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48화 (48/200)

48화. 전원 탈락

강백현은 놀랐다.

녀석은 김만철과 같은 타입이었다.

동물로 변한 녀석의 움직임은 상상을 초월했다.

네발로 뛰는 동작이 오토바이의 속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더구나 체력 회복속도도 장난이 아니다.

폭발에 의해 불에 그슬린 녀석의 피부가 놀라운 속도로 재생된다.

강백현은 결심했다.

북한 놈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일단 자신이 이 녀석을 이길 방법은 거의 없어 보였으니까.

도로가 거의 끝나가고, 정면에는 화산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 위로 솟구치는 연기.

언제 분화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지대.

하지만 뒤쪽에서 밀려오는 해일이 더 위험할 터.

앞에 북한 녀석들이 보인다.

녀석들은 당당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10m, 환산 거리 500m는 되어 보이는 거리에서 돌멩이가 날아온다.

다행히 미니맵에 그 경로가 표시되었다.

날아오는 직선형 물체.

강백현은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한 번에 10개가 날아왔다.

강백현은 당황하지 않고, 앞에다가 보호막을 쳤다.

일부러 곡선형으로 만든 보호막.

그래서일까? 자신에게 날아오던 돌멩이 3개를 적은 힘으로도 옆으로 흘려낼 수 있었다.

뒤따라오던 곰 녀석이 날아오는 돌멩이 중 하나를 맞고 뒤로 튕겨나며 넘어졌다.

그럼에도 녀석은 불굴의 의지로 다시 도로에 진입, 백현을 계속해서 추격했다.

곰 녀석의 슈트에서 기포가 올라오는 게 포착되었다.

그건 자신의 능력을 한계까지 활성화시킨 것.

백현은 긴장했다.

곰의 속도가 올라간다.

역시 최고 속도는 처음의 것과 차원을 달리했다.

곰이 미친 듯이 쫒아온다.

더구나 저 녀석은 사람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

녀석은 똑같은 작전에 당하지 않았다.

돌멩이가 날아오면 점프하며 피하거나 앞발로 쳐내며, 뒤쳐짐 없이 추격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북한 녀석들과 접근했다는 것.

백현이 오토바이를 버리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보호막으로 계단을 만들어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는 강백현.

그가 올라갈 수 있는 높이의 제한은 없다.

그야말로 허공답보.

러시아 곰 녀석이 목표를 잃고 북한 녀석들과 전투에 돌입했다.

북한 사람들은 당황했다.

밧줄 능력자가 곰의 몸통을 정확히 노려 묶었지만, 곰은 그 밧줄을 잡아 당겨 밧줄 능력자를 자신의 품 안쪽으로 끌고 왔다.

그 이후는 앞발로 샥!

날카로운 발톱에 사지가 찢어지는 밧줄 능력자.

슈트의 자기수복 능력과 증강된 방어력에 의해 간신히 죽음은 모면했지만, 단 한 방에 슈트가 기포를 머금으며, 다음 번 공격은 막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밧줄 능력자에게 다시 달려드는 곰.

그를 향해 한 남자가 소리 질렀다.

“장군님을 위하여!”

그걸 보며 밧줄 능력자가 복명복창하며 자신의 슈트를 벗었다.

“장군님을 위하여!”

슈트를 벗으면 슈트가 폭발한다.

자신이 죽는다. 그러나 곰도 죽일 수 있다.

그런데 곰은 그걸 알았다.

이미 송기영한테 당해서 그걸 의식하고 있었다.

똑같은 것에 두 번 당할 리가 없었다.

밧줄 능력자에게 달려가던 방향이 재빠르게 전환되었다.

콰과과광!

밧줄 능력자가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

곰에게는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한 상황.

더구나 곰이 튼 방향에는 투척 능력자가 있다.

투척 능력자는 원래 근거리에 약했다.

그가 던지는 돌멩이.

하지만 곰은 그걸 앞발로 쳐내며, 투척 능력자의 목을 물었다.

목을 물고는 양옆으로 흔들며 목이 몸에서 떨어지도록 땅바닥에 패대기치기 시작했다.

“동무! 리 동무!”

곰의 힘은 강했다.

몇 번의 패대기에 리 동무의 목이 떨어졌다.

그걸 보며 남은 북한 참가자 둘은 알았다.

자기들도 저 곰을 못 이긴다는 사실을…….

그래서 흩어져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 되어서일까?

하늘 뚜껑이 또 열렸다.

거인이 다시 한 번 나와 세트장에 물을 부었다.

엄청난 양.

갑자기 차오르는 수면.

더욱 위태로워지는 전장.

전투는 이내 막바지.

곰에게 쫓겨 화산지대 반대 방향으로 달리다가 해일에 쓸려가는 여자.

곰의 추격을 막지 못하고 사지가 찢어지는 남자.

북한은 1분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최종 탈락하고 말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1위 : [러시아 : 1914Point]

2위 : [대한민국 : 856Point]

이제 시간문제였다.

백현은 화산지대로 녀석을 유인했다.

정면으로 싸우지 않고 뜨거운 화산지대에서 버티면 승부는 종잡을 수 없어진다.

먼저 죽는 자가 누구일지 승부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해일은 계속해서 밀려온다.

해수면은 높아져만 간다.

그런데 희소식이 들어왔다.

[마지막 2팀이 남았습니다. 경기시간 단축을 위해 화산 분화를 시작합니다.]

쿠르르쾅쾅!

쿠르르쾅쾅!

활화산이 폭발하며 무수히 많은 비산물과 마그마를 분출해낸다.

백현은 확신했다.

이 승부, 50대 50이라고.

버티면 이긴다고.

역시나 곰 녀석이 당황한 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마그마는 순식간에 내려왔다.

백현은 비산하는 파편들을 막기 위해 보호막을 펼쳐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었다.

이제 곰 녀석은 마그마에 빠져 죽을 것이다.

최종 승리는 자신이 확실했고.

그런데 의외였다.

곰 녀석이 해일로 뛰어들었다.

거기에 수영까지 잘한다.

곰 녀석은 자신이 승리했다는 얼굴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강백현이 당황했다.

그때 깡! 깡!

계속해서 날아오는 파편과 비산물.

공중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오히려 해일로 올라간 수면이 더 안전지대.

계속해서 수영을 통해 시간을 버는 곰.

녀석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보호막도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을.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신이 유리하다는 것을.

백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수중전.

역시 곰 녀석은 머리가 좋았다.

하지만 백현은 그가 승부를 피한 시점에서 자신의 승리를 점찍었다.

그가 놓친 부분.

그게 정면에 보인다.

제 아무리 수천 도가 넘는 끓고 있는 마그마라 해도 산 전체를 덮지는 못한다.

산 능선, 암반이 높게 형성된 부분.

그곳과 만난 마그마는 두터운 암반을 녹이지 못하고, 양 갈래로 퍼져 흐르게 된다.

그래서 암반 뒤쪽은 마그마로부터 안전한 장소가 생긴다.

강백현은 보호막을 계단 삼아 그 안전한 장소에 안착했다.

역시나 주변에 마그마가 흘러 뜨겁기는 했지만 버틸 만은 한 장소.

강백현의 입가에서 승리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미안하다. 정면 승부 했으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텐데…….’

백현의 생각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곰이 울부짖었다.

한 시간, 두 시간. 해일로 차오르는 수면에서 곰은 수영을 계속했지만, 그것도 영원할 수는 없었다.

보글보글 올라오기 시작하는 기포.

곰에서 인간의 형태로 변하는 참가자.

그리고 어푸어푸.

물 위에서 버티질 못하고 자꾸 가라앉던 러시아 감독은, 결국 익사하며 허망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러시아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 * *

마그마가 여전히 멈추지 않는 가운데, 하늘 뚜껑이 열리고 아까의 거인이 한쪽만 알이 있는 외눈 안경을 쓴 채 강백현을 쳐다보았다.

강백현은 두려움을 느꼈다.

초월적 존재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

자신을 죽이려는 건 아닌지 겁이 났다.

거인의 손이 데스 아일랜드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손.

그 손에 들려있는 것은 거대한 철제 기구.

그런데 많이 보던 물건이다.

“핀셋?!”

실험도구를 조심히 다룰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도구.

“으아아아악!”

강백현은 도망치려 애썼다.

하지만 마그마가 펼쳐진 곳에서 강백현에게 퇴로란 없었다.

덜덜덜덜.

사지가 떨려오고 오금이 저린다.

젠장! 젠장!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핀셋에 잡힌 강백현의 몸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올라갔다.

엄청난 압력. 눈이 떠지질 않는다.

빠른 속도에 의한 공기의 저항 때문이었을까?

비행기나 우주선이 활공할 때 받는 3배에서 10배의 중력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강백현을 집어삼키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강백현은 본능적으로 보호막을 주변에 펼쳤다.

어느새 올라온 곳은 세트장 밖.

강백현은 놀랐다.

수십 마리는 되어 보이는 거인들이 자신을 든 거인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다.

해석이 되지 않았다.

녀석들의 말이 무언지 가늠이 가질 않았다.

거인 한 녀석이 무언가를 가져왔다.

저것도 익숙한 거다.

화장대에서나 볼 수 있는 분무기.

거인의 행동은 당연하게도 분무기를 뿌리는 거다.

분무기에서 안개 형태의 액체형 비산물이 나왔다.

그 비산물에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

강백현은 맡자마자 바로 무엇인지 알았다.

이건? 페이즈가 끝날 때마다 매번 겪는 그 수면 가스다.

정신이 혼미해져갔다.

의식이 희미해져가는 가운데, 자신이 목격한 그 광경들을 기억에 담으려고 애썼다.

거인의 생김새, 특징, 그리고 주변의 모습들.

의식이 저편으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외쳤다.

좀 더…… 좀 더! 좀 더 알아야 된다고.

하지만 나오지 않는 목소리.

그는 처절하게 저항하고, 또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험체로 전락한 인류는 수십억 중 단 한 명도 그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도, 의식할 수도 없었다.

* * *

강백현이 깨어난 곳은 조선시대를 연상케 했다.

궁궐. 그중에서도 임금이 머무는 처소. 별궁이다.

백현의 앞에는 임금의 복장인 곤룡포를 두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축하하네. 강백현 사용자, 김종필 사용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네!]

어차피 세트장.

앞에 있는 저 사내는 뭘까?

진짜 임금? 아니면…… 연기?!

모든 게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강백현의 옆에 김종필이 있다.

“형? 살아있었어?”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 권능은 부활이라고.”

끈질긴 생명력.

마주보고 싶지 않았는데…….

임금의 복장을 한 사내가 푸르스름한 돌을 꺼내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과 함께 전장을 누볐던 다른 용사들은 모두 안전한 장소에서 부활시켰네. 그럼 약속을 지키겠네. 영혼의 돌을 이용해 자네들은 누굴 살리겠나?]

임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종필이 먼저 자신이 할 말을 내뱉었다.

강백현의 의견은 묻지도 않았다.

“최유미를 살려줘. 페이즈 1에서 나랑 같이 있다가 죽은 애야.”

그런데 임금의 앞에 갑자기 한 여성의 완전한 몸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김종필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강백현은 반대였다.

“형! 최유미가 갑자기 왜 나오는데?! 말이 틀리잖아!”

“난 처음부터 유미를 살리고 싶었어. 그런데 혼자는 안 되니까 기영이나 진기가 필요했던 거고.”

“진짜 쓰레기네. 쓰레기야.”

“쓰레기든 뭐든 상관없어. 유미만 살릴 수 있다면!”

“임금님, 저는 반대입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제 의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백현은 아차 싶었다. 하지만 외계인들이 만든 구조가 생각보다 허술하진 않았다.

[강백현 사용자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겐가?]

“동의하지 않습니다.”

강백현의 대답을 들은 김종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