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슈트
미나는 조세핀을 통해 거인의 룰에 대해 알게 되었다.
거인과 계약한 애완동물은 거인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된다.
거인 또한 펫(애완동물)의 정보를 볼 수 있게 된다.
다만 다른 점은 펫은 직접 눈으로 정보를 볼 수 있고, 거인은 구체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나 너 4성이었어?』
『응. 왜 놀라는데?』
별 4개.
흔하지 않은 등급.
그래서일까?
『우리 엄마 펫은 3성밖에 안 돼. 난 네가 이렇게 등급이 높은지 몰랐어.』
조세핀의 엄마가 가진 펫을 직접 본 적은 없다.
철저하게 격리된 채니까.
그러나 조세핀의 아빠가 가진 펫은 본 적이 있다.
조세핀이 스쿨버스를 탈 때, 연구원인 아빠 또한 펫을 챙겨 연구소로 출근하니까.
그 애완동물은 분명 키메라.
얼굴이 3개나 되는 개였다.
조세핀은 그 녀석을 켈베로스라고 불렀다.
『너희 아빠 펫은 몇 성인데?』
『5성.』
『5성?』
『응. 켈베로스는 입에서 불도 뿜고, 얼음도 뿜고, 번개도 뿜어.』
조세핀의 설명에 미나가 기겁했다.
『무서워할 것 없어. 미나는 내가 강하게 만들어줄게. 원하는 능력이 있으면 배우도록 해줄게. 글자 읽을 수 있지? 골라봐.』
수많은 능력들.
포인트 소모량이 장난이 아니다.
50포인트 능력부터 8000포인트짜리 능력까지 검은 구체에 나타난 다양한 능력들.
미나는 궁금했다.
『조세핀, 넌 왜 이렇게 포인트가 많아?』
『아빠가 물려줬어.』
『뭐?』
『아빠가 말했어. 나중에 위험할 때를 위해서 저금해두라고. 지금이 그 때인 것 같아.』
미나는 거인들이 성숙하다고 느꼈다.
적어도 조세핀은 또래에 비해 똑똑했다.
9살이라고 하지만 인간 나이로 13~15세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조세핀의 제안.
그리고 미나의 선택.
미나는 조세핀의 포인트를 제물 삼아 강력한 힘을 가지기로 결심했다.
* * *
같은 시각.
대광장.
김아람과 김만철이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마스터, 꼭 이래야만 하겠어요? 둘이 꼭 싸워야 해요?”
김건우의 말에 마스터 장명훈이 말했다.
“그래. 둘 중에 강한 자가 참가해야지.”
“이러다 죽을 수도 있어요!”
“안 죽어. 여차하면 윤수도 있으니까 괜찮아.”
김아람과 김만철이 노려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둘 중 한 사람만이 경기에 나갈 수 있다.
“아저씨, 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소생의 돌은 제 거예요. 난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아저씨를 죽여야 한다면 죽일 거고요.”
김아람의 독설에 김만철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아저씨는 이미 짧잖아요!”
대결이 시작되었다.
김아람의 염력이 김만철을 향했다.
하지만 김만철은 김아람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뒤로 도약했다.
거리가 멀어지면 염력이 닿지 않는다.
“비겁해!”
“비겁하긴 뭐가 비겁하다는 거야?”
“하지만 아저씨는 졌어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더 이상 도망가진 못하겠죠.”
김아람은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며, 김만철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김만철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 당당함이 김아람은 짜증났다.
‘아무것도 못하면서! 나한테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면서!’
멍청한 변태 아저씨 주제에.
자신을 훈계했던 그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김만철은 이미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만철이형! 이겨요! 이겨!”
“만철이형! 파이팅! 파이팅!”
같은 작전조 멤버들은 이미 김만철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그의 실력은 지구력에서 나온다.
시간이 흘러도 지치지 않는 체력.
단련된 몸.
그리고 동료를 위한 마음.
그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응원하게 만든다.
한편, 김아람을 응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선적인 행동.
자기밖에 모르는 위선.
자신의 능력을 항상 과대평가하는 자만심.
하지만, 김아람의 능력은 진짜였다.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능력임에는 틀림없었다.
김아람이 김만철과 가까이 접근하며 다시 한번 염력을 시전한다.
돌풍이 불어왔다.
김만철의 퇴로를 차단하고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쳐 날리는 김아람은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말했다.
“항복한다고 말하세요!”
그런데 김만철은 돌풍을 마주하고도 그저 태연하게 김아람을 쳐다볼 뿐이었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니까! 항복하라고!”
김아람이 돌풍을 2개 더 만들어냈다.
진심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김만철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으며 김아람의 제안을 거절했다.
김아람이 눈을 감으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돌풍을 뻗쳤다.
3개의 돌풍이 하나의 돌풍이 되어 김만철을 향해 나아갔다.
유심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김만철은 돌풍바람의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거친 돌풍이 갑자기 약해졌다.
김아람이 당황했다.
“뭐야! 뭐냐고!”
그때 돌풍바람의 밑부분에서 김만철이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김만철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초인이나 다름 없었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며 돌풍을 무마시켰다.
돌풍의 소멸.
그걸 보며 김아람이 당황했다.
“말도 안 돼!”
그런데 김만철은 말없이 김아람을 향해 직진으로 도약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전신.
그리고 갑자기 김아람 앞에 나타난 김만철.
그가 손을 뻗자, 김아람이 깜짝 놀라며 사방으로 염력을 비산시켰다.
초유의 힘.
시전자와 가까워질수록 절대적인 힘을 내는 염력.
그것 때문에 김만철이 바깥으로 밀리며 순식간에 거리가 벌려졌다.
하지만 김아람은 식은땀이 벌써 얼굴에 한 가득이었다.
절대적인 체력의 소모량.
염력은 사용자의 체력을 급격하게 소모시킨다.
반면 신체강화 능력은 체력 소모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김아람은 결심했다.
한 번에 끝내버리겠다고.
시간 끌면 불리하다고.
그런데 김만철은 오히려 김아람에게 접근했다.
김아람은 노렸다.
한 번의 공격으로 역전시키겠다고.
염력을 한 점으로 모아 김만철의 몸에 바람구멍을 내어주겠다고.
그런데 염력의 속도가 김만철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너무 빨라서 눈으로 잡히질 않았다.
상식적으로 인간이 낼 수 없는 속도였다.
평소 김만철의 움직임을 자주 봐왔던 김아람도 당황했다.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가 있지? 말이 안 돼! 말이 안 된다고!’
김아람은 생각했다.
자신의 염력 레벨 1.
그래. 약하다.
약한 건 안다.
하지만 김만철의 신체강화 레벨도 2 밖에 안 된다고 들었다.
레벨 2와 레벨 1.
객관적으로 레벨 2가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염력은 다르다.
접근조차 못하게 만들 수 있는 게 염력이다.
상성상으로 절대 질 수 없는 게 염력이다.
그런데 그 상식이 깨져가고 있었다.
눈이 따라가질 않는다.
김만철의 실루엣만이 자꾸 스쳐 지나간다.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도 모두 놀라는 눈치였다.
한편, 김만철은 자신의 이동속도를 보며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대단해. 이게 슈트의 진정한 능력이라는 건가?’
대략적인 사용방법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능력을 사용하면 지치지 않게 만들어주는 슈트.
자폭을 할 수도 있고 마치 생명체처럼 스스로 복원하는 능력도 있다.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고, 부착물도 장착할 수 있는 대단한 기능.
그런데 뭐?
진짜 생명체였다고?
생각이 길었다.
이제는 한계였다.
체력 좋은 김만철도 더 이상 현재의 능력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었다.
슈트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김만철이 자신의 월등한 속도를 이용하여 김아람의 복부를 강타했다.
이어서 60cm를 도약한 김만철. 공중으로 튀어오른 김아람을 벽으로 내쳐버린다.
복부를 타격당한 김아람의 눈 속 흰자가 뒤집어졌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기절한 탓이었다.
마스터는 그걸 보고 윤수를 투입했다.
윤수가 망가진 김아람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김만철이 자신의 오른손을 들었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다.
환호성이 이어졌다.
김만철의 승리.
그리고 김아람의 완벽한 패배.
절대강자 김아람이 몰락하는 순간이었다.
* * *
마스터가 승리한 김만철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훌륭해. 김아람을 이길 줄은 상상도 못했네.”
“운이 좋았습니다. 슈트 사용법을 익혀둔 게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슈트 사용법.
그걸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
그게 김만철이 김아람을 이긴 진정한 이유.
“그래. 정말 참가할 건가?”
“네. 소생의 돌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자네 같은 사람은 우리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나도 자네가 소생의 돌을 사용해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마스터. 저를 위해서라면 아마 목숨을 걸진 않았을 겁니다.”
“뭐?”
“소생의 돌을 얻게 되면, 그걸 윤수한테 쓸 겁니다.”
“윤수한테 쓴다고? 선희 씨 아들?”
“네. 윤수는 아직 어립니다. 저보다 살 날도 많고요. 아,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윤수한테 쓰겠다는 제 결심을 선희 씨가 알게 되면 아마 만류할 겁니다.”
마스터는 김만철과 정선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뭐?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걸겠다고?
솔직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소생의 돌은 얻는 자에게 사용권이 있다.
그리고 박윤수는 이미 소생한 자.
시한부 인생이 아니다.
“좋아. 자네 비밀은 지켜주지. 그럼 오늘 자네를 거두어 줄 거인과 만날 걸세. 거인어를 할 줄 아는 정보조 요원 한 명을 붙여줄테니, 밤 8시까지 광장 앞에서 준비하도록 하게.”
“네. 감사합니다.”
“아니야. 아~ 그리고 이제부터 슈트 사용은 조심하고 또 조심하게. 제어를 못하는 순간 그 슈트가 자신을 잡아먹고 말테니까.”
“네.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만철이 방에서 나간 후, 마스터가 자신의 방 옷장을 열었다.
수많은 슈트.
그 슈트에 장명훈이 하얀 사각의 고체를 던진다.
그러자 슈트가 갑자기 꿈틀거렸다.
빳빳해지는 슈트.
출렁이는 슈트.
불을 내뿜는 슈트까지.
슈트는 염분을 먹으면 폭주한다.
땀을 흘리면 염분이 흘러나와 사용자의 능력을 필요이상으로 강화시킨다.
슈트의 힘의 정체는 바로 염분.
그 비밀을 알게 된 김만철의 승리는 어찌보면 당연한 터.
꿈틀꿈틀 거리는 슈트 중 한 놈을 고르는 장명훈.
그 슈트를 입은 그가 자신의 힘을 시험한다.
엄청난 이동속도.
비약적인 도약거리.
거기에…….
쾅!
엄청난 파괴력까지.
평소보다 수 배는 강해진 장명훈이 자신의 능력으로 이미지를 그리며 생각했다.
그가 그린 이미지는 공룡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수십 마리는 되어보는 공룡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장명훈
그 장소는 바로 거인의 전장.
자신의 모습을 그린 장명훈의 얼굴이 비장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수 년 전의 치욕.
소생의 돌을 얻기 위해 치른 희생.
하지만 소생의 돌로는 시체가 없는 자를 되살릴 수 없었다.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죽은 자는 되돌아오지 않으니까.
장명훈의 슈트 콜렉션.
수십 벌의 슈트가 준비되어 있다.
그의 계획은 거인의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것.
슈트만 있으면 그 계획은 가능해보인다.
장명훈은 직접 폭주시킨 슈트를 보며 생각했다.
‘인간의 반격이 얼마 남지 않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