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77화 (77/200)

77화. 거인의 룰

모든 상처가 치료된 백현은 에반과 대화를 시작했다.

“에반, 같이 싸워달라니?”

“네가 미니맵이란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 알 거야. 이곳 세상은 총 5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 첨단문명의 도시 아르케, 넓은 초원이 특징인 밤바비아 초원, 메마른 사막 도르시안. 이 네 개의 구역을 통치하는 왕족은 율리만과 대화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율리만?”

“그래. 이곳 세계의 신. 정확히 말하면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율리만.”

신하고 대화를 한다?

그러고 보니 5개의 구역이라고 설명해놓고, 하나를 쏙 빼먹었다.

“남은 한 구역은 뭔데?”

“허락된 자만 들어갈 수 있는 데이터아일랜드. ‘율리만 섬’이라고도 불리는 데이터아일랜드는 4개의 대륙 중앙에 있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지.”

“해석하면 정보의 섬이네.”

“그래. 율리만과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자세한 것은 나도 몰라. 내 조상 중에 데이터아일랜드에 들어갔다 돌아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백현은 충격을 먹었다.

거인들조차 지배받고 있었다고?

그래서 물었다.

“당장 내일은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긴, 일단 도망치고 싸울 상황이 생기면 싸워야지. 최대한 피해보겠지만……”

“싸운다고?”

“응. 물론 내가 싸우는 건 아니야. 네가 싸우게 될 거야. 우리들도 거인의 룰에 의해 통제받고 있으니까.”

“거인의 룰?”

“응. 이걸 봐. 보면 알 거야.”

* * *

《거인의 룰 1》 거인끼리는 절대 싸우지 않는다.

《거인의 룰 2》 모든 분쟁은 가급적 대화로 해결한다.

단, 대화로 해결되지 않으면 각자의 애완동물(펫)의 힘으로 분쟁을 조정한다.

《거인의 룰 3》애완동물은 하나만 지정할 수 있다.

애완동물은 구체를 통해 Point를 사용하여 치료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또한 각종 장비나 장신구를 제공할 수 있다.

《거인의 룰 4》모든 Point는 펫의 전투로부터 나온다. 해당 Point는 주인에게 귀속된다. 주인이 없는 펫은 펫 자체에 점수가 귀속된다.

《거인의 룰 5》 각 대륙은 가장 힘이 센 펫을 가진 거인이 지배한다.

그 자를 황제라고 칭하고, 그의 가족을 왕족 또는 황족이라 칭한다.

《거인의 룰 6》각 대륙의 황제는 『율리만』과 만나 대화할 수 있다.

단, 만나기 위해서는 데이터아일랜드에서 시련을 통과하여야 한다.

《거인의 룰 7》애완동물은 등급에 따라 배울 수 있는 능력의 개수가 달라진다.

※ 1성은 1개, 7성은 7개까지 배울 수 있다.

4성부터는 애완동물에게 능력 외의 특수한 권능이 주어진다.

《거인의 룰 8》 모든 거인은 원칙적으로 펫을 죽일 수 없다.

단, 자기 소유의 펫이나, 주인 없는 펫의 경우 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거인의 룰 9》모든 생명체는 영혼의 돌과 소생의 돌로 되살릴 수 있다.

《거인의 룰 10》거인의 룰을 어길 시 곧바로 폐기처분 되며, 이는 어떠한 경우에도 돌이킬 수 없다.

* * *

“에반! 이게 뭐야?”

“거인의 룰이라고 했잖아. 거인들은 이 법칙에 의해 살아가. 율리만이 그렇게 정했어.”

“어기면?”

“거인의 룰 10. 곧바로 폐기처분 되며, 어떠한 경우에도 돌이킬 수 없다. 봤지?”

“폐기처분?”

“죽는다는 소리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지. 나머지는 나중에 설명할게. 능력부터 배우자.”

거인의 룰.

대한민국의 헌법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거인의 룰을 지키지 않으면 폐기처분이라니.

생명체한테 폐기?

말로만 들어도 끔찍하다.

그때, 에반이 백현을 위해 구체에서 무언가를 구입했다.

[사용자의 능력 슬롯 하나를 추가 개방하였습니다.]

홀로그램 메시지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슬롯은 이제 3개가 되었다.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직업 : 왕자 (Prince) / ★★★★

○ 고유스킬

1. 보호막 Lv 3.

2. 자연치유 Lv 1.

3. 아직 배우지 않았습니다.

4.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4개 중 3개가 활성화되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구체가 에반의 포인트를 차감한 후, 두루마리 하나를 뱉어낸다.

“배워둬.”

“뭐?”

“너 능력 2개 밖에 안 되잖아. 이거 5000포인트 짜리야.”

5000포인트를 소모해서 그가 구입한 두루마리는?

“분신?”

“그래. 내가 생각하는 최강의 능력이지. 빨리 사용해 봐.”

100-500짜리 능력이 즐비한 가운데 그가 선택한 5000짜리 능력.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확실히 달랐다.

분신 Lv 1.

홀로그램의 동작을 따라하자, 백현이 하나에서 둘로 갈라졌다.

자신 앞에 또 다른 자신이 생기자 백현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녀석도 신기한 듯 백현을 바라보았다.

마치 거울을 보듯 서로를 관찰하는 두 사람.

그걸 보며 에반이 말했다.

“백현. 준비는 끝났어.”

“뭐?”

“미안하다.”

“갑자기 미안하다니?”

에반이 품 안에서 살충제를 꺼내 두 사람이 된 백현들에게 분사했다.

강백현이 당황했다.

수면가스.

너무나 익숙한 그 가스다.

백현이 보호막을 시전했다.

수면가스는 보호막을 뚫을 수 없었다.

이미 많이 경험해봐서 알았다.

그런데 에반은 거기까지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내리는 명령.

“보호막 해제.”

강백현은 비웃었다.

말 한마디로 내가 명령을 들을 것 같아?

그런데…… 이상했다.

진짜로 보호막이 해제된 것이다.

“에반! 에반!”

“미안. 자주 써먹었던 방식이어서 이게 편해. 잠시 자고 있어.”

“에반……. 에반…….”

스르륵 감기는 눈.

강백현은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자신의 상태창의 변화를 확인했다.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직업 : 왕자 (Prince) / ★★★★

○ 고유스킬

1. 보호막 Lv 3. (주인의 의해 강제해제된 상태입니다.)

2. 자연치유 Lv 1.

3. 분신 Lv 1. (New)

4.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 * *

에반은 쓰러진 강백현을 포켓 주머니에 넣었다.

분신인 또 하나의 강백현은 유리병에 담았다.

서로 구분지어 보관한 것.

그는 여기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어야 한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옷을 갈아입고 출근 복장으로 집을 나서는 에반.

착잡한 표정 뒤에 배어 나오는 은연의 미소.

‘그래. 이대로 살지 말자. 부딪히는 거야.’

운이 좋았다.

에반은 그렇게 생각했다.

강백현이 4성이 아니었으면 절대 투자하지 않았을 거니까.

그만큼 ★★★★는 이곳에서는 흔치 않다.

더구나…….

권능을 2개나 가지고 있으니까.

권능은 구입하고 싶다고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인트로도 구할 수 없는 권능.

그걸 강백현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다.

흔치 않은 기회.

자신에게 찾아온 운명.

에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30분 후.

에반의 집에 경관들이 들이닥쳤다.

쾅쾅쾅쾅.

문을 두드리는 경관들.

『에반 슈트리거! 페트라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문 좀 열어주시죠.』

불이 켜져 있는 집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그래서 경관들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이렇게 나오면 강제집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 여세요! 네?』

에반은 집 밖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그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역시나 거인의 룰 때문에 조심스러워한다.

‘시간을 벌었어.’

그들이 폭력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싸움에 돌입하게 되면 자신의 펫을 잃을 수 있으니까.

펫은 곧 거인의 지위니까.

경관 중 하나가 에반의 동료 파브에게 물었다.

『안에 있는 것 확실하죠?』

『네. 30분 전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페트라 님이 분실한 펫도 있었고요.』

진술을 들은 경관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의논했다.

『열까?』

『아~ 싸우기 싫은데…… 만약에 싸우자고 하면 네가 먼저 싸워라.』

『아…… 네가 먼저 싸워.』

『가위바위보?』

자신의 펫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는 두 경관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파브.

『에반은 소유 펫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펫이 없다고요?』

『네. 아마 제니가 없어서겠죠. 유지비용도 많이 드니까요.』

이곳의 화폐단위는 제니.

펫은 그 가치에 따라 1제니부터 수백 만 제니까지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있었다.

『펫이 없다면 집행이 편하겠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페트라 님께서 배신자를 처단하라며 강력한 펫을 주셨거든요.』

파브가 자신의 품 안에서 고급스러운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종은 놀랍게도 키메라.

『‘고마워 에반, 덕분에 페트라 님께서 강력한 펫을 주셨어. 그러니까 곱게 죽어줘.’』

파브가 에반의 집 문을 발로 찼다.

그러자 삐거덕 소리가 나며, 문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런데 에반의 집에 에반이 없었다.

방 한 칸짜리 집.

집에 없는 걸 확인한 경관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다.

그런데 파브의 시선에 유리병 하나가 보인다.

책상 위에 있는 유리병.

그 안에 든 건 잃어버린 휴먼종.

그 안에는 강백현이 수면가스에 취한 채 들어가 있다.

허무했다.

저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포기하고 도망이라도 간 건가.

책상 위에는 편지도 놓여 있었다.

* * *

파브에게.

미안하다. 파브. 나 페트라 님께 직접 가서 용서를 빌게. 훔친 펫은 여기 놓고 가니까 내가 자수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라. 알았지?

그동안 고마웠고, 절대 배신할 생각은 없었어. 미안. 정말 미안해.

너의 가장 친한 동료 에반.

* * *

파브는 편지를 보고 허무한 듯 바라보았다.

『상황은 종료인 것 같은데요?』

『아, 그게 실종된 펫입니까?』

『네. 맞습니다. 정확하네요.』

* * *

한편 에반은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백현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항구 방향으로 뛰고 또 뛰었다.

거친 초원.

360도 회전하는 풍차.

들판에 자유롭게 방목되는 젖소와 그 위를 날고 있는 까마귀까지.

백현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장소.

하지만 에반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장소를 통과했다.

야밤에 질주하는 그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인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밖에 나와 있지 않았으니까.

거인들은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초원이 끝나자, 절벽이 보였다.

절벽 아래에는 깊은 바다가 자리잡고 있었다.

암석지형으로 된 절벽.

그 높이는 무려 15m.

그 높이에서 에반이 백현이 담긴 포켓주머니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백현은 포켓주머니 안 유리병에서 여전히 자고 있다.

『다행이야. 아직 깨지 않았어.』

에반은 머뭇거리지 않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추적에서 피하기 위해.

다른 대륙으로 건너가기 위해.

풍덩.

거인의 신체가 물속에 빠졌다.

강백현이 들어 있던 유리병이 충격에 의해 포켓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차가운 바닷물이 유리병 사이로 들어오자 강백현이 잠에서 깨어났다.

‘으으윽…….’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유리병 주변.

그리고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닷물.

유리병 바깥은 해양생물들의 낙원.

물고기가 떼를 지어 군중을 이루고, 해초류들은 해류에 몸을 맡겨 춤을 춘다. 하늘 방향에는 해파리가 햇빛을 받으려 펑퍼짐하게 퍼져 있고, 그런 해파리를 야금야금 뜯어먹는 몸집 큰 거북이가 보인다.

그런데 유리병 안에 해수가 들어오는 게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안에 꼼짝없이 갇힌 백현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때 하늘방향에서 거인이 내려왔다.

에반이었다.

에반이 물장구를 치며, 유리병이 있는 방향으로 정확히 움직였다.

한 손으로 유리병을 낚아채더니, 다시 해수면 위로 몸을 트는 에반.

녀석이 유리병을 들고 해수면에 다시 올라왔을 때 백현을 맞이한 것은 또 하나의 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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