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허망한 죽음
최복자의 등장에 강미나가 긴장하며 말했다.
“오빠……. 오빠가 말한 할머니 맞지? 미래 예지할 수 있는 할머니.”
“응.”
“완전 끝판왕이잖아.”
“아니, 여기에서는 능력을 쓸 수 없어. 그러니까 예지 능력도 안 통해.”
그런데 그걸 듣고 놀란 것은 오히려 미나 쪽이었다.
“그건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내가 너랑 말할 기회가 있었어?”
“아! 나는 당연히 다른 사람 마음 읽고,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
지켜보는 것과 실제로 참가하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참가한 거였어?”
“그래. 아…… 진짜.”
“괜찮아. 너 죽으면 내가 소생의 돌로 살려줄게.”
“오빠야 말로 죽지 마. 죽으면 내가 살릴 테니까.”
어떻게 보면 다행이다.
서로 다른 편이라고 해도 이긴 사람이 죽은 사람을 살려주면 된다.
남매는 원했다.
서로 다른 편이 되기를.
그래서 차라리 없던 일이 되기를.
그런데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강백현 사용자의 직업은 악마입니다.]
[악마는 악마의 눈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밤이 되면 서로 소통이 가능합니다.]
[밤이 되면 지옥의 겁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옥의 겁화는 천사의 목숨을 없앨 수 있습니다. 단, 특수 능력에 의해 지옥의 겁화가 무효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황당했다.
악마라고?
7명을 바라보는 강백현.
그런데 악마의 눈을 사용하니, 악마가 보인다.
교수, 운동선수, 정치가에 군인, 거기에 할머니와 여동생 미나.
미나만 아니면 되는데.
여동생만 악마가 아니면 되는데…….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왜 미나가 악마인 건데?
어?! 왜 내 동생이 악마가 된 건데?
사실 미나는 머리가 좋았다.
그러나 이 게임은 악마가 처음부터 너무나 불리하다.
천사 5 대 악마 2.
악마는 첫날 투표에 의해 죽음을 당하면, 5:1이 된다.
첫날 투표로 천사를 죽이는데 성공하더라도, 보호막으로 지옥의 겁화를 막아내거나, 전투천사처럼 한 번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4:2가 된다.
그렇게 되면 악마가 불리해지기 시작한다.
천사 4명은 자신들의 직업을 밝혀나가며, 악마를 추적할 것이다. 그리고 겹치는 인원이 있으면 악마들은 위기에 몰릴 것이다.
시작부터 악마들은 수적으로 불리했다.
특히 첫 번째 게임으로 천사들의 능력과 직업이 밝혀진 이상, 더 이상의 꼼수는 작용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이건 두뇌 싸움.
먼저 치고 가는 사람이 승자다.
그렇기에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사람은 미나였다.
악마가 된 강미나가 모두에게 호소력 있는 발언을 했다.
“군인 아저씨가 악마예요.”
“뭐?”
“전 대천사라 알아요. 군인 아저씨가 악마예요.”
그러자 사람들이 군인을 쳐다보았다.
“나 아니야! 나 악마 아니야. 일반 천사야. 일반 천사예요. 진짜야. 쟤가 악마야. 저 사람이 악마라니까.”
그리고 교수가 그를 옹호했다.
“지금 저 여자애 거짓말하는 겁니다. 대천사는 접니다.”
그런데 미나가 우기기 시작했다.
“대천사인데 왜 이렇게 늦게 반응하신 거예요? 왜 교수님은 지금 와서 대천사라고 하세요? 교수님이 악마 아니에요?”
“뭐라는 거야? 얘가 우기면 다인 줄 아나?”
“아니! 제 말이 맞잖아요. 제가 대천사인데, 왜 교수님이 대천사라고 하시냐고요!”
“내가 대천사니까 대천사라고 말하지. 우길 걸 우겨라. 쪼그만 게 아주!”
강백현은 미나의 주장을 듣고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가 대천사로 나가겠다 이거지?’
그러자 옆에서 강백현이 입을 보탰다.
“자~자! 진정하시고 각자 직업부터 말해보죠. 저는 일반천사입니다.”
“일반천사? 군인도 일반천사라고 했는데?”
“네. 그랬죠. 그런데 저도 일반천사네요.”
강백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최복자가 입을 열었다.
“이것들이 무슨 장난을 치는 거여? 백현 총각! 지금 둘이 악마인 거야?”
그러자 강백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할머니, 저 거짓말 안하는 거 아시잖아요. 왜 그러세요? 할머니 목숨 제가 구해드렸었잖아요. 기억 안 나세요?”
강백현의 말에 교수가 물었다.
“두 분이 아는 사이입니까?”
“잘 알지. 페이즈 1에서 만난 애니까. 하지만 이건 생명이 달린 게임이잖아. 백현 총각이 지금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악마지? 어?”
“아니요. 저 악마 아니라니까요. 저 좀 믿으세요. 제가 일반천사예요. 할머니는 직업이 뭔데요?”
“나? 영혼천사지. 죽은 사람 말 들을 수 있는 영혼 천사.”
“알았어요. 할머니는 믿어드릴게요. 저는 아무튼 일반천사입니다.”
그러자 군인이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야! 내가 일반천사야! 일반천사라고!”
그러자 운동선수가 군인을 말렸다.
“진정 좀 하세요. 당신이 지금 악마인 게 거의 확정이야.”
“와! 미치겠네. 나 아니라니까? 아니라니까!”
강백현은 생각했다.
‘군인 아저씨, 미안해요. 하지만 여기서 미나랑 저랑 둘 다 죽을 순 없어요. 용서하세요.’
그러자 정치가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대천사가 두 명, 일반 천사가 각각 두 명이네요. 이 네 명 중에 악마가 둘 있겠어요.”
그 말에 미나가 억울한 듯 소리쳤다.
“나 악마 아니에요! 처음부터 말했잖아요. 내가 대천사라고! 거기 잘생긴 오빠는 제 말 안 믿어요?”
미나가 운동선수를 가리켰다.
“오빠는 제 편 맞죠? 네? 제가 시작부터 말했잖아요. 저 군인 아저씨 악마라고! 네?”
“그랬지.”
“네. 맞죠? 네?! 맞잖아요. 나 진짜 억울해! 오빠! 악마 밝혔는데, 다 날 의심하잖아. 응? 저 오빠랑 저 오빠가 악마잖아.”
미나가 운동선수 옆으로 다가가더니 그의 팔짱을 끼며 울먹였다. 그러자 운동선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네가 먼저 말하긴 했지.”
그러자 군인이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야! 이 미친년아! 내가 악마라고?! 너! 내가 죽인다. 어? 어?!”
정치가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악마가 도대체 누구야? 어? 누굴 지켜야 해?’
강미나는 운동선수 옆에 붙어서 계속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빠…… 나 억울해. 나 믿어줘. 믿어줘요.”
그러자 강백현은 정치가를 설득하기 위해 말을 열었다.
“일단 이 상황을 정리해보죠. 먼저 여기 여자분께서 자신의 직업이 대천사라고 밝히셨고, 군인 아저씨가 악마라는 걸 확인하셨어요. 맞죠?”
“그건 맞지. 저 여자가 악마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
“그런데 저는 일반 천사거든요. 그런데 군인 아저씨도 일반 천사래요. 전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 여자분이 악마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진 않은데, 일단 저 군인 아저씨는 악마가 확실해요. 왜? 내가 일반천사니까. 제가 할 말은 여기까지네요.”
“그러네. 저 군인이 악마네.”
“맞네. 저 사람부터 죽입시다.”
그런데 두 명이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그건 실제 직업이 대천사인 교수와 실제 직업이 일반천사인 군인.
“아…… 내가 대천사라니까!”
“나 일반천사라고요!”
그러자 최복자가 의문을 가지고 말했다.
“너희 둘! 남매잖아. 맞지? 너희 둘이 악마지? 어?”
“뭐? 둘이 남매였어?”
“둘이 실제 남매?”
그런데 강백현은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요. 저랑 미나는 둘이 남매예요. 그런데 그게 왜요? 그렇다고 저희 둘이 악마라는 법 있나요? 솔직히 전 미나가 악마여도 상관 없어요. 저는 천사니까. 제가 죽으면 미나가 이겨서 절 살리겠죠. 미나가 져도 저는 여동생인 미나를 살릴 거고요. 이 게임 원래 이렇게 되면 안 됐어. 어차피 난 이번 게임에서 천사이기 때문에 천사 팀을 이기게 만들어야 해. 만약에 여동생이 천사고, 나도 천사면 악마가 이기면 우리 둘 다 죽거든요. 그래서 무조건 이겨야 하거든! 그래서 내가 지금 군인 아저씨 악마라고 하는 거거든요. 아니면 내가 져도 된다니까? 할머니! 아니에요? 아니냐고요!”
강백현은 자신과 미나가 둘 다 악마일 때의 상황을 싹 빼고 말했다. 하지만 그걸 눈치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왜? 당당했으니까.
“야! 이것들이 악마네. 너희 둘이 악마잖아.”
“군인 아저씨 말이 맞네. 저것 둘이 악마네.”
대천사와 일반천사인 두 사람이 억울해하며 올바른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미나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진실만 말했어요. 여러분이 절 죽이건 죽이지 않건 상관 없는데, 제가 죽으면 다음부터 악마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게 돼요. 어려워진다고요. 절 믿어주세요.”
그리고 투표의 시간.
천사가 소멸의 정수를 들고 나타났다.
홀로그램이 7명의 명단을 가리킨다.
군인 오민수 3표, 강미나 3표, 기권 2표.
같은 표 동률이 나왔다. 이러면 둘 다 죽는걸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투표 동률로 인해 소멸의 정수가 사라집니다.]
* * *
낮이 끝나고 밤이 되었다.
남은 천사는 다섯, 악마는 둘이다.
밤에는 악마끼리 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미나와 백현은 서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백현이 미나에게 말했다.
“너는 진짜 생각 없다.”
“뭐가?”
“내가 안 도와주면 위험했어.”
“그것까지 계산했어. 오빠가 그렇게 나올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겁이 나.”
“뭐가?”
“사람을 죽여야 하는 거잖아.”
“그렇지.”
“나…… 천벌 받진 않을까?”
“받겠지. 하지만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자. 그런데 넌 이거 왜 참가한 거야?”
“그거야 오빠 살리려고.”
“뭐?”
“혹시 모르잖아. 오빠가 먼저 죽을지. 그러니까 오빠 살리려고.”
“미치겠다. 오빠는 안 죽어.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남을 거야.”
“그래. 오빠, 알지? 나 죽으면 세상 끝나는 거.”
“그래.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응. 그것보다 누구한테 지옥의 겁화 쓸 거야? 수호천사랑 전투천사 때문에 걸리네.”
“수호천사랑 전투천사가 누구인지는 알잖아.”
“알지. 정치가랑 운동선수가 수호천사랑 전투천사 중 하나겠지.”
“그럼 최복자 할머니한테 일단 쓰고 정치가 아저씨한테 쓰자.”
“왜?”
“그래야 우리가 첫날처럼 계속 대천사라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킥킥, 근데 오빠.”
“어?”
“수호천사는 아무래도 운동선수였던 것 같아.”
“뭐?”
“수호의 빛이 나한테 걸렸어.”
“뭐?”
강미나는 낄낄 대며 웃었다.
수호의 빛.
지옥의 겁화를 벗겨낼 수 있는 장치.
그게 자신한테 쓰였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을 의심하진 않았다는 것.
아무래도 그럴 사람은 운동선수 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오빠 말대로 최복자 할머니한테 쓰고, 운동선수 서태석한테도 쓰자.”
“아니, 운동선수를 살려놓자.”
“뭐?”
“살려놓는 게 낫겠어. 오빠는 너한테 지옥의 겁화를 쓸게. 너는 최복자 할머니한테 써.”
“뭐?!”
“그렇게 해. 어차피 수호의 빛이 널 막아줄 테니까.”
“응.”
강미나는 오빠의 생각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 엄청 좋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