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78화 (78/200)

78화. 에반의 또 다른 동료

에반은 유리병 안에 있던 물을 빼내며 백현에게 말했다.

“싸울지도 모르니까 준비해 둬.”

에반의 한국말에 강백현이 긴장했다.

바닷물이 입 안에 들어간 탓에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백현은 자신의 앞에서 기다리는 거인의 등장에 쓴웃음을 지었다.

절벽 아래.

에반이 탈출을 위해 생각한 것은 보트였다.

그의 생각대로 절벽 밑 동굴 앞 조그마한 백사장에는 보트가 정박되어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

에반의 직장 동료가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것.

『에반, 이거 페트라 님에 대한 배신 아니야?』

『제이스, 미안하다. 그냥 보내줘라.』

『그럴 수 없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이대로 돌아가면 난 페트라 님하고 싸우게 될 거야. 그 결과는 너도 잘 알잖아? 내가 물러날 수는 없다는 거.』

제이스는 완고했다.

자신의 품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백현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딱 보기에도 강해보이는 그의 유리병 안 펫.

전갈이다.

『제이스! 정말 이럴 거야?』

에반은 호소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검은 구체가 보인다.

『정식으로 요청했어. 이제 나를 쓰러트리고 가든지, 아니면 스스로 자수하든지 결정해.』

에반이 주먹을 쥐며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 이길 수 있겠어?”

“나야 모르지.”

“전갈의 능력은 독이야. 한 번만 공격당하면 끝나.”

에반의 말에 백현이 말했다.

“일단 도망가자.”

“도망 못 가.”

“왜?!”

“구체가 있잖아.”

그게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구체의 역할을 몰랐으니까.

검은 구체는 국가 소속이었다.

그래서 강제성이 있었다.

거인의 룰 2. 분쟁조정.

구체가 경고음을 내며 현재 상황을 알렸다.

≪사용자 제이스 폴트람, 사용자 에반 슈트리거와의 분쟁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분쟁 조정 신청이 완료될 때까지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제한합니다.≫

구체 주변으로 결계가 생겼다.

그걸 보며 제이스가 말했다.

『어떻게 할래? 이래도 자수하지 않을 거야? 네가 가진 그 펫이 죽을텐데도? 그 펫 때문에 이런 거 아니었어?』

『그냥 보내주면 안 돼?』

『이미 늦은 건 너도 알잖아! 얼른 내보내. 아니면 네가 죽으니까.』

전갈을 꺼내는 제이스.

유리병에서 나온 전갈이 쉬쉭거리며, 기분 나쁜 경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크기 약 11cm. 크게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걸 본 백현은 유리병에서 나오며 에반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이기면 되는 거지.”

“미안하다. 맡길게.”

전갈의 움직임은 재빨랐다.

특히 꼬리에 달린 독과 집게발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보호막을 뚫을 순 없었다.

그러나 그건 백현도 마찬가지였다.

보호막의 파편이 전갈의 두꺼운 껍질에 막혔다.

『제이스! 지금이라도 그만하자. 응? 우리 친하잖아. 친구 하기로 했잖아.』

에반은 호소했다.

같이 일한 동료.

그리고 친구.

그와 함께 했던 시절들이 떠올랐다.

제이스와 파브, 그리고 에반은 항상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자존심이 없냐며 귀족들의 뒷담화는 물론, 소개팅도 같이 나갔다 다 같이 퇴짜맞는 등 서로에 대한 추억이 가득했다.

그러나 제이스는 완고했다.

『그럼 네가 먼저 배신하질 말았어야지. 지금 어디로 가는데? 너! 지금 탈출하려는 거잖아. 그냥 여기서 살자. 응? 그냥 자수하고 같이 여기서 지내자! 난 그거면 돼. 도망치지 말고 용서 빌면 혹시 알아? 페트라 님이 용서해주실지…….』

『그건 안 돼. 나 사실은……』

『알아! 다른 대륙에서 왔다는 거 진즉에 알고 있었어.』

『네가 어떻게……』

에반은 당황했다.

모두에게 비밀로 했던 사실이었는데…….

『너 술 거하게 먹으면 항상 실수했잖아. 네가 왕자라며! 네가 대륙을 다시 되찾겠다며 항상 그 말했잖아.』

『……』

『솔직히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그냥 포기해. 탈출하다가 걸려서 개죽음 당하지 말고, 가서 페트라 님께 용서 빌자. 나도 같이 있을게. 너랑 같이 있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자수하자. 에반』

노동자의 지위.

벌레만도 못한 위치.

하지만 그런 취급을 당해봤기에 그들끼리 끈끈한 우정을 가질 수 있었다.

제이스, 파브, 그리고 에반.

3명의 삼총사는 노동자로서 애완동물 관리인으로 일하며 서로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에반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 지금 와서 그렇게 할 수는 없어. 네가 마음 바꿔주면 안 돼? 나랑 같이 가자. 응? 나랑 같이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로 가서 살자. 언제까지 노동자로 살 건데?』

『……』

제이스가 잠시 고민하다 에반의 제안에 응답했다.

『거대화!』

그러자 전갈이 갑자기 몸집을 키운다.

50cm까지 커진 전갈이 백현 앞에 나타났다.

강백현은 당황했다.

전갈의 독이 묻은 꼬리가 백현을 정확하게 노렸다.

백현은 보호막으로 꼬리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런데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힘.

보호막이 짓눌리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제이스! 제이스!』

『말 걸지 마. 말 걸면 너도 죽여 버릴 테니까.』

제이스는 고압적인 시선으로 에반을 협박했다.

백현은 100% 승리하는 그 작전을 펼쳤다.

전갈의 주변에 보호막을 펼쳐 전갈의 호흡을 막는 것.

그런데 생각보다 전갈의 크기가 너무 컸다.

그리고 보호막도 전갈에 의해 깨져버린다.

백현이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에반은 구체가 만든 결계 밖에서 백현을 응원했다.

“백현! 뭐해! 죽여! 네가 죽을 거야?”

“하지만!”

“떠올려. 네가 말했잖아. 죽고 싶지 않다고! 내 앞에서 울었잖아!”

에반의 목소리에 강백현이 전갈의 꼬리부분을 노렸다.

마디마디 사이의 틈.

그 안에 보이는 미세한 속살.

그게 바로 전갈의 약점.

백현의 보호막이 작은 파편으로 나뉜다.

독이 든 꼬리의 공격을 보며 그 파편을 마디마디에 끼워 넣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전갈은 계속 움직이며 백현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수십 번의 공격과 후퇴가 반복됐다.

그리고 백현을 마주한 것은 바다.

그러나 결계면 때문인지 파도는 치지 않는다.

뒤쪽.

검은 구체가 발현한 결계에 파도가 부딪히고 있다.

결계는 완전 무결.

절대 방어.

이건 즉, 1:1.

전갈과 자신과의 싸움.

전갈이 후퇴로가 없는 강백현에게 독이 든 꼬리로 공격했다.

아까와는 달리 빠르게 집게발도 휘둘렀다.

꼬리는 피했으나, 휘두른 집게발은 피할 수 없었다.

양손으로 보호막을 펼쳐 막아내려 했지만, 강력한 힘에 의해 보호막이 부서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앞쪽의 보호막이 부서지자, 백현이 반사적으로 자신의 몸에 보호막을 둘렀다.

하지만 충격은 고스란히 전해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백현의 몸이 바다에 빠져버렸다.

해수면 위로 올라오기 위해 백현이 양손으로 헤엄쳤다.

숨을 참아가며 수면 위로 올라간 백현이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끝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아무리 봐도 몸이 아작난 것 같았다.

갈비뼈의 통증이 가시지 않는 가운데, 백현은 전갈의 이어지는 공격을 대비하고자 정면을 바라보며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전갈이 공격하지 않는다.

움직임을 멈춘다.

‘뭐지?’

그러고보니 전갈이 바다 안에 들어간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전갈은 보통 사막에 산다.

바다를 볼 일이 없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전갈은 바다를 무서워하는 게 분명했다.

제이스가 당황했다. 전갈이 바다 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 너 바다 안에 못 들어가? 못 들어가냐고!』

처음 보는 환경에서 자신의 펫을 데리고 싸워보는 제이스.

응답 없는 전갈.

그리고 에반의 웃음.

『안됐네. 제이스. 이번 승부, 무승부일 것 같은데?』

그러고보니 검은 구체의 화면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

《분쟁 조정까지 남은 시간 2413초.》

그러나 제이스는 웃었다.

『아닐 걸? 네 펫을 봐! 수영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어푸어푸.

수면 위에서 버티기 위해 계속 물장구를 치는 백현을 보며 제이스가 웃었다.

그리고 잠시 뒤.

백현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걸 보며 에반이 오열했다.

『야! 버텨! 2600초. 그것만 버티면 넌 살아. 무승부로 살 수 있다고! 백현! 백현!』

그걸 들은 제이스가 씩 웃었다.

『우리 말로 하면 걔가 알아듣냐? 에반! 분쟁 조정 받아들이자. 결계 해제할게. 오케이?』

결계를 해제하면 바다에 빠진 백현을 건져올릴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은 것이다.

제이스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때, 전갈의 몸집이 작아졌다.

『흠……. 제한시간이 다 된 건가?』

거대화 능력은 유효시간이 있다.

조금만 더 늦었다면 분쟁조정 시간은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됐든 승리는 확정적이었을 터.

제이스는 승리를 확신하며 에반을 더욱 더 압박했다.

『야! 시간 끌면 그 펫 죽어. 페트라 님한테 너도 죽고 싶은 건 아니지? 지금이라도 빨리 오케이 하라니까! 어?』

에반은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자신의 탈출을 위해 백현을 희생할 순 없었다.

그가 있었기에 한 결심.

『좋아. 분쟁 조정 받아들일게. 그만하자.』

『잘 생각했어.』

제이스가 구체를 보며 말했다.

『사용자 제이스 폴트람은 사용자 에반 슈트리거와의 분쟁 조정을 중단할 것을 건의합니다.』

그러자 구체가 에반에게 화면을 돌리며 기계적인 음성을 내는 동시에 메시지를 송출했다.

『사용자 제이스 폴트람은 사용자 에반 슈트리거와의 분쟁 조정을 중단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이에 동의합니까?』

에반이 절망적인 얼굴로 대답하려 할 때, 안쪽 결계에서 거인의 말이 튀어나왔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이스가 놀라 강백현을 바라보았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해!』

강백현의 거인어에 제이스가 에반을 향해 물었다.

『쟤가 말한 거야? 순종 아니었어? 합성종이었어?』

하지만 강백현은 오로지 에반을 보며 말했다.

『말하라고 했잖아!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 분쟁조정인가 뭔가 계속 해보자고! 어?』

강백현이 수면 위로 자신의 몸을 띄워올린다.

유리면 같은 바닥을 밟고 올라선 강백현.

그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뭐야 저거! 뭐냐고! 뭐야!』

제이스가 놀랐다.

하늘을 날다니.

백현은 하늘을 날 수는 없었다.

다만, 보호막 파편이 백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 뿐.

백현은 보호막 파편을 날리는 동작을 응용했다.

자신이 만든 보호막 발판에 손을 대고 무게 중심을 낮춘 후, 보호막 파편을 다른 한 손으로 날리는 동작을 통해 비행물체처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

거대하고 뾰족한 보호막 위에 탄 백현이 작아진 전갈을 향해 날아간다.

그걸 보며 에반이 승리를 확신했다.

『끝났어. 거대화 능력 제한시간이 끝난 시점에서 넌 진거야.』

하지만 제이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거대화는 조금만 쉬면 바로 쓸 수 있어. 내 전갈의 거대화 능력은 레벨 3이니까.』

그의 말대로 전갈이 다시 50cm의 크기로 커졌다.

하지만 백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보호막 파편을 타고 그대로 직진했다.

보호막 파편은 백현과 가까이 있을수록 강도가 올라간다.

멀리 날리는 게 아니라 직접 탄 상태로 조종하면 그 파괴력은 평소의 10배도 강해질 수 있다.

백현이 마디와 마디 사이를 정확히 노리고 직진했다.

백현을 공격하려던 전갈의 꼬리가 오히려 백현에게 카운터를 맞출 기회를 선사했다.

서로 부딪히는 힘.

그러나 날카로운 파편의 보호막이 꼬리의 마디 사이를 뚫고 지나가자, 전갈의 녹색 체액이 주변을 뒤덮었다.

꼬리를 잃은 전갈이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지만, 강백현은 보호막에 손잡이를 만들어 몸을 지탱하고는 하늘방향에서 전갈의 머리 부분을 정확히 노리며 수직하강했다.

그리고 검은 구체에 뜬 메시지.

《분쟁 조정이 끝났습니다. 결과 : 에반 슈티리거의 승리》

《전리품으로 570Point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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