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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75화 (75/200)

75화. 에반

에반의 출퇴근 시간은 일정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이 되면 돌아오는 일정.

그래서 백현은 하루 대부분을 집에서 홀로 보내야 했다.

3일이 지나자 거인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직 부족했다.

모르는 점이 있으면 에반을 통해 물어보았다.

다행히 에반은 백현에게 호의적이었다.

수철이를 대하듯 정성껏 백현을 보살폈다.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섞어 목욕하기 좋은 미온수를 준비해주고.

조금만 춥다고 하면 성냥을 꺼내 바로 옆에서 태워 백현의 몸을 녹여주었다.

제법 친해졌는지 에반은 백현을 어깨 위에 올린 후 사진도 찍었다.

수철이하고 같은 포즈였다.

찰칵!

에반은 정말 좋아했다.

백현을 너무너무 좋아했다.

『에반은 백현이 좋다. 사랑한다. 같이 있는 게 행복하다.』

단 한 번도 연예경험이 없는 에반.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는 에반이 좋아하는 것은 바로 애완동물 관리하기.

수철이를 잃고 수심에 빠진 그였지만, 백현을 만나 다시 예전의 기운을 되찾았다.

그래서일까? 에반이 절대 허락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안 돼.”

“왜?”

“밖은 위험해.”

“괜찮아. 내 몸은 내가 혼자 지킬 수 있어.”

“안 믿어. 그러니까 집에 있어. 그래야 내가 안심이 돼.”

에반은 백현이 자신의 허락 없이 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 안에서 컴퓨터만 하고 있을 백현이 아니었다.

에반이 출근하는 틈을 타 보호막을 이용하여 공중을 도약하고, 창문 틈을 이용해 빠져나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넓은 초원. 그리고 저 끝에 장벽이 놓여 있다.

미니맵으로 보았던 장벽이었다.

저 장벽을 통과하면 확실히 시가지로 진입할 수 있다.

미나와의 거리 25.5km.

자신의 크기로 환산하면 1,275km.

서울과 부산의 약 3배 거리.

걸어서 간다면 대략 60일.

가는 길에 식량도 자급자족해야 하고, 각종 곤충과 동물, 거인, 구체로부터 몸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것도 걸린다.

어떻게 보면 장복남 아저씨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른다.

사육장에서 길러지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을지도.

하지만 백현은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가능만 하다면, 원래 살던 지구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생사를 확인했다.

다행히 다 살아있었다.

자신과 함께 탈출한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있었다.

미나, 아람이, 윤수, 선희 누나, 만철이 아저씨, 거기에 형우 아저씨에 진기 형까지.

미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머물러 있다. 즉 모두 무사하다는 이야기.

“다행이야. 진짜 다행이야.”

* * *

그날 저녁.

에반이 평소보다 늦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액자 하나를 가져왔다.

에반과 백현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좋다. 이제 백현과 에반은 한 가족이다.”

“응. 알았어.”

에반은 백현을 위해 옷을 준비했다.

백현을 위해 직접 팬티부터 옷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주었다.

수준급 실력.

바느질부터 재봉틀까지.

수공예까지 능력이 있는 에반이 씩 웃으며 백현에게 선물 하나를 건넸다.

그건 인형의 집.

“어?”

“너한테 주려고 쉬는 시간마다 짬 내서 만들었다. 이제 여기서 살면 된다.”

“아…… 고마워.”

에반에 의해 하나씩 물품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백현의 거인어 실력도 점차 발전하고 있었다.

『에반, 배고파.』

『어? 이제 우리 말 할 수 있어?』

『조금. 조금은.』

『대단해. 진짜 똑똑하네.』

『응. 더 노력할게.』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한달 뒤 어느날 저녁.

어김 없이 에반이 일을 마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씩씩 거리는 그의 표정에서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엿보였다.

『에반, 왜 그래?』

『아…… 의심받고 있어. 날 범인으로 몰아가.』

에반의 얼굴에는 억울하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애완동물 하나가 탈출 했는데, 동료가 나를 범인으로 의심해서 다투고 오는 참이야.』

『애완동물?』

『응. 너랑 같은 휴먼벌레다. 전수조사해보니까 한 마리가 없었다. 한 달 전에 들어온 벌레인데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백현은 에반의 말에 그게 자신인 것을 알아차렸다.

『그럼 에반이 잘못한 건 아니지.』

『맞다. 그것 때문에 일하는 동료하고 같이 진술서 쓰고 왔다. 아무튼 난 성실히 일했고, 부끄러운 행동 한 적 없어. 그러니까 괜찮다.』

백현이 아무 걱정 말라는 듯 에반을 위로했다.

『그래. 네가 떳떳하면 되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 백현이 너한테 한 가지 묻는다. 너 수철이 찾아서 에반 집으로 바로 온 것 맞지? 혹시 페트라 가문에서 탈출한 적은 없던 거지?』

『에반! 우리 가족이잖아. 내가 너한테 거짓말 할 리가 없잖아.』

에반의 질문에 대답한 백현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이게 이렇게 연결 되나? 여기서 거짓말 했다는 게 들통나면 죽을 수도 있어.’

『미안하다. 의심한 것은 아니다. 단지 확인하고 싶었다. 사죄한다. 미안하다.』

『괜찮아. 에반.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응. 아무렇지 않을 거다. 괜찮다. 괜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둘의 대화가 끝나고 에반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백현은 일단 숨었다.

『에반! 에반! 안에 있어?』

『누구?』

『나 파브. 아까 일로 할 말 있어.』

『어. 들어와.』

파브라고 자신을 밝힌 거인이 에반의 방에 들어왔다.

초라한 에반의 원룸.

그 안에 들어온 파브가 에반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미안, 나 때문에 곤란했지?』

『괜찮다. 괜찮아. 근데 그런 게 들어온 건 맞아?』

『어. 그 벌레는 기절한 상태로 넘겨 받았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크게 생각 안했는데, 사라져버렸으니 이 난리가 난 거지. 설마 탈출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페트라 님은 왜 그 벌레를 애지중지하시는 건데?』

『페트라 님이 출근하실 때 가지고 다니던 키메라하고 싸워서 이겼던 모양이야.』

『뭐? 그걸 이겼다고? 그 고양이 합성종을?』

『응. 그래서 회복될 때까지 나한테 맡기셨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던 터라……. 아무튼 이번 건은 내 책임이니까 내가 그만둘게. 그러니까 걱정마.』

『응. 미안하다.』

『네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에반과 파브는 같은 일을 하며 친해졌다.

그러나 백현의 탈출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고.

누군가는 일을 그만둬야만 했다.

『뭐하고 있었어?』

『밥 하고 있었지. 아! 내가 새로 만든 친구 보여줄게. 수철이랑 아는 애래.』

『수철? 그 휴먼 벌레?』

『응.』

『정식으로 등록은 했고?』

『아니. 등록은 안 했어. 그냥 자유를 주고 싶어.』

『걸리면 바로 압수잖아.』

『안 걸리게 할 거야. 잠깐만!』

“백현! 백현! 잠깐 나와봐.”

에반이 눈치 없이 백현을 불렀다.

하지만 백현은 나갈 생각이 없었다.

파브에게 걸리면 에반이 곤란해진다.

자신도 곤란해진다.

거짓말 한 것을 들키니까.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지니까.

“백현! 괜찮아. 파브랑 난 친구야. 그러니까 괜찮아.”

『백현? 그게 뭔데?』

『아, 내가 말한 그 친구 이름. 쑥스럽나봐.』

『그렇겠지. 벌레들이 우리를 볼 때 어떻게 생각하겠어? 괴물로 보지 않을까?』

『쉿! 다 알아들어. 우리 말 할 줄 알아.』

『진짜?! 진짜?!』

『응. 백현아! 미안해. 파브가 실수한 거야. 굳이 무리해서 모습 드러낼 필요는 없어. 알았지?』

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 상황이 지나가길 원했다.

에반이 음식으로 자신을 유혹해도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철저하게 모습을 더 숨겼다.

그래서 들키지 않았다.

『에반! 나 갈게. 내일 사표 낼 생각이야.』

『그동안 고마웠어. 파브. 이렇게 되니까 정말 씁쓸하다.』

『괜찮아. 블레이트 가문에 가서 일하면 돼.』

『블레이트?』

『응. 세퍼드 사건 네가 말해줬었잖아. 쫒겨나면 날 사주시겠대. 천민인 우리야 거둬주신다고 하면 고맙지 뭐.』

『잘 됐다.』

『응.』

파브가 씁쓸한 얼굴로 에반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파브의 눈에 액자 하나가 걸렸다.

액자.

에반의 얼굴. 그리고 에반의 어깨에 올라있는 벌레.

『에반, 이 사진 속 벌레는 뭐야?』

『어? 아! 맞다. 얘가 내가 말한 백현. 강백현. 아~ 이걸 보여주면 됐구나.』

하지만 파브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만 갔다.

『에반…… 너였니?』

『뭐?』

『네가 훔친 거였어? 이 벌레가 탈출한 그거야. 우리가 오늘 진술서 쓰고, 사표 내야 하는 이유가 이 벌레 때문이라고!』

파브의 진지한 말투에 에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백현이는 아니라고 했어. 내가 직접 물어도 봤고 아니라고 대답도 했어.』

『넌 벌레 말을 믿냐? 아니면 내 말을 믿냐? 에반!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어?』

에반이 머리를 싸매며 백현을 불렀다.

『백현! 강백현!』

“백현! 강백현!”

하지만 백현은 나가지 않았다.

지금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파브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지금 바로 페트라 님께 가서 이 사실을 보고드릴 거야. 그럼 에반 너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겠지.』

『파브…….』

『도망치든지, 싸워서 죽든지 알아서 해. 난 네 편 들어줄 생각 없으니까.』

『어디로 도망치라는 거야? 도망치다가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건 네 사정이고. 에반, 난 네가 그렇게 멍청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고작 벌레 때문에 목숨을 걸어?』

『…….』

파브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에반이 그걸 보며 울부짖었다.

* * *

에반은 일단 자신의 집 문부터 잠갔다.

평소 열려 있는 창문을 굳게 잠그고, 출입문을 잠갔다.

그 다음 할 일은 백현을 찾는 일이었다.

약 3cm 크기의 백현을 찾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거인이 크고 백현이 작더라도, 그 정도 크기는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가능했다.

물건을 하나하나 뒤집어가며 백현을 찾는 에반은 마치 성난 물소와도 같았다.

백현은 당황했다.

그런데 더 곤혹스러운 상황이 찾아왔다.

검은 구체가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에반이 말했다.

『시간문제야. 얼른 나와. 소멸시키기 전에!』

검은 구체가 주변을 서칭하기 시작한다.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붉은 적외선으로 생명체를 파악하는 검은 구체.

여기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백현이 얼른 모기장을 찾았다.

모기장 안에서는 검은 구체에 포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걸 아는 에반은 모기장을 걷어치우며 다시 백현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나오지 못해?!』

백현은 보호막을 모기장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물 형태로 잘게 쪼개고, 내부를 불투명하게 만들어 검은 구체로부터의 서칭을 피해보려 했다.

다행이었다.

생각대로였다.

검은 구체가 자신을 식별하지 못한다.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이곳이 한정된 공간이라는 것.

그리고 검은 구체는 다른 곳으로 이동할 생각이 없다는 것.

검은 구체의 화면에 글씨가 떠올랐다.

백현은 이제 그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좀 더 찾으시겠습니까?》

『응.』

그 이유는 에반이 요청했기 때문에.

검은 구체가 계속 움직일수록 백현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보호막 유지시간이 길어진 것은 맞았다.

자연치유 능력으로 인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무한정인 것은 아니었다.

백현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고 있던 슈트에서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왔다.

백현은 승부를 걸어야 했다.

거인을 죽이고 검은 구체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협상하든가.

도망칠 길은 없으니, 결심을 해야만 했다.

백현이 에반을 향해 소리 질렀다.

“에반! 날 죽일 셈이야?”

그 목소리를 들은 에반이 백현을 향해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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