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64화 (64/200)

64화. 오해

고개를 젓는 김만철의 행동으로 이진기는 알았다.

‘뒈졌구나. 나쁜 새끼.’

하마터면 자신도 죽을 뻔 했다.

탈출하자며, 친구들 목숨을 살려준다고 할 때는 언제고 혼자 도망을 가?

다행히 체력이 회복되어서 아공간 능력을 쓸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거인에게 먹혔을 것이다.

자신하고 같이 붙잡힌 다른 사람들은 다 그랬으니까.

한 입에 쏘옥.

거인들은 인간들을 먹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래서 공포스러웠다.

그러나 천리안 능력이 자신을 살렸다.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구해주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아공간에서 그쪽으로 도망쳤다. 결국 이쪽 사람들을 만났다.

“다행이네요. 살아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의 말에 김만철이 되물었다.

“그래. 미나는 혹시 못 봤니?”

“미나요? 백현이 동생이요?”

“응.”

“죄송해요. 못 봤어요.”

“아…… 그래?”

“형님은 이쪽으로 오세요. 저기요! 마스터!”

이진기가 한 중년 남성을 마스터라고 불렀다.

“마스터?”

“네. 이 분이 마스터세요. 1988년 서울 올림픽 체조 금메달, 장명훈 선수요.”

“아…… 안녕하세요.”

“네. 장명훈입니다. 제가 이곳 책임자여서 다들 마스터라고 부르고 있어요. 편하신 대로 부르시면 돼요.”

그때 이진기가 다시 그 남자를 불렀다.

“마스터?”

“네. 진기 씨.”

“저 만철이 형님하고 같은 방 써도 되죠?”

“그럼요. 아시는 분이면 같은 방 쓰면 저희야 고맙죠. 안 그래도 방 배정 때문에 고민했는데, 잘 됐네요. 그럼 여성분들은 저쪽 진희 씨 따라가시고, 만철 씨는 진기 씨 따라가세요. 누추하지만 잘 공간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일단 좀 쉬시고, 안정 좀 취하시죠. 먹을 것은 곧 내어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김만철이 이진기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은 습기가 가득했다.

진흙으로 뭉쳐진 집.

그런데 끝 쪽에 가니, 진흙 냄새가 싹 사라진다.

황토 냄새로 가득한 방.

이쑤시개로 엉켜 만든 침대.

그리고 그 위에 깔려 있는 천조각.

화려하진 않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부족하지도 않은 공간.

이진기가 웃으며 김만철에게 말했다.

“형님이 살아계셔서 다행이에요.”

“그래. 다행이다.”

“저희가 열어둔 문으로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도 따라 왔더라구요. 그래서 거인들의 시선이 분산된 것 같아요.”

“그래. 그랬나봐. 후우…….”

김만철은 강백현과 미나가 곁에 없어서 속이 상했다.

“진기야. 천리안으로 백현이 위치 찾아봐주면 안 되냐?”

“아…… 공간이 너무 넓어서 그건 곤란할 것 같네요. 천리안도 만능은 아니거든요.”

“그래? 그렇구나.”

김만철의 시선에 슈트가 아닌 이진기의 옷이 신경쓰였다.

“그런데 옷은 어디서 났어? 슈트는?”

“옷은 여기서 받았어요. 슈트는 반납이에요.”

“반납?”

“네. 전투용 장비니까 여기서는 바깥에 나갈 때만 착용한대요.”

“그래?”

아니나 다를까, 처음 보는 사람이 김만철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다.

“이것으로 갈아입으시고요. 슈트는 한 시간 내로 반납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곤란하고요. 바깥으로 나가실 때, 저희한테 말씀해주시면, 언제든지 입고 나가실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는 통제에 따라주세요.”

“네.”

멜빵 달린 옷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은 그가 어색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잘 어울리시는데요. 식사하러 가실래요?”

“식사?”

“네. 여기는 셀프예요.”

“아, 그러자.”

옷을 갈아입은 김만철이 이진기를 따라 식당으로 이동했다.

땅굴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자 보이는 커다란 공동구.

거기에 보이는 것은 소형냄비.

향긋한 냄새가 올라오자 김만철이 방긋 웃었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형님, 저도 아까 먹었는데요. 옥수수 스프예요. 옥수수 알을 하나하나 떼서 스프로 만들었어요. 떠 드세요.”

“아, 응.”

건더기가 둥둥 떠다녔다.

엄청난 크기의 옥수수알.

하지만 전반적으로 전분 맛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도중, 정선희와 박윤수가 함께 내려왔다.

“만철 씨…….”

“네. 선희 씨. 드세요. 옥수수래요.”

“아, 네. 윤수야. 이리 와.”

“응.”

아들을 데리고 배식터로 가는 정선희.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는 일행.

옥수수 스프를 먹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걸린다.

식사를 하고 있는 도중 실험실 지하에서 만난 김건우가 김만철에게 다가왔다.

“식사는 괜찮으세요? 숙소는 불편한 거 없으시고요?”

“네. 괜찮습니다.”

“대충 보긴 했는데, 이따가 마스터께서 뵙고 싶다고 하셔서요. 간단한 면접이라고 생각하시고 만나 뵈면 어떨까 싶은데, 식사 끝나고 시간 괜찮으실까요?”

김만철이 마스터의 면접이란 말에 이진기를 쳐다보았다.

“형님, 전 이미 했어요. 간단히 능력하고 가족들 여부, 그리고 향후 계획 같은 거 물어보시는 거예요.”

“아…… 그래?”

김만철이 잠시 생각하다 김건우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네. 알겠습니다. 10분 뒤에 저랑 같이 이동하실게요.”

“네.”

김건우는 김만철에 이어 정선희와 박윤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새로온 사람들의 통과의례.

그건 바로 면접.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대우.

어쩌면 당연한 일.

“앉아요.”

마스터는 정중한 태도로 김만철을 맞이했다.

흙으로 빚은 의자.

앉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네.”

“김만철 씨 능력이 신체강화라던데요? 맞나요?”

“네. 맞습니다.”

“대단하시네요. 굉장히 좋은 능력을 가지셨어요. 혹시 자기가 일대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은?”

마스터의 질문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김만철은 고민하다 자신의 대답을 말했다.

“고양이까지는 어찌저찌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고양이요? 후-우, 장난 아닌데요?”

“그런가요?”

김만철의 대답에 마스터가 흐뭇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그 정도면 저희 인류 중에서는 최상위권이나 다름 없습니다. 슈트를 안 입었다는 가정 하에 그 말씀 하신 거죠?”

“아, 네.”

“어휴~ 대단하시네요. 김만철 씨, 혹시 저희랑 함께 일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네?”

“같이 일해보자고요. 저희는 총 4개 그룹으로 나뉘어 있어요. 전투조, 생산조, 회복조, 정보조. 그 중에서 만철 씨는 전투조에 적합한 것 같고요.”

마스터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진실을 전했다.

“전 남은 인생이 그리 길진 않습니다. 클론이거든요.”

“클론이라고요?”

“네. 만들어진 인간이죠.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는데, 남은 수명은 약 6개월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요. 알았어요. 그래도 생각해봐요. 6개월은 깁니다. 짧은 기간 아니구요. 여기서 머무르는 조건은 김만철 씨가 전투조에 속하는 방법뿐입니다. 대답 기다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안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만철이 뒤돌아 떠나려고 하자, 마스터가 김만철을 큰 소리로 불러 멈춰세웠다.

“만철 씨!”

“네?”

“떠나지 마시고 우리랑 함께 일해요. 클론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의 잃어버린 동료를 찾아줄 수도 있고요. 잘 생각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클론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클론은 영혼의 돌로 되살아난 자를 뜻하죠. 불완전한 부활. 하지만 완전히 부활시키는 돌도 있습니다. 그걸 우리는 소생의 돌이라고 부르고, 그걸 가지고 있는 거인들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오래 살기 위해 목숨을 걸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지금 삶을 좀 더 내실있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마스터는 김만철을 잡고 싶었다.

왜? 쓸모 있는 패였으니까.

그래서 설득했다.

“김만철 씨! 당신의 목적은 주변의 행복이 아닌가요? 그래서 동료를 살리려고 했던 거 아닌가요? 최형우라는 사람을 살리고 싶은 게 아닌가요?”

“…….”

마스터의 말에 김만철은 대답하지 못했다.

최형우 뿐만이 아니다.

생사가 불분명한 강백현도, 강미나도 구하고 싶었다.

어디있는지만 안다면, 안전한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그 마음을 마스터가 이용했다.

“우리의 목적은 첫 번째도 살아남는 거고, 두 번째도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를 불려야 하죠. 지금은 인간이 비록 약하지만 뭉치면 강해질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들이 여기에 왔을 때, 우리들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사실 더 이상 벌레처럼 지하에 숨어 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거인들은 저희를 단순한 장난감,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죠. 작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하고 또 학살하죠.”

“…….”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당신의 참여만으로 저희는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마스터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은 최형우 아저씨를 구하는 게 우선입니다. 대답은 그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나가보세요.”

면접이 끝난 김만철이 고개를 저으며 마스터의 방으로부터 나왔다.

방 바깥에는 김아람이 김건우와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면접을 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김아람이 먼저 김만철에게 물었다.

“다 끝났어요?”

“응. 아람이 너도 면접 보러 온 거니?”

“네.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는 건우 오빠한테 들었어요.”

“그래? 넌 어떻게 할 건데? 여기 있을 생각이야?”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요. 가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아저씨를 발로 찬 그 거인들 눈깔을 제가 직접 뽑아버릴 거니까. 싸울 거니까.”

아람이는 호전적이었다.

최형우 아저씨와의 유대감.

둘은 몇날 며칠을 함께 보냈다.

페이즈 1부터 페이즈 3까지.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고 같이 넘었다.

때로는 최형우 아저씨가 아람이를 살리고.

때로는 아람이가 최형우 아저씨를 살렸다.

지금 최형우의 귀환을 가장 바라는 것은 아람이일 터.

그녀의 투지가 김만철에게도 느껴졌다.

김건우가 말했다.

“들어가자.”

“네.”

김아람이 마스터 앞에 섰다.

“아람 씨?”

“네.”

“능력이 뭐죠?”

“염력입니다.”

“네?!”

“물체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김아람이 자신의 몸을 띄웠다.

그리고 앞에 있는 마스터의 책상을 띄웠다.

“저는 사람, 물건 등 모든 것을 컨트롤 할 수 있어요.”

확실히 대단한 능력. 김아람은 자신의 힘을 가지고 마스터 장명훈과 협상에 돌입했다.

“건우 오빠한테 들었어요. 마스터께서는 소생의 돌을 하나 가지고 계시다고요.”

그녀의 말에 장명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이야기를 한 것은 분명히 내부인물.

내부 인물은 여기에 한 명 밖에 없다.

김건우를 노려보는 장명훈.

그러자 김건우가 핑계를 대 본다.

“명훈이 형, 인재잖아요. 클론이래요! 이런 사람한테 소생의 돌을 써야죠. 저희가 언제까지 도망 다녀야 하나요? 염력이면 거인도 무섭지 않을 거예요. 두렵지 않다고요!”

김건우의 생각.

그리고 마스터의 고민.

둘의 지향점이 서로 다른 가운데 김아람이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저를 이용하세요. 최형우 아저씨를 구해주시면 마스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어요. 사람을 죽이라면 죽이고, 몸종이 되라면 될게요. 대신 저한테 소생의 돌을 사용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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