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너무 강한 적
조강성 하사의 죽음은 일행들에게도 충격이었다.
그건 이진기도 마찬가지.
김종필이 앞서 나가다가 걸음을 멈춘 이진기를 향해 물었다.
“갑자기 왜 멈춰?”
“돌아가자.”
“미친놈아, 갑자기 왜 돌아가자고 그래?”
“단순한 곤충이 아니야.”
“곤충이 아니라니?”
“키메라. 인간과 혼종이 있어.”
“뭐?!”
이진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경사진 비탈길과 하늘에는 모래시계 밖에 없는 하얀 공간.
내려가던 이진기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소년 윤수는 이진기를 붙잡았다.
“지금 와서 돌아갈 순 없어.”
“뭐야?”
“난 살아남아. 내가 증명해.”
김종필이 박윤수의 생각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 미래에서의 기억도 가지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도움이나 될까 싶은 5살짜리 꼬마였는데.
지금은 누구보다도 믿음직스럽다.
‘얼마나 지독했던 환경에서 살아온 거야?’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10년 동안의 경험을 쌓은 윤수.
그의 나이는 일행 중에 가장 어렸지만, 이곳 세계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거인들의 세계는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지금은 단순한 실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거인들의 세계에 진입하면…….
‘모두 죽겠지. 백현이 형도 죽었고, 엄마도 죽었고, 모두가 다 죽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꼬마 윤수가 살아있으니까.’
아공간이 사라진다.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에.
최종 목적지, 여왕의 방.
산란하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 얼굴을 하고 있는 여왕개미의 얼굴을 보며 사람들은 치를 떨었다.
“진기야. 네가 본 게 저거야?”
“그래.”
여왕개미는 한국말을 할 줄 알았다.
독선적인 시선.
자신의 모습을 보며 혐오스런 얼굴을 하는 인간들이 가소롭다는 태도.
“누구부터 죽여줄까?”
그녀의 손짓에 수천 마리의 개미들이 갑자기 지하층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엄청났다.
하지만 박윤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10년 후의 모습으로 변한 박윤수는 누구보다 강했다.
엄청난 속도와 강한 근력은 수백 마리의 개미와 홀로 상대할 정도로 강했다.
‘그래.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해.’
여왕개미는 여왕개미일 뿐.
가장 강한 녀석들은 병정개미와 수개미다.
수개미들은 여왕개미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속도로 윤수 일행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강백현은 그걸 보며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음을 알았다.
“아저씨, 빨리 추격해야 해요. 안 그러면 위험해보여요.”
그런데 미나가 두려워했다.
“오빠……. 신중하게 가자.”
“미나야.”
“아니야. 우리끼린 안 돼. 아무리 봐도 안 돼! 오빠, 내 말 믿어. 어?”
미나의 말에 결국 지체되고 만 일행들.
강백현은 동생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확신이 없었으니까.
반드시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죽음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여왕개미와 수개미들의 전투능력은 모른다.
하지만 미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으니까.
그게 모든 정보를 취합해주니까.
미니맵에서 이진기가 사라졌다.
김종필이 곧이어 사라졌다.
강백현이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왜?”
“죽었어요. 진기 형하고 종필이 형이 순식간에 죽었어요.”
“남은 사람은?”
“윤수 하나뿐. 그런데 윤수가 움직이질 않아요.”
“뭐?!”
여왕개미는 박윤수를 사로잡은 후 미소를 지었다.
“굉장해. 굉장해!”
- 쿨럭…….
피를 토하는 박윤수가 허무한 듯 여왕개미를 쳐다보았다.
‘엄마랑 아빠, 그리고 형들은 이런 괴물과 싸워서 이겼었단 말이야?’
여왕개미뿐만이 아니었다.
병정개미, 수개미들도 자신이 1대 1로 맞붙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고치처럼 생포당한 몸.
‘방심했어.’
거인들의 세계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와 아빠가 지켜준 목숨이 허무하게 날아가게 생겼다.
‘엄마……. 그리고 아빠……. 미안해.’
정선희와 김만철을 떠올리는 박윤수.
그의 성장한 몸이 원래의 몸으로 교체되었다.
* * *
한편, 꼬마 윤수는 10년 뒤의 세계에 떨어진 상태였다.
한 사내가 박윤수를 급하게 찾았다.
“박윤수! 윤수가 어디 갔지?”
“내가 윤수! 나 박윤수.”
“아니, 꼬마야. 너 말고, 중학생 또래로 보이는 형아 못 봤어?”
“응. 몰라. 나도 갑자기 여기 나타났어.”
10년 뒤 성장한 윤수와 바꿔치기된 꼬마 윤수.
녀석은 주변을 바라보다 익숙한 얼굴을 한 액자 속 인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 백현 엉아다!”
“꼬마야. 마스터를 아니? 어떻게 알았지? 마스터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백현 엉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엉아야. 엉아는 지금 어디 있어?”
꼬마 윤수의 말에 중년 남성이 대답했다.
“마스터는 8년 전에 죽었단다. 모두를 살리고 죽음을 택했지.”
“말도 안 돼! 엉아는 살아 있어. 오늘까지만 해도 엉아 봤단 말이야.”
꼬마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자, 사람들이 윤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윤수를 알아보는 한 여성이 있었다.
“박윤수? 윤수니?”
“…….”
“누나야? 미나 누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강미나를 향해 말을 건넨다.
“마스터, 이 아이를 아십니까?”
“네. 잘 알아요. 기적을 부르는 아이. 우리는 윤수를 10년 전에 그렇게 불렀어요.”
“누나……. 아닌 것 같아.”
박윤수의 말에 강미나가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추억이 담은 기억을 윤수에게 보내주었다.
그러자 박윤수가 눈물을 흘렸다.
“그래. 윤수야. 너도 알 거야. 네 선택에 의해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것. 그래서 내가 건네준 기억은 30분만 유효할 거야. 네가 더 이상 실수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윤수가 실수했어. 윤수가 잘못해서 사람이 죽었어.”
“그래. 네 잘못 아니야. 그걸로 인해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살아남은 거니까.”
그때 꼬마 윤수가 사라지고, 과거에 다녀온 청소년 윤수가 나타났다.
녀석은 누구한테 당했는지, 온몸이 난도질당한 채였다.
고치화가 되어 잡아먹히기 전의 청소년 윤수가 외쳤다.
“안 돼! 안 돼! 안 돼!!!!”
미나가 청소년 윤수에게 말했다.
“괜찮아. 윤수야. 여기는 안전해.”
10년 뒤. 용병 하우스를 맡고 있는 수장 강미나의 말에 박윤수가 고개를 떨궜다.
“마스터……. 나 과거에 다녀온 것 같아…….”
“알아. 너 꼬마 때 그런 능력 있다고 말했었잖아.”
“응. 그런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알아. 일단 눈 감아. 너 많이 다쳤어. 치료해줄게.”
“응. 마스터.”
* * *
강백현 일행은 철수했다.
여왕개미를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녀석을 지키는 수많은 호위부대.
거기에 엄청난 산란능력.
도저히 정면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여왕개미를 잡겠다고 나선 것은…….
그리고 윤수는 왜 참전한다고 한 걸까?
도망가기에도 바빴다.
비상사태가 벌어지자, 병정개미들도 미나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수적으로도 너무나 불리하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마련해둔 것은 이미 끝물이었다는 것이다.
외계인의 예상 범주 안이라는 것이었겠지.
인간도 마찬가지.
개미를 가지고 놀다가 지겨우면 죽이기도 한다.
동물을 죽일 때도 있다.
그들의 생명을 인간들과 같은 범주에 놓지 않는다.
외계인 입장에서 지금은 그냥 손절.
왜? 재미가 없으니까.
그들의 눈요기일 뿐이었으니까.
허무했다.
지휘소는 거의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방어선 구축도 힘든 상황이었다.
인간들이 최후의 저항을 해보지만, 식량도 없고, 싸울 여력도 없다.
대통령이 말했다.
“어떻게 된 건가?”
그의 말에 강백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특유의 자신감은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정선희도 옆에 있었다.
“우리 윤수 봤어? 윤수…… 윤수는?”
“아직 살아있어요.”
“그래? 다른 1조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김만철이 아무 말 없이 정선희를 위로했다.
“선희 씨…….”
“나…… 안 돼! 윤수 없으면 안 돼! 만철 씨, 우리 윤수 구하러 가요. 네? 여기선 권능 못 써! 나 진짜 이대론 못 산다고!”
“알겠습니다. 선희씨 가죠. 선희씨의 그 『역소환』 권능을 사용하면 윤수는 구할 수 있어요. 얼른 가요.”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지하였다.
지하에서 엄청난 연기와 함께 개미굴 주변에서 모래먼지가 비산하기 시작했다.
강백현이 미니맵을 펼쳐보았다.
미니맵에 그 많던 개미들이 자취를 감췄다.
아니……. 죽은 거다.
왜? 갑자기 왜?!
[페이즈 3, 여왕개미를 제압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빛의 기둥이 활성화됩니다.]
빛의 기둥이 지휘소 주변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1조가 해낸 것 같습니다!”
“그래. 값진 희생이었네.”
값진 희생.
그건 박윤수가 무슨 짓을 벌인 게 틀림없었다.
박윤수! 도대체 뭘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