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두려움
포크를 든 거인으로 인해 사람들은 움직임을 멈췄다.
너무 무서워서.
절대적 존재의 등장에 겁에 질린 탓이었다.
그러나 백현은 달랐다.
처음 마주치는 것이 아니기에.
일단은 미나의 손을 잡았다.
“오빠…….”
“나만 믿어.”
백현은 미나와 함께 사람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일단은 거인의 시선에서 피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남성형 거인이 든 포크가 금속 벽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들을 쓸어내렸다.
쓸어내리는 힘이 얼마나 센지 한 사람도 탈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원래 장소로 떨어져 내린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탈출할 수 없었다.
평범한 스펙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곳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포크에 찍힌 한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목, 등, 엉덩이.
이렇게 3곳에 포크의 날카로운 첨단이 푸욱 하고 박혔다.
남자는 양손 양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고통 속에서도 살기 위해 소리쳤다.
“살려줘! 살려줘!”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그의 몸을 붙잡았다.
포크에 박힌 몸을 떼어내려는 것.
결국 사람들의 힘에 의해 그의 몸은 포크로부터 분리되었다.
하지만 그걸 신기하게 본 거인이 다시 포크를 가지고 사내를 힘껏 내리 찍었다.
순식간에 터져 나오는 피분수.
남자가 경기를 일으키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멈춘다.
“웁, 웁…….”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여기저기 토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토를 하자,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이 토사물을 쏟아냈다.
거인은 위에서 그걸 흥미롭게 관찰했다.
그러더니 싱크대에 다시 물을 뿌리며, 토사물들을 배수구 방향으로 흘려보냈다.
미나는 울상이었다.
“오빠…….”
“괜찮아. 살 수 있어. 마음 굳게 가져.”
“오빠라도 살았어야지! 도망쳤어야지.”
자신을 구하러 온 오빠의 행동.
그게 결국 오빠를 위험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미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자신이 붙잡히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그런데 백현은 강했다.
마음도 신체도 이제는 처음과 달리 강해졌다.
생과 사를 겪고 난 후 생긴 담담함.
그리고 판단력.
그래서일까?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웠다.
“괜찮아. 어차피 도망쳐도 붙잡혔을 거야. 그러니까 네 탓 아니야.”
“오빠…….”
“괜찮다니까? 살 생각만 하자.”
“응.”
백현은 벽에 기댔다.
‘체력만 회복하면 보호막을 계단삼아 탈출할 수 있어. 미니맵으로 분석하자. 탈출구,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분석하는 거야.’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사이에서도 초연하게 자신이 탈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도 능력자였다.
죽을 위기에 처하자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며 경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포크에는 속수무책.
그런데 갑자기 투명해지는 사람이 나왔다.
문제는 그 사람의 투명화도 물 때문에 위치가 탄로난다는 것.
그걸 본 거인은 신기한 얼굴을 하더니, 물줄기가 구부러지는 곳을 향해 주저없이 포크를 내리 찍었다.
거인이 말했다.
『신기해. 신기해.』
거인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미나가 얼굴을 찡그렸다.
분명 인간들도 동물들을 잡아먹기 전에 저런 식으로 행동했을 것이다.
역지사지.
인간이 동물들에게 했던 행동.
지금 이 거인이 인간에게 하는 행동.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할 수 없다.
인간들은 수많은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기름에 튀겨 먹기도 하고, 불에 구워먹기도 하고, 햇빛에 말려 먹기도, 가끔은 날 것으로 먹기도 한다.
거인 입장에서도 인간은 수많은 먹거리 중 하나.
그래서일까?
거인은 인간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남성형 거인의 포크가 이번에는 백현과 미나를 노렸다.
백현이 보호막을 통해 포크를 한 번 튕겨냈다.
그러자 씩 웃으며 말하는 남성형 거인.
『너도 신기한 능력을 가졌구나. 조금 이따 죽여줄게. 기다려. 킥킥』
거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미나에게 묻자, 미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어나갔다.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한 번의 포크질에 죽고.
자신을 지킬 능력이 있는 사람도 생존시간을 조금 더 벌 뿐.
이제 남은 사람은 셋.
불행중 다행.
갑자기 남성형 거인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식사 준비 중이야?』
『응. 실험실에서 가져온 실험동물들인데, 이거 먹어 본 동료들이 엄청 맛있대. 별미라던데?』
『그래? 그런데 포크로 찍으면 어떻게 해! 바로 죽어버리잖아. 오늘 다 먹을 것도 아니면서! 신선도가 떨어지잖아.』
『아,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 미안!』
『요리는 내가 할게. 당신은 조세핀이나 달래고 있어 봐. 어제 키우던 병아리 죽었다고 하루종일 울상이더라.』
『어. 아~ 알았어. 조세핀! 조세핀!』
인간들의 죽음이 여성형 거인에 의해 멈췄다.
남성형 거인이 자신의 아이를 돌보러 이동했다.
그런데 대신 여성형 거인이 싱크대 앞으로 걸어왔다.
그대로 다행인 점은 포크 대신 젓가락을 이용한다는 것.
그러나 남은 사람은 겨우 3명.
40대 후반의 남성과 미나와 백현 뿐.
백현은 미나를 꽉 붙잡은 채 놓질 않았다.
“미나야. 딱 한 번 남았어. 도망쳐.”
슈트에서 기포가 흘러나온다.
백현은 알았다. 이제 포크를 막아낼 힘은 없다는 것을.
그런데 미나가 그걸 알고 오빠에게 말했다.
“오빠, 내가 해결해볼게.”
“뭐?”
“대화로 해보자.”
젓가락으로 미나와 붙어있는 백현을 통째로 집어 올리는 여성형 거인.
그녀를 향해 미나가 거인의 언어로 대화를 시도했다.
『살려주세요!』
그러자 여성형 거인이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젓가락으로 집고 있잖아요. 저예요! 저!』
너무나 작은 목소리라서 여성형 거인은 3cm 정도의 작은 인간들이 말을 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주변을 살피고서야 다시 젓가락을 보는 여성형 거인.
『맞아요. 나예요. 내가 말 걸었어요.』
『우리 말을 할 줄 알아?』
『네. 배웠어요.』
미나의 말에 여성형 거인이 깜짝 놀라 백현과 미나를 집은 젓가락을 들고 남편에게 걸어간다.
쿵쿵쿵쿵.
엄청난 진동.
그리고 허리에 오는 압박.
그래도 버틸만 했다.
그녀는 놀란 얼굴로 남편을 찾아갔다.
『어머! 여보! 여보! 벌레들이 우리 말을 할 줄 알아요!』
『뭐? 우리 말을 한다고?』
『응. 진짜 했다니까!』
남성형 거인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는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의 커다란 얼굴.
푸르스름한 피부가 미나와 백현의 시선에 들어왔다.
『넌 뭐지?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줄 알지?』
『율리만 박사님한테 배웠어요. 율리만 박사님께서는……』
미나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백현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짐작할 순 있었다.
그건 거인들이 반응했다는 거.
적어도 죽이지는 않을 거라는 것.
『율리만이 누군지는 모르겠군. 아무튼 신기해. 우리 말을 할 줄 알다니! 넌 살려둘 가치가 있어.』
두 거인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여보! 돈 좀 되겠는데?』
『맞아. 이건 먹기엔 아까워. 수컷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내일 튀겨 먹고, 암컷 이것은 일단 내일 장마당에 가져가보자고.』
『넌 우리말 할 줄 모르니?』
하지만 백현이 할 리가 없었다.
『이 암컷만 우리 말을 할 줄 아나 봐. 어떻게 하지?』
『냉장고에 넣어둬. 믹서기에 갈아서 주스로 먹게.』
『응. 알았어.』
미나가 그 부부의 말을 듣고 소리쳤다.
『안 돼! 안 돼! 죽이지 마! 죽이지 마!』
하지만 공허한 목소리.
거인들에게 거인어를 할 수 없는 벌레는 그냥 음식일 뿐.
여성형 거인은 붙어 있는 백현과 미나를 억지로 떨어뜨린 후, 백현만 랩으로 꽁꽁 싸기 시작했다.
백현이 보호막을 치며 랩을 찢으려 했지만, 거인이 백현의 몸을 마구마구 흔들자, 뇌에 충격이 오고 장기가 뒤집히는 탓에 정상적인 힘을 낼 수 없었다.
이미 지친 몸.
저항할 수 없는 백현은 순식간에 랩에 싸여버렸고.
여성형 거인은 냉장고의 손잡이를 열어, 랩에 싸인 백현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쾅!
냉장고 문을 닫는 여성형 거인.
그 후, 여성 거인이 한 행동은?
딸을 부르는 것.
『조세핀!』
『조세핀! 아직도 삐쳤니? 병아리는 죽었다고 엄마가 말했잖아. 엉?』
여성형 거인의 불렀지만 방 안에 있는 아이형 거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스 안만 쳐다보는 아이형 거인.
박스 안에 있는 것은 어제까지 살아있었던 움직이지 않는 병아리.
『조세핀! 병아리는 하늘나라 갔어. 대신에 하늘에서 말하는 벌레를 주셨단다. 이리 와!』
그러자 1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아이 거인이 쪼르르 달려왔다.
『말하는 벌레?』
젓가락에 붙잡힌 미나.
미나를 손아귀로 움켜쥐는 여성형 거인.
여성형 거인이 어제까지 병아리의 사육장이었던 박스 안에 미나를 집어넣는다.
『조세핀! 말 걸어 봐. 대답해줄 거야.』
그러자 조세핀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미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할 줄 알아?』
『……』
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세핀이 울기 시작한다.
『으아아앙. 말 안 하잖아. 병아리! 병아리 데려와! 빨리 데려와!』
『조세핀, 기다려봐. 엄마가 말하게 해줄게.』
미나는 독기 뜬 눈으로 여성형 거인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성형 거인도 만만치 않았다.
거대한 얼굴을 박스 안에 밀착시키더니,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미나를 협박한다.
『얼른 대답하지 않으면 네 애인을 불에 튀겨서 돈가스로 만들어버릴 거야.』
애인.
거인은 백현을 미나의 남자친구라고 생각했다.
서로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던 상황.
『싫어…… 말하기 싫어…….』
『그럼 지금 당장 죽여줄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으면 처신 잘 해!』
여성형 거인의 얼굴이 박스 위에서 사라지고, 아이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조세핀, 이름부터 물어봐. 차근차근, 서로 친해지는 거야. 알겠지?』
『응. 벌레야! 이름이 뭐야? 나는 조세핀!』
아이형 거인이 순수한 얼굴로 미나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여성형 거인이 심각한 얼굴로 미나를 노려본다.
한편, 남성형 거인은 헤드폰을 쓰고,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 장마당이 언제 열리지? 너만 알고 있어라. 우리 말을 하는 벌레를 내가 가지고 있거든? 이거 얼마에 팔릴 것 같냐?』
사상최악.
아니, 최악은 모면한 건가?
목숨은 살았으니까.
미나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아이형 거인에게 말했다.
『미나…… 내 이름은 미나.』
미나의 말에 아이형 거인이 방긋 웃으며 여성형 거인에게 말했다.
『엄마! 이 벌레, 진짜 말을 해!』
『마음에 들어?』
『응! 너무 좋아! 나 얘 키울래.』
『그래. 병아리 대신 잠깐 데리고 놀고 있어. 알았지?』
『응! 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