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65화 (65/200)

65화. 유혹

김아람의 말에 장명훈이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웃음 뒤에 진지한 말투로 김아람을 불렀다.

“아람 씨.”

“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 진짜 알고 하는 얘기야?”

그 말과 동시에 장명훈이 옷을 벗으며 자신의 상체를 드러냈다.

진지한 그의 표정.

그래서일까? 김아람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장명훈은 씩 웃으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러자 뒷걸음질 치는 김아람.

“잠깐만요…… 그만! 그만!”

그녀의 행동에 장명훈이 헛웃음을 보였다.

장명훈은 다시 옷을 입었다.

소매에 팔을 집어넣으며 그가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아람 씨!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몸종?! 웃기지도 마. 그런 말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생명이란 건 말이야. 굉장히 소중한 거야. 내가 아직 피도 안 마른 20살짜리 지지배 유혹에 넘어갈 줄 알았어?”

“으…… 으…….”

“6개월간 잘 생각해. 당신이 여기 있든 말든 난 상관없어. 얼마나 활약을 하건 안하건 내가 아람 씨한테 소생의 돌을 건네줄 일은 없을 거야. 당신 같은 기회주의자한테는 절대 사용할 일 없어. 그러니까 돌아가.”

마스터의 말에 김아람이 분한 듯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녀도 만만하지 않았다.

“6개월, 기다려요. 내가 당신 마음 꼭 바꿔보일테니까. 난 어떻게든 살 거야. 살아남아서 나 이렇게 만든 놈한테 복수할 거야.”

김아람이 마스터의 책상을 들어 올리더니, 벽에 쳐박아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책상.

그리고 터벅터벅.

마스터의 방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김아람.

그녀의 터프한 면을 처음 본 김건우가 당황한 듯 마스터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성격인지 몰랐습니다.”

“아니야. 됐어. 난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

“네?”

“김아람이라고 했지? 생각보다는 우리한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잘 대해줘.”

김아람의 능력과 성격을 본 장명훈이 부서진 책상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책상 파편에 찢어진 팔의 상처.

하지만 그는 웃어보였다.

‘어떻게 쓸지에 따라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어.’

* * *

곧 이어 정선희와 박윤수도 면접을 보았다.

“마스터, 혹시 제 아이의 생명을 늘릴 수는 없을까요?”

정선희의 질문에 마스터는 김건우를 불러 아이를 떼어놓았다.

“건우야. 꼬마 데리고 잠깐 밖에 나가 있어라.”

“네. 마스터.”

김건우가 박윤수를 데리고 나가자, 장명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정선희에게 말했다.

“선희 씨, 윤수가 아들 같죠?”

“네?”

“윤수는 죽었습니다. 당신이 아는 윤수는 윤수가 아니고, 클론입니다. 만들어진 생명체죠.”

“알아요. 하지만 면전에 대고 어떻게 그런 말을…….”

“이것 하나는 말씀드려야겠네요. 클론은 저희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클론이 뭔데요? 사람 아닌가요? 우리 아들은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거예요?”

정선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장명훈은 클론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게 아닙니다. 클론은 영혼의 돌로 되살아났죠. 그런데 영혼의 돌로 같은 사람을 2명도 살릴 수 있고 10명도 살릴 수 있다고 해요. 아드님이 10명도 될 수 있다는 거죠. 그게 진짜 아드님일까요?”

“…….”

정선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장명훈을 노려볼 뿐이었다.

장명훈은 쓸모없는 패는 받고 싶지 않았다.

클론이 하나도 아닌 셋.

꼬마나 아줌마는 전투요원으로도 쓸 수 없으니 소모품처럼 써먹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일이 터질 터.

“클론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죠. 인간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니까요.”

“그만해요. 알았어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았으니까, 우리 윤수를 벌레처럼 취급하지 말아줘요. 여기서만 일하게 해주세요.”

“네. 일단 정선희 씨한테 한 마디 해주고 싶군요. 정선희 씨는 생산조지만, 아드님은 전투조입니다. 클론은 전투조가 아니면 저희는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게 싫다면 짐을 싸고 내일 안에 우리 거주지에서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면접은 끝났습니다. 나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쁜 사람!”

“네. 그런 사람입니다. 잘 보셨네요.”

장명훈은 개의치 않았다. 정선희에게 좋은 말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사람을 죽이진 않지만, 이곳도 약육강식의 세계다.

도움이 되지 않으면 쫓겨나야 한다.

그게 이곳의 법칙.

그 법칙을 지켰기에 장명훈은 이곳의 마스터로서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윤수가 들어왔다.

정선희가 윤수가 들어가는 것을 만류했으나, 김건우는 단호하게 뿌리쳤다.

“엄마…… 조금 있으면 끝난대. 그러니까 기다려.”

“윤수야! 가자!”

“괜찮아. 나도 면접 볼래.”

“됐어! 보지 마.”

“싫어. 볼 거야. 나 여기서 살래. 여기서 살 거야.”

문이 닫히고.

박윤수가 장명훈 앞에 섰다.

꼬마 아이의 당돌한 눈.

“아저씨가 우리 엄마 울렸어?”

“그래. 울렸어.”

“엄마한테 다시는 그러지 마.”

“그래. 전투조에 간다는 거 들었니?”

“응. 싸울게.”

아이의 말에 장명훈이 씩 웃었다. 스스로 싸워준다는 데 마스터인 자신으로서는 환영이었다.

“근데 꼬마야. 넌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니?”

“나…… 치료.”

“어?”

“치료, 어떠한 상처든 병만 아니면 회복시킬 수 있어.”

“뭐?!”

장명훈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치료능력이라니.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능력이다.

장명훈이 윤수에게 물었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데?”

“내가 손을 가져다 대면 치료 돼. 아저씨도 치료해줄까?”

아까 아람이 때문에 책상 파편에 쓸린 상처가 보인다.

찰과상.

장명훈은 기꺼이 자신의 팔을 아이에게 내놓았다.

아이의 손에서 녹색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녹색의 기운은 장명훈의 상처를 향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출혈이 멈추고, 모세혈관이 찢어져 붉게 물든 피부가 정상을 되찾아간다.

거기에……

능력을 쓸 수 있는 체력도 회복됨을 느꼈다.

‘말도 안 돼. 엄청나잖아.’

김아람도 대단했고, 김만철도 좋았다.

하지만 그 둘과 비교도 안 될 존재가 여기 있었다.

꼬마 녀석.

치료 능력.

조직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를 뽑으라면 무조건 이 꼬마였다.

이 꼬마만 있다면 죽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싸울 수 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군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일까?

장명훈이 박윤수에게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윤수야. 너는 회복 능력을 하루에 몇 번이나 쓸 수 있니? 어디까지 회복시킬 수 있는 거야? 절단된 팔도 회복시킬 수 있어?”

그러자 윤수가 씩 웃었다.

“응. 엄마가 증폭 능력 써주면 잘린 팔도 재생시킬 수 있어.”

정선희는 분명 자신에겐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뭐? 증폭 능력이었다고?

잠시 후. 장명훈이 정선희를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박윤수도 함께였다.

장명훈의 부드러운 말투.

“선희 씨.”

“뭐죠? 갑자기 말투가 왜 이래요?”

“윤수 살립시다.”

“네?”

“윤수에게 소생의 돌을 사용하겠어요.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클론이 아니게 됩니다. 선희 씨의 아들 윤수로서 평생을 살아가겠지요. 전투조에도 안 넣을게요. 같이 있게 해드릴게요.”

“갑자기 왜…….”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거주지에 남아줘요. 윤수와 함께 우리 거주지에 남아주세요.”

아까와는 다른 태도.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조건.

윤수의 남은 생명을 연장시켜준다는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정선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대신 소생의 돌을 사용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 지켜주셔야 합니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됩니다.”

“알겠어요.”

“특히 아람 씨한테는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폭주할 수도 있으니까.”

“네. 조심할게요. 고마워요.”

* * *

같은 시각.

미나는 박스 구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거인이 준 음식 때문이었다.

『울어? 왜 울어?』

조세핀의 질문에 미나가 따지듯 말했다.

『너는 네 친구를 먹을 수 있어?』

그러자 조세핀이 엄마를 향해 다가가서 따졌다.

『엄마! 이거 벌레 고기야?』

『응. 뭐 문제 있니? 속이 안 좋아?』

『엄마! 바보! 바보! 바보!』

조세핀이 다시 방 안에 들어와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생수를 들어, 뚜껑에 물을 담아 미나에게 건넸다.

미나는 생수뚜껑을 받더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물.

그래서일까?

미나가 생수뚜껑을 다시 건네며 조세핀에게 말했다.

『한 번 더.』

『응. 더 줄게. 많이 마셔.』

몇 번이고 마신 후에야 미나가 정신을 차렸다.

그동안 조세핀은 미나에게 건네준 인간부침개를 들어올려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체들이 어떻게 됐는지를 알았지만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다.

자기가 거인이었어도 그렇게 했을 것 같았으니까.

『미나는 몇 살이야?』

『열여섯.』

『어? 나보다 언니네?』

『그래? 몇 살인데?』

『나 아홉 살.』

조세핀의 나이를 듣고 미나가 고민에 빠졌다.

‘어려. 확실히 어려. 내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조세핀 맞지?』

『응.』

『우리 오빠 데려와주면 안 돼?』

『아, 아까 너랑 붙어 있던 수컷?』

『응. 그런데 지금 말고 이따가. 너희 아빠랑 엄마 없을 때.』

『아…… 응.』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다.

인간 요리를 만든 남성형 거인과 여성형 거인은 믿을 수 없다.

물론 이 아이도 완전히 믿을 순 없다.

그래도 말이 통하니까.

오빠한테는 정말 미안했다.

자신 때문에 여기까지 끌려왔으니까.

붙잡히지만 않았어도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

오빠는 괜찮겠지?

조세핀은 미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먹는 건 주로 무엇을 먹는지.

얼마나 질문이 많은지 짜증이 솟구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미나는 참았다.

오빠를 위해서.

오빠를 살리기 위해서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조세핀에게 맞춰주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조세핀! 엄마 잠깐 장 보러 갈 테니까, 벌레랑 놀고 있어.』

『응. 알았어.』

미나는 출입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조세핀에게 말했다.

『오빠를 꺼내줘.』

『응. 기다려.』

다행히 아이형 거인은 미나의 말을 잘 들었다.

미나는 두 손을 모은 채, 오빠가 살아있기를 빌었다.

조세핀의 손에 무사히 돌아오기를 빌었다.

1분도 되지 않아 조세핀이 돌아왔다.

랩에 꽁꽁 싸여있는 사람을 넣어주는 거인.

그 아이를 향해 미나가 말했다.

『랩 좀 풀어줘.』

『응.』

랩이 풀어지기 시작하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미나는 그 실루엣을 보며 오빠가 제발 살아있기를 빌었다.

‘오빠! 오빠! 제발…….’

그런데 랩이 전부 풀어지자, 오빠가 아닌 다른 남자가 보였다.

대머리.

거기에 수염이 가득한 남자.

그 남자가 캑캑 거리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왜 그래?』

『우리 오빠가 아니야.』

『아니라고?』

『응. 다른 사람은 없었어?』

『다시 찾아볼게.』

조세핀이 다시 냉장고를 뒤지는 사이, 미나는 생수뚜껑에 담긴 물을 그 남자에게 건넸다.

벌컥벌컥.

순식간에 마셔버린 남자가 주저앉은 채, 주변을 살폈다.

“여기는 어디지?”

“박스 안이에요.”

“박스? 우리가 박스 안에 갇힌 건가요?”

“네. 이상한 행동은 하지 말아요. 거인한테 잘 보여야 하니까.”

“알았어요.”

남자는 일단 경계했다.

이제 막 살아난 입장.

미나는 냉장고 안에 갇혀버린 오빠를 걱정하며, 조세핀을 다시 기다렸다.

그러나 조세핀은 미나에게 실망을 안겼다.

『다른 건 없어. 엄마, 아빠가 다 먹었나봐.』

『뭐?』

『어쩔 수 없어. 그냥 대신 이 수컷이랑 지내. 먹을 것 가져다줄게.』

조세핀이 빵하고 물을 추가로 넣어주었다.

인간이 벌레를 사육할 때와 마찬가지.

입장만 바뀌었을 뿐. 다를 건 없었다.

미나는 한참을 울었다.

40대 아저씨가 미나를 위로 했다.

“괜찮아. 울지마.”

“흑흑,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죽었나봐요.”

“그래. 괜찮아. 괜찮아.”

미나가 울자, 조세핀은 마음이 아픈지 박스를 덮고는 소리를 차단했다.

어둠이 깔리고, 미나는 구석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정말 죽은 거야? 그런 거야? 나 때문에 죽은 거야?’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미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고 싶었다.

자기 때문에 오빠가 그렇게 된 게 정말 싫었다.

늦은 밤.

조세핀이 자고 있다.

거인들이 자고 있다.

드르렁드르렁.

거인의 숨소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거인의 숨소리 사이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부스럭부스럭.

“오빠? 백현 오빠?!”

어둠 속에서 미나가 오빠의 이름을 불렀다.

박스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 사이로 비치는 실루엣.

사람의 것.

그리고 남자의 손이 자신의 몸을 향했다.

남자의 슈트가 위쪽부터 벗겨지기 시작했다.

미나가 비명을 질렀다.

“으, 아…… 아아악! 뭐하세요!”

그런데 그 남자는 오히려 비열한 웃음을 내보였다.

“일어났니? 좀 더 자지 그랬어.”

“네?!”

“아저씨가 좋은 거 알려줄게.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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