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한태석
그날 저녁.
장명훈은 거인어를 할 줄 아는 한태석을 소집했다.
“마스터, 부르셨습니까?”
“그래. 장소는 알지?”
“네. 김만철, 새로 들어온 그분이 참석하는 거군요.”
“그래. 그렇게 할 거야.”
“클론이라고 들었습니다. 작전조에서는 괜찮은 분이라고 들었지만, 클론들은 항상 불안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아는 입장에서 날이 가면 갈수록 초조해질 수밖에 없겠지요.”
“괜찮아.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거야.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자신의 목숨마저도 거는 게 인간이지. 그게 설사 100퍼센트 죽는 일이라도 말이야.”
의미심장한 발언.
마스터의 말에 한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 전에 지시하셨던 사항에 대해 파악해봤습니다.”
“응.”
“거인 바키우스는 현재 아르케 1-1 구역 중심가 빌딩 최상층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주지는 동일한 건가?”
“네. 그 거인 또한 이번 경기에 참여할 계획이고, 그가 소유한 펫은 무려 5성이라고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그 펫은……”
장명훈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확인한 한태석이 말문을 줄였다.
“5년 전 우승했던 조윤아. 그 여자겠지.”
“네. 맞습니다.”
5년 전.
거인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지만,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 하나만으로 거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더구나 귀여운 암컷.
거인들 입장에서는 깨물어주고 싶은 동물.
그녀는 거인과의 유대감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더 이상 숨어 살지 말자고.
우리도 방송에 나가서 거인들로부터 애완동물로 인정받자고.
싸우는 펫이 아니라 키워주고 싶은, 귀여운 반려동물로 인정받자고.
처음에는 분명 그랬다.
거인들은 휴먼이라는 벌레의 삶에 관심을 가졌다.
인간들을 키우는 방법.
그리고 인간들이 삶, 문화가 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내용이 뜨거운 이슈가 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직업이 방송인인 거인 바키우스가 출연하면서부터 달라졌다.
그 녀석의 직업은 생존탐험가.
잃어버린 대륙은 물론 4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생존 다큐멘터리를 찍는 방송인.
그는 배고프다며 첫 출연부터 인간을 산채로 잡아먹었다.
인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움켜잡고 할짝할짝 피부를 빨기도 했다.
쪽쪽 빨아먹어도 맛있고, 구워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다는 망언.
뼈가 약해 멸치처럼 그냥 씹어먹어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바키우스.
그가 모든 원흉이었다.
방송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거인들의 방송에서는 돼지고기, 양고기와 더불어 떠오르는 차세대 먹거리로 휴먼을 선정하기도 했다.
거인들의 관심사는 모두 인간에게 쏠렸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그건 인간들의 번식력.
한 번에 한 명만 나을 수 있는 인간.
더구나 양도 적다.
그래서 거인들은 실험을 시작했다.
인간과 다른 종과의 합성을.
키메라를.
거인들에게 잡혀있던 사람들은 두 가지 분파로 나뉘었다.
스스로 합성종인 키메라가 되거나, 아니면 잡아먹히거나.
* * *
장명훈이 사념에 잠긴 채, 자신도 모르게 허공에 바키우스의 얼굴을 그렸다.
죽이고 싶은 원수.
인간들을 이렇게 만든 원흉.
그의 분노를 감지한 한태석이 장명훈에게 말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아. 문제없어.”
“네. 너무 조급해하진 마십시오. 이번엔 암살 꼭 성공시킬 겁니다.”
“그래. 이번엔 나도 직접 나설 거야.”
“네. 그 말을 들으니 제가 다 든든합니다.”
한태석은 마스터의 방에서 나온 후 광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만철을 만났다.
“식사는 드셨습니까?”
“아직요. 태석 씨죠?”
“네. 한태석입니다. 같이 식사부터 할까요?”
“그러죠.”
오늘의 메뉴는 딸기 반 개.
그걸 베어 먹는 사람들.
야생에서 자란 딸기라서 당도가 덜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김만철의 입가에는 비장한 각오가 실려있었다.
“태석 씨는 거인과 대화를 하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그렇군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도 거인의 글자를 읽고, 거인의 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김만철은 한 달이 넘도록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강미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강백현도.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둘.
그래서 더욱 더 안타까운 마음.
“아, 강미나 씨 말씀하시는 거죠?”
“네. 들으셨군요.”
“네. 이진기 씨가 저랑 같은 정보조니까 대강 소식은 들었습니다.”
한태석이 이진기를 언급했다.
그러고 보니 이진기를 본 지 꽤 오래된 김만철.
그의 행방이 궁금했다.
“요즘 진기가 보이지가 않네요.”
“네. 파견 갔거든요.”
“파견이요?”
“이곳은 한국인만 살지 않습니까? 아르케 1-5구역에는 일본인만 담당하는 구역이 있습니다. 그쪽 마스터와 연락을 취해보라는 지시가 있어서 1주일 전에 이동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기밀 아닌가요? 그런 정보는 내부에서도 취급하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요.”
김만철의 말에 한태석이 방긋 웃었다.
“괜찮습니다. 오늘부로 김만철 씨는 1급 정보까지 보실 수 있는 권한이 생겼으니까요.”
식사를 마친 후, 김만철이 슈트를 챙겼다.
한태석도 슈트로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그런데 한 여성이 길을 가로 막았다.
김아람이었다.
김만철이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그녀에게 말했다.
“뭐하자는 거야?”
“아저씨, 한 번 더 붙어요.”
“이미 끝났잖아. 승부는 났어.”
“나 이해 안 돼! 내가 왜 졌는지 이해 안 된다고! 어떻게 한 건데? 아저씨 나보다 약했잖아. 약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한순간에…….”
그런 김아람을 보며 한태석이 만류했다.
“아람 씨, 이러지 마세요.”
“거기 처음 보는 아저씨는 빠져요. 아저씨한테 말한 거 아니잖아요.”
“네?!”
“빠지시라고요!”
아직도 반성을 못한 김아람.
김만철은 더 이상 그녀의 추한 꼴을 봐주지 못했다.
“아람아. 승부 다시 할래?”
“네. 이번에는 제가 꼭 이길게요.”
“그래. 5초 뒤에 시작하자.”
“네.”
“태석 씨, 5초 세줘요.”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승부는 이미 끝났습니다.”
“아니요. 아람이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끝나지 않은 겁니다.”
김만철의 말에 한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한태석에게는 둘을 말릴 힘이 없었다.
자신의 능력은 보잘 것 없는 능력이니까.
단지 남들보다 시야가 넓을 뿐.
전투적인 능력은 전무하다.
그걸 메꾸기 위해 열심히 거인어를 배우고 익혔다.
그래야만 한 사람의 역할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야 여기에서 머무를 수 있으니까.
한태석이 숫자를 셌다.
5, 4, 3, 2, 1.
그런데 1이란 말과 함께 김만철이 사라졌다.
김아람은 코앞에서 사라진 김만철을 보며 당황했다.
당황하는데 0.3초.
그리고 자신이 공격당했음을 인지하는데 0.25초.
0.55초 사이 김아람의 전신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리박힌다.
“아……파.”
“그래. 숨쉬기 힘들 거야. 졌지?”
“말……도 안…… 돼.”
“그래. 말 안 돼. 네 상식에서는 말이 안 될 거야. 나조차도 이 힘을 갖게 된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으니까.”
0.55초 승부를 가른 펀치 한 방.
김아람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김만철은 한태석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저 태석 씨, 죄송한데 윤수 좀 불러줄 수 있을까요? 제가 아람이를 또 저렇게 만든 것을 알면 윤수가 저 싫어할까 싶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윤수에 의해 치료받는 김아람을 본 김만철이 한숨을 내쉬며 한태석에게 말했다.
“가시죠.”
“네.”
축축하고 어두운 통로.
쥐들이나 지나갈 법한 시궁창 같은 길을 두 사람이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 김만철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저희가 만나는 거인은 어떤가요?”
“어떤 면이요?”
“전반적인 거 모두요. 아무 정보도 없으니까 불안하네요.”
“아마 그 거인은 저희한테 호의적일 겁니다. 바키우스를 죽이고 싶어 하는 거인 중 하나거든요.”
통로를 지나가자 썩은 나무 냄새가 진동을 했다.
코를 막고 한참을 이동하자 나오는 지상.
바깥은 굉장히 어둡다.
“여기서 먼가요?”
“아니요. 바로 옆 건물입니다. 옆 건물 1층, 103호가 바키의 집이죠. 아~ 바키는 그 거인의 이름입니다.”
바키.
김만철이 바키의 이미지를 상상했다.
‘엄청난 근육질일 거야. 머리에 뿔도 있을 수 있고, 파란 피부는 태워서 남색이겠지?’
103호.
현관문 아래 신문을 넣을 수 있는 투입구가 있다.
그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둥 치는 소리.
그리고 요란한 효과음.
거기에 비명까지.
도대체 바키란 녀석은 얼마나 위험한 녀석일까?
얼마나 대단한 녀석이길래 마스터가 그렇게 기대하는 걸까?
현관문.
널브러져 있는 신발들에서 악취가 흘러나왔다.
김만철은 알았다.
이 거인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향기가 난다고.
운동으로 다져진 사람에게 나오는 호르몬 향기.
그 냄새가 자신과 같은 부류란 것을.
현관문을 지나자 왼쪽에 그의 방이 보인다.
운동기구가 엄청나게 많다.
바벨부터 아령, 케틀벨에 원판, 철봉, 정리대까지.
더구나 휴대용으로 쓸 수 있는 악력기는 물론이고 어깨의 근육을 키워주는 완력기까지 있다.
“엄청 강한 거인인가 봐요?”
“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네?!”
“사실 저도 처음 보거든요.”
“뭐라고요?”
“보는 건 처음이라고요. 그 전까지는 제 전임자가 담당했기 때문에 제가 직접 볼 일은 없었습니다.”
“얼굴도 몰라요?”
“남성형 거인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믿음직했던 한태석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무너졌다.
하지만 거인이 강할 것이라는 믿음은 변함이 없었다.
왜?
화장실에서 그 거인이 나왔으니까.
우람한 체격.
단련된 몸.
김만철과 비교해서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김만철은 저런 부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우직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
거인이라고 그리 다르지 않을 터.
앞으로 파트너로 지내게 될 그 거인을 보자 마음이 안정되어 갔다.
한태석은 근육질 거인을 보며 외쳤다.
『바키! 바키 님 되십니까?』
그러자 근육질 거인이 요리조리 쳐다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돌려 한태석과 김만철을 바라본다.
『어라? 말을 하네?』
『네! 이번에 바키 님과 새로 소통을 하게 된 한태석이라고 합니다. 이번 대회에 같이 나갈 펫을 찾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괜찮은 펫을 소개해드리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김만철은 한태석의 말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가 꽤 잘해나가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어쩌지? 나는 바키가 아니고 버키인데…….』
『네?』
『바키는 내 동생이야. 바키! 네가 저번에 말했던 그 펫이 직접 찾아왔는데?』
버키란 거인이 다른 방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거인의 목소리가 안방에서 들려왔다.
『어? 나 지금 게임 중인데?』
『어. 그럼 내가 들고 갈게.』
『응. 지금 랭겜 중이라 미안.』
『아니야. 너 제니 많이 벌잖아. 이런 일은 내가 해야지.』
버키의 손에 올라탄 두 사람.
버키가 두 사람을 데리고 안방으로 걸어간다.
요상한 효과음.
그 정체는 컴퓨터 스피커.
컴퓨터 앞 의자에 거인 하나가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다.
김만철이 실망했다.
뚱뚱한 체격.
늘어진 턱.
운동하고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풍만하다 못해 주체 못할 가죽살.
컴퓨터 화면에 거인어로 『Win』이라는 글자가 뜨자, 뚱땡이 거인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어서 와. 우리 집은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