현이 에반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커다란 손이 백현을 들어올렸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물어볼 게 있어.』
『뭔데? 눈은 또 왜 그래?』
충혈된 눈.
밤새 한 잠도 못 잤는지 강백현의 상태가 말이 아니다.
『페트라 가문에서 기르던 인간들이 검색되질 않아. 모습도 보이지가 않고.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된 거야!』
백현의 말에 에반이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어떻게 된 거냐니까!』
백현의 계속된 질문에 에반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걸 꼭 내 입으로 듣고 싶어? 너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잖아.』
『죽인 거야?』
『아마도 안락사시켰겠지. 아니면 다른 애완동물의 밥으로 줬거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강백현의 말에 에반이 대답했다.
『너희 인간도 우리랑 다를 게 없잖아. 너희들의 일상을 방송에서 봐서 난 알아. 돼지도 잡아먹고 소도 잡아먹고, 그게 뭐가 다른데?』
그러고 보니 에반이 자신의 집에서 페이즈 1의 방송을 지켜보던 것이 생각났다.
『그 방송 말하는 거지?』
『그래. 경기가 시작되기 전 해당 종족에 대한 특집프로그램을 방영해. 너희 인간이란 종족은 다른 종족을 살해하는 데 거침이 없더라. 아~ 물론 우리 거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아니야. 해 뜨기 시작한다. 출발하자.』
에반이 쌍봉낙타의 고삐를 풀고 여정을 시작했다.
강백현은 피곤해서인지 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져서일까?
심각한 두통이 계속되자 에반이 수면가스를 꺼냈다.
『재워줄까?』
『됐어. 강제로 자는 건 사양이야.』
에반의 주머니 안에서 누워 잠을 청하는 백현.
두통이 심한데도 곧 곯아떨어진 그를 본 에반이 쓴웃음을 지었다.
성격의 차이.
종족의 가치관.
앞으로도 서로 대립할 수밖에 없는 관계.
『‘앞으로도 우린 자주 다투겠지. 내가 널 이용하는 한 계속 다툴 수밖에 없어. 하지만 당분간 난 너한테 져줄 생각이야. 그러니까 날 믿어.’』
에반이 자고 있는 백현을 확인한 후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수많은 화학공식이 들어있다.
그림도 그려져 있다.
두 개의 플라스크.
한쪽에는 인간이, 다른 한쪽에는 인간 외의 생명체가 들어있는 그림.
그리고 비커의 용액.
이 용액을 섞으면 인간과 다른 생명체가 합쳐져 합성종이 만들어진다.
에반이 자신의 부모와 형제를 죽인 합성종을 떠올렸다.
최강의 펫은 역시 지성을 가진 휴먼이었다.
인간과의 합성종.
그리고 그런 합성종에 적합한 백현.
백현만 있으면 최강의 합성종을 만들 수 있다.
『‘기다려. 우리 대륙에 가면 널 최강으로 만들어줄게.’』
에반이 자신의 품에 합성종의 조합식을 집어넣었다.
페트라 가문의 칼스 연구원으로부터 훔친 조합식.
에반은 백현을 속여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걸 눈치챌 리 없는 강백현.
에반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낙타의 고삐를 당겨 모로코 방향으로 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