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개미사육장
홀로그램 속 개미사육장은 굉장히 복잡했다.
하나의 거대한 통로.
그 통로에 수많은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다.
Ant Colony.
개미들의 서식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희생이 필요할 게 불 보듯 뻔했다.
그때 홀로그램 속 개미굴의 모습도 꺼지고, 불빛도 꺼진다.
백현은 알았다.
그게 다분히 의도적이었다는 것을.
개미들이 불빛의 영향 때문인지 엄청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상에 먹잇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개미들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엄청난 수의 붉은 개미들.
하나하나 개체의 크기는 인간에 비해 작지만, 단순한 힘은 상상 이상.
사각사각.
개미의 입에 물린 상대는 종잇장처럼 가볍게 들어올려진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입에 산 성분을 머금고 있어.”
“산?”
“네. 물린 사람 보세요. 슈트도 녹고, 피부도 녹아요.”
슈트는 수복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피부는 달랐다.
한번 물리면, 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사람들은 더 절망에 빠졌다.
누구하나 사람들을 이끌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백현 일행의 위치는 꽤 후방이었다.
앞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많이 떨어져 있었다.
백현은 윤수에게 물었다.
“윤수야.”
“응?”
“여기에선 어떻게 해야 해?”
미래 예지 능력을 받은 윤수가 일행 중에서는 유일한 희망.
그런데 윤수가 고개를 젓는다.
“윤수는 몰라.”
“몰라? 왜?!”
“지금부터는 몰라.”
미래예지도 기간의 한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정선희의 증폭능력 유효기간은 만 하루.
최복자 할머니의 미래예지는 약 10일인가?
생각이 난 김에 할머니의 위치를 미니맵으로 찾았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래서 일행에게 말했다.
“저 잠시 다녀올게요.”
“어? 어디?”
“같이 가!”
김만철이 따라붙었다.
최복자 할머니가 보인다. 강백현은 할머니를 향해 다가갔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 젊은 친구들이 최복자의 말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긴, 내 옆에 있어야지.”
“그렇습니까?”
조직의 두목 장복남이 최복자의 말을 받아들였다.
“복남아. 이번에도 살고 싶지?”
“네. 그렇죠. 어머님. 옆에서 뭘 할까요?”
“일단 저 친구부터 죽여.”
“네?”
사육장에서 자신을 내동댕이쳤던 녀석을 가리키는 최복자.
그녀가 장복남에게 말했다.
“처리하라고.”
“어머님, 용서해주시면 안 됩니까?! 저랑 10년을 같이 지냈습니다.”
“나 죽이려고 했던 거 기억 안나?! 내 입에서 두 번 말 나오게 하지 마. 지금 당장 죽여!”
최복자가 소리질렀다.
사실 최복자는 날카로웠다.
미래가 자신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사는 방법이 없어? 아니야. 아닐 거야.’
조직원들이 장복남의 신호를 기다렸다.
장복남은 갈등했다.
조직원들은 지금 자신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할머니를 죽이라고 하면 할머니를 죽일 것이고, 똘배를 죽이라고 하면 똘배를 죽일 것이다.
장복남은 똘배를 죽일 순 없었다.
10년지기 동생.
자신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녀석을 배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최복자의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졌다.
“장복수 만나게 해줄게.”
“장복수…….”
“그래. 복남이 네 친동생, 다음번엔 만나게 해줄게.”
“네. 알겠습니다.”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진택아.”
“네. 형님.”
“지금 똘배 처리해라.”
“네?!”
“두 번 다시 묻지 않는다. 지금 바로 죽여.”
똘배가 절망스런 시선으로 자신의 조직원들을 바라보았다.
“형님! 형님들! 왜 그러세요? 우리 같이 지냈잖아요. 가족이잖아요. 안 그래요?! 피로 맺은 형제라고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절 버리시면 안 돼요! 저 형님?! 형님?!”
날카로운 수리검이 똘배의 머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똘배가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넘어갔다.
기이한 방향으로 꺾인 목.
그건 즉사.
* * *
강백현이 최복자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데, 누군가가 길을 가로막았다.
“누구십니까?”
“강백현 씨 되시죠?”
“네. 맞는데요?”
“어머님께서 전달하라는 말이 있어서요. 만나는 건 원치 않으신다면서요.”
“어머님?”
“네. 최복자 어머님이십니다. 지금은 두목님과 함께 저희를 이끌어주고 계시죠. 어머님께서는 강백현 씨에게 여왕개미를 잡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왕개미를?!”
“네. 단, 마지막으로 여왕개미를 죽이는 사람은 윤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윤수가 치료 능력이 레벨 3이 되면 그때 강백현 씨가 알고 싶어하시는 모든 것을 알려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행운을 빌겠습니다. 아! 까먹은 게 하나 있군요.”
“뭔가요?”
“동료 중에 김만철 씨라고 있죠?”
“네. 있습니다.”
“곧 헤어질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자세히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 *
강백현이 씁쓸한 얼굴로 일행들에게 돌아왔다.
김만철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백현의 의향을 물었다.
“백현아, 표정이 왜 그래? 만났어? 할머니가 뭐래? 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못 만났어요.”
“뭐야? 못 찾았어?”
“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아저씨는 뭐하고 있었어요?”
“나? 생각해봤는데, 이제 네 말만 들으려고.”
“네?”
“나 한 번 죽었잖아. 그거 내가 네 말 안 듣고 함부로 싸워서 죽었던 거라며! 지금도 실감나진 않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아. 다시 얻은 생명인데. 안 그래?”
백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앞으로 6개월이 지나면 김만철은 죽는다.
김만철뿐만 아니라 되살아난 모두가 죽는다.
영혼의 돌로 살아난 모든 사람의 생명은 고작 6개월이다.
충격이었다.
개미들에 의해 전선은 계속해서 밀려갔다.
하지만 인간들도 아무것도 안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자, 소그룹을 통제하는 리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친 분들은 뒤로! 한 번도 안 싸우신 분은 앞에 분들과 교대해줍니다!”
그리고 가끔씩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활약하며 전선이 밀리고 있는 곳을 한 번씩 쓸어주었다.
개미들 수백 마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개미들이 더듬이와 다리를 휘저으며 공중에서 디딜 공간을 찾았다.
하지만 헛수고.
공중으로 올라갔으면 중력방향으로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
그냥 떨어지면 개미는 살 수 있다.
공기저항을 많이 받기 때문에.
하지만 염력에 의해 내리받는 힘이 더해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빠삭! 빠삭! 빠삭!
개미들이 땅바닥에 부딪히며 기묘한 소리를 냈다.
기괴한 방향으로 부러지고 끊어지는 개미들의 허리, 다리, 더듬이.
김아람을 보며 남자들이 말했다.
“뭔가 엄청난데 예쁘다.”
“잘못 건드리면 목숨 날아갈 것 같아서 대시도 못할 것 같아.”
“큭큭, 그래도 남자라면 이런 거에 목숨 걸어봐야지.”
“어. 너나 걸어.”
한바탕 수세에 몰렸던 남쪽 지역은 김아람의 활약으로 전세가 인간들 편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김아람은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아람아, 왜 그래?”
최형우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김아람에게 물었다.
“레벨이…… 떨어졌어요.”
“뭐?”
“죽고 나니까, 레벨이 1로 다운 됐어요.”
염력 레벨 1. 죽고 난 후의 부작용.
“레벨이야 다시 올리면 되지.”
“네. 그래야죠. 아저씨, 나 다시는 죽으면 안 될 것 같아요.”
“후후,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 쉬자. 뒤에서 치료 받고.”
“네.”
수천 마리 개미들의 습격. 인간들은 1진, 2진, 3진 등으로 교대하며 최상의 전투력을 유지했다.
그렇다고 피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제 아무리 교대로 상대한다고 해도 사상자는 나오기 마련.
“회복 능력이나 보조 능력자 분들은 뒤쪽에서 사람들 치료해주세요.”
그래도 나름 대처를 한다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그런데 문제는…….
“알을 까고 있어.”
“뭐? 이진기! 다시 말해 봐.”
“개미들이 알을 까고 있다고! 성장속도가 장난이 아니야!”
천리안을 통해 여왕개미의 산란을 확인한 이진기.
다시 세를 불리는 개미들의 경악할만한 번식력.
이진기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보를 알렸다.
알리는 상대는 지휘부.
“여왕개미를 없애야 합니다! 여왕개미가 알을 계속 까고 있대요.”
“지금 굴 안을 어떻게 들어가?! 미쳤어?”
“그래도 들어가야 합니다. 이대로는 제자리걸음일 뿐이에요. 저희한텐 식량도 없고, 물도 없어요. 지금 이대로는 못 버팁니다.”
“3일이라잖아. 그것도 못 버틸까!”
정부 부처 출신 사람들이 급조해서 만든 지휘부는 나름 컨트롤 타워(커맨드센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대통령님! 먹을 물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자 있지 않았어?”
“네. 찾아보겠습니다.”
“그래. 그 친구 찾으면 전장에서 빼고, 후방으로 돌려. 전투보단 보급이 우선이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정보.
“방금 전에 여왕개미가 산란을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곧 대규모 침투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뭐?! 또?! 간신히 막았는데?”
“네. 아무래도 시간 싸움인 것 같습니다. 2시간 안에 습격이 예상됩니다.”
“누구한테 얻은 정보지?”
“엑스트라 페이즈에 참가했던 이진기 사용자로부터 얻은 정보입니다. 태성 4성으로서 천리안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천리안이라……. 그 친구는 지금 어디 있나?”
대통령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방금 전까지 앞에 있었습니다.”
“내 앞으로 데려오게. 그 친구가 나랑 같이 있으면 정보 면에선 무적이나 다름없으니.”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국방부장관!”
“네.”
“별동대를 모집해 봐. 여왕개미를 잡으러 갈 용기 있는 자들로.”
“알겠습니다.”
* * *
『여왕개미 잡으러 가실 별동대 지원자 모집합니다. 지원하실 분은 후방 지휘소로 오세요.』
“미친놈들, 지금 개미들도 못 막는데 무슨 여왕개미를 잡으러 가?”
“그러게. 지금 당장은 여기부터 살고 봐야지. 무슨 병력을 나눠? 지휘부 어떤 머가리 새끼들이야?”
『1진! 30분 후에 3진하고 교대할 겁니다. 슬슬 준비하세요!』
한 번씩 전투를 치르고 교대한 사람들.
어른들은 그들을 다시 전장으로 내몬다.
“으……. 미치겠네. 좀만 더 쉬면 안 될까?”
“형님들! 앞에도 똑같이 힘들어요. 아시잖아요. 다들 힘드신 거.”
한편, 이미 전투를 치르고 후방에서 쉬고 있던 백현은 정선희와 대화하고 있었다.
“선희 누나. 할머니를 살리려면 윤수가 레벨 3이 되어야 된다고 하네요.”
“윤수는 안 돼. 위험한 곳은 못 보내.”
“네. 저도 알아요. 여기가 더 안전하다는 것. 그 사실만 전해드리려고 했어요. 전 선희 누나나 윤수가 행복하길 누구보다 더 바라고 있어요. 저한테는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윤수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엉아, 어디 가?”
“응. 지금부터 여왕개미 잡으러 갈 거야. 엉아 능력이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야.”
“엉아, 미안, 나 이번엔 엉아랑 같이 안 갈래. 엄마가 걱정해.”
“그래. 윤수 결정에 따를게. 엄마랑 있어.”
윤수를 억지로 데려갈 마음은 없었다.
백현은 마음을 접고 김만철에게 말했다.
“아저씨는 어떻게 하실래요? 전 역시 소수정예가 좋은데.”
“…….”
“원래부터 전 아웃사이더라서 단체로 활동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어디 속해서 행동하는 것도 안 좋아하고요. 그래서 지원하려고요.”
“갈 거니?”
“네. 저 이래봬도 4성이잖아요. 미니맵 능력도 있고, 보호막도 잘 써요.”
“바늘 가는데 실도 가야지. 나도 가마.”
“네. 그래야죠.”
백현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미나가 어느새 옆에 붙어서 말했다.
“오빠. 이번엔 나 떼어낼 생각 하지 마.”
“꼭 그래야 해? 여기서 선희 누나랑 있으면 안 돼?”
“안 돼. 지난번에 오빠 죽는 줄 알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사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이제는 좀 자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지킬 자신이.
왜? 이제 보호막 레벨 3이니까.
“그래. 알았어. 같이 가자.”
“응.”
동생의 대답을 들은 백현이 별동대 모집원에게 손을 들었다.
“아저씨!”
“어?”
“여기 셋, 별동대 지원하겠습니다.”
“능력이 어떻게 되시죠?”
“전 보호막 및 자연치유입니다.”
“2개나 되신다고요? 아! 강백현 씨 맞죠?”
“네. 맞습니다.”
“안 그래도 대통령님께서 찾으셨어요. 무조건 데려오라고 하시던데요.”
“네?! 대통령님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