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탈출
“뭐? 거인하고 빠져나가?”
장복남의 말에 강백현이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아저씨가 말했죠? 저희한테 음식을 주기 위해 들어오는 거인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요.”
“어. 그게 왜?”
“그럼 출퇴근 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확실하진 않지.”
“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아저씨가 말한 철저한 경계망을 쉽게 뚫고 밖으로 나갈 가능성.”
강백현의 추리에 장복남이 의문을 제기했다.
“저 개는 어떻게 할 건데? 개는 사람보다 수천 배는 후각이 뛰어나. 저 개는 어떻게 따돌릴 건데?”
“확실히. 개는 후각이 뛰어나죠. 특히 사냥개인 도베르만은 다른 개들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거인의 냄새는 그것을 가려줄 수 있죠.”
“뭐?”
거인 특유의 냄새.
이 거인들은 육식을 한다.
그래서일까? 몸에서 우유 썩은 냄새가 난다.
그것도 굉장히 심하게.
“아저씨. 결정하세요. 시간이 없어요.”
거인이 먹이통을 갈고 있다.
백현이 이제 곧 떠날 거란 것을 장복남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에리카…….”
장복남은 짧은 영어로 에리카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에리카가 장복남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그러자 장복남이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했다.
“남기로 결정하신 거군요?”
“그래.”
여기에 에리카와 같이 있기로 결심한 장복남.
그는 위험한 자유보다는 안전한 통제를 선택했다.
야생과 동물원.
어디가 더 좋다고는 아무도 결정해줄 수 없다.
그 스스로 선택한 삶.
후회가 없길 바라며 강백현이 거인의 품으로 도약했다.
* * *
거인의 신발, 바지를 지나 옷까지 파고 드는데 성공한 백현.
백현이 머무른 곳은 허리에 맨 가죽벨트였다.
벨트의 가죽 사이에 자신의 몸을 끼운 백현은 거인이 방을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거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백현이 자신의 모습을 보호막으로 가렸으니까.
백현은 레벨 3에 도달하고 새로운 기능을 알게 되었다.
보호막에 2가지 성질을 동시에 부여하는 것이었다.
한쪽 면은 매끄럽게.
다른 면은 불투명하게 만들면, 전면의 배경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 수 있다.
지난 번 싸움에서 키메라와 만났을 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보호막은 공격적인 면보다 기능적인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백현은 그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방문을 넘어 빠져나가는 거인.
밸트 안에 몸을 숨긴 백현은 거인을 통해 주변을 바라보았다.
밖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지금 들어온 남성형 거인은 인간들만 사육하는 게 아니었다.
방 안에는 토끼도 있고, 기니피그도 있고, 달팽이도 있다.
고둥의 껍데기를 짊어지고 사는 가재를 키우는 방도 있었다.
다양한 동물을 관리하는 관리인.
그가 모든 방의 순회를 마치고 퇴근하기 시작했다.
주택은 굉장한 크기였다.
미국의 부자동네, 베버리힐스와도 맞먹었다.
넓은 정원, 그리고 집 마당 앞에는 개인 골프장도 있다.
그런데 그런 집은 여기 한 군데가 아니었다.
바로 옆 집도, 그 옆 집도.
하나같이 전부 고급스러운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거인들이 원반을 날리자, 그들이 키우는 대형견들이 경쟁하며 달렸다.
원반을 집어오는 개한테는 먹이가 주어졌고, 원반을 집지 못한 개한테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인간과도 많이 닮은 거인들의 삶.
조금 다른 점은?
『에반! 퇴근 하는 거야?』
『네. 주인님! 이제 퇴근합니다.』
『가기 전에 블레이트 가문하고 시합할 건데 심판 좀 봐줄 수 있어?』
『아, 지금요?』
『어. 부탁 좀 할게. 사례는 두둑히 할게.』
『네. 경기장으로 오세요. 제가 봐드릴게요.』
백현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거인의 행동을 통해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아크릴 하우스다.
방탄 유리라고 해야 하나?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불투명한 유리 안으로 입장하는 거인.
그 건물은 2층으로 되어 있었다.
마치 중, 고등학교 때 자주 모였던 실내체육관과 구조가 흡사했다.
2층에 올라간 거인은 불을 켜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러자 아까 거인과 대화를 하던 거인이 사냥개 하나를 데리고 아크릴 하우스로 입장했다.
얼마나 사나워 보이는지 입에 재갈을 물린 그 사냥개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백현이 붙어 있던 거인이 생고기를 중앙에 던져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반대편 입구에도 거인이 나타났다.
그 녀석도 목줄을 잡고 들어왔다.
그런데 충격적.
그 녀석이 잡고 있는 목줄에는 늑대가 걸려있다.
늑대와 셰퍼드의 싸움.
아무리 봐도 늑대의 완승이다.
늑대를 데려온 거인의 얼굴에는 웃음이 걸렸다.
『하하하, 칼스! 애지중지 키운 건데 괜찮겠어?』
『일단 싸워보자고. 너 후회하게 만들테니까.』
『너나 후회 하지 마!』
둘 사이의 악감정.
그래서 시작된 싸움.
늑대와 사냥개 셰퍼드가 먹이를 앞에 두고 360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았다.
각자 전투에 익숙한 듯,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시작은 먼저 늑대가 나섰다.
갑자기 뛰어올라 셰퍼드의 뒤쪽 목덜미를 노렸다.
그런데 셰퍼드도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고개를 돌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더니, 컹컹 짖으며 심하게 저항했다.
그래도 체격 면에서 늑대를 이길 순 없었다.
곰과 사람의 싸움이나 다름 없었다.
그만큼 늑대의 체격은 컸다.
무는 힘도 강했다.
정상적이라면 셰퍼드가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몇 분간의 싸움 끝에 셰퍼드가 목덜미를 잡혔다.
피가 통하지 않자 셰퍼드가 켁켁 거리다가 결국 움직임을 멈췄다.
늑대의 승리였다.
늑대의 주인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늑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길들여진 늑대는 뒤돌아선 채 경쾌한 발걸음으로 주인에게 걸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셰퍼드가 일어나더니 엄청난 속도로 뛰었다.
아까보다 최소 수 배는 빠른 움직임이었다.
늑대의 꼬리를 문 셰퍼드는 몸을 360도 회전시키며 늑대의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말이 안 되는 무는 힘.
거기에 파워.
그리고 재생능력.
목덜미가 물려 털이 뜯기고 피가 철철 나던 상처가 아물고 있었다.
거기에 셰퍼드의 몸에서는 녹색과 푸른색의 기운이 동시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걸 본 늑대의 주인이 기겁했다.
『미쳤어. 미쳤어! 도대체 얼마를 투자한 거야?』
『크크크, 내 기니피그를 죽인 놈을 내가 가만히 둘 줄 알았어?』
늑대의 침입.
늑대는 셰퍼드의 주인집에 침입해서 애완동물을 죽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시작된 갈등.
싸움.
『집 한 채 값이라고! 인마! 그래서 너 골프장 판 거야? 골프장 팔아서 겨우 셰퍼드에 투자를 했어?』
셰퍼드는 늑대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배를 갈라 내장을 물어뜯고 있었다.
셰퍼드는 잔인했다.
자신을 한 번 물어 죽인 늑대를 절대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
늑대의 주인도 늑대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깔끔히 포기했다.
『좋아. 다음에 또 한 번 붙자.』
『그러든가 말든가.』
오늘의 승리는 셰퍼드와 그의 주인에게 돌아갔고, 늑대의 주인은 집에 가자마자 자신의 골프장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 * *
백현은 둘의 대결을 통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동물들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인간형이 섞인 키메라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굉장한 수확이었다.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이제는 동물도 함부로 판단할 수 없어.’
쥐라고 해서 지금의 자신이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승률 100%의 전투는 이제 없다고 봐야 했다.
인간만이 능력을 쓸 수 있다는 가정이 깨진 이상, 이제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의심해봐야 했다.
백현은 미니맵을 통해 미나가 있는 장소를 알게 되었다.
여전히 미나는 브래드의 집에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대략…… 38km.
엄청난 거리. 도저히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거리다.
다행히 자신이 들러붙어 있는 거인이 그쪽 방향으로 접근 중이었다.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조금씩 가까워지는 거리.
백현은 일단 관리인으로 일하는 거인의 몸에 붙어서 조금만 더 가보기로 결정했다.
거인은 걷는 중에 많은 차량을 지나쳤다.
하지만 이 거인은 콧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걸어가다가 과일이 열린 나무를 보더니 멈춰 섰다.
나무에 올라 사과를 따서 내려오는 거인.
그러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과일을 먹는다.
이 거인은 아웃사이더 같았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걸어가면서 콧노래를 부르길 계속했다.
거인의 집은 낡았다.
처음에 있던 대도심과는 완전 달랐다.
대충 지어진 벽돌집.
엄청나게 좁은 공간.
거인은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어 보였다.
갑자기 바지를 벗는 탓에 백현이 허리춤과 벨트 사이에 몸을 숨겼다.
간신히 들키진 않았다.
거인은 바지를 대충 벗어놓더니,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컴퓨터에서 동영상을 틀었다.
그 동영상.
백현이 겪었던 페이즈 1에 대한 방송이었다.
깜짝 놀랐다.
하늘에 엄청난 수의 비행선이 떠 있다.
그리고 그 비행선에서 재밍전파를 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서울 상공에서 찍은 영상이 나온다.
서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작아지는 모습이 방송에 등장한다.
갑자기 작아지는 사람들.
그리고 엄청난 연쇄 교통사고.
선박들의 충돌과 비행기의 추락.
페러글라이딩을 즐기던 사람이 갑자기 작아지며 바다에 빠지는 모습까지.
끔찍한 모습들이 연달아 방송되고 있었다.
거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벙글 웃으며 방송을 계속 감상했다.
거기에는 지금 사람들이 어떤 상황인지 친절하게 자막도 붙어 있었다.
상황만 묘사하는 게 아니었다.
인간들이, 한국인들이 죽으면서 어떤 말을 하는지까지 번역되어 있었다.
“아아아아!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지옥에 가고 싶지 않아! 제발…….”
“꿈일 거야. 꿈일 거야.”
사람들이 죽기 직전 내뱉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확 상했다.
진짜 최악이었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거인들을 전부 죽여 버리고 싶었다.
왜 그들은 인간들을 이렇게 취급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왜? 장난으로? 재미로? 뭐가 그리 즐거운데?
그런데 그 방송을 보고 있던 거인의 입에서 놀랄만한 말이 흘러나왔다.
“재밌어. 재밌어.”
한국말이었다. 발음도 명확했다.
‘한국어를 해?’
백현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거인의 목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또 다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이 장면 진짜 재밌다. 쩌는데?”
백현은 결심을 해야 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도박을 해보자고.
이 거인과 대화를 해보자고.
그래서 상황을 파악해보자고.
백현이 보호막으로 자신의 몸을 띄워 거인에게 날아갔다.
거인이 보고 있던 화면 앞에서 멈추어 거인의 시선을 끌었다.
『으악!』
이번에는 거인어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백현은 자신의 소신껏 움직였다.
그가 큰 소리로 거인에게 말을 걸었다.
“강백현입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