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마스터
한태석이 거주지로 돌아왔다.
장명훈은 돌아온 한태석에게 보고를 받았다.
“잘 해결됐나?”
“네. 마스터. 해결됐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
“한 명을 더 지원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바키란 거인의 형이 자신도 경기에 참여하겠답니다.”
“형?”
“네. 버키란 친구인데, 거인 축구 지역 선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신체능력도 뛰어나고요.”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아람이의 자존심을 무너트릴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럼 아람 씨 지금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네?”
“아니야. 일단 물어 봐. 물어보고 대답 들어보는 걸로 하지. 나가 봐.”
“네.”
마스터의 묘연한 행동.
한태석은 그 미묘한 무언가를 캐치했다.
‘뭐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대신 누구를 보내겠다는 거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스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의문을 뒤로하고 한태석이 이동했다.
여성숙소.
정선희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김아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똑똑.
문을 열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철 씨, 들어와요.”
확실히 김만철은 정선희와 오늘 약속이 있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정보조 요원 한태석입니다. 아람 씨 뵈러 왔습니다.”
“아, 아람이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네?”
“밖에 나가본다고 4시간 전에 말한 이후에 아직 안 들어왔어요.”
김아람의 행방이 묘연하다.
광장에도 없고, 방에도 없고 수련실에도 없다.
그래서일까?
한태석이 자신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사무실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지만, 그래도 나름 최첨단 시설을 가지고 있다.
“성훈 씨.”
“네.”
“혹시 오늘 거주지 출입명단에 김아람 씨 있나 확인해 줄 수 있어요?”
“네. 확인해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의 분할 화면.
내시경 검사를 할 때 쓰는 카메라가 입구에 설치되어 있고, 그 화면을 감시하며 출입 명단을 체크하는 것도 정보조의 임무 중 하나.
그리고 딱 걸렸다.
“36분 전에 나간 것 확인했습니다. 전 근무자가 기록해둔 게 있네요.”
“그래요?!”
당황스러운 반응.
한태석이 다급해진 것은 거인과의 약속 때문.
“무슨 일 있으세요?”
“아람 씨한테 급하게 전할 일이 있어서요. 아~ 이걸 어쩌지. 일단 화면 돌려봐요. 36분 전으로.”
“네.”
스마트폰을 조작해 36분 전에 녹화된 화면을 확인했다.
김아람이 골목에서 좌측으로 이동한 모습이 보인다.
그걸 보며 홍성운이 말했다.
“무법지대로 이동했네요.”
“곤충들이 살고 있는 장소. 거길 왜 혼자 갔지?”
“잠시만요. CCTV 더 돌려볼게요.”
“네.”
홍성운이 CCTV 화면을 다시 조작했다.
그러자 건물 옆 화면이 잡히고, 몇 번을 더 조작하자 김아람이 목격된다.
“어떻게 찾았어요?”
“거인들이 CCTV에 비밀번호를 잘 안 걸어놓거나, 초기 비밀번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런 CCTV에 접속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죠.”
김아람이 하수구 지역 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더 이상은 불가해요. 저쪽은 거인들의 거주지가 아니라서 CCTV가 아예 없어요.”
“찾아야 해요. 데리고 와야 해요. 성운 씨! 텔레파시로 성환 씨랑 연결 되죠?”
“네. 형한테 제 메시지를 전달할 수는 있죠.”
“지금 요청해줘요. 그쪽으로 출동해달라고, 김아람 씨를 데리고 와 달라고.”
“네. 알겠습니다.”
* * *
작전조.
때마침 임무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런데 갑자기 텔레파시로 연락이 왔다.
“뭐야?”
홍성환의 갑작스런 말에 김건우가 말했다.
“뭔데? 텔레파시야?”
“동생이 지금 출동해달라는데요.”
“아, 이제 임무수행 딱 끝나고 교대하려는데 왜 출동해달라는 거야? 정보조 애들은 별거 아닌 거 가지고 맨날 확인해달라고 지랄하더라. 지네들은 사무실에서 편하게 띵까띵까 놀기만 하고 있으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저희 작전조 멤버인 김아람 씨가 무단이탈했다고 하네요.”
“뭐? 김아람이? 걔 오늘 비번이잖아.”
“네. 그렇죠. 거주지에서 쉬는 날이죠.”
“아! 진짜 속 썩이네. 만철이 형님하고 같이 들어와서 왜 이렇게 차이 나냐!”
“그러게 말입니다. 일단 하수구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그쪽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자고!”
“네.”
김건우가 홍성환에게 보고를 받고 복귀하던 경로를 틀었다.
하수구 일대.
가장 가기 싫은 장소다.
“어디야? 안 보이는데?”
김건우의 말에 홍성환이 대답했다.
“24분 전에 최종 목격되었다고 하네요. 멀리는 못 갔을 거라고, 인근 수색해달라고.”
“아, 미치겠네. 왜! 정확히 위치 좀 알려달라고 하지. 진기 씨 천리안 이용하면 되잖아.”
“그게 진기 씨가 지금 파견을 간 상태라서 불가능할 겁니다.”
“아~ 꼬였다. 꼬였어. 오늘 밤 샐지도 모르겠다. 여기 엄청 짜증나고 위험한데…….”
김아람의 행동으로 벌어진 일.
김아람은 왜 나간 걸까?
무슨 이유로?
* * *
같은 시각, 김아람은 하수구 일대를 뒤지고 있었다.
“어디 있는 거야!”
남은 시간 145일.
145일이 지나면 자신은 죽고 만다.
김아람은 다급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줄을 몰랐다.
2시간 전.
김만철에게 패배한 김아람은 자존심을 접고 마스터의 방으로 향했다.
장명훈은 김아람의 방문을 예견하고 있었는지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나갈 건가?”
“네. 제 살길 찾아야죠.”
“정보 하나를 주지.”
“정보요?”
“거주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하수구가 있을 거야. 하수구를 지나 2km를 걸어가면 일본 팀이 나오지. 듣고 보니 혼혈이라며?”
“네.”
“일본 거주지의 마스터에게 요청해 봐. 혹시 알아? 널 받아줄지…….”
김아람은 잠시 고민했다.
혼혈이 맞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살았던 것도 맞고, 일본어를 잘하는 것도 맞다.
그런데 자신과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기에 있었다.
윤수도, 최형우 아저씨도 그리고 지금은 많이 다퉜지만 김만철 아저씨도.
그래서 고민이 길어졌다.
하지만 역시 살아남고 싶었다.
고작 145일만 살고 싶진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고 고통스러웠던 페이즈가 진행되던 그때하고 지금은 다르니까.
“일본의 거주지로 가겠어요.”
“그래. 작별인사는 하지 말고 지금 바로 떠나. 남아있는 사람 혼란스럽게 하지 말고. 여기! 슈트 받아가고.”
“네.”
다시, 현재.
하수구에서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줄 거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버티면 거주지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말 이 길이 최선일까?’
구역질이 날 정도로 썩은 물.
그리고.
『찍찍, 찍찍』
소름끼치는 쥐들의 울음소리.
바스락바스락.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낙엽발자국 소리까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수구 안쪽의 시멘트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김아람을 겁먹게 만들었다.
‘괜찮아. 겁먹지 마. 다 각오한 거잖아!’
김아람이 몸을 떨며 앞으로 전진했다.
어두워졌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하수구 안쪽 공간.
물에서 자라는 이끼들이 기분 나쁜 냄새를 자아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기가 서려왔다.
축축한 하수구 안의 냉랭한 공기가 김아람의 허파까지 파고들었다.
그래도 김아람은 용기를 냈다.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앞에서 무언가가 돌진했다.
김아람은 침착하게 슈트의 버튼을 눌러 배 앞에 있는 전구를 켰다.
그러자 앞쪽에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놀랄 만도 할 텐데, 김아람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앞니 두 개가 길게 뻗은 쥐.
그 쥐의 입을 염력으로 찢어놓는 김아람.
쥐의 사체를 뒤로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들어가자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구석으로 걷기 시작했다.
걷고 또 걷고.
걷고 또 걷고.
한 시간을 걸었을까?
김아람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었다.
그 이유는 무언가를 목격했기 때문.
어둠 속에서 천장에 불빛들이 보인다.
엄청난 수의 불빛을 향해 자신의 배 부분에 있는 전구를 들춰올렸다.
그러자 그 무언가의 존재가 밝혀졌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생명체.
집단을 이뤄 잠을 자고 있는 존재들.
동굴에 자주 서식하는, 일상에서는 보기 힘든 생물들.
바로 흡혈박쥐가 김아람의 움직임을 초음파로 감지하고 날아들기 시작했고, 김아람은 비명을 지르며 하수구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 *
같은 시각.
김건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거야?”
그때, 홍성환이 말했다.
“조장님.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진기 씨 곧 연결될 것 같다네요.”
“어떻게?”
“CCTV기능 멈추고 스마트폰으로 전화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래? 성운 씨가 일 좀 하네.”
“네. 그렇네요.”
그리고 곧 이어 들어온 정보.
“하수구 안쪽 50m 지점에 있대요. 물 안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온대요.”
“아, 슈트 입은 거야?”
“네. 그렇다네요.”
“미치겠군. 도대체 아무것도 없는 여기를 왜 들어간 거야?”
김건우는 김아람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다.
죽을 생각이 아니면 이곳에 올 이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착실히 살지. 바보 같이 왜 사서 죽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성환 씨! 뛰자!”
“네. 알겠습니다.”
둘이 김아람을 만나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땀이 나기 시작하자 그들이 입은 슈트가 성능을 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속도보다 확연히 빠른 속도.
그들이 김아람을 구하기 위해 달려간다.
일단 배 앞쪽에 있는 전등을 켜서 시야를 확보하고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그런데 대단했다.
“미쳤어. 이걸 다 혼자 죽인 거야?”
하수구 안쪽으로 들어가자 생명체들이 전부 난자된 상태로 널브러져 있다.
쥐, 장구벌레, 박쥐는 물론 수많은 모기들도 수십 개로 몸이 분리되어 있었다.
“조장님, 그냥 저희 가지 말까요?”
“왜?”
“무서워서요.”
“그게 할 말이야? 우리 조원이잖아.”
“말만 조원이지. 계속 각자 행동했잖아요. 저희한테 민폐만 끼쳤잖아요. 솔직히 전 죽어도 싸다고 생각해요.”
홍성환의 말에 김건우가 정색했다.
“성환 씨!”
“네?”
“그런 말 함부로 뱉지 마. 난 누구도 포기하지 않아.”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동생에게 텔레파시가 왔다.
《형, 마스터가 철수하래. 도대체 거길 왜 들어갔냐고, 일 키우지 말고 돌아오래.》
텔레파시를 들은 홍성환이 김건우에게 다시 말했다.
“마스터가 철수하라고 합니다. 조장님, 철수하시죠.”
“안 돼! 안 된다고!”
“안쪽은 위험하답니다. 박쥐들이 우글우글 거린다고 합니다.”
“그럼 성환 씨는 돌아가. 나 혼자라도 갈 테니까.”
“조장님!”
“간다. 간다. 간다!”
김건우가 안쪽을 향해 뛰었다.
박쥐 떼들이 들러붙고 있었다.
김건우는 김아람으로 추정되는 불빛을 발견하고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물질투과.
모든 물질을 투과시킬 수 있는 능력.
그건 자신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물속을 뛰기 시작하는 김건우.
그의 시야에 김아람이 보였다.
그녀는 의식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김건우가 눈을 감은 그녀를 잡았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모든 것을 투과하기 시작했다.
김건우가 신음을 흘렸다.
‘역시 무리인가…….’
물질투과 능력을 오래 지속하면 생명이 위험하다.
그래서 움직일 때는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동료가 위험하니 목숨을 걸어야겠다고 판단했다.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쥐들은 물 밖에서 김아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건우는 자신의 모든 힘을 짜내 김아람을 업고 뛰기 시작했다.
물질 투과 능력을 한계까지 사용한 그가 하수구 입구까지 김아람을 데리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스르르륵.
슈트가 비명을 내지른다.
김건우는 알았다.
자신의 슈트가 생명을 다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도 죽을 고비라는 것을.
숨을 헐떡이는 김건우.
그리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홍성환.
썩을 물을 마신 채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김아람.
김건우가 홍성환에게 가까스로 말을 건넸다.
“불러.”
“네?”
“부르라고! 도움 요청! 도움 요청.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