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위기
10분이 흘렀다.
아공간에서 빠져나온 일행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통한다. 진짜 통한다.
체력 소모가 큰 것이 단점이지만, 위험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그것을 만회한다.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는 백현과 김종필, 이진기에 송기영까지.
아직도 몸이 재생하지 않아 양팔이 없는 송기영이 이진기를 향해 먹을 것을 요구했다.
“진기! 아공간에서 먹을 것 좀 꺼내 봐.”
“체력 딸려서 못 꺼내. 일단 좀 쉬자. 나도 죽겠다.”
다들 얼마나 뛰었는지 머리에는 땀으로 흥건하다.
김종필은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이진기에게 정보를 요구했다.
“얼마나 죽였어?”
“총 6명인 것 같은데? 백현아, 맞냐?”
“네. 진기 형 말대로 죽은 것은 여섯이에요. 미니맵 상에서 아예 사라졌어요.”
“그럼 남은 녀석은 7명이나 되네.”
김종필의 말에 강백현이 자신의 성과를 말했다.
“네. 사정범위 바깥에 있던 2명은 아쉽게도 피해를 주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13명 중 6명을 죽이고, 5명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었는데 죄송하다니…….
김종필은 쓴웃음을 지었다.
‘녀석! 볼수록 매력 있어.’
이진기는 자신의 제3의 시선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괜찮았다. 모든 정보는 파악했으니까.
“천리안 끝. 이제 30분 다 썼다.”
“그래? 정보는 획득했어?”
“백현이 말대로 2명은 무사하고, 5명은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있어.”
“오! 송기영! 염산 젤리 대박인데?”
김종필의 칭찬에 송기영이 어깨를 들썩거렸다.
“아~ 팔 없으니까 이상하다. 다들 뭐해? 박수 안 치고!”
진심 반, 장난 반. 모두의 분위기를 띄우려고 장난스럽게 말하는 송기영.
그러나 친구들이 받아줄 리가 없다.
“이 새끼는 칭찬을 해주면 항상 적당히가 없어. 네 덕이냐? 다 백현이 덕이지.”
“아~ 그냥 기분 좀 내면 안 되냐?”
“응. 넌 기형아라서 안 됨. 양팔도 없잖아.”
“됐거든?”
강백현은 미니맵으로 누가 추적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상대방에서 저희를 막을 방법은 없어요. 드론 타이밍만 잘 잡아서 걸리지 않으면 문제없을 거예요.”
“그래. 체력 좀 회복하고 다시 같은 작전으로 가자.”
“네.”
김만철은 자신이 한 것이 없자 고개를 저으며 백현에게 물었다.
“백현아, 난 뭐하면 되냐?”
“아저씨는 저희 지켜주시면 돼요.”
“그거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가면 안 돼?”
“네. 이게 최선이에요. 사실 그 사람들이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도 모르잖아요. 섣불리 접근해서 리스크를 짊어질 필요는 없어요. 저희 일행의 능력을 극대화해서 피해 없이 처치하면 그게 제일 좋죠.”
강백현은 사실 많은 심정의 변화를 겪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
처음이 어려웠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무의미한 살생은 가급적 피하겠지만, 상대방을 살려줄 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하루가 지났다.
백현 일행의 진행은 순탄했다.
상대방과 멀리 떨어져 체력을 회복하고, 체력을 회복하면 아공간 능력으로 접근해서 죽인다.
생각하는 대로 통했다.
천리안과 미니맵으로 적의 위치를 최종 확인하고. 트랩을 놓으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거나, 재기불능의 상처를 줄 수 있었다.
그사이 다른 국가끼리의 접전도 있었다.
중국과 일본이 러시아에 잡히고, 북한은 미얀마를 잡았다.
그래서 남은 국가는 여덟.
깊은 밤.
동굴에서의 쪽잠을 자기로 한 백현 일행.
잠시 볼일을 본다며 나갔던 김만철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와선 말했다.
“다들 피곤하지? 내가 불 좀 피우려고 부싯돌 좀 구해왔어.”
“아~ 형님, 저 가스레인지 있는데…….”
송기영과 함께 아공간에 생활용품을 짱 박아두었던 이진기의 말에 김만철이 미안한 듯 말했다.
“아, 불 있었구나. 그럼 땔감이라도 구해와야겠네.”
“괜찮아요. 이불도 아공간에 넣어뒀어요. 일단 그거 덮고, 추우면 그거 태우면 돼요.”
“그래?”
시간이 흐르지 않는 아공간. 그건 게임에서의 인벤토리 창고와도 같았다.
리조트에서 빼낸 물품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불, 베개, 거기에 촛불에 가스레인지까지.
김만철은 눈치를 보다가 동굴 구석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백현의 옆도 아니고, 자신들의 옆도 아니다.
스스로 아웃사이더의 위치를 고수한 것.
그것을 보며 김종필이 이진기에게 눈치를 줬다.
“어휴~ 야! 형님 지금 분위기 모르냐?”
“왜? 뭐가? 내가 뭘 했다고?”
“아니다. 됐다! 백현아! 너 잠깐 이리 와 봐.”
“네.”
강백현은 김종필의 부름에 그의 앞으로 갔다.
그러자 김종필이 강백현을 타이르듯 말했다.
“야! 네 작전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이건 아니잖아. 맞지?”
“뭐가요?”
“만철이 형님 표정 안 보여? 형님만 아무 임무도 안 주는 거,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저희 지켜달라고 임무 드렸잖아요.”
“그거 말고!”
“아저씨는 제가 형들보다 더 잘 알아요. 금방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리고 위험을 사서 하시는 스타일이라서, 조금 말릴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김종필이 강백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너 군대 다녀왔냐?”
“아니요.”
“형들이 너보다 10년 이상 더 살았고, 너보다 밥 10년 이상 더 먹었어. 넌 지금 남자의 자존심을 건드는 거야.”
“내일 아저씨랑 잘 얘기해볼게요. 일단 피곤해서 자겠습니다.”
강백현의 말에 김종필이 고개를 저었다.
‘아~ 참, 얘 진짜 다루기 힘드네. 내가 어디까지 해야 돼?’
오락가락.
하루에도 감정이 불과 물을 오가는 김종필.
이진기는 생각했다.
냉철하기만 했던 종필이가 자신보다 뛰어난 동생 백현이를 만나 질투한다고. 괜한 오바한다고.
“야! 제이피!”
“어?”
“잠이나 자! 피곤해 죽겠다. 만철이 형님!”
이진기의 부름에 반갑게 대답하는 김만철.
“어?!”
“죄송한데 불침번 초번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피곤해 죽겠네요.”
“어?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할게!”
“감사합니다! 자자! 송기영! 젤리쿠션 만들어줘.”
“미친 놈!”
“크크, 자자!”
* * *
그리고 오늘은?
대한민국이 베트남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히트 앤 런.
아공간을 통해 접근하고, 트랩을 설치해 도망가는 똑같은 패턴.
기존에 추구했던 방식.
탐색 능력이 없는 베트남은 저항할 방법도 없이 송기영과 강백현의 염산 구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한 남자가 살아남았다.
몸이 물컹물컹해지더니, 물로 변해 바닥에 쏟아졌다.
잠시 후, 쏟아진 물이 진동을 일으킨다.
부르르 떨며, 다시 합쳐졌다.
물이 합쳐지자, 원래의 형태, 인간이 되었다.
녀석은 염산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물을 다루는 능력자라서 그럴까?
지친 강백현이 숨을 헐떡이는 형들에게 말했다.
“철수하죠.”
그런데 김만철이 갑자기 화를 냈다.
“왜! 쟤 하나밖에 안 남았잖아.”
“한 명이라도 위험할 수 있어요. 빠져요.”
“기회 좀 주라. 내가 처리할게.”
“안 됩니다. 아저씨, 돌아가요.”
김만철이 상대방의 슈트를 확인했다.
녀석의 슈트에서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고 있다.
그건 즉 능력을 더 이상 쓰기 힘들다는 것.
“이것 봐. 얘 간신히 살아남은 거라니까!”
그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종필이 백현을 향해 말했다.
“백현아, 형님 보내드려.”
“하지만!”
“슈트도 거의 끝나가잖아. 죽기 직전이야. 살아남아서 원한을 가지고 복수하기 전에 지금 끝내는 게 나아. 형님! 가세요!”
“그래! 종필아, 네 말 믿고 간다.”
“네! 다녀오십시오!”
강백현은 화가 났다.
하지만 인생 선배, 형.
한국인의 유교사상에서는 형이 서열이 위.
“…….”
하지만 손을 부들부들.
주먹을 꽉 쥐는 강백현을 보며 김종필이 물었다.
“넌 만철이 형님이 왜 저러는지 이해 가니?”
“저도 압니다. 우리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그러는 거겠죠. 종필이 형이나 저나, 진기 형이나 기영이 형이나 지금 완전 녹초 돼서 더 그러는 거죠.”
“알면 다음부터 막지 마. 그게 형님을 위한 일이야.”
“위험할 수 있어요! 전 그런 거 싫어요!”
강백현의 말에 김종필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대들어? 남자의 자존심을 꺾는 건 잘못된 행동이야. 네가 인생 경험이 없어서 남자를 잘 몰라서 그런데, 군대 다녀오면 다 알아!”
“이해는 해요! 왜 못 한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정보 없이 싸우면 위험합니다. 완벽한 상황에서만 싸우고 싶다고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강백현! 그만! 어디서 대들어?! 진기야. 이 새끼 봐라! 송기영, 얘 좀 교육시켜 봐. 아~ 짜증나.”
김종필의 고함.
그래서일까?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대답한 백현.
“종필이 형한테 화낸 것은 사과할게요. 죄송해요.”
그리고 그의 사과를 받아주는 김종필.
“그래. 형님 돌아오면 뭐라고 하지 말고 잘하셨다고, 고생하셨다는 말만 해줘. 너 은근히 만철이 형님 무시하는 경향이 있던데 그거 고치고!”
“…….”
같은 시각, 김만철은 상대방의 능력이 이제 한계인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전신을 날렸다.
한 방이면 끝. 이제 그의 입에서는 단말마가 나올 것이다.
“용서하길……. 갓 블레스 유.”
김만철이 베트남의 마지막 생존자 빠따빠따의 목을 꺾으면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런데 목이 꺾인 상대가 웃음을 짓고 있다.
분명 곧 죽을 텐데…….
“왜 웃지?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녀석의 몸이 물로 변하다가 멈춘다.
역시 녀석은 한계였다.
슈트가 버티질 못한 것이다.
그런데 녀석의 슈트가 갑자기 벗겨졌다.
피부를 매끈한 물로 바꿔 강제로 벗은 슈트.
그러고 보니 슈트에 엄청난 기포가 생성되어 있고, 붉게 변한 상태에서 불안정한 진동이 느껴진다.
김만철이 그것을 포착했다.
당황했다. 슈트를 벗으면 슈트가 터진다.
지금은 도망쳐야만 했다.
“백현아! 백현아!”
자신을 도와줄 동료의 이름을 부르며, 온 힘을 다해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그러나 시간을 주지 않았다.
슈트의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김만철은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쿠와와와왕!
강력한 진동과 소음이 주변에 울려퍼졌다.
강백현은 놀랐다. 다른 일행도 놀랐다.
물을 쓰는 능력자 주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형지물.
그리고 뜨는 메시지.
[베트남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중간 성적을 발표합니다.]
1위 : [대한민국 : 1056Point]
2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752Point]
3위 : [러시아 : 655Point]
4위 : [요르단 : 497Point]
5위 : [이란 : 142Point]
6위 : [파키스탄 : 117Point]
드론이 무심한 듯 강백현 일행을 비췄다.
강백현은 폭발이 일어나 먼지가 자욱한 곳을 향해 김만철을 불렀다.
“아저씨! 아저씨! 어디예요?! 어디 있어요?”
그런데 드론은 무심하게도 그곳을 비추지 않고 다른 국가의 생존자가 있는 장소로 날아갔다.
강백현은 드론의 움직임이 이상함을 눈치챘다.
생존자라면 반드시 비추고 움직이는 드론.
그런데 아저씨가 있는 장소를 비추지 않고 갔다는 것은?
불안해졌다.
초조해졌다.
그래서 달려갔다.
먼지가 자욱한 곳으로 달려가 땅을 헤집으며 아저씨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았다.
보이지가 않는다. 만져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미니맵을 열었다.
아저씨를 찾기 위해 그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김만철! 김만철! 김만철 비춰! 김만철 비추라고!’
미니맵이 고장난 것 같다.
이름만 부르면 위치를 자동으로 찾아내던 검색 기능이 오늘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아저씨! 장난치지 마요! 어디 있어요? 어디 있어요?!”
김만철의 사망.
그걸 보며 분노의 감정을 비명으로 토해내는 강백현.
“으아아아아!”
그것을 보며 김종필이 고개를 떨궜다.
“나 어떻게 해. 만철이 형님 죽은 거야? 진기야? 진기야!”
이진기는 천리안으로 모든 것을 파악한 후, 고개를 저으며 김종필의 어깨를 토닥였다.
“말해 봐. 진짜 돌아가신 거야?”
“그래.”
절망. 말렸어야 하는데…… 오히려 부추긴 꼴.
“나 어떻게 하지?”
“뭘 어떻게 해? 백현이한테 사과해. 진심으로 빌어.”
“…….”
김종필의 당혹스런 표정.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친구의 차가운 시선.
김만철이 죽은 충격에 김종필이 몸을 덜덜 떨며 강백현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하지만 분노한 강백현은 보호막을 파편으로 만들어 김종필 앞으로 쏘아내며, 그가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