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탈출구
탈출구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어두운 안개가 걷히면 보이는 출구.
그건 거인들이 살고 있는 세계.
페이즈 1 통과 후 꼬마 거인과 여성형 거인이 나갔던 그 출구가 명확히 보였다.
아마도 유리사육장 주변에 깔려있는 저 안개는 수면가스일 것이다.
페이즈 3, 엑스트라 페이즈 2가 끝난 사람들은 절망적인 한숨을 쉬고 있었다.
다음은 뭐가 나올까?
페이즈 1의 주제는 아마도 생존.
페이즈 2의 주제는 탈출.
엑스트라 페이즈 1의 주제는 서바이벌.
페이즈 3의 주제는 공략.
엑스트라 페이즈 2의 주제는 심리전이었다.
예측불가.
페이즈 4는?
그런데 미나가 강백현의 손을 잡았다.
“오빠.”
“어?”
“가자.”
“어디를?”
“탈출…… 지금 하자. 다 준비 됐어.”
준비라니? 이진기의 아공간 레벨 1로는 탈출할 수 없다.
그런데 변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증폭 능력자 정선희의 존재.
“미나한테 들었어. 백현아, 나도 갈게.”
“선희 누나도요?”
그러자 윤수가 엄마를 보챘다.
“엄마, 어디 가?”
“응. 안전한 곳으로 갈 거야.”
그리고 김만철도 당연히 함께.
“백현아. 탈출하자.”
백현의 소꿉친구도 있었다.
“나도 같이 갈래.”
“나도 간다.”
아람이와 최형우 아저씨.
미나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다.
백현의 탈출 계획을 알고, 같이 탈출할 멤버들을 대기해두었다.
백현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모두들, 죽을 수도 있어요. 첫날 못 봤어요? 꼬마 거인이 사람 죽인 거.”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백현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최형우 아저씨가 대표로 말했다.
“백현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너와 함께 하기로 했어. 알아. 위험한 거. 그래도 모두가 너랑 함께 할 거야.”
강백현의 얼굴엔 당혹스런 표정 뿐이었다.
그런데 미나가 재촉했다.
“오빠, 다들 본인들이 직접 결정한 거야. 머뭇거리지 마. 다음 페이즈 가서 죽는 사람 나오면 오빠가 책임 질 거야? 이제 오빠가 리더야.”
막중한 책임감.
그리고 생존을 위한 몸부림.
그러나 결정권은 자신에게 없다.
“진기형.”
“어?”
“이제 형만 결정해주시면 되요. 같이 탈출해요. 탈출에 성공하면 형이 원하는 사람 꼭 구해드리겠습니다.”
이진기의 결정은 금방 이루어졌다.
정선희의 증폭 능력에 의해 이진기의 아공간 능력이 레벨 2로 올라갔다.
아공간이 열리자, 사람들이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강백현, 강미나, 이진기, 최형우, 김아람.
거기에 정선희, 박윤수까지.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아공간에 들어온 게 보인다.
“누구…… 세요?”
“나도 같이 가지.”
장복남은 알았다.
자신이 살아남을 길이 이것 하나 뿐이란 것을.
최복자가 남긴 미래예지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다음 페이즈는 바다에서 24시간 동안 살아남기다.
하지만 거기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거의 없다.
물고기 밥이 되는 사람들.
상어에 죽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왜? 통째로 먹히니까.
친한 동생 만복이는 오징어 입에 뜯겨 죽고, 정철이는 해파리에 쏘여 죽고, 자신은 가재한테 잘려 죽는다.
이번 페이즈는 진짜 절망 중 절망이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수 백번을 반복해서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페이즈 4에서 생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자신이 생존할 수가 없었다.
장복남은 미래예지를 받았을 때, 마치 수십 년을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죽고, 또 죽고, 죽고, 또 죽고.
그 미래 속에서 실망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
20년을 지낸 아우도 죽음 앞에서는 자신을 배신한다.
그래서일까?
‘무조건 나부터야. 나부터 살아남고 봐야 해.’
그래서 홀로 강백현의 일행에 합류한 것.
백현이 물었다.
“누구세요?”
“장복남입니다. 긴 설명할 시간 없습니다. 살고 싶으면 따라오십시오.”
장복남은 출구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다.
이미 수십 번도 더 가 봤으니까.
“출구는 저 방향 아닌가요?”
“저 방향은 페이크입니다.”
“네?”
“거인들의 출구 말고, 우리들만 통과할 수 있는 전용 출구가 있습니다. 그쪽으로 갈 겁니다.”
강백현은 놀라 자빠질 뻔 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방향이 출구가 아니었다고?
장복남이 이끄는 방향. 그런데 미니맵을 봐도 출구는 없다.
그런데 천리안을 쓸 수 있는 이진기가 말했다.
“조그마한 크기의 입구가 있어.”
“네?! 진짜요?”
“응. 아마 금속으로 된 문인 것 같아.”
금속.
미니맵으로 탐지 불가능한 금속이 있다. 그건 텅스텐.
미나가 말했다.
“오빠…….”
“응?”
“저 아저씨, 미래를 알고 있어. 믿어도 될 것 같아.”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미나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복남의 뒤를 따랐다.
걷기를 40분, 그런데 생각보다 멀다. 그래서일까? 천장 위의 모래시계가 한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 장복남이 말했다.
“꼬마야. 저 친구한테 치료 능력 써라.”
“으…… 으응.”
이 자리에서는 장복남이 리더였다.
그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만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
다시 거꾸로 돌아가는 모래시계.
윤수가 치료 능력을 쓸 때마다 모래시계의 시간이 연장된다.
30분을 더 걷자, 드디어 장복남이 멈춰섰다.
“다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장복남의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10분 밖에 안 남았으니 짧게 말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아시다시피, 아공간을 나가면, 다른 세계로 가게 됩니다.”
“다른 세계요?”
“네. 그 곳은 거인이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인을 직접 본 적이 있는 백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모두가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런데 장복남이 희망적인 소식을 선사했다.
“너무 두려워하진 마세요.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니까요.”
인간들이 살고 있다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미나의 얼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거기 강미나양이 공주님이죠?”
“네.”
“나가는 출입문은 강미나 양만이 열 수 있어요. 그 열쇠를 만들 수 있는 건 왕자인 강백현군 뿐이고요.”
아공간이 깨지기 시작하고, 그들의 앞에 조그마한 출입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열쇠구멍.
그것을 가리키며 장복남이 말했다.
“보호막으로 열쇠를 만들어서 열어.”
“네.”
그의 말에 강백현이 자신의 보호막으로 열쇠를 만들었다.
출입문을 돌렸다.
출입문이 열리자, 또 다른 문이 보인다.
그 문에는 커다란 원형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거인의 손가락과 만난 작은 인간의 그림.
마치 지금 인류를 보는 것과 같았다.
“이제 김아람 양 차례입니다.”
“네?”
“문 쪽 말고, 하늘 방향에 있는 버튼을 눌러 가스를 배출하십시오. 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 저희도 죽습니다.”
“하늘 방향이요?”
“네. 앞쪽 트랩은 공주님만이 열 수 있습니다. 염력으로 하늘 방향을 여세요.”
김아람의 염력. 지금은 되살아나서 레벨 1이지만, 정선희의 증폭 능력으로 레벨 2가 되어 멀리 떨어진 하늘 방향의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건물 뚜껑이 열리며, 짙게 깔린 수면가스가 공중으로 날아간다.
그러자 유리사육장에 갇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탈출구를 찾은 백현 일행을 보며, 미친 듯이 열광했다.
마지막 남은 장치.
거인과 작은 인간이 그려진 문양.
그 밑에 있는 글씨를 보며, 장복남이 미나에게 말했다.
“거인들의 언어로 읽어주십시오.”
“이걸 읽으라고?”
그런데 미나는 읽을 수 있었다.
왜? 너무나 잘 아는 언어였으니까.
자신이 소설을 쓸 때, 꿈에서 보았던 그 언어였으니까.
미나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언어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뜻은 간단했다.
『탈출구…… 개방.』
그러자 모두의 앞에 뜬 메시지.
[히든 퀘스트-숨겨진 탈출구를 발견하였습니다.]
강백현은 그제서야 알았다.
이 모든 게 트릭이었다는 것을.
인간의 지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험이었다는 것을.
미지의 존재가 인간들에게 능력을 준 것은 바로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허무했다.
이거였어?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였냐고!
사람들은 까마귀나 쥐의 지능 검사를 할 때, 미로 등의 장치나 도구들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동물의 지능을 체크하곤 한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인간들이 딱 그 꼴이었다.
죽음이라는 그림자 앞에서 거대한 탈출구를 그려놓고, 실제로는 숨겨진 탈출구를 찾아내서 통과하게 만든 심리게임.
그 힌트는 4성급.
4성급 사용자가 탈출 장치를 알아낼 수 있는 열쇠.
지능 체크였다니.
이런 능력을 준 게 탈출을 위해서였다니.
허무했다.
끝까지 인류는 실험체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홀로그램이 대변했다.
[커다란 세계에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지역 KT141456, 방사능 오염까지 10분 남았습니다.]
그때 장복남이 말했다.
“빨리 탈출하시죠!”
그의 말에 모두가 탈출구로 향했다.
탈출구는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백현은 미니맵을 보았다.
탈출구가 열린 덕분에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향으로 몰려오는 게 보인다.
그렇다는 건 더 이상 페이즈가 열리지 않는다는 뜻.
즉, 모두 다 세이프.
이제는 죽음의 위기는 없다는 거다.
계단 위, 맑은 공기와 빛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백현일행은 뛰었다.
뒤따라 오는 사람들도 뛰었다.
맑은 공기, 바람과 마주치기 위해.
살기 위해.
계단을 올라간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크기의 벽이 보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인다.
엄청 큰 사람들이.
단 한 사람만 빼고, 모두가 경악했다.
그들이 빠져나온 지상은 또 다른 유리 사육장.
하지만 다른 점은……
이곳이 거인들의 세계라는 것.
실험복을 입은 수많은 거인들이 화면을 보고 있다.
모니터링.
그때 울리는 경고음.
『위이이잉! 위이이잉!』
사이렌 소리와 함께 주변에 있던 거인들이 백현 일행이 탈출한 장소를 확인하려 다가왔다.
백현은 알았다.
이곳이 진정한 탈출구는 아니라는 것.
“장복남 아저씨!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미안합니다. 그럼 모두들 운에 맡기겠습니다.”
장복남이 한 거인을 향해 달려간다.
일부러 잡혀주려는 듯 여성형 거인 앞으로 달려가는 장복남.
거인들이 탈출한 인간들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집어들더니,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거인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명이 계단을 통해 달려 나오는 인간들을 줍고 또 주웠다.
그때 익숙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오빠! 오빠! 오빠!”
푸른색의 남성형 거인이 미나를 집어 봉투에 담은 것을 본 백현. 그가 당황하는 사이 옆에서 또 다른 사람의 절규가 흘러나왔다.
“백현아! 구해줘! 구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