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46화 (46/200)

46화. 동맹

같은 시각, 이진기와 김종필은 원래 있던 동굴로 숨었다.

일단은 시간 끌기가 목표였다.

한국팀이 1위이기도 했고, 딱히 급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을까?”

“왜?”

“혹시 러시아 애들이나 북한 애들 만나면 어떻게 할까 싶어서. 홀로그램으로 봤을 때, 굉장히 가까웠잖아.”

“백현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

“그렇겠지?”

이진기는 김종필의 생각을 묻고 싶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건데?”

“내가 생각이 있다고 했잖아. 걱정하지 마.”

“그 생각을 말해 봐. 서로 말을 해야 나도 뭔가 말을 할 거 아니야?”

“북한하고 동맹 맺을 거야.”

“뭐?!”

“협상할 거야. 1위 할 때까지라도 같이 동맹 맺자고.”

“어휴~ 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란하고 파키스탄 놈들도 동맹 맺었잖아. 우리라고 못할 게 뭐야?”

“제이피! 우리는 분열됐잖아. 그리고 그쪽은 4명, 우리는 2명, 서로 같은 조건도 아니고. 그리고 이란하고 파키스탄이 동맹 맺은 때랑 지금은 달라. 생존팀이 얼마 없잖아. 다들 죽기 일보 직전일 뿐이라고. 제대로 된 팀은 북한하고 러시아밖에 없을걸?”

이진기는 불안해했다.

냉철함을 잃은 친구.

송기영이 떠나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채, 방황하는 녀석.

고작 생각한다는 게 지금 와서 동맹.

이제 13팀에서 고작 6팀만이 남았을 뿐이다.

이란, 파키스탄, 한국, 러시아, 요르단, 북한.

민주주의하고는 다들 거리가 먼 나라.

아무리 봐도 그들 국가하고 동맹은 힘들어보였다.

그래서일까?

백현은 다른 어느 나라랑도 동맹을 맺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우리끼리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김종필과의 다툼에서도 자신이 한 수 접고, 형들 대접을 해줬다.

그런데 뭐?!

북한하고 이제 와서 손을 잡자고?

이진기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보류하자. 일단 자고 생각하자고.”

“그래. 일단 자.”

동굴 안.

5명이 돌아가면서 망을 보던 불침번도 이제 둘이 되니 피곤해졌다.

그러고 보니 김만철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다.

항상 웃고, 안심하라며 말했던 그의 푸근한 말투.

『너희들 먼저 자. 내가 먼저 불침번 서고 있을게.』

가장 형임에도 솔선수범하던 그의 태도.

불편한 사이일 텐데도, 그는 항상 먼저 다가와주었다.

그래서일까? 며칠 지내지 않았는데도 그의 빈자리가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다.

그러고 보면 강백현 녀석이 대단하긴 했다.

김만철을 설득해서 자신의 편으로 하고, 그를 항상 최고의 컨디션으로 만들어서 다른 사람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가 항상 최고의 컨디션이었으니, 우리 쪽과 다툼이 있다고 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상태, 즉 싸움을 억제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친구가 참 신사적으로 다가왔다.

서로 지쳐 날카로울 수 있는 환경에서 서로에게 떠밀지 않고 돌아가며 쉴 수 있게 했고, 그 어느 순간에서도 동료가 다치지 않는 방법을 고안했다.

어떻게 보면 리더로서 자격은 강백현이 한참 위다.

반면 김종필은 자질이 부족했다.

특히 강백현을 만나고 나서 더 망가졌다.

지금도 자신의 생각이 옳다며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는다.

자신도 생각이 있었는데!

분명 작전이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 말해봐야 서로 역효과란 것을 알았다.

그만큼 오래 지냈으니까.

서로를 너무 잘 아니까.

“자냐?”

“…….”

물이 뚝뚝 떨어지는 동굴 안에서 벌써 가수면에 빠진 김종필.

이진기는 한숨을 내쉬며 자신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드러누웠다.

똑똑.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묘한 한기 때문에 이진기는 추위를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동굴 안, 그림자가 보인다.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도 들린다.

분명 자신 둘만 있어야 할 텐데…….

왜? 여기를 어떻게 알아서?

김종필은 아직도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그때, 아랍어가 들려왔다.

이진기는 놀라 김종필을 깨웠다.

“일어나 봐! 야! 일어나 봐!”

“왜?”

“녀석들이 왔어.”

“어떻게 알고?”

“모르지! 아!”

김종필은 당황했다.

“어떻게 하지?”

“일단 동굴 안쪽으로 최대한 숨자.”

“오케이. 알았어.”

동굴 안. 세 갈림길.

“왼쪽으로 가.”

“그쪽 길 맞아?”

“상관없어. 여차하면 아공간으로 도망가서 돌아가면 되니까.”

“어.”

그런데 그 갈림길을 지나 추격하는 녀석들의 움직임이 소리로 들려온다.

“와! 씨발! 우리가 간 곳을 알고 있나봐.”

“어떻게 알지? 냄새인가?”

“한 번 더 가 보자.”

다행히 또 두 갈림길이 나왔다.

“오른쪽!”

“오케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김종필과 이진기.

그런데 또 녀석들이 같은 방향으로 쫒아온다.

계속해서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막다른 길이었다.

이진기가 말했다.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냐고!”

“어떻게 하긴? 아공간으로 들어가야지. 아공간으로 가서, 퇴로로 도망간다.”

이진기의 불신.

그게 지금 영향을 미쳤다.

이진기가 김종필에게 말했다.

“알았어. 아공간으로 도망치자. 일단 네가 먼저 열어.”

“뭐?”

“나 아직 회복 덜 됐어. 그러니까 네가 먼저 열라고.”

사실 체력은 거의 다 회복된 상태였다. 하지만 이진기는 김종필을 신뢰하지 못했다.

송기영이 떠나고, 강백현이 떠나고, 김만철이 죽은 다음부터 왜인지 모를 정도로 녀석에게 혐오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김종필에게 지시 받는 게 싫어졌던 것이다.

김종필이 아공간을 열었다.

새하얀 백지 같은 공간.

하늘 방향에 떠 있는 모래시계.

이진기가 물었다.

“방향 제대로 계산할 줄 알지?”

“응. 돌아온 방향으로 다시 돌아가면 돼.”

“조심해라! 아공간 깨질 때, 바위틈에 끼어서 죽을 수도 있다.”

“나도 잘 알아. 걱정 좀 하지 마. 다 잘될 거야.”

둘은 아공간에 숨어, 돌아온 길로 다시 역행하기 시작했다.

숨을 몰아쉬면서 뛰고 또 뛰었다.

지속시간은 겨우 10분.

아공간 레벨 1은 10분만큼만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힘들었는지 뜀박질을 멈추고 천천히 걸으며 이진기에게 묻는 김종필.

“천리안으로 잘 보고 있어?”

“다 썼잖아! 12시 넘을 때까지 충전 안 돼.”

“아! 미친! 그걸 왜 다 썼어?”

“생각 안 나냐? 필리핀 애들하고 싸울 때, 내 천리안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피해 보지 않고 이긴 거잖아! 그리고 어차피 백현이 미니맵 능력도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다 쓴 거고.”

“알았어. 일단 도망가!”

그런데 왠지 불안했다.

녀석의 추적기술이 뭔지.

어떤 방식으로 추적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따라왔을까?

처음에는 자신과 같은 천리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천리안은 만능이 아니다.

동굴처럼 어두운 곳에서는 식별이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이 천리안을 쓸 수 있으므로 더 잘 안다.

그럼 냄새?

냄새도 아닐 거라 생각했다.

동굴은 역풍 방향으로 바람이 불었다.

그래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그럼 상대방의 냄새를 맡을 수는 있어도, 이쪽의 냄새를 상대방에서 맡을 수는 없다.

설마…… 미니맵 능력은 아니겠지?

백현이와 같은 미니맵 능력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으면 최악이었다.

벗어날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상대방의 능력을 알아내거나, 외모를 알아내지는 못하지만, 위치를 알아내는 능력만은 너무나 직관적이고, 오차가 없을 정도로 완벽했으니까.

천장에 붙은 모래시계가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

잔여시간 15초.

이제 아공간이 깨지고, 현실 공간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진기에게 불안함이 엄습할 때, 김종필이 말했다.

“불안해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아공간이 깨졌다.

동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날카로운 칼날이 김종필의 가슴을 쑤셨다.

이진기가 친구가 당한 것을 보며 오열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은 전투능력이 없었다.

“으으으으으.”

김종필의 손에서 자신이 찔린 칼과 같은 종류의 칼이 소환된다.

그러나 또 푸욱.

난도질당하는 김종필.

이진기는 김종필의 죽음을 뒤로하며, 자신의 아공간으로 튀었다.

홀로 남은 이진기가 하얀 백지의 공간에서 생각했다.

김종필은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불안해하지 마. 다 잘될 거야.』

왜 녀석은 마지막에 그 말을 남겼을까? 이진기는 아공간의 남은 시간 45분을 모두 도망치는 데 할애했다.

자신의 아공간에서 뛰고 또 뛰었다.

불안감이 엄습했기에 쉬지 않고 도망쳤다.

‘아무리 봐도 천리안은 아니야.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고!’

이진기가 떠올릴 수 있었던 적의 능력은 딱 하나.

백현이와 같은 미니맵 능력.

그가 본능적으로 바다 방향으로 뛰었다.

모래시계가 남은 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3분, 이제 곧 시간이 끝난다고.

제한시간 45분의 기적 같은 시간은 허망한 듯 빠르게 흘러갔다.

주변의 배경이 도화지가 떨어지듯 깨져버리고.

풍덩!

그가 떨어진 곳은 바다 해수면 위.

죽기 살기로 헤엄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파키스탄, 이란 사람들.

으으으으윽!

이진기가 간신히 구토를 참았다.

녀석들이 들고 있는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탓이다.

김종필의 머리가 녀석에게 들려있었다.

잔인한 놈들.

이진기는 바다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찾기 위해 헤엄쳤다.

부서진 목재에 몸을 맡긴 채,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도피를 계속하는 이진기.

그리고 그가 올라오기만을 내륙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키스탄, 이란 참가자들.

이진기는 정처 없이 부유하는 바다에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백현이를 따라갔어야 하는데…….’

* * *

한편 북한 사람들은 요르단 녀석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이 길이 맞네?”

“내레 틀린 적이 없지 않누? 고저 앞만 보고 가시라요!”

청력이 좋은 퓨마 변신 능력자의 말에, 북한 참가자 3명은 요르단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요르단의 두 남녀는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알고 있었다.

상대방이 하나의 능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미하엘과, 채찍을 사용할 수 있는 율리아.

그들이 북한 참가자 4명을 이길 방법은 아무리 봐도 없었다.

미하엘이 자신의 연인에게 말했다.

“율리아. 너라도 도망쳐.”

“안 돼. 미하엘! 난 당신을 버릴 수 없어.”

“당신이라도 살아야 우리 라헬을 살릴 수 있잖아!”

하지만 그들이 도망칠 길은 없었다.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풀숲을 가르는 소리.

인간이라곤 볼 수 없는 엄청난 움직임.

나무를 타고, 나무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놈은 바로 퓨마였다.

슈트를 입은 퓨마가 율리아를 먼저 노렸다.

미하엘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퓨마 능력자의 능력을 무효화시켰다.

퓨마의 모습이 동양인 남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율리아는 녀석에게 채찍질을 선사했다.

능력 무효화에 채찍질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상처 입은 남자.

온몸에는 찰과상이 쉴 새 없이 새겨졌다.

그런데 채찍이 뚝 하고 떨어졌다.

손목에 감긴 밧줄.

북한의 밧줄 능력자에게 잡혀버린 율리아.

미하엘이 소리쳤다.

“율리아!”

하지만 막을 순 없었다.

자신이 밧줄 능력자를 상대하는 순간, 지금 막고 있는 동양인 녀석이 다시 퓨마로 변신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밧줄이 당겨지자, 율리아가 저항하지 못하고 북한군에게 끌려갔다.

그리고 끌려가는 율리아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돌멩이.

빡!

미하엘은 알았다.

율리아가 죽었다는 것을.

죽은 시체를 보며 히죽거리는 북한 놈들.

그중 한 여자가 율리아의 죽은 사체에 불꽃을 내뿜는다.

화르르륵!

불꽃에 태워지는 사체.

미하엘은 연인의 죽음에 절망했다.

그래도 목숨을 포기하진 않았다.

끝까지 살아남아야 율리아를 되살릴 수 있다.

그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아오는 밧줄은 빗나가지 않았다.

미하엘의 다리를 정확히 붙잡았다.

미하엘이 손을 뻗어 밧줄을 무효화시켰다.

그런데 꽉!

퓨마가 미하엘의 목덜미를 물더니, 부러뜨려 버린다.

- 빠각!

거친 소리와 함께 모두의 앞에 뜬 홀로그램 창.

[요르단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중간 성적을 발표합니다.]

1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1259Point]

2위 : [대한민국 : 856Point]

3위 : [러시아 : 655Point]

4위 : [이란 : 342Point]

5위 : [파키스탄 : 117Po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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