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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79화 (79/200)

79화. 항구

백현의 승리가 결정되자, 검은 구체가 펼친 결계가 사라졌다.

에반은 쓴웃음을 지으며 동료에게 말했다.

『죽여서 미안하다. 어쩔 수 없었어.』

『응. 괜찮아. 조금 혼나고 말겠지 뭐.』

마음이 숙연해지는 에반.

그건 애완동물을 죽였다는 죄책감.

분쟁조정은 끝났다.

거인의 룰에 의해 제이스는 더 이상 에반을 막을 수 없었다.

승부에서 진 제이스는 월급이 깎이고, 심하면 감금될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험난한 꼴을 볼지 예상이 안 간다.

왜냐고? 노동자니까. 천민이니까.

여기서 천민이란 그런 신분이니까.

그래서 제안했다.

『제이스! 같이 떠나자. 너도 여기 힘들다고 항상 말했잖아.』

『아니야. 난 파브가 걸려. 내가 떠나면 파브가 배신자로 몰릴 수 있잖아. 그리고 난 애완동물을 돌보는 직업이 마음에 들어.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녀석들을 보면 지켜주고 싶거든.』

신분구조로 인한 갈등.

그로 인한 대립.

서로 다른 생각.

이제는 서로를 놓아주어야 할 때.

에반이 동료인 제이스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갈게.』

『그래. 조심히 가.』

에반은 강백현을 유리병에 다시 넣고 정박된 보트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었다.

부릉부릉.

3기통 엔진이 요란한 엔진음을 내며, 출발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다.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인연이 닿으면 볼 수 있겠지.』

제이스는 자신의 동료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때, 절벽 위에서 에반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안 서! 에반! 에반!』

에반을 부르는 사람은 파브였다.

파브는 분신이 사라진 후, 속은 것을 파악하고 에반이 도망칠만한 곳으로 쫓아왔다.

다행이었다.

제이스가 에반을 막고 있었다.

그가 다급한 목소리로 제이스에게 외쳤다.

『제이스! 잡아! 분쟁조정 신청해서 잡아!』

하지만 제이스는 빈 유리병을 흔들며 자신이 패배했음을 파브에게 알렸다.

젠장!

파브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에반은 파브와 마주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정박된 보트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떠나는 에반.

따라잡기 위해 허겁지겁 내려오는 파브.

그리고 2명의 경관.

파브는 에반을 놓치고는 한참을 소리쳤다.

『에반! 거기 안 서? 안 서냐고! 이 개XX아! 멈춰! 멈춰!』

한편, 보트에선 백현이 환한 얼굴로 에반에게 말했다.

“그래도 동료는 잘 사귀었나봐?”

“그래 보여?”

“응. 정말 친해보이더라.”

“그래. 친했지. 이곳에서 열심히 살려고 했어.”

그런데 보트를 타고 가는 목적지가 궁금했다.

이대로 돌아가는 건가?

그래서 물었다.

“어디로 가?”

“잃어버린 대륙.”

“내 동생 먼저 찾아야지.”

“……”

“내 동생은? 어?”

에반은 잠시 고민하다가 살충제를 꺼냈다.

“야! 야!”

“일단 내 목적부터 해결하고, 그때 찾자. 어차피 주인집에 있다며! 안전하겠지.”

에반의 말에 강백현이 난리를 쳤다.

하지만 유리병을 몇 번 흔드는 동작에 백현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야! 내 동생이 먼저지! 아니야?”

“지금 그쪽으로 가면 나도 위험하거든?”

에반은 보트를 자동운전으로 전환한 후, 제이스와 파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이스는 자신이 떠나는 것을 적극 응원해줬지만, 파브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그때, 파브가 제이스를 향해 갑자기 제안을 거는 게 보였다.

그러자 에반의 환한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강백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검은 구체가 결계를 펼친다.

그런데 제이스는 펫이 없는 상태다.

왜? 뭐가 일어나길래?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파브의 펫이 제이스를 난도질 하고 있단 사실을.

그걸 지켜보는 에반의 절규가 이어졌다.

『제이스! 제이스!』

배신은 죽음.

실패도 죽음.

그제서야 백현은 상기했다.

거인의 룰에는 함정이 있다고.

거인끼리는 싸우거나 죽이지 못하지만, 펫으로는 죽일 수 있다고.

애완동물이 강한 자가 거인 세계를 지배한다.

그게 룰.

제이스가 파브의 펫에게 죽임을 당하자, 에반은 오열했다.

『으아아아아아악!』

강백현 또한 쓴웃음을 머금었다.

거인들이 펫을 키우는 이유.

수많은 펫을 집에 두는 이유.

그건 자신의 펫을 잃어도 곧바로 지정하기 위해서.

펫이 없는 거인에게 자유란 없기 때문에.

약육강식의 최상위 포식자인 거인도 결국은 같은 종족 내의 계층 싸움에서 패배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

잔인한 약육강식의 결과를 본 백현은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 * *

시간이 흘렀다.

어둠이 깔리고. 보트 안에서 친구의 죽음을 위해 기도하던 에반이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일어났어?”

“응. 좀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그래서 잊을 거야. 더 이상 그 말 하지 말자.”

“아, 미안.”

동료의 죽음. 그것도 자신이 가장 친했던 동료한테 살해당한 그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에반은 그 생각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지웠다.

지금은 타 대륙으로 가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젠장!”

“왜?”

“기름이 없어.”

“뭐?!”

“기름이 없다고.”

최악의 상황.

목적지까지는 한참이 남았는데, 기름이 떨어져서 해상에서 표류하게 생긴 것.

결국 하루가 지났다.

배에서는 꼬르르륵 소리가 났다.

“이게 뭐야!”

“조용히 좀 해. 대책 좀 생각해야 하니까.”

“어떻게 할 건데? 바다 위에서 어떻게 살 건데?”

“이게 다 너 때문이거든?”

에반과 강백현의 갈등.

그런데 갑자기 에반이 강백현에게 말했다.

“분신 만들어 봐.”

“왜?”

“만들라면 만들어 봐.”

에반의 요청에 강백현이 분신을 만들었다.

분신은 참 특이했다.

의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흐리멍덩하게 생겨가지고, 무슨 역할을 하는건지, 왜 이걸 배우게 한 건지 백현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에반이 갑자기 낚시대를 꺼낸다.

“낚시? 낚시 하려고?”

“응. 뭐라도 먹어야지.”

그런데 갑자기 에반이 백현의 분신을 들어올리더니 꼬챙이에 꽂아넣는다.

“야!”

“걱정하지 마. 넌 안 아플 거야.”

“그게 아니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뭐가 아니야? 다 이렇게 하는 거야.”

백현과 똑같이 생긴 멍청한 분신은 낚싯바늘에 꽂혀도 아무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리고는 에반이 던진 낚싯대에 의해 물에 풍덩 빠져버리고.

잠시 후, 찌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에반이 생선과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슬슬 놓아줬다가 당겼다가를 반복하는 손놀림.

그리고 휘리릭!

찌를 감기 시작하는 에반.

낚싯줄이 팽팽하게 힘을 지탱하다가 에반이 줄을 감기 시작하자 조금조금씩 가까이 당겨지는 무언가.

에반은 5분간의 힘싸움 끝에 결국 낚시에 성공했다.

걸린 것은 갈치.

그 입에 물린 것은 강백현의 너덜너덜해진 분신이었다.

백현은 분신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에반에게 물었다.

“죽은 거야?”

“응.”

“나한테 페널티는 없어?”

“현재로선? 레벨 1이라서 아무것도 못 느낄 거야.”

“그래?”

분신의 페널티는 자신이 피곤해지는 것 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분신이지만, 레벨을 올리면 무언가 활용도는 높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물었다.

“능력 좀 레벨 업 시켜주지 그랬냐?”

“이미 너한테 16,000포인트나 썼거든요?”

“뭐?”

“3번째 능력 개방하는 게 가격이 엄청 비싸더라. 어휴! 그동안 뭐했어?”

“…….”

잠시 후, 불에 갈치를 굽는 에반.

그런데 분신은 시간이 지나자 사라져버린다.

“원래 저래?”

“응. 원래 저래. 분신 능력이 원래 저거야.”

분신은 태어나자마자 미끼가 되었고, 물고기의 날카로운 이빨에 너덜너덜해졌으며, 낚시에 성공해서 더 이상 떡밥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면 가차없이 바다에 버려졌다.

물론 한 시간만 지나면 사라지는 탓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었지만, 에반이 자신을 낚시의 미끼로 활용하기 위해 분신 능력을 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어서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벌써 3번째.

에반이 아쉬운지 백현에게 다시 한번 말했다.

“분신 한 번 더 가능해?”

“됐거든요?!”

* * *

같은 시각.

미나는 오빠를 잃었다는 슬픔에 잠겨 말문을 닫았다.

벌써 한 달이나 지난 시점.

오빠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먹을 것을 내놓아도 거의 먹지 않는 미나 때문에 속상해한 조세핀이 엄마, 아빠한테 따졌다.

거인 말을 할 줄 알기에 비싼 값에 팔려던 계획.

하지만 자신의 딸이 저렇게 슬퍼하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식음전폐.

미나는 점점 야위어만 갔다.

조세핀은 그걸 보며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특징과 먹이, 슬플 때 위로해주는 방법 등을 컴퓨터를 통해 조사하며 미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오빠의 실종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로도 미나의 마음을 위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렇게 슬픈 건데…….’

미나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배가 고프지가 않다.

목이 마르지가 않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고, 움직이기도 싫다.

살가죽이 축 늘어졌다.

너무 안 먹어서 탄력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그런데 조세핀이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실종 펫 리스트에 강백현의 모습이 포착된 것.

그래서 가장 먼저 미나에게 알렸다.

『찾았어.』

『뭐?』

『찾았다고! 네 오빠 찾았다고.』

컴퓨터를 통해 강백현의 모습을 포착한 미나가 눈물을 흘렸다.

‘살아있었구나.’

펫의 정보는 공유가 된다.

실종 펫 리스트에 올랐던 강백현의 소유자가 에반 슈트리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미나는 조세핀을 졸랐다.

『찾으러 가자. 응?』

『응. 엄마하고 아빠한테 말해볼게.』

『아니! 우리끼리 가. 우리끼리 가면 되잖아. 어른들한테 말하지 말고.』

미나는 알았다.

그들은 자신을 팔아먹을 생각이란 것을.

지금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건 조세핀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어. 갈게. 내일 학교 안 가는 날이니까 그때 가자. 일단 이것부터 먹어.』

조세핀은 미나가 대답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자신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10일 만에 처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벌컥벌컥.

생수뚜껑을 세숫대야 삼아 한입에 들이키는 미나.

그걸 보며 미나를 꼭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자신이 상처 입혔으니까.

기껏 만난 가족을 강제로 헤어지게 만든 책임이 자신한테 있으니까.

다음 날, 부모님이 외출을 나가자 조세핀이 미나를 향해 말했다.

『미나야. 준비 됐어?』

『응.』

『그런데 나 너한테 이 말은 듣고 나가고 싶어.』

『뭔데?』

『내 정식 펫이 되어줘.』

『뭐?!』

『그렇게만 해주면 네가 원하는 거 다 해줄게.』

조세핀의 말에 미나가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

조세핀의 의도는 간단했다.

『‘계약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보지 못 할 것 같아.’』

순수한 마음.

미나를 인격체로 생각하는 어린 소녀의 순수한 마음 그 자체였다.

미나는 오빠를 만나기 위해 대답했다.

『알았어. 할게.』

『고마워. 잠시만! 집 안으로 부를게.』

미나가 컴퓨터를 이용해 무언가를 요청한다.

그러자 1분도 지나지 않아 창문 앞에 검은 구체가 도착해있다.

조세핀이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고 검은 구체가 집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진행하는 절차.

《주인이 등록되지 않은 펫(Human)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구체에 보이는 글자를 보며 조세핀이 대답했다.

『응. 등록할래.』

그러자 강미나의 앞에 갑자기 수많은 홀로그램이 뜨기 시작했다.

《주인이 등록되었습니다.》

《주인님 onwer》

이름 : 조세핀 도트리슈

소속 : 아르케 1-3구역

신분 : 학생

보유Point : 13,931

조세핀은 해맑게 웃으며 미나에게 물었다.

『능력 뭐 배우고 싶어?』

『어?』

『배우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나 포인트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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