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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76화 (76/200)

76화. 협상

에반의 손은 빨랐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에 잡힌 백현이 말했다.

“에반! 내 말 좀 들어봐.”

하지만 에반은 백현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듣긴 뭘 들어? 네가 거짓말만 하지 않았어도 이렇게 곤란해지진 않았어. 너 때문에 내 목숨이 위험해진 거 몰라? 친구도 잃었어. 진짜 친한 동료인데…… 너 때문에.”

에반의 말에 백현이 자신의 처지를 호소했다.

“나도 살고 싶었어! 벌레 취급 당하는 게 싫었다고! 내가 거기 어떻게 간 건지 알아? 납치당한 거야.”

“납치를 당했다고? 구입한 게 아니고?”

“너도 들었잖아! 고양이하고 싸웠다고. 그게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 알아? 죽을 뻔한 거라고! 네가 내 심정을 알아? 하루하루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내 심정을 네가 아냐고! 어?”

백현의 호소에 에반이 오히려 성을 냈다.

“그럼 사실대로 말했어야지! 너 때문에 이게 뭐야? 지금 이 상황이 뭐냐고! 나 곤란한 건 생각 안 해?”

하지만 백현도 주장할 게 있었다.

“그럼? 사실대로 말했으면? 난 죽는데? 내가 네 허리띠에 숨어서 탈출했다고 사실대로 말했으면? 너는 날 어떻게 하려고 했는데?”

“그거야 의논하고 상의하면서 해결할 방법을 찾았겠지!”

에반의 뻔뻔한 목소리에 백현이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하지 마! 넌 수철이도 못 지켰잖아. 어린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잖아. 위선 떨지 마. 넌 못 지켜. 날 못 지켜! 지금도 그렇잖아. 지금도 날 죽음으로 내몰고 있잖아.”

백현의 주장에 에반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소리 한 번만 더 해봐. 그땐 나도 널 진짜 죽일지도 몰라.”

“씨X! 협박하지 마! 협박하지 말라고!”

백현의 욕설에 에반의 움켜쥔 주먹이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갔다.

하지만 백현은 힘으로 버텼다.

자신의 보호막의 힘으로 에반의 조이는 주먹을 풀어냈다.

그러자 에반이 양 손으로 백현을 움켜쥐었다.

백현과 에반의 힘싸움은 계속 되었다.

조이는 자와 버티는 자의 싸움.

그러나 절대적인 힘의 차이.

체격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

결국 승리는 에반의 것.

보호막이 줄어들며, 백현의 입가에서는 핏물이 흘러나왔다.

그가 입은 슈트는 한계를 넘었는지, 녹은 고무처럼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현은 알았다.

더 이상 슈트가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슈트는 망가진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보호막은 물론, 자연회복도 되질 않는다.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백현이 죽기 직전 소리쳤다.

“죽여! 이 망할 새X야. 죽여!”

“…….”

“네가 원한 거잖아. 그냥 죽여. 나 하나 죽이면 되는 일이잖아!”

“…….”

에반은 커다란 눈으로 백현을 노려보았다.

다 뜯어진 입술, 녹아내리는 옷. 거기에 온몸에 든 피멍까지.

허리 밑은 거의 반죽음이다.

약한 생명체.

자신하고 하등 다를 게 없는 하나의 생명체인데 작다는 이유만으로 이용당하고 죽음을 당한다.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버려진 후부터 시작된 최하층 천민의 삶.

노예나 다름없는 쳇바퀴 같은 인생.

하지만 이런 삶을 통해 자신은 안전을 확보했다.

신분을 숨김으로서 자신을 죽이려는 자로부터 도피했다.

백현도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더 마음이 쓰였고, 신경 써주고 싶었던 건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아껴주고, 지켜주고 싶었다.

비록 자기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차지만, 녀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 때문일까?

에반이 백현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백현은 그런 에반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백현이 신음을 토해냈다.

“으으으으…….”

시야가 좁아진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크기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힘.

저항하려 했으나, 이겨낼 순 없었다.

막대한 힘의 차이로 인해, 삶에 대한 의지가 꺾였다.

억울했다. 이용만 당한 자신의 삶이 이대로 끝난다는 게 믿겨지질 않았다.

백현이 속으로 외쳤다.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야 해.’

몸을 움직였다.

그런데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꽉 조여진 탓에 다리가 망가져 버린 탓이다.

녹아내린 슈트 사이로 다리가 보였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하체 전부가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백현은 허리의 반동으로 몸을 돌렸다.

두 세 번의 시도 끝에 몸을 거꾸로 돌릴 수 있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 후에 한 행동은 양 팔로 기어가는 것이었다.

포복자세. 그는 거인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기어가고 또 기어갔다.

다시 한 번 기어가려는 백현의 모습을 에반이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구체 또한 백현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검은 구체의 역할.

적외선이 백현을 서칭한다.

백현은 적외선에 의한 빛의 파장을 보며, 고개를 뒤로 돌렸다.

검은 구체가 비추고 있었다.

그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포복자세로 자신의 몸을 끌다시피 하며 기어갔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구체가 결국 서칭에 성공하더니, 백현의 실루엣을 화면에 띄웠다.

그리고 절망의 메시지를 화면에 담아냈다.

《실종된 펫을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분해, 소거 하시겠습니까?》

분해, 소거.

글자를 읽을 수 있는 백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보았다. 분명히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다.

버려진 시체는 잘게 잘게 쪼개진다.

그 시체를 저 검은 구체가 그물망 같은 레이저로 빨아들이고 흡수한다.

분해와 소거.

그건 자신의 죽음을 뜻했다.

백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포복자세인 채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의 몸을 원망하며, 두 주먹으로 책상을 때렸다.

그나마 멀쩡한 손까지 피멍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이 감정, 이 분노 모든 것을 쏟아내고 싶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야속하게도 메마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반은 자신을 죽이지 않는다.

오히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죽는 순간까지 지켜보려는 것만 같았다.

죽음을 인정했기 때문일까?

눈물이 메말라서일까?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 손도 움직여지지 않고, 다리도, 허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미나야. 오빠 먼저 갈게. 오래 살아. 미안.’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미나.

제발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빌며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다.

그런데 그때 에반이 백현을 들어 올리더니 검은 구체 앞에 세웠다.

죽일 거면서 에반은 왜 처량하고도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백현은 그에게 말했다.

“죽여. 내 친구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반드시 복수할 거야. 너희 거인들한테…….”

백현의 말에 에반이 다른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백현의 입을 막아버린 후, 자신의 말을 꺼냈다.

“그래. 복수해. 그런데 난 너 죽일 생각 없어.”

“뭐?”

“같이 싸워. 난 수철이처럼 널 보내지 않을 거야. 내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널 살려낼 거야.”

에반은 자신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검은 구체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백현을 서칭한 검은 구체가 다른 메시지를 띄웠다.

《주인이 등록되지 않은 펫(Human)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할게. 주인은 나로 등록해줘.』

에반은 검은 구체에 명령어를 입력하며, 강백현을 자신의 애완동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강백현의 앞에 갑자기 수많은 홀로그램이 뜨기 시작했다.

《주인이 등록되었습니다.》

《주인님 onwer》

이름 : 에반 슈트리거

소속 : 아르케 5-6구역

신분 : 천민 (몰락한 왕자)

보유Point : 26414.

그리고 검은 구체를 통해 에반도 백현의 정보를 획득했다.

<애완동물 정보 Pet information>

○ 직업 : 왕자 (Prince) / ★★★★

○ 나이 : 19세

○ 키 : 3.44cm

○ 몸무게 : 35g

○ 고유스킬

1. 보호막 Lv 3.

2. 자연치유 Lv 1.

3.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4.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 고유권능

1. 미니맵

2. 심리분석

에반은 백현의 정보를 들여다보며 생각보다 높은 스펙에 미소를 지었다.

미니맵에 심리분석.

거기에 등급은 무려 4성.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을 죽이려하는 자들이 가지고 있는 펫들은 평균 6성.

그들과 정면승부를 하려면 앞으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

에반이 백현에게 말했다.

“나도 싸우겠어. 널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뭐?”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을 거라고.”

에반이 검은 구체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검은 구체가 복잡한 화면을 출력하며 정보를 제공한다.

백현이 깜짝 놀라며 에반이 조종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능력의 홀로그램과 같은 구조.

같은 화면.

같은 글씨체.

에반이 물건을 골랐는지, 거인어로 된 Yes or No 버튼이 나왔다.

에반은 머뭇거리지 않고 그 물품을 구입했다.

그러자 검은 구체가 물건을 토해냈다.

《엘릭서를 구입했습니다. 1000Point가 소모됩니다.》

엘릭서라고 불리는 약병.

거기에는 오색빛깔로 된 신비한 액체가 담겨있었다.

에반이 백현에게 말했다.

“가만히 있어.”

“아…….”

그걸 백현의 몸에 뿌리기 시작하는 에반.

그러자 상처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한다.

백현이 황당한 표정으로 에반에게 물었다.

“도대체 넌 뭐야?”

“나? 버림받은 왕자. 잃어버린 대륙 신디아에서 도망친 왕자.”

“왕자?”

“그래. 이제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 숨지 않을 거야.”

에반은 백현을 펫으로 맞이한 후, 검은 구체를 통해 그에게 맞는 옷을 사주었다.

그리고 역시 구체를 통해 백현의 정보를 열람하며, 실제 당사자에게 물었다.

“보호막 레벨 3, 그리고 자연치유 레벨 1도 있네?”

“왜?”

“아니, 괜찮아서. 나쁘진 않아.”

이제 백현은 자신의 정보를 에반과 공유하게 되었다.

물론 에반의 정보도 백현에게 보인다.

그건 백현이 에반의 펫이 되었기 때문에.

계약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펫 시스템.

거인이 존재하는 이유.

거인의 힘은 애완동물로부터 나온다.

자신의 애완동물은 여러마리 키울 수 있지만, 등록은 하나만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강한 놈을 가진 거인이 유리하다.

그거에 적합해보이는 백현에겐 미래가 보였다.

에반은 자신의 의지를 백현에게 말했다.

“백현. 네가 물었지? 수철이가 왜 죽었냐고?”

“…….”

“나 때문에 맞아. 내가 수철이를 펫으로 등록하지 않아서였어. 내가 싸우고 싶지 않아서. 내가 숨어 살고 싶어서. 내 정보를 공유하기 싫었던 거야. 후회하고 있어. 그리고 같은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몰라도 돼. 지금은 몰라도 돼. 하지만 차차 알게 될 거야. 넌 실수한 거야. 앞으로 혹독하게 수련해야 할 테니까. 나랑 같이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테니까. 그러니까 나만 믿고 따라와. 그리고 나를 위해 싸워줘. 넌 이제 나와 운명공동체야.”

운명공동체.

에반은 백현에게 자신이 가진 포인트를 활용하여 최고의 스펙을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백현의 직업이 자신과 같은 왕자였으니까.

강하니까.

7성까지도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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