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47화 (47/200)

47화. 불길한 전조

홀로그램 이후 시작되는 불길한 전조.

쿵쾅, 쿵쾅.

거대한 진동.

섬 전체가 지진이 일어난 듯 흔들렸고, 해일이 일어난 것처럼 파도가 출렁거렸다.

강백현과 송기영은 너무나 큰 진동에 놀라 땅굴에서 빠져나왔다.

그건 현명한 판단이었다. 곧바로 땅굴이 무너져버렸으니까.

섬에 점점 다가오는 커다란 진동.

아직 다리밖에 자라지 않은 송기영이 불안한 듯 말했다.

“백현아, 뭐지?”

“모르겠어요. 미니맵에도 안 잡혀요.”

“무서워. 나 너무 무서워.”

쿵쾅쿵쾅. 거대한 진동이 멈추더니 이번에는 하늘 방향에서 분필 긋는 소리가 들려온다.

끼이이이잉.

사람들은 귀를 막으면서 소리의 근원지인 하늘을 쳐다보았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이 열리고 있었던 것.

뚜껑이 열리고 그 바깥에서 엄청난 크기의 거인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늘은 모형세트장이었다.

섬 전체가 세트장이었다.

그동안 갇혀 있던 곳이 투명한 유리사육장이었다면, 이곳은 섬 그대로를 본떠 만든 세트장이나 다름없었다.

하늘 뚜껑 위의 엄청난 거인이 아래를 쳐다보며 히쭉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양동이 같은 것을 들었다.

백현은 그게 무언지 확실히 알았다.

물.

물을 퍼붓는 것.

갑자기 섬의 지표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바닷가 근처에 있던 동굴이 수몰되고, 리조트가 3층까지 잠긴다.

강백현은 송기영에게 말했다.

“형! 뛰어요.”

“어디로?”

“위로! 무조건 위로!”

섬의 중앙. 가장 높은 부분은 화산지대.

검은 연기를 뿌려대는 화산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데…….

도망갈 길은 거기밖에 없어보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초대형 거인에 의해 하늘뚜껑이 닫히고 떠오르는 홀로그램 자막.

[5팀이 남았습니다. 전투 반경 조정을 위해 룰을 추가합니다. 한 시간마다 수면이 올라갑니다.]

무심하게도 드론이 날아다니며 참가자들의 위치를 비춰준다.

송기영과 강백현은 지친 몸을 이끌고 뛰면서, 드론이 비춘 이진기의 모습을 확인했다.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파도에 휩쓸리는 장면.

그러다가 바다에 빠진 후 헤어나지 못하는 장면.

송기영이 허무한 듯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진기…….”

“같이 다녔어야 되는데…….”

“그런 말 하지 말고 가자. 끝까지 살아야지.”

“네.”

넘실대는 파도에 정신을 못 차리는 참가자들.

이란도 파키스탄 참가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진기가 죽었다.

이란 참가자들도 죽었다.

파키스탄 참가자들도 죽었다.

해일을 일으키는 파도는 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해안가, 리조트, 동굴은 생존하기에 최악의 조건이 되었고,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화산지대가 그나마 안전지대가 되고 있었다.

해일이 결국 리조트를 무너뜨렸다.

도로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알았다. 이대로는 자신도 물에 빠져 죽을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기영이 형.”

“어?”

“오토바이 타요!”

“아…… 어!”

미리 사용법을 알아두었기에 지체는 없었다.

슈트와 밀착하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시동이 걸리는 오토바이.

“형! 꼭 붙잡아요!”

“붙잡을 팔이 어딨어?”

“그럼 다리로라도 제 허리 붙잡아서 고정시켜 봐요.”

아직도 팔이 없는 송기영이 이제 회복된 양다리로 강백현의 허리를 감쌌다.

“오토바이 운전해 본 적 있어?”

“없어요. 그래도 갈게요.”

악셀을 끝까지 당기는 강백현.

자신의 체력이 소모되는 게 실감이 날 정도로 엄청난 고통.

아직 한쪽 팔은 완벽히 재생되려면 먼 상태.

‘치유가 멈췄어. 온몸이 찢어질 정도로 고통스럽고.’

하지만 멈출 순 없다.

‘내 모든 체력을 소모해서라도 최대한 위로 올라가야 돼!’

파도가 쫒아온다.

오토바이가 달려간다.

숲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나무가 쓰러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쌩쌩 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기영이 뒤를 쳐다보며 외쳤다.

“으아아악!”

“왜요?”

“미니맵 안 보이냐?”

“지금 정신없어요!”

“러시아 놈들이 쫒아오고 있어! 미친놈들! 차 타고 쫒는다고!”

* * *

같은 시각.

한국팀의 승리를 예상했던 최복자의 예상이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자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러시아와 북한이 유력한 우승후보.

대한민국이 우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는 상황.

최복자는 담담히 현재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가 그렇지는 못했다.

갑자기 최복자의 곁으로 다가간 한 사내가 할머니의 목덜미를 잡으며 협박했다.

“할망구! 한국이 이긴다며! 대한민국이 이긴다며!”

숨이 막혀오는 최복자가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놓지 못할까?!”

그러자 할머니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사내.

그걸 보며 조직의 두목 장복남이 말했다.

“야! 똘배! 뭐하는 거야?”

“아~ 형님! 저 할망구 얘기 좀 믿지 마십쇼. 저희가 왜 저 노인네 말을 믿어야 하는 겁니까? 형님 변하셨습니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은!”

“형님, 형님 조종당하시는 거라고요. 이용당하시는 겁니다. 저 할머니, 설악산 오를 때 형님 조종해서 자기가 걷지도 않고 다 저희가 돌아가면서 업어오지 않았습니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형님 지시가 있었기에 제가 그동안 가만히 있었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저 할망구 죽여 버리겠습니다.”

부하 똘배의 말에 하나, 둘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녀석들.

장복남은 그들을 막으며 입을 열었다.

“이미 결정한 건 바꿀 수 없잖아! 지금 와서 죽여 봐야 네가 얻을 게 뭐야?”

“하지만!”

“만약에 한국이 지면, 러시아나 북한 선택해서 살아남은 녀석들이 할머니를 죽인다. 그 전까지는 손도 대지 마. 알겠어?”

“네. 형님.”

“알겠습니다. 형님.”

최복자는 피를 흘리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독기 찬 눈으로 똘배를 쳐다보면서도, 어차피 겪을 일이었으므로 크게 대응하진 않았다.

“괜찮으십니까?”

“허리가 나갔어.”

“아…….”

“괜찮아. 윤수라는 꼬마가 바로 치료해줄 거니까. 그리고 날 내던진 녀석 이름이 뭐지?”

“똘배입니다. 저희는 그냥 별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알았네. 나 신경 쓰지 말고, 화면에서 보여주는 거나 지켜보면서 우리나라가 이기기를 응원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용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응. 자네는 내가 믿어. 끝까지 내 사람이 되어 줄 거란 걸 난 잘 알지.”

최복자는 수백 가지 갈래로 분기하는 자신의 미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죽음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윤수의 치료 레벨 3. 그 능력만이 원래부터 자리잡은 질병을 치유할 수 있다.

윤수가 커야 자신이 사는 미래.

그 미래의 경우는 단 하나.

씁쓸한 운명 속에 나중에 적으로 맞서야 하는 사내가 지금 데스 아일랜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강백현, 녀석을 보며 최복자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꼭 살아남아야 한다. 네가 살아남아야 윤수가 레벨 3을 배울 수 있으니까!’

* * *

생존 서바이벌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란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파키스탄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1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259Point]

2위 : [대한민국 : 856Point]

3위 : [러시아 : 655Point]

남은 팀은 세 팀.

강백현과 송기영은 오토바이를 타고 최고의 속도로 질주했다.

그런데 차량이 더 빨랐다.

송기영이 다급한 말투로 강백현에게 말했다.

“더 빨리 안 돼?!”

그런데 강백현의 호흡이 이상했다.

“후-우, 후-우.”

“야! 백현아, 왜 그래?”

“…….”

강백현은 말이 없었다.

오로지 가속, 가속뿐이었다.

러시아가 모는 차량이 바로 옆까지 따라왔다.

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곰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옆문을 열고 오토바이에 뛰어들려 했다.

“으아아악!”

송기영이 비명을 질렀다.

분명 자신을 노리는 게 분명했다.

곰은 한끝 차이로 오토바이를 잡지 못했다.

그 이유는 놀라웠다.

러시아 팀 중 한 명이 운전하다 체력을 다 소모하고 죽어버려 갑자기 차량의 속도가 줄어버린 것.

러시아 팀은 죽은 동료를 바깥으로 버리고, 다음 참가자가 운전석을 잡고 다시 강백현이 탄 오토바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즈음 되니, 이제는 강백현이 걱정이 되었다.

심각한 체력 고갈로 말도 못하는 상황.

“백현아……. 말 좀 해 봐? 괜찮아? 교대할까?”

“형…… 팔 없잖아요. 제가 해야 해요. 웁…….”

백현이 피를 토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이미 사용해서 없는 팔.

운전을 못한다. 젠장!

또 다시 추격이 계속 되었다.

해일은 계속해서 밀려오고, 러시아 놈들은 계속해서 추적한다.

아무리 봐도 이번 페이즈의 우승은 북한.

북한 녀석들은 이미 화산지대까지 도착한 상태다.

송기영은 억울했다. 여기서 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강백현 또한 자신의 최후가 지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송기영이라도 살려야 할 터.

“형, 오토바이에서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왜?”

“못 버티겠어요.”

“안 돼! 뒤에 해일 안 보여? 둘 다 죽는다고!”

“하지만…….”

“다리 줄게. 그거면 버틸 수 있지?”

“형!”

“아니야. 이게 맞아.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너도 알잖아.”

백현은 갑자기 체력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자연치유와 송기영의 젤리능력이 합쳐져 어마어마한 치유 속도를 낸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치유될 리가 없는데…….

강백현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던 기영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미 사라진 상태.

그리고 등에서 떨어지는 촉감.

강백현이 정신을 차린 후, 뒤를 바라보았다.

얼굴과 몸만 남긴 채 오토바이에서 떨어지는 송기영의 몸과 얼굴이 젤리로 변한다.

그는 목숨을 던졌다. 승리를 위해.

강백현이 이기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린 것이다.

“기영이 형! 기영이 형!”

송기영의 남은 몸이 염산으로 변해 뒤쪽에 있는 차량과 부딪혔다.

스르르륵!

차량과 부딪힌 후 차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송기영의 죽음의 결과.

염산 성분의 젤리가 차량의 철과 융합해 피어오르는 연기.

그 탓에 러시아 팀의 시야가 차단된다.

그런데 송기영이 죽으면서 노린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콰아아아앙!

송기영이 입고 있던 슈트가 곧이어 폭발했다.

폭발 범위에 반 이상 노출된 차량.

그 안에 탑승했던 러시아 놈들의 목숨을 제대로 노린 것이다.

흩날리는 먼지 뒤로 강백현이 눈물을 흘렸다.

“기영이 형…….”

송기영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고 있다.

자기가 이겨야만 모두가 되살아나니까.

분명 알고 있는데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제 김종필, 이진기, 송기영, 김아람, 김만철을 살리려면 자신이 살아야 한다.

끝까지 살아남아 최종우승을 해야 한다.

그때, 먼지 뒤로 곰으로 변한 러시아 놈이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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