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88화 (88/200)

88화. 사막

미나는 조세핀의 말에 따라 거인들의 기억을 조작했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조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피곤함.

진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아빠 거인의 이름은 알베르토.

엄마 거인의 이름은 르넷.

그들의 대략적인 기억 단편을 통해 미나가 알아낸 것.

‘엄청난 부자였어. 거인들 중에서도 엄청 잘 사는 그런 부류.’

두 거인의 기억에서 자신과 백현을 지운 미나는 조세핀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그건 다른 사람의 생존 여부.

『이름이 뭐라고? 내가 알아봐줄게.』

검은 구체를 통한 펫 검색 시스템.

여전히 오빠는 등록되어 있었다.

그건 적어도 주인이 펫을 바꾸지는 않았다는 것.

‘다행이야. 오빠는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아.’

거기에…….

김만철과 김아람도 펫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다행이다. 아저씨랑 언니도 살아있었구나.’

각각의 주인의 이름은 바키 무어. 버키 무어.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지역이 비공개로 되어 있다.

『지역이 왜 비공개로 되어 있어? 얼굴은 왜 안 나오고?』

에반 슈트리거는 사는 지역과 얼굴도 나왔다.

그런데 바키 무어와 버키 무어는 사는 지역도, 얼굴도 비공개로 되어 있다.

조세핀이 말했다.

『아마도 특정 정보를 비공개로 설정한 모양이야. 저번에 에반은 자신의 정보를 공개로 했던 거고.』

다른 사람도 검색해보았다.

그런데 찾아지질 않는다.

윤수도, 정선희도, 최형우 아저씨도…….

‘어떻게 된 걸까?’

그때, 조세핀이 미나를 불렀다.

『미나야.』

『어?』

『네가 검색한 그 2명, 지역 대회에 참가 신청을 했는데?』

『지역 대회?』

『응. 애완동물 최강자를 가리는 지역 대회.』

웹서핑을 통해 바키 무어와 버키 무어가 지역대회에 참가 신청한 것을 알아낸 조세핀.

그 지역은 바로 아르케.

『우리 지역이잖아?』

『응. 보름 뒤야. 구경하러 갈래?』

『응. 알겠어.』

미나는 보름 뒤 지역 예선이 열리는 경기장에서 김만철과 김아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만나면 물어볼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한 미나는 이진기 오빠를 찾아야 했다.

그의 천리안이라면 뭐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일단은 김만철 아저씨와 김아람 언니를 만나는 게 우선이다.

* * *

에반 슈트리거.

그리고 그의 펫 강백현.

둘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린 상태였다.

강백현의 하얀 피부는 검은 구릿빛으로, 에반의 푸른 피부는 짙은 남색이 되었다.

표류하는 동안 백현이 미니맵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방향을 조종할 수 없다는 점.

자고 일어나면 해풍에 의해 어디론가 계속 쓸려간다는 점이다.

원래는 읽어버린 대륙 신디아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도착한 곳은 신디아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에반! 에반! 일어나!”

“뭐야~ 좀만 더 자자! 어차피 할 것도 없잖아.”

“정박했어. 이제 바다 아니라고! 일어나! 일어나!”

백현이 보호막으로 오목렌즈를 만들어냈다.

햇빛을 모아 에반의 피부를 태웠다.

그러자 에반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앗 따가워! 뭐야!』

“뭐긴 뭐야. 해안가지.”

해안가.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져 있다.

넓은 백사장.

끝도 보이지 않는 백사장이 그들이 대륙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백사장이 진짜 넓다는 것.

시야 좌측 끝부터 우측 끝까지 전부 백사장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정면에도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가 사막이었으니까.

“설마?”

“그래. 그 설마! 여기가 네가 말한 메마른 사막 도르시안 아니야?”

강백현이 미니맵을 켠 채, 백사장에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래에 그려진 전체 지도에서 이곳이 어디쯤인지 설명해주는 백현.

그러자 에반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한탄을 토해냈다.

“아! 망했어. 망했어! 진짜 망했어.”

“망했다고 하지 말고, 여기서 얼마나 가야 하는데?”

“두 달? 세 달?”

“미쳤니? 걸어서? 사막을?”

“네가 걷는 거 아니잖아. 직접 걸을 것도 아니면서 뭐가 그리 불만이야?”

생각해보니 그랬다.

자신은 유리병 안에 들어가서 그냥 잠만 자면 된다.

걷는 건 에반이 할 테니까.

“그러네. 네가 걸으면 되겠네.”

한국말로 의사소통하는 거인과 인간.

“아~ 미치겠네. 미치겠어.”

에반은 당황함을 뒤로 하고 보트에서 짐을 챙겼다.

해풍을 대비해서 준비한 두꺼운 잠바, 이불 등을 모조리 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얇은 천조각만 겨우 챙긴 에반이 백현에게 말했다.

“걸어야지. 걸어야지.”

그런데 백현이 좋은 소식을 건넸다.

“오아시스가 보이네.”

“오아시스?”

“응. 걸어서 15km만 가면 물구덩이 같은 게 보여. 일단 신디아 대륙으로 가는 방향이니까 그쪽으로 걷자고.”

“아……응.”

첨단도시 아르케와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 메마른 사막 도르시안, 밤바비아 초원은 모두 내륙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만 문제는 내륙으로 가는 길이 매우 멀다는 점.

거인의 행성 중앙부에는 율리만 섬이 있고, 섬 주변의 바깥 지역 11시 방향으로 아르케, 8시 방향에 도르시안, 5시 방향에 신디아, 2시 방향에 밤바비아 초원이 펼쳐져 있다.

즉 아르케와 신디아는 마주보고 있기에 대륙으로 이동하면 삥 둘러가게 되므로 배를 타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는 셈이라 도중에 행성 중앙에 있는 율리만 섬도 목격할 수 있다는 게 장점.

그런데 문제는 연료가 없어 표류하는 통에 신디아가 아니라 남쪽의 사막, 도르시안 지역에 도착했다는 점이었다.

도르시안은 강렬한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저주받은 대륙이었다.

온도가 너무 높아 거인이 살기 부적합한 대륙.

그런 대륙.

아니 사막을 걷기 시작하는 두 사람.

에반이 걷다말고 비명을 내지른다.

『아얏! 아얏! 아얏!』

에반의 호들갑에 어깨 위에 올라있던 백현이 물었다.

“뭔데?”

“뜨거워 죽겠다. 발바닥 따가워.”

사막을 처음 걷는 에반.

신발은 보트에 있던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슬리퍼 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온도 때문에 에반이 비명을 내지른 것.

강백현은 에반에게 말했다.

“발 들어 봐.”

“뭐?”

“발 한쪽 들어보라고.”

에반이 발을 들자, 강백현은 보호막을 계단 삼아 그의 허벅지 위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에반의 발에 신발을 만들어주었다.

“뭐야?”

“반대쪽이나 들어봐.”

“아…….”

슬리퍼에 에어포켓이 달렸다.

그러자 안쪽으로 파고들던 모래가 더 이상 에반을 괴롭히지 않는다.

한 걸음 떼기도 힘들어보였던 사막의 여정은 백현과 함께 하니 그리 힘들지 않았다.

다만 에반의 입장에서는 백현의 행동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백현이 불투명한 보호막으로 혼자 햇빛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 나는 그런 거 안 해주냐?”

“뭐? 발바닥 해줬잖아.”

“그거 말고 얼굴도 좀 해줘.”

“그거 하면 나 피곤해서 안 돼. 지금도 힘들거든?”

“대신 시원하잖아.”

“그래. 체력을 소모하는 대신 시원함을 택한 거지. 얼른 오아시스까지 걷기나 해!”

사막은 진짜 개미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었다.

3km 즈음 걸었을까?

에반의 슬리퍼에서 에어포켓이 사라졌다.

“야! 따가워 죽겠어.”

“그런데? 난 힘들어 죽겠는데? 나한테 엘릭서인가 뭔가 사용해주든가!”

“여기서 구체를 어떻게 부르냐? 컴퓨터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데!”

“헐…….”

검은 구체.

그것을 호출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해야 했다.

즉, 여기에서는 꼼수가 안 통한다는 것.

보호막으로 그늘을 만들어도, 혹은 신발을 만들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다.

그건 갈증.

사막의 따가운 햇볕에 증발되는 땀이 에반과 백현으로 하여금 심각한 갈증을 느끼게 했다.

“오아시스까지 얼마나 남았어?”

“11km?”

“아, 미치겠네. 못 걸을 것 같은데?”

“그럼 일단 500m 오른쪽으로 돌아가 봐.”

“거기 뭐가 있는데?”

“저기 녹색 보이잖아. 네 눈에 안 보여?”

녹색의 식물.

바로 선인장이다.

“저게 뭔데?”

“선인장이잖아. 저거 안에 물 있을 거야. 그거라도 먹자.”

“오! 똑똑한데?”

“기본 아니야?”

거인의 세계.

인간의 세계.

공통점이 많다.

거인의 룰이나 피부색처럼 무언가 다른 점도 있지만, 생물의 특징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었던 것.

백현이 선인장을 보호막 파편으로 갈랐다.

그러자 갈라진 선인장 안쪽의 물관에서 깨끗한 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백현이 가시 때문에 곤란해하는 에반의 손을 보호막으로 덮어주었다.

그러자 에반이 방긋 웃으며 잘린 선인장의 윗부분을 들어 물관 부분이 아래로 향하게 했다.

쏟아지는 맑은 물.

그걸 마시며 정신을 차리는 에반.

얼마나 많은 물이 쏟아져 나왔는지 에반은 그것으로 머리를 축축하게 적셨다.

다음은 백현의 차례였다.

에반은 선인장의 물로 백현의 전신을 적셔주었다.

생각보다 시원하고 깨끗한 물.

마셔도 좋고, 씻기에도 좋았다.

선인장을 통해 기운을 회복한 둘은 목표지점을 향해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에반. 거인들이 몰려와.”

“뭐?”

“거인들이 있다고.”

온몸을 천으로 가린 거인들이 모래사막의 언덕 위에서 에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낙타를 타고 에반 쪽으로 걸어왔다.

등이 2개인 쌍봉낙타.

“도움을 청해볼까?”

“말이 통해?”

“말이 통하냐니?”

“언어가 다를 수도 있잖아.”

“거인어는 거인어지. 언어가 다르다니?”

“뭐? 우리 인간들은 대륙마다 쓰는 언어가 다른데?”

“그래? 아! 들은 적 있다. 수철이가 말해준 적 있어. 인간들은 수백 개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그래서 인간들끼리 말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거인들은 안 그래. 서로 다 같은 언어를 쓰니까.”

첨단도시 거인들과는 달리 험상궂은 인상.

에반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손을 흔들었다.

때마침 쌍봉낙타 주변에 검은 구체가 날아다닌다.

그런데…….

낙타에서 내린 거인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들이 물었다.

『돈 얼마나 가지고 있지?』

『네?』

『제니 얼마나 가지고 있냐고! 눈 스캔해 봐!』

『네. 두목님.』

소형 구체를 꺼낸 남자가 에반의 눈을 스캔한다.

그러자 잔액이 뜬다.

《에반 슈트리거 님의 현재 잔액은 3,356제니입니다.》

에반의 잔액을 확인한 일행들이 욕을 퍼부었다.

『거지새끼네.』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죽일까요?』

그들은 사막의 무법자.

에반이 당황했다.

『저기요. 그냥 갈 길 갈게요. 그냥 보내주세요.』

『우리랑 마주쳤는데 그냥 보낼 순 없지. 라울! 상대해!』

『네.』

거인의 룰.

《거인의 룰 1》 거인끼리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거인의 룰 2》 모든 분쟁은 가급적 대화로 해결한다.

단, 대화로 해결되지 않으면 각자의 애완동물(펫)의 힘으로 분쟁을 조정한다.

검은 구체가 분쟁을 조정한다.

《사용자 라울 아반, 사용자 에반 슈트리거와의 분쟁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분쟁 조정 신청이 완료될 때까지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검은 구체가 결계를 만들어낸다.

두목에게 지목당한 라울이 물주머니 옆 상자에서 자신의 펫을 꺼냈다.

라울의 펫은 황당하게도 저번에 상대했던 것과 같은 전갈.

제이스가 소유했던 사막 전갈이었다.

에반은 그걸 보며 백현에게 말했다.

“이길 수 있지?”

“응. 저번에 상대해봤으니까.”

백현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보호막 파편을 타고 전갈의 꼬리와 집게발을 잘랐다.

생각보다 강한 백현의 활약에 당황하는 라울.

하지만 백현은 봐줄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라울은 그저 그런 부하 1에 불과했으니까.

보호막 파편이 꼬리와 집게발이 없는 전갈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분쟁 조정이 끝났습니다. 결과 : 에반 슈티리거의 승리》

《전리품으로 240Point를 얻었습니다.》

검은 구체가 결계를 해제하자 당황하는 두목.

『야! 다음 누가 나갈 거야? 다음 누가 나갈 거냐고?』

그러나 선수 치는 에반.

《사용자 에반 슈트리거, 사용자 간디 포메리안과의 분쟁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분쟁 조정 신청이 완료될 때까지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에반이 씩 웃으며 부하들 앞에 있는 두목에게 말했다.

『이름이 간디냐? 빨리 펫 꺼내! 꺼내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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