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도주
송기영의 말에 강백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럼…… 친구 따라 강남 온 거네요?”
“그렇지. 그런데 너랑 만철이 형님하고 같이 지내보니까 알겠더라. 난 역시 형을 구하고 싶었어.”
“아버지랑 어머니는요?”
“진작에 돌아가셨지. 어릴 때 돌아가셔서 딱히 감흥은 없다.”
“아……. 저랑 같네요.”
“그래?”
공통점이 많은 둘.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회복부터 하고요. 사실 지금 힘들어요. 기포 보이시죠?”
백현의 슈트가 울고 있었다.
“치료해줄까?”
“아니요. 괜찮아요. 저 자연치유 능력도 있거든요.”
“그래?!”
자연치유 레벨 1.
남들보다 회복속도가 빠른 장점이 있다.
이번에 새로 배운 능력.
백현이 이 능력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회복능력이 없으면 한 번의 실수로 끝난다.
보호막도 마찬가지.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해당 페이즈에서는 전투력을 상실하고 만다.
첫 번째 페이즈에서 소화액 때문에 죽을 뻔했을 때 처음 느꼈고, 두 번째 미나가 죽을 뻔했을 때 느꼈다.
그래서 이번 페이즈에서 배운 능력.
그런데 이 능력은 체력 회복도 빨리 시켜줘 능력을 같은 시간 내 더 많이 쓸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덜 지친다.
“이 능력은 저밖에 치유 못해요. 따로 발동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회복속도를 올려주는 것뿐이에요.”
“늑대인간 같은 느낌인가 보네.”
“그런가요? 아무튼 제 목적은 끝까지 살아남는 거예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우승하면 아저씨가 다시 되살아날 테니까요.”
“구하는 건? 누굴 구할 건데?”
“사실 그것까지는 모르겠어요. 아저씨한테 못 물어봤거든요.”
“그래. 일단 우리 끝까지 살아남자.”
“네. 이쪽 방향으로 가요.”
도로 방향으로 가는 백현. 그리고 그 뒤를 따라가는 송기영.
송기영은 확 트인 도로가로 가는 강백현에게 물었다.
“여기 위험하지 않아?”
“괜찮아요.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아……. 미니맵?”
“네. 근데 기영이 형!”
“응?”
“혹시 오토바이나 차 운전할 줄 알아요?”
“알지! 자동차 이래봬도 1종 면허 있는데?”
“잘됐다. 그럼 일단 도로에 있는 오토바이부터 하나 확보하죠.”
도로에 있는 오토바이.
송기영이 만져보는데, 다행히 시동이 걸렸다.
“어?!”
“기영이 형 왜 그래요?”
“이거 느낌 이상한데!”
송기영은 묘한 감각에 놀라 오토바이와 떨어졌다.
시동이 걸린 오토바이가 슈트와 반응한 것.
그가 그 느낌을 말했다.
“이거 슈트랑 붙으면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데?”
“정말이요?”
이번에는 백현이 오토바이에 올랐다.
송기영의 말이 진짜였다.
오토바이를 만지자, 링거를 맞은 것처럼 몸에 있는 무언가가 접촉된 부분으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슈트를 통해 빠져나가는 것은 바로 사용자의 체력.
그러고 보니 오토바이에 기름통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오토바이 옆에 있는 차량으로 이동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량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일부러 이렇게 제작된 거야. 주행하기 위한 연료는 바로 우리들의 체력이고.”
슈트와 반응하는 장비.
그 슈트를 통해 소모되는 착용자의 체력.
놀라웠다.
하긴 보호막도 쓰고, 젤리도 되는데, 이런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난센스.
그런데 소리가 들렸다.
도로를 지나는 바퀴소리.
바람을 가르는 소리.
저 멀리 자동차가 보였다.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백현이 깜짝 놀라 송기영에게 말했다.
“형! 저기 보이죠?”
“응. 봤어.”
“일단 숲속으로 숨어요.”
“그래.”
엄청난 이동속도.
미니맵에 보이는 사람의 수는 대략 5명.
백현이 미니맵을 통해 보이는 이름으로 그들의 국적을 알아냈다.
“러시아 사람들.”
“그래? 현재 3위 애들이지?”
“네. 그런데 사실 순위는 무의미해요. 순위가 전투력을 말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희는 이제까지 정면으로 맞붙어 싸운 적이 없으니까요.”
“응.”
숲속에 숨은 백현과 송기영은 숨을 죽이며 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차량이 멈춰서더니, 러시아 사람들이 그 좁은 차에서 5명이나 내렸다.
백현은 알았다.
우연히 내린 게 아니란 것을.
이곳에 자신들이 있다는 것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내렸다는 것을.
“형!”
“어?”
“도망칠래요? 아니면 싸울래요?”
“꼭 그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해?”
“사실 모르겠어요. 형하고 둘이 러시아 애들하고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건 사실이었다.
러시아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진기 형이 있었으면 좀 편했을 텐데…….’
이러고 보니 이진기의 천리안 능력이 정말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미니맵을 통해 알 수 있는 정보가 있었다.
그것도 희소식.
“형, 다행히 저희 위치를 제대로 아는 것 같진 않아요. 서로 흩어져서 찾고 있어요.”
“그래?! 쟤네들은 어떻게 우리 위치를 아는 걸까?”
“일단 천리안 능력은 아니에요. 저와 같은 허상지도 류의 능력도 아니고요. 그랬다면 저렇게 접근할 리가 없어요.”
“그럼…… 체온인가?”
“아니요. 체온이면 바로 들통 났죠. 그것보다는 냄새로 저희 위치를 파악하는 것 같은데요?”
백현의 추리는 정확했다.
불과 10m 떨어진 곳에서 백현이 있는 방향을 쳐다보는 남자들.
하나같이 울끈불끈. 덩치 큰 사내들이 한 사내를 향해 물었다.
“베레스토프! 여기가 맞아?”
킁킁, 킁킁.
냄새를 맡는 드미트리 베레스토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사람 냄새가 났는데, 갑자기 안 나네.”
“네 코가 잘못된 거 아니야?”
“아니라니까! 내 코 무시하냐? 중국 놈들하고 일본 놈들도 내가 잡았잖아. 이거 분명 한국 놈들이야. 마늘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어.”
베레스토프의 말에 레슬링 감독 알렉세이 페트로프가 말했다.
“베레스토프 말대로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분명 여기 근처에 있어. 인기척도 없이 사라질 리가 없지. 지금부터 수색해!”
“네!”
감독과 선수 사이.
선수들을 장악한 감독의 능력은 바로 수인화.
알렉세이 페드로프가 자신의 몸을 불곰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킁킁.
자신도 냄새를 맡았다.
역시 마늘 냄새가 난다.
한국인 특유의 그 고얀내가!
페드로프가 말했다.
“저쪽이다!”
그러자 베레스토프도 동의했다.
“맞습니다. 저쪽에서 냄새가 납니다.”
“잡아! 멀리 못 갔어.”
“네!”
한편, 강백현은 보호막을 이용해 땅을 팠고, 그 안에 들어갔다.
“백현아……. 괜찮아?”
“네. 조금 무리한 것 같아요.”
백현은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슈트도 보글보글 기포가 장난이 아니었다.
전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러시아 놈들과 만나 위기에 빠졌다.
“보호막 풀어. 안 보일 거야.”
“아니에요. 만약 그들의 능력이 냄새라면, 그들이 떠날 때까지는 풀면 안 돼요.”
“그러다 너 죽어. 능력 과다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눈이 풀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백현은 정신력으로 버티며 말했다.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제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백현은 처음부터 최대한 보호막을 얇고 넓게 폈다.
숨 쉴 공기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넓은 보호막이 문제가 됐다.
숨 쉴 공기도 공기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체력.
그런데 송기영이 고개를 저었다.
“형, 뭐해요?”
“뭐하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송기영이 백현의 뺨에 자신의 팔을 얹었다.
그의 한쪽 팔이 액체가 되어 녹아들어 간다.
편해지는 기분.
체력이 회복되는 느낌.
윤수의 회복능력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슈트를 안정시킬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제는 송기영을 걱정할 차례였다.
“형……. 괜찮아요?”
“어. 으……으.”
팔이 재생되질 않는다.
피로가 회복되지 않는다.
송기영도 앞선 전투로 체력이 고갈된 건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놈들은 자꾸 주변에서 얼쩡거렸다.
“냄새가 분명 이 근처였는데?”
“네. 감독님,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일단 계속 찾아봐! 여기 주변이야. 확실해!”
절망적이었다.
땅속에 숨어있는 송기영과 강백현에게도 그들이 위에 있다는 것이 걸음의 진동을 통해서 세세히 느껴졌다.
원래라면 이진기의 아공간 능력으로 도망친 후, 체력을 온존한 상태로 맞붙는 작전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그래서 송기영이 팔 하나를 더 희생하며 말했다.
“백현아, 최대한 버텨보자. 그러고도 안 되면 누가 죽을지 결정하자.”
“네?”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누구 한 명이 희생하면, 쟤들도 포기하겠지.”
그리고 5분 뒤.
여전히 러시아 놈들이 수색중이다.
“형……. 저 더 못 버틸 것 같아요.”
보호막도 한계.
보호막을 걷는 순간 그들이 냄새를 통해 추적할지 모른다는 부담감.
송기영이 말없이 주먹을 내보이며 말했다.
“가위! 바위! 보!”
그리고 그 결과.
송기영의 패배.
“형…….”
“됐어. 나갈게.”
“아니요! 기다려요! 지금 나가면 개죽음이에요. 그렇게 목숨 버릴 거면, 차라리 형 남은 다리도 나한테 줘요.”
백현이 굳은 의지로 말했다.
송기영이 허무한 듯 웃었다.
“그럼 둘 다 죽을지도 모르는데?”
“형, 말했잖아요. 둘 다 살자고! 그래서 제 팔을 희생한 거잖아요!”
강백현의 말에 잠시 고민한 송기영이 자신의 남은 다리 한쪽도 건네주었다.
몸통과 얼굴밖에 남지 않은 송기영.
그러나 신체를 잃은 것은 송기영뿐만이 아니었다.
한쪽 팔밖에 없는 강백현.
먼저 자신의 팔을 버린 것은 강백현이었다.
‘살 수 있어. 버티자. 그래. 살자. 살아도 같이 사는 거야.’
* * *
강백현은 땅을 파고 들어오기 전에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
“형……. 저 믿죠?”
“어. 당연하지. 너도 희생했는데…….”
양팔, 양다리가 없는 송기영. 그리고 한쪽 팔이 없는 강백현.
백현은 자신의 팔을 미끼로 날렸다.
어차피 자신도 재생이 된다.
자연치유 레벨 1.
거기에 기영이 형의 젤리 능력까지 합쳐지면, 복구되는 데 하루면 충분했다.
자연치유 능력은 머리만 박살나지 않으면 언젠가는 치유되는 능력이었다.
뇌세포만 살아있으면 자율신경세포에 의해 체세포가 만들어지고, 새살이 돋아나는 능력.
문제는?
치유 속도가 굉장히 늦다는 점.
보호막을 이용해 절단한 부위에선 이제 막 새살이 돋아나려 하고 있었다.
사실 백현은 2가지 능력 중에 고민했었다.
김만철의 형수님이 가지고 있던 흡혈 능력과 자연 치유 둘 중 하나.
흡혈 능력은 공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빠른 회복이 가능했다.
겨우 레벨 1일 때 두 사람의 목숨으로 한쪽 팔이 10초 만에 복구될 정도였으니, 공격적으로나 수비적으로나 가히 사기적인 능력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자연 치유.
자신의 치유속도를 극대로 올려주는 능력.
레벨1부터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몸을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단,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늦다는 것.
그 생각도 잠시.
“백현아…….”
“네?”
“나…… 눈 감긴다. 너무 피곤해.”
“저한테 기대고 좀 쉬세요.”
“응. 우리 살 수 있는 거지?”
“네. 제 작전대로 될 거에요. 그렇게 믿고 있어야죠.”
지상.
숲에서는 러시아 팀의 추격이 계속 되고 있었다.
“찾았습니다! 감독님! 찾았습니다.”
“이 미친놈아! 소리를 지르면 어떻게 해!”
사냥감에게 접근할 때는 원래 조용히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기습해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게 기본인데, 봅슬레이스키 녀석은 그게 부족했다.
“아뇨! 다 찾은 건 아니고, 팔! 팔을 찾았습니다.”
“팔?!”
“네.”
절단된 팔.
그건 강백현의 팔목.
“뭐야?”
“감독님, 아무래도 전투가 있었던 모양인데요. 아까 그 냄새랑 일치하네요. 마늘 냄새랑 피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어디로 갔다는 거야? 여기서 안 보여?! 숨은 거 아니야?”
“텔레포트나 투명해지는 능력 그런 게 아닐까요? 냄새가 여기서 딱 멈췄습니다. 더 수색해 봅니까?”
“아니야. 벌써 10분이나 넘게 있었잖아. 투명해지는 능력 같으면 이미 발견되고도 남았고, 텔레포트면 못 잡지.”
“젠장! 아깝네.”
“감독님, 이 냄새 기억해두시죠. 부상당한 녀석이니, 다음에 만나면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철수한다!”
반면 강백현의 보호막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땅굴 안에서 독한 냄새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었으니까.
보호막의 날카로운 단면으로 자신의 팔을 절단하고, 보호막 구 안에 자신의 팔을 넣어 최대한 멀리 던져버리겠다는 작전.
냄새를 분산시켜 상대방의 추적을 막고, 상대방이 멀어질 때까지 땅굴 안에서 보호막으로 냄새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버티겠다는 작전이 성공한 것이다.
숨이 차는 백현, 그리고 피곤해서 이미 기절하다시피 한 송기영.
그 둘은 러시아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땅굴에서 나오지 않은 채, 체력이 회복되어 몸의 상처가 낫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