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뒤통수
밤이 되었다.
어둠이 깔리고, 천사였던 두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킥킥, 젊은 친구가 굉장히 잘 하던데?”
러시아 할머니(악마 2)의 모습에 중국인 청년(악마 1)이 씩 웃었다.
“할머니야말로, 굉장하던데요. 특수 직업으로 일단 위기는 모면하셨네요. 잘하셨어요.”
“아쉬워. 아쉬워. 료코인가 뭔가 걔를 죽였으면 게임 끝났는데…….”
“괜찮아요. 할머니는 누구를 죽이실 생각이세요?”
“나? 당연히 그 할아범이지. 터키 할아범.”
“아……. 잘 생각하셨어요. 일단 이렇게 된 거, 료코(일본인 여성 / 자칭 대천사)는 끝까지 살려둬야 해요. 걔를 죽이면 다음은 제가 죽을 테니까요.”
장 레이(악마 1)의 말에 러시아 할머니가 방긋 웃었다.
“그럼 젊은 친구는 누굴 죽일 거야?”
“일단은 특수직업이 걸려요. 그래서 한국 놈이나 태국 놈 중 하나를 죽여야 할 것 같아요.”
“그럼 한국놈 하나, 태국 놈 하나 이렇게 죽일까? 그럼 둘 다 특수직업을 죽이는 거잖아.”
“그건 곤란해요. 일본 여자를 살려놓을 거면 한국 놈도 살려놓는 게 좋아요. 한국 놈을 죽이면, 일본인이 악마라고 우기는 제 주장이 힘을 잃게 되니까요.”
“그럼 태국 놈 하나랑, 터키 할아범, 이렇게 죽이면 되겠구나?”
“네. 그렇죠.”
“그럼 처음 원안대로 가자고. 젊은 친구.”
“네. 그렇게 가요.”
중국인 남성이 홀로그램에서 지옥의 겁화를 사용할 대상을 골랐다.
태국인 남성. 이제 낮이 밝게 되면 녀석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러시아 할머니도 터키 할아범을 죽음의 대상으로 골랐다.
그리고 낮이 밝았다.
* * *
밝은 낮.
일본인 료코가 허무한 듯 주저앉았다.
“살았어. 다행이야. 살았어.”
그리고 강백현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야. 역시 날 노리진 않았어.’
수호의 빛.
지옥의 겁화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능력.
하지만 강백현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료코를 위해서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료코와 자신을 살려둘 것을 알았으니까.
그런데 한 남성이 쓰러져 있다.
가장 나이가 많은 남성.
터키의 할아버지다.
[지옥의 겁화에 의해 터키 아크바바 사용자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으아아아악! 저 여자가 죽였어. 저 여자가 할아버지 죽였어.”
필리핀 꼬마가 소리치며 말했다.
그리고 러시아 할머니도 동조했다.
“그래. 쟤가 악마야! 일본 년이랑 한국 놈이 악마야!”
그런데 사망자가 한 명이다.
악마의 공격이 실패한 것이다.
[태국 바바 사용자에게 사용된 지옥의 겁화를 수호의 빛이 방어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가 안 죽였어. 범범(필리핀 꼬마)아, 내가 죽인 거 아니야. 나 아니라고!”
료코는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국인 남성과 강백현은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판을 뒤집기 시작했다.
강백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주목해주십시오.”
“악마 새끼! 입 다물어!”
“아니요. 이제 직업을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 저의 직업은 수호천사입니다. 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지옥의 겁화를 막아낼 수 있는 『수호의 빛』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용대상은 태국의 바바 씨한테 썼고요. 바바 씨, 놀란 눈치던데요. 지옥의 겁화의 공격에 노출 되셨었나요?”
강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태국인 남성 바바.
“사실 바바 씨가 악마일까도 생각해봤습니다. 오늘 죽은 사람이 만약에 둘이었다면, 바바 씨는 100퍼센트 악마였을 테니까요.”
바바는 알았다.
강백현이 자신을 구해준 것을.
그러자 장 레이가 당황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장 레이 씨는 조용하세요. 악마 후보 넘버 1이니까요.”
“뭐?! 네가 악마잖아. 너랑 료코가 악마잖아.”
그런데 강백현이 말했다.
“료코 씨.”
“네.”
“러시아 할머니가 악마인지 확인해주세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네. 지금 악마 후보는 네 명입니다. 러시아 할머니, 필리핀 꼬마, 그리고 중국인 그리고 당신.”
“네? 저요?”
그녀가 당황한 채, 의심의 눈초리로 강백현을 쳐다보았다.
“네. 당신도 악마 후보 중 하나입니다.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진 않죠. 다만, 당신이 먼저 말했죠. 저를 가리키며 악마가 아니라고.”
“네. 그랬었죠. 그런데 왜 그런 결론이 나왔나요?”
“당신이 키 메이커이기 때문입니다.”
“키 메이커?”
“네. 사건의 해결책이죠. 료코 씨는 악마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낮이 될 때마다 한 번씩 쓸 수 있고요. 맞나요?”
백현의 말에 료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쓰지 않으셨군요. 그리고 그 대상은 장 레이 씨한테 쓸 생각이시구요.”
“응. 맞아요.”
“아뇨. 장 레이 씨한테 쓰면 소중한 하루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러시아의 이바노프 할머니에게 사용해주세요.”
홀로그램 사진에 상대방의 정보가 나온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바노프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저 할머니, 악마! 악마야! 악마였어!”
그러자 이바노프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악마년아, 이제 나를 죽이려고 해?! 나 아니야! 아니라고!”
“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네요. 바바 씨, 지옥의 겁화 공격 받으신 것 맞죠? 수호의 빛을 받으신 것도 맞고요.”
“네. 맞네요.”
죽은 망자의 시신이 앞에 놓여 있다.
그 앞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펼쳐놓고 있다.
“이것으로 일단 전 천사, 그것도 수호천사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바바 씨와 전 천사임이 증명이 되었네요. 그럼 태국의 바바 씨의 특수 직업과 능력은 뭔가요? 그걸 밝혀주실 수 있으실까요?”
베트남의 바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영혼천사입니다. 죽은 천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악마의 말은 듣지 못한다는군요. 그래서 그런지 터키 할아버지의 말이 들리고 있습니다.”
“그걸 증명하실 수는 없으시겠네요?”
“네. 증명은 할 수 없으나, 제 자신은 알죠. 죽은 사람이 악마였는지, 아니면 천사였는지 그것을 알 수가 있죠.”
“투표에 의해 죽은 자가 천사였는지, 악마였는지를 알아내는 능력이로군요.”
“네. 그것뿐만 아니라 지옥의 겁화로 죽은 천사도 마찬가지고요.”
“네. 무슨 능력인지는 잘 알았습니다. 이번 밤에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면 누가 악마인지는 확실해지겠네요. 제가 죽든, 료코 씨가 죽든, 아니면 둘 다 죽어도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테니까.”
“네. 그렇죠.”
강백현은 악마 후보를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중국인 - 악마 or 천사.
러시아인 - 악마 or 매력천사.
태국인 - 영혼천사.
필리핀 - 악마 or 전투천사, 하지만 직업을 처음에 밝힌 관계로 천사일 가능성이 높음.
일본인 - 악마 or 대천사. 천사일 가능성이 높음.
터키인 - 천사 [죽은 상태].
강백현 - 수호천사.
여기서 료코가 악마라고 가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중국인은 대천사가 된다.
“장 레이 씨?”
“네.”
“능력을 사용하셨나요? 누가 악마인지 알아낼 수 있다는 대천사의 능력, 사용하셨나요?”
강백현의 말에 장 레이가 대답을 머뭇거렸다.
‘어떻게 해야 되지? 씨발, 왜 이렇게 된 거지?’
장 레이는 머리를 굴렸다.
일단 필리핀 꼬마에게 또 사용했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첫날 사용했다고 주장했으니까.
한국인? 아니면 일본인? 태국인? 누구한테 썼다고 해야 돼?
그런데 한국인 이놈이 먼저 선수를 쳐서 태국인 놈을 자신의 편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태국인 놈은 한국인 놈이 천사라는 것을 100퍼센트 믿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강백현이 압박했다.
“제발 그 검색 대상이 료코 씨와 이바노프 씨는 아니길 바랍니다. 그건 스스로를 악마라고 말하는 게 되니까요.”
“뭐라고?”
“당신은 료코 씨를 악마라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 대천사라면 료코 씨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므로 그녀는 100퍼센트 악마겠죠. 그런데 자신만 확인할 수 있는 능력을 그녀에게 쓴다?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요? 이미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건 당신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같죠.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는 않겠죠?”
강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중국인 장 레이.
그가 료코가 했던 것과 같은 동작을 하더니, 강백현을 보며 말했다.
“미스터 강?”
“네.”
“너는 천사야. 지금 확인했어.”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절 증명했다고 장 레이 씨가 악마후보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저는 료코 씨도, 장 레이 씨도 악마후보로 보고 있으니까요.”
장 레이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가 대천사라고 위장직업을 댄 것까진 좋았다.
그래서 하마터면 료코가 죽을 뻔했으니까.
자신도 대천사가 2명이 나오자 핀치에 몰려버렸었으니까.
지금 그의 대답에 료코가 악마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료코가 악마라면 같은 편은 누구? 필리핀 꼬마?!
자신도 아니고, 태국인 바바 씨도 같은 편은 아니다.
악마들에게는 결정적인 실수가 있었다.
그들의 첫 번째 실수는 첫날 희생자를 내지 못한 것.
그리고 첫 희생자를 료코로 몰아세운 것. 악마는 악마를 몰아세우지 않는다. 그러므로 료코가 악마라면 진짜 악마들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실수는 자신이 보호막을 걸어둔 태국인 남성에게 지옥의 겁화를 사용한 것.
그래서 경우의 수가 상당히 좁혀졌다.
지금의 후보.
1. 일본인과 필리핀이 한패.
2. 중국인과 러시아, 필리핀 중 2명이 한패.
그때, 태국인이 말했다.
“꼬마야.”
“응?”
“너 료코랑 한편이야?”
“아니……. 나 악마 아니야.”
“그래. 넌 첫날 끝까지 료코를 죽이라고 했어. 그래서 너랑 료코는 한편이 아니야. 그렇다는 건 악마는 중국인 장 레이 씨와 러시아 이바노프 씨, 필리핀 꼬마인 너, 이렇게 셋 중 하나일 거야.”
“아……. 나 아니야! 나 아니라고!”
이제 손은 태국인에게 넘어갔다.
“이바노프 씨?”
“…….”
“매력천사의 능력은 뭐죠?”
“상대방의 투표권을 가져오는 거.”
그녀가 밤새 생각해둔 능력.
“좋습니다. 그럼 첫날엔 누구한테 사용하셨나요?”
“첫날은 사용 안 했어.”
“그렇군요. 그럼 지금은 그걸 저한테 사용해주세요.”
“뭐?”
“저는 당신을 죽이겠다고 투표하겠습니다. 제 투표권을 빼앗아 당신의 죽음을 막아보세요. 료코 씨, 이바노프 씨한테 천사의 눈물을 먹이는 거, 찬성하시죠?”
“네.”
“좋습니다. 저도 당신을 믿어보겠습니다. 이바노프 씨를 죽이겠습니다.”
투표시간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바노프 3표, 기권 1표, 료코 2표]
그러자 천사가 나타나서 이바노프에게 와인잔에 담긴 천사의 눈물을 내민다.
그리고 이어지는 시간은 찬반 투표.
[찬성 3, 기권1, 반대 2]
자신에게 내밀어지는 천사의 눈물에 기겁한 그녀가 도망갔지만, 소환된 천사는 폭포수 같은 성수를 날려 이바노프에게 죽음을 선사했고, 강백현의 앞에는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누구에게 수호의 빛을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