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바키, 버키
바키의 말에 한태석이 대답했다.
『네. 처음입니다.』
『우와! 진짜 우리 말 잘한다. 똑똑해. 똑똑해. 어떻게 배웠어?』
『5년간 독학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 작은 스마트폰이 있는데 그걸로 자주 봤습니다.』
정보조가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수단 중 하나인 스마트폰.
거인에게는 작은 휴대용 기기일 뿐이지만, 지금의 인간에게는 90인치 대형 TV나 다름없는 기기.
그런데 김만철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자신의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나랑 같이 경기 나갈 친구는 둘 중 누구야?』
바키의 질문에 한태석이 김만철을 가리켰다.
『이 사람입니다. 이름은 김만철이고요. 생긴 건 나이 많이 들어보이는데, 실제로는 36살밖에 안 됐습니다. 한참 싸울 나이죠.』
『아, 그래?』
버키와 바키가 신기한 듯 김만철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다부진 체격.
조금은 강해보였다.
하지만 능력은?
펫은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포인트를 이용해 다양한 능력을 습득할 수 있고, 그중에는 말도 안 되게 강한 능력을 지닌 펫도 있다.
예를 들면 부활, 환술, 거기에 능력 봉인까지.
바키는 한태석에게 요구했다.
『능력 먼저 보고 싶은데?』
『네. 그래야죠. 바로 테스트 하겠습니다.』
한태석은 거인 바키로부터 들은 내용을 김만철에게 전달했다.
“저 만철 씨, 능력을 보여주세요.”
“어떻게 보여주면 되나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저분 마음에 들 수 있게요. 일종의 면접평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김만철은 자신의 주인 후보인 바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작부터 평가한다고?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데?
게으르고, 게임만 좋아하는 중독자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순 없었다.
김만철이 자신의 몸에 시동을 걸었다.
제자리 뛰기를 통해 땀을 내는 김만철.
그리고 순간 펑.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빨리 도약했다.
바키도 놀라고 버키도 놀랐다.
『대박! 엄청 빠르잖아.』
순식간에 버키의 어깨에 오른 후, 바키가 보고 있던 컴퓨터로 도약하는 경이로운 신체능력을 선보였다.
그런데 검증은 끝나지 않았다.
바키가 자신의 형인 버키에게 물었다.
『한번 붙여볼까?』
『뭐랑? 네 거랑?』
『형 거랑 붙여볼래?』
『아니, 너부터 해.』
『알았어.』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만철이 한태석에게 물었다.
“뭐라는 겁니까?”
“아마 대결을 시키려는 것 같습니다.”
“대결이요?”
“네. 바키 님의 펫하고 싸움을 붙여보는 거죠. 실력은 그걸로 증명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아~ 이 뚱땡이의 펫이랑요?”
“네.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김만철은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했다.
“저 이거 하나만 말해주세요. 저는 파트너로 저 뚱뚱한 친구 말고, 근육질인 저 친구랑 하고 싶다고.”
“아~ 그건 좀 곤란한데요.”
“네?”
“협상의 여지는 없습니다. 저희가 철저히 을이고요. 저희가 없어도 이 거인들은 경기에 참여하는 데 전혀 제한사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잖아요. 급하잖아요.”
“아…….”
대화가 길어지자, 거인들도 궁금했나보다.
『뭐라는 거야? 뭐라고 자꾸 말하는 건데?』
바키의 말에 한태석이 당황했지만 애써 감추고 대답했다.
『바키 님이 좋답니다.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실력으로 증명해보겠다고 합니다.』
한태석의 대답에 바키가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 그가 한 행동은?
김만철을 들어올리는 것.
살집이 두터운 손으로 잡아올리자, 김만철의 얼굴에서 곤욕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바키가 씩 웃으며 김만철에게 말했다.
『그래. 실력 보여줘 봐. 내 터틀 38호하고 싸워서 이기면 생각해볼게.』
바키는 솔직히 김만철이 마음에 들었다.
말이 통하진 않지만, 한태석을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으니 괜찮았다.
그리고 뛰어난 피지컬.
그래서 좋았다.
솔직히 자신의 펫인 터틀 38호는 문제점이 많았다.
절대 지지 않을 특별한 능력을 가졌으나 그게 끝이었다.
유리사육장 안.
터틀 38호와 김만철이 대치하고 있다.
한태석이 김만철에게 말했다.
“싸우시면 됩니다!”
“저 거북이랑 싸우라고?”
“네. 지금 바로 싸우시면 됩니다.”
김만철은 당황했다.
거북이랑 싸우라니!
제법 큰 유리 사육장. 그 안에 단둘이 있는 상태.
그런데 거북이는 졸린지 혼자 하품을 하고 있다.
한편, 버키가 동생인 바키에게 말했다.
『이거 승부 나겠냐?』
『모르지.』
『나는 쟤랑 싸울 때가 제일 싫어. 매일 제한시간 한 시간 다 채우고 무승부잖아.』
『뭐, 방어용 펫이니까.』
방어용 펫.
한태석은 두 거인 형제의 말을 들으며 김만철의 승기를 분석했다.
‘이길 수 있을 거야. 우리의 희망이니까. 우리 중 가장 센 사람이니까.’
터틀 38호의 미지근한 태도에 김만철이 일단 적에 대한 분석을 시작했다.
육각형 모양의 단단한 등딱지.
돌기 모양으로 갈라진 두꺼운 피부.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얼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거인들 사이에서 김만철이 공격계획을 세웠다.
일단 상대적으로 약해보이는 다리와 머리부터 공격한다.
김만철은 자신의 주먹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도약했다.
순식간에 뛰어오르는 그의 전신이 거북을 향했다.
김만철은 거북이의 치악력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쿠아리움에서 본 거북이.
상어들 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거북이가 수족관에서 가장 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강한 턱힘.
한번 물면 상어도 아작나는 그 강력한 입.
하지만 그게 끝이다.
입 말고는 공격수단이 없었다.
분명 그래야했다.
김만철의 펀치가 다리를 노렸다.
그런데 녀석의 다리가 없어졌다.
얼굴도 없어졌다.
쑤욱.
모든 다리와 머리를 등딱지 안에 집어넣은 거북이.
“와! 미치겠네!”
더구나 이 거북은 자신이 알고 있던 거북과는 달랐다.
머리와 다리를 넣는 구멍이 닫히는 기능까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철벽방어.
그래서 한태석에게 말했다.
“이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글쎄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최강의 방어력을 지닌 거북의 두터운 등껍질.
거북38호는 이미 싸울 생각이 없어보였다.
김만철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거북의 약점은 과연 그것뿐일까?
생각해보니 거북의 단단한 등껍질과 달리 배는 연약하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바키가 신기한 듯 김만철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형과 대화를 나눴다.
『뭔가 대책을 세우는 것 같지?』
『확실히 휴먼 종이 똑똑하긴 하네.』
『응. IQ가 100이 넘는데.』
『미쳤어. 우리 거인들하고 비슷하잖아.』
『그렇지. 어떻게 보면 닮았기도 하고.』
『그런 말 하지 마라. 소름 끼친다.』
바키와 버키의 대화를 들은 한태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도 이해가 갔다.
자신도 반대 입장이라면 분명 저렇게 말했을 테니까.
김만철은 거북 38호의 몸을 뒤집으려고 했다.
거북이는 뒤집어지면 웬만하면 다시 뒤집기 힘들다.
일단 한 번 뒤집히면 죽었다고 봐야 했다.
아치형으로 된 등딱지 때문에 뒤집어지면 발이 지면에 닿지 않아서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뒤집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동물의 세계 프로그램을 자주 보길 잘했어.’
김만철은 자신이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순식간에 거북이의 근처로 파고든 그가 거북이를 뒤집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당황했다.
자신의 크기 3.6cm.
거북의 크기 약 26cm.
절대적인 무게의 차이.
하지만 슈트의 힘이 있었다.
땀으로 가득차면 슈트는 폭주한다.
소금기를 머금으면 좀 더 강한 힘을, 좀 더 강화된 신체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김만철이 자갈 하나를 구해 반대편에 괴었다.
자갈을 지렛대 삼아 거북의 몸을 위 아래로 흔들었다.
작용 반작용의 힘.
그리고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한 물체보다 상대적으로 마찰력이 감소하는 것을 이용.
거북 38호의 몸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와! 이건 사기잖아!”
거북의 배도 등딱지처럼 두껍다.
진심을 담은 펀치를 날려보지만 오히려 자신의 손만 아픈 것 같았다.
고양이한테는 통했는데…….
고양이한테는 통했는데, 거북이한테는 통하지가 않는다.
더구나 거북 38호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뒤집을 수 있었다.
김만철은 화가 나서 자신의 모든 힘을 거북 38호에게 쏟아부었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만 지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격 한 번 하지 않은 거북 38호는 김만철이 공격을 멈추고 나서야 머리와 다리를 꺼내놓는다.
김만철은 당황했다.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일단 거리를 두고 경계했다.
그런데 거북 38호는 김만철을 본 체도 하지 않고 뒤쪽에 있는 먹이통으로 가서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그걸 본 바키가 형에게 말했다.
『더 볼 것도 없지?』
『응. 역시 무승부네.』
『경기 종료! 무승부! 김만철? 걔한테 그만하라고 해.』
바키의 말에 한태석이 대답했다.
『네.』
김만철은 당황스러웠다.
“나 떨어진 거야?”
“아직 결과는 안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오! 열 받아. 진짜 열 받네.”
“차분하신 줄 알았는데…….”
“차분이고 뭐고, 지금 이건 아니잖아. 내가 이걸로 면접에 떨어졌다고? 아람이하고 싸운 건 뭔데?”
“아직 결과는 안 나왔습니다. 뽑힐 수도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씩씩거리는 김만철.
이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바키는 그런 김만철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계약해야겠다.』
『그래? 투자도 하려고?』
『응. 일단 지능적인 면에서는 딸리지 않는 것 같은데? 포인트 좀 투자하면 쓸 만한 것 같기도 하고.』
『음. 확실히 다른 펫보다는 소통도 될 것 같고, 너 좋을 대로 해 봐.』
형의 말에 동생인 바키가 컴퓨터를 이용해 검은 구체를 호출했다.
잠시 후, 검은 구체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검은 구체 앞에서 바키가 무언가를 조작했다.
그러자 거북의 정보가 거인어로 뜬다.
<애완동물 정보 Pet information>
○ 직업 : 덜 자란 거북 (Young Turtle) / ★★
○ 나이 : 26세
○ 키 : 25.47cm
○ 몸무게 : 9.35kg
○ 고유스킬
1. 방어력 강화 Lv 2.
2.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바키는 해당 정보에서 《등록 해제》를 선택했다.
《펫(Turtle) 등록 해제가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만철을 들어 검은 구체 앞에 올려놓는다.
《주인이 등록되지 않은 펫(Human)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김만철은 당황했다.
그걸 보며 한태석이 말했다.
“괜찮아요. 잡아먹으려는 거 아니니까 가만히 있어요.”
“아……. 적응 안 돼.”
그때, 김만철의 앞에 수많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주인이 등록되었습니다.》
《주인님 onwer》
이름 : 바키 무어
소속 : 아르케 1-8구역
신분 : 일반 (게이머)
보유Point : 5635
그리고 바키 앞에 김만철의 정보도 떴다.
<애완동물 정보 Pet information>
○ 직업 : 권투사 (Pugilist) / ★★★
○ 나이 : 36세
○ 키 : 3.64cm
○ 몸무게 : 48g
○ 고유스킬
1. 신체강화 Lv 2.
2.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
3.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 고유권능
1. 없음.
○ 주의사항
1. 소멸까지 145일 2시간 33분 남았습니다.
바키는 형과 함께 김만철의 정보를 보며 깜짝 놀랐다.
『완전 꽝이잖아.』
『그래도 뭐, 공짜니까 써보지 뭐. 어차피 터틀 38호로 대회 나가서 이길 수는 없잖아.』
『아, 맞다. 공짜지. 나도 써볼까? 저기 작은 친구! 혹시 자네도 경기 나갈 생각 있어? 내 펫보다는 말 통하는 네가 더 나을 것 같은데! 물론 1등하면 전리품은 너희 줄게. 소생의 돌 줄 테니까 나랑 경기 한번 뛰자. 응?』
갑자기 한태석에게 온 제안.
바키가 김만철을 영입하자, 버키도 공짜로 펫을 얻고 싶어 하는 것.
한태석은 당황했다.
자신은 목숨을 걸 생각이 없었다.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런데 눈치도 없이 김만철이 말했다.
“태석 씨! 나 좋다는 거죠? 내 능력치 좋아서 태석 씨도 영입하고 싶다는 거죠?”
한태석이 거인에게 말했다.
『일단 저는 약한 편이고요. 저보다 더 강한 사람을 제가 알고 있거든요. 아마 터틀 38호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사람이에요.』
한태석의 말에 버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데려와 봐.』
『네. 그럼 내일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제안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능력이 안 돼서요.』
『NoNo. 공짜로 펫 얻는데 우리가 손해 볼 건 없지. 가 봐!』
『네. 감사합니다.』
거인 버키의 몸에서 내려온 한태석이 현관으로 향한다.
그러자 김만철이 말했다.
“같이 가요! 저기요! 왜 혼자 가요?”
“아, 펫은 주인님하고 같이 있어야 합니다.”
“네? 저 선희 씨랑 오늘 같이 있기로 했는데요.”
“아, 그건 곤란할 것 같네요. 지금부터 여기서 사셔야 하니까요.”
“네?!”
당황한 김만철.
그가 엄청난 속도로 도망가려 해보지만, 이미 주인님은 결정된 사항.
놀라운 신체능력으로 도망가는 김만철에게 주인 바키가 말했다.
『신체강화 해제!』
그러자 보잘 것 없이 느리게 변하는 김만철의 움직임.
“뭐야! 뭐야! 뭐야!”
그리고 한태석의 대답.
“주인이란 건 원래 그런 겁니다. 한번 엮이면 도망갈 수 없죠. 네. 그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