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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66화 (66/200)

66화. 바바리맨

미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학교 생활을 떠올렸다.

학교 앞에 자주 나타나던 변태 아저씨.

일명 바바리맨.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저씨.

처음에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보자마자 눈을 가리고 반대방향으로 도망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있는 아저씨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갇힌 공간.

둘 밖에 없는 박스 안.

누구하나 도와줄 수 없는 곳에서 대머리 남자의 접근.

“그만! 그만!”

“괜찮아. 너도 알 건 알 나이잖아. 이제 죽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죽기 전에 좀 해보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미나는 충분히 알 나이였다.

평소라면 오빠가 나타나 구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빠는 없다.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미나에게는 해결할 힘이 있었다.

마인드 리딩이라는 힘이.

기억을 지울 힘이.

미나가 두 손을 모았다.

아저씨의 머릿속 기억이 사진의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수천 개, 아니 수만 개의 사진이 미나를 주변으로 빙빙 돌고 있다.

그 남자의 기억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현재까지 살아왔던 기억.

한 가정의 평범한 남자였던 그.

그러나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여중, 여고를 돌며 온갖 변태짓을 하던 악당.

바바리맨.

미나의 생각과 그의 행동이 일치한다.

더구나…….

건물 배관을 타고 혼자 사는 여자들의 집을 침입하는 남자.

그 남자의 이중성을 분명히 알게 된 미나의 행동은 주저함이 없었다.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사진을 손으로 헤집었다.

그러자 남자의 눈이 풀리고.

갑자기 푹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나는 멈추지 않았다.

남자의 기억을 전부 흐트려놓았다.

아이 때부터 청년, 중년이 될 때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푹 쓰러진 남자가 다시 일어났다.

그런데 행동이 이상했다.

“응애! 응애! 응애!”

울기 시작하는 남자.

하는 짓은 마치 아이.

미나의 마인드리딩 능력에 의해 모든 기억을 잃은 남자는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미나는 남자로부터 최대한 떨어지며 울고 또 울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렸다는 죄책감과 오빠를 잃었다는 자책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오빠, 오빠……. 정말 죽은 거야?’

그때, 미나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나야?”

“오빠?”

“응. 들어갈게.”

보호막을 계단 삼아 내려오는 백현의 모습에 미나가 안도했다.

백현은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미나를 위해 달려왔다.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심각한 타박상.

그리고 슝슝 구멍 뚫린 슈트.

“어떻게 된 거야?”

“보호막으로 랩을 찢고 냉장고가 열리기만을 기다려서 간신히 탈출했지 뭐. 랩이 생각보다 잘 안 찢어지더라. 그래서 날카롭게 파편을 만들어서 나한테 쏘다가 그만…….”

“바보.”

“괜찮아. 금방 회복될 거야. 많이 나아진 거니까.”

“응.”

백현은 미나가 무사한 것을 보자마자, 눈이 풀리기 시작했다.

“탈출해야 하는데…….”

“괜찮아. 조세핀은 오빠를 죽이지 않을 거야.”

“저 남자는 뭐야?”

“나를 겁탈하려고 했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뭐? 겁탈을 해?”

“응. 그래서 내가 기억을 지웠어. 그러니까…….”

백현은 참지 않았다.

기어다니면서 울고 있는 대머리 남자를 가차없이 죽여버렸다.

날카로운 보호막 파편이 남자를 쑤시고 또 쑤셨다.

“오빠!”

“범죄자야. 살려둘 가치가 없어.”

미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빠가 변했다.

자신도 변했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은 자신이 강해지는 방법 뿐이었다.

‘그래. 오빠. 일단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

* * *

미나와 백현이 탈출을 시도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라…….”

백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

비틀비틀 거리는 백현.

“오빠, 괜찮아?”

“미안. 몸이 말을 안 듣네.”

슈트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다.

최대한 빨리 동생을 만나려고 서두르다 보니, 자신의 모든 체력을 다 써 버린 것.

“일단 쉬자. 탈출은 나중에.”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몸이 말을 듣질 않잖아.”

미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현이 박스 구석에 기대며 미나한테 말했다.

“30분만 쉬다 가자. 그럼 괜찮을 거야.”

“응.”

얼마나 힘들었는지 백현이 곯아떨어졌다.

30분이 지났다.

미나는 자고 있는 백현을 깨우지 않았다.

백현의 손상된 슈트가 조금씩 원형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헐떡이던 호흡도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다행이다. 그대로 움직이면 오빠가 죽을 수도 있었어.’

시간이 흘러 따스한 햇빛이 박스의 틈새를 타고 들어왔다.

백현이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놀랐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것.

그래서 동생을 불렀다.

“미나야?”

다행히 살아있었다. 옆에 있었다.

“응. 일어났어?”

다정한 말투.

“왜 안 깨웠어?”

“괜찮아. 일단 조세핀 일어나면 밥부터 먹자. 밥 먹고 거인들이 집을 비우면 그때 도망치는 거야.”

“알았어. 그렇게 하자.”

조세핀은 일어나자마자, 박스를 열어 미나가 마실 우유를 가져다주었다.

『응? 찾았네?』

『어. 우리 오빠야.』

강백현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조세핀.

그런데 강백현은 마음에 걸렸다.

앞에 죽은 사체가 걸렸다.

대머리 남성의 시체가 바로 앞에 있다.

조세핀이 박스를 개방하더니 남자의 죽음을 발견하고 손을 저었다.

『으아아악! 죽은 거야?』

그런데 미나는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응. 갑자기 죽어버렸어.』

『어떻게?』

『그냥 이곳에 있는 게 싫다고 자살했어.』

9살의 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다행히 조세핀은 크게 뭐라하지 않았다.

미나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휴지로 남성을 감싸 집더니,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아침 먹고 올게.』

『응.』

둘의 대화가 끝나고 거인이 방 밖으로 나가자, 백현이 물었다.

“둘이 무슨 대화를 한 거야?”

“그냥 일상 대화.”

“그래? 너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지?”

미나가 오빠의 생각을 읽더니 방긋 웃었다.

“설마 내가 여기서 살고 싶어 하겠어?”

“아……. 그럼 됐고. 미니맵을 보니까 다들 지하로 숨어든 것 같아.”

“지하?”

“응. 만철이 아저씨도 살아계시고, 다들 살아계셔.”

“다행이네.”

“응. 기회 봐서 탈출하자.”

“응. 알았어.”

* * *

조세핀이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책가방을 메었다.

미나는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자신을 다시 보러와 준 조세핀에게 인사를 건넸다.

『학교 가는 거야?』

『응.』

『잘 다녀와.』

『어. 맞다. 엄마한테 말해서 미나하고 미나 오빠는 시장에 안 팔기로 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랑 살자. 응?』

『응. 그래야지.』

『미나 오빠도 빨리 우리 말 배웠으면 좋겠다. 무슨 생각하는지 궁금해.』

『이따 학교 갔다오면 내가 통역해줄게.』

『응. 그런데 미나야!』

조세핀이 갑자기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어?』

『우리 학교 구경시켜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응. 안 돼. 친구들한테 너 구경시켜준다고 이미 말해뒀어. 우리 말 할 줄 안다니까 다들 너 데려오래.』

당황스러워하는 미나.

그리고 영문을 모르는 백현.

조세핀의 푸른 손이 미나를 집어 유리통에 집어넣는다.

“미나야! 뭐야? 지금 뭐야?”

“오빠…… 학교 데려간대. 아! 어떻게 하지?”

거인과 지금 싸워야 할까 말아야할까 판단이 서질 않았다.

백현이 미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건데?”

“일단 다녀올게. 오빠는 여기서 쉬고 있어.”

“괜찮겠어?”

“응. 괜찮을 거야.”

“나도 같이 데려가달라고 말해 봐.”

“아…… 어! 그럼 되겠다.”

그래서 미나가 조세핀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우리 오빠도 데려가면 안 돼?』

『응. 잠깐만. 오빠! 브래드 오빠!』

브래드?

조세핀이 다른 이름을 부르자, 미나가 당황했다.

조세핀의 부름에 쿵쿵쿵쿵. 뛰어오는 아이.

수컷.

남자 아이.

조세핀보다 덩치가 더 큰 거인.

『난 이거 가지면 돼?』

『응.』

『대머리라고 안 했어?』

『그거 죽어서 버렸어. 오빠는 얘 가지고 놀아. 나는 암컷 데리고 놀게.』

『알았어.』

강백현은 당황했다.

남자 아이가 자신의 몸을 들고 유리병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거인들의 목소리.

『조세핀! 브래드! 학교 가야지! 스쿨버스 시간 다 됐어.』

『네!』

두 아이가 미나와 백현을 각자의 유리병에 넣고 집 밖으로 나섰다.

둘은 당황했다.

강제로 거인의 학교로 가게 된 미나와 백현.

그 둘의 운명은?

* * *

지난 밤.

최형우를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세운 사람들.

김건우는 자신의 팀원들에게 김만철과 김아람을 소개했다.

“다들 인사해요.”

“김만철입니다. 신체강화 능력자입니다.”

“김아람입니다. 염력 능력자입니다.”

“그래요. 이번 작전은 최형우 씨를 구하는 게 저희 목표입니다. 최형우 씨는 거대화 능력자로서 저희 소속으로 들어온다면 향후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김만철 씨도, 김아람 씨도 저희와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저희 조원이 되었으니까, 그 두 분의 동료인 최형우 씨도 무사히 구하자고요! 아시겠죠?”

“네!”

김아람은 김건우의 주변을 살폈다.

조원이라고 해봐야 3명뿐이었다.

심야.

늦은 밤.

5명의 사람들이 최형우가 있는 건물에 잠입하기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며 서로 소개를 하는 사람들.

조장인 김건우가 어두운 밤길, 도보를 걸어가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희 정보조에 의하면 최형우 씨는 건물 3층, 324호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어요.”

“324호요?”

“네. CCTV 추적을 통해 324호로 들어간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내부에 대한 정보는 현장 투입시 정보조에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홍성환씨! 작전 설명해줘요.”

홍성환은 자신의 능력을 밝히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쌍둥이 동생과 텔레파시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대화가 가능하죠. 그래서 주거지 내부에 정보를 보내줄 수도 있고, 본부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획득할 수도 있습니다.”

“네. 내부의 정보는 홍성환 씨랑 홍성운 형제를 통해서 입수할 수 있어요. 이진기 씨도 천리안 능력으로 저희를 서포트 하기로 했고요.”

“아…….”

이진기의 천리안 능력.

그는 들어오자마자 정보조의 핵심인력으로 영입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멤버가 바로 홍성환, 홍성운 형제.

한 명만 현장에 나가 있으면 현장의 정보를 그대로 파악할 수 있다.

본부에서는 이진기의 천리안 능력을 통해 제한적이라도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작전을 지시할 수 있다.

휴대폰, 무전기의 역할을 대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백인선입니다. 저는 벽을 쉽게 오를 수 있습니다. 이동 및 포박에 유리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안전하고 빠르게 목적지까지 모시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백인선의 말에 김만철이 되물었다.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신가요?”

“거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미줄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죠.”

백인선이 벽을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높게 올라간 그가 자신의 손에서 아랫방향으로 거미줄을 쏘았다.

“잡고 올라오세요. 이걸로 벽을 타시면 됩니다.”

3층까지의 높이.

약 8m.

백인선이 만든 거미줄을 타고 벽을 오르는 사람들.

백인선이 머뭇거리는 김아람을 향해 외쳤다.

“아람 씨! 잡으셔도 괜찮아요. 생각보다 질겨서 끊어지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김아람은 거미줄을 잡지 않았다.

“겁이 많으신가요?”

“네?”

“괜찮아요. 안 끊어져요.”

그러자 김만철이 고개를 저으며 백인선에게 말했다.

“인선 씨, 안 그러셔도 되요.”

“네?”

“아람이는 혼자 힘으로 3층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둥둥.

자신의 몸을 띄우는 김아람.

그녀가 하늘 방향으로 높게 치솟는다.

3층 창문에 도달한 김아람이 벽을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도움 필요한 사람 없어요?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여기까지 올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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