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74화 (74/200)

74화. 친구

강백현은 다시 한 번 거인에게 커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강백현입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러자 기대했던 한국어가 거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어, 너…… 한국인 맞지? 대박!”

“어? 진짜 한국말 잘 하네요.”

“응. 내 친구가 한국사람. 한국 사람이었어.”

거인은 신이 난 듯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백현이 그의 움직임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면서 보호막 발판에서 미끄러졌다.

거인은 발판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백현을 엄지와 검지로 들어올려 다시 보호막 발판에 올려놓았다.

“조심해. 그리고 기다려. 보여줄 게 있어.”

거인은 조촐한 침대 옆 서랍장을 열었다.

그 안에서 꺼낸 것은 액자.

액자 안에는 놀랍게도 사람의 사진이 있었다.

푸른 피부를 가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는 남자 아이.

아무리 봐도 동양인.

이목구비를 보니 한국인이 거의 확실했다.

“알아?”

“아뇨.”

“김수철. 김수철.”

“수철이요?”

“응. 내 친구. 나랑 걔랑 친구. 그래서 나 한국말 잘해. 대박! 쩐다. 쩔어. 쩔어. 킹왕짱도 배웠다.”

거인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점.

사실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더 좋은 점은 그 거인이 자신에게 적대의사가 없다는 점이었다.

“거인 아저씨의 이름은 뭐예요?”

“나? 에반.”

거인은 백현을 보며 기뻐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디서 나온 거지?”

“네?”

“너 우리 집, 어떻게 알고 왔어?”

그 집에서 탈출했다고 말해야 할까?

생각해보니 그 방에서 탈출했다고 하면 이 거인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백현은 순간 고민했다. 어떤 대답이 최선이지?

거인이 날 죽이지 않으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해?

거인은 그리 똑똑하진 않아보였다.

중학생 정도의 지식.

딱 그 정도라고 보면 됐다.

여기서 백현은 도박을 했다.

“수철이가 알려줬어요.”

“뭐? 수철이랑 아는 관계야?”

“전 수철이하고 친한 동네 형이에요. 수철이가 자신이 사라지면 꼭 찾아달라고 말을 했어요.”

“아, 아……. 수철이는 그런 말 했었다. 맞아. 그래. 엄마, 아빠, 그리고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자기를 찾아올 거라고 했었다.”

거인은 혼잣말을 하며 수철이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다행이었다.

작전은 성공이었다.

거인과 수철이라는 아이는 엄청난 유대감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거인은 수철이를 지극히 아끼는 듯 했다.

백현이 그래서 물었다.

“수철이는 지금 어디 있어요?”

그러자 거인이 대답을 회피했다.

그래서 더 압박했다.

“수철이는 어디있냐고요!”

그 질문에 거인의 손이 강백현을 향했다.

커다란 손이 자신을 감싸오자 자신도 모르게 보호막을 주변에 두르는 강백현.

하지만 거인은 자신을 공격하려고 손을 뻗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붙들어서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한 것이었다.

거인이 백현을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꽉 붙잡아. 잘못하면 떨어진다.”

“네!”

거인은 집 밖으로 나갔다.

초가집 옆.

만개한 꽃들에 둘러싸인 곳이 있었다.

그곳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백현은 알아차렸다.

이곳에 수철이가 묻혀있다고.

이건 거인이 만들어준 무덤이라고.

“미안하다. 나 때문에 수철이는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난 죽어도 싸다.”

“에반…….”

거인이 이렇게 나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인 주제에 반성이라고?

죽어도 싸다고? 너희가 죽인 인간들이 몇 명인데? 산채로 잡아먹고, 벌레처럼 밟고 죽인 게 몇 명인데?!

에반이란 거인은 꽃에 물을 주었다.

수철이가 묻힌 무덤을 보며 엉엉 눈물을 흘렸다.

황당했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강백현은 녀석의 어깨에 매달린 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 녀석을 이용해야 해. 이용해서 거인들의 세계에 대해 알아내야 해. 아직 시간은 많아. 미나도 아직 그 집에 있는 거 보면 안전한 것 같고.’

강백현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영혼의 돌과 소생의 돌을 떠올렸다.

마음만 먹으면 죽은 사람 한 명을 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수철의 무덤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온 에반은 백현에게 먹을 것을 내줬다.

신기하게도 그는 인간들이 사용할만한 크기의 포크와 나이프, 숟가락과 젓가락은 물론 접시까지 가지고 있었다.

빵 조각과 우유. 거기에 계란 스크램블을 백현에게 건네주는 에반.

비쩍 마른 강백현은 주체할 수 없는 식욕에 먹고 또 먹었다.

‘맛있어. 진짜 오랜만이야.’

백현은 거인이 먹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거인 또한 빵과 우유를 먹고 있다.

어느새 비워진 백현 앞 음식들.

“더 줄까?”

백현은 주저하지 않았다.

“네. 더 주세요.”

“기다려.”

거인이 빨대를 이용해 우유를 따라주었다.

백현은 조그마한 컵에 담긴 우유를 쭉 들이켰다.

“에반은 수철이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래서 수철이를 아는 사람이 찾아오면 평생 은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수철이는 어떻게 죽었는데요?”

“용맹하게 싸웠다. 우리들의 룰에 의해 싸우고 이겼다.”

우리들의 룰.

그건 아마도 애완동물끼리의 대결을 통해 모든 일을 해결하는 거인의 습성을 말하는 것 같았다.

백현은 에반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인들의 권력은 힘에서 나온다.

애완동물의 힘에서 나온다.

“거인들끼리는 왜 싸우지 않나요?”

“우리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때리지 않는다. 그게 룰. 그걸 어기면 버려진다. 버려지기 때문에 우리는 대신 싸울 상대를 고른다. 그건 거인이 아닌 종. 거기에서 우리들의 신분이 결정된다.”

그러고보니 에반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르는 동물, 곤충 그 어떠한 것도 없었다.

“에반은 왜 기르지 않나요? 왜 없어요?”

“죽으니까. 나처럼 힘없는 거인은 친구를 지켜줄 수가 없으니까 기르지 않는다.”

에반은 애완동물을 친구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백현은 에반의 깊은 동정심을 느꼈다.

확실히 거인 자체는 위험했다.

하지만 이 에반이란 거인은 그렇지 않다.

모든 거인을 위험하다는 전제로 자신이 놓여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죄책감 때문일까? 에반은 수철이의 죽음을 자세히 설명했다.

“에반은 제니가 없어서 집세를 내지 못했다. 이 집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집이었다.”

제니. 이곳의 화폐단위.

“그런데 3년 전에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동물을 보았다. 그게 수철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에반은 수철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계속 설명했다.

그렇게 버려진 수철이를 돌보고, 그와 함께 있으면서 인간의 언어를 익혔다.

정확히는 한국어를 익힌 거고.

3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친해졌다.

수철이는 자신이 능력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대신 싸워줄 수 없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빚쟁이가 들이닥쳤고, 집을 부수기 직전 수철이가 거인어로 협상을 했다.

자신이 이기면 없던 일로 해달라고.

거인의 룰.

모든 분쟁은 애완동물로 해결한다.

거인어를 쓰는 수철이를 신기하게 여긴 집행관들은 좋다며 대결을 했다.

집행관들의 애완동물.

그건 코모도도마뱀.

현실적으로 수철이가 이길 수 없었고, 수철이는 30초도 버티지 못하고 먹혔다.

그런데 사실 수철이의 능력은 자폭이었다.

그 다음은…… 아는 바와 같았다.

에반의 말을 들은 백현이 말을 꺼냈다.

“알았어요. 나 에반을 원망하지 않아요.”

“미안. 수철이는 내 빚 때문에 죽었다.”

“저한테 미안할 것 없어요. 괜찮습니다.”

백현은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를 켜서 에반과 이곳에 대해 알아갔다.

거인들의 구역과 신분제도.

그리고 미나가 들락거리는 학교에 대해서도.

이곳의 신분은 인도의 카스트제도나 유럽의 왕권과 많이 닮아있었다.

가장 권력이 강한 사람들은 과학자, 연구자.

그 다음이 스포츠 선수.

그 다음은 상인, 자영업자.

그리고 마지막이 천민. 에반과 같은 노동자들.

이렇게 4개층으로 나뉘며, 그들을 이렇게 불렀다.

황족, 귀족, 시민, 천민.

그리고 에반의 계층은 당연히 천민.

“에반, 여기 학교에 제 친구들이 있어요.”

“아…… 거긴 못 간다. 나처럼 천민은 그 구역에 허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아…… 네.”

“오늘은 자야한다. 내일 아침부터 일해야 하니까.”

백현은 그의 말에 모르는 척 물었다.

“일이요?”

“응. 나는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다. 그래서 보람을 느낀다.”

이 정도 마인드면 믿을 만하다고 봐도 좋았다.

백현은 에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었다.

그리고 좀 더 여기에서 머무르며 정보를 수집, 이곳 생활에 적응해보기로 결심했다.

적어도 미나의 생존은 자신의 미니맵 능력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혹시 죽어도…… 죽어도 되살릴 수 있으니까.

미나한테는 미안했지만, 생존기술을 익히기에 여기만큼 좋은 장소는 없다.

백현은 컴퓨터에 띄운 거인어 초급 교본을 보며, 거인의 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에반은 수철이도 이렇게 공부했다며, 스피커 대신 이어폰을 연결해준 후 잠에 들었다.

이어폰은 평상시 쓰는 스피커만큼 또렷하게 잘 들렸다.

그만큼 이어폰의 크기는 앰프처럼 컸다.

백현은 문자를 쓰는 법과 문자의 각 발음을 익히기 시작했다.

차분차분 글을 배우며 각종 지식을 하나하나 습득하기 시작했다.

공부해야 살아남는다. 그래야만 이곳 세상에서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다.

백현은 졸음을 참으며 거인의 글자를 보고 또 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머리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2~3개월이면 거인어를 어느 정도 익힐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능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 * *

다음 날, 백현이 일어났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자신은 모기장 같은 것에 갇혀 있었다.

세팅된 음식.

그리고 그 안에 글씨.

거기에 커다란 휴지.

《그 안에서 나가지 마.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해. 밥은 그거 먹고, 응가는 휴지에 싸고 돌돌 말아. 돌아오면 내가 치울게.》

다른 것은 문제가 없는데, 모기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백현은 일단 모기장 안에서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벌레로부터 지켜주려고?

서울 도로 한복판.

날아다닐 수 있는 사람이 새한테 잡혀먹힌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구청장하고 얼마나 싸웠는지…….

아마 에반은 그걸 생각했던 것 같았다.

오늘 아침은 사과조각이었다.

잘게잘게 쪼개진 사과를 보며 백현은 에반의 배려심을 느꼈다.

‘그래. 먹자. 먹고 생각하자.’

모기장은 정말 커다랬다.

컴퓨터도 가릴 정도로. 그래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도 문제 없었다.

백현은 밥을 먹고, 응가를 했다.

에반이 준비해준 휴지 위에 처리한 후, 그가 말한 것처럼 휴지를 돌돌 말았다.

그 다음 컴퓨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위이잉 하는 소리가 났다.

백현은 깜짝 놀라 몸을 숨겼다.

벌레? 아니면 뭐지?

그런데 그 존재는 벌레가 아니었다.

자주 보던 물체였다.

검은 구체.

사람을 분해하고 회수해가던 그 구체다.

검은 구체가 집 안을 서칭하고 있다.

그리고 모기장 주변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모기장 위를 한참을 맴돌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가버렸다.

백현은 알았다.

모기장 자체도 검은 구체로부터 안전하다고.

아마 에반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백현은 검은 구체가 집에서 나간 후 결심했다.

에반하고 친해지기로.

그래서 에반의 신분을 올려주기로.

그 이유는 간단했다.

신분이 올라가고 부가 축적되면 에반도 미나가 사는 동네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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