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복제능력의 약점
백현은 현저히 좁은 아공간을 만들어낸 김종필의 백지세계를 보며 깨달았다.
‘레벨이 낮은 거야. 역시 복제 능력은 만능이 아니었어.’
하지만 티를 낼 생각은 없었다.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었다.
어떻게 수습한 분위기인데.
괜한 긴장감을 유발해서 적대적인 상황을 만들 정도로 백현은 무지하지 않았다.
작전 설명을 시작하는 강백현.
“일단 아공간 범위 내에선 기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습?”
“네. 천리안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으니, 아공간이 깨짐과 동시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거죠.”
“그거야 당연한 거고. 기습은 누가 하는데?”
김종필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가장 전투력이 높은 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 멤버는 당연히 김만철이다.
“나?”
“아저씨의 신체 강화 능력은 기습에 유리하죠. 하지만 전 아저씨를 말한 건 아니에요.”
“그럼 누구?”
“저요.”
“너?!”
강백현의 능력은 보호막.
이미 유리 사육장에서 그의 능력을 확인했었다.
“가둔다는 거지?”
“아뇨.”
“그럼?”
“상대방의 몸과 제 보호막을 겹칠 생각입니다. 원래는 불가능한 방법이지만, 아공간 능력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건 이번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을 거고요.”
상대방의 몸 안에서 보호막을 생성시킨다?
김종필이 두뇌를 재빠르게 회전시켰다.
단순한 보호막. 상대방을 가두는 용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강백현이 떨어지는 모래시계를 보며, 자신의 옆에 보호막을 생성시켰다.
그런데 보호막이 길쭉한 기둥 모양이다.
“저거 네가 만든 거야?”
“네. 저는 보호막 레벨2. 자유자재로 보호막의 모양을 구성할 수 있어요. 때로는 무기가 되고, 때로는 방패가 되죠.”
강백현이 만든 조형물의 위치.
그러고 보니 절벽 옆에 놓여 있던 작은 느티나무.
김종필은 그제서야 왜 이 녀석이 아공간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설마, 이 실험을 하려고?!’
하지만 강백현이 아공간으로 유도한 것은 단순한 실험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을 뿐.
본래 목적은 상대방의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사실 아공간에 들어왔을 때부터 주도권은 강백현과 김만철에게 있었다.
슈트가 부글부글.
김종필의 능력은 이미 한계, 이제 막 회복한 이진기와 상대방을 회복시켜 자신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송기영에겐 싸울 힘이 없었다.
그래서 리스크 없이 상대방 능력의 한계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공간은 체력소모가 심한 능력.
1시간 동안 유지가 가능한 복제 능력으로 아공간을 사용하는 김종필. 그는 단 10분도 버거워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김종필은 끝내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백현은 자신들의 전투력을 확인하러 온 것이란 것을.
그들을 장기말로 활용하기 위한 작전을 벌써부터 세우고 있었다는 것을.
“종필이 형, 이제 아공간이 깨질 때가 된 것 같네요.”
“그래. 한번 네 생각이 맞나 보자.”
“넵.”
아공간이 사라지고, 현실세계로 돌아온 다섯 명.
그때 짜자자작!
커다란 나무가 천둥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와 정확히 겹쳐진 보호막.
보호막의 강도를 버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쪼개지기 시작하는 느티나무. 결국 나무는 양쪽으로 찢어지며 최후를 맞이했다.
“대박! 보호막이 이렇게 활용 가능했단 말이야?”
강백현은 숨을 몰아 쉬는 김종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사라진 보호막이 강백현의 손에서 동그란 형태가 되어 있다.
공을 튀기듯 보호막을 통통 제자리에서 띄우길 반복하는 백현.
그러더니 발로 뻥!
원형으로 된 공 모양의 보호막을 쓰러진 느티나무를 향해 차버렸다.
“너는 도대체…….”
김종필은 확신했다.
다섯 명 중에 최강자는 단연코 강백현이라고.
염력을 쓰는 김아람보다 더 강한 녀석이 이 녀석이라고.
지금 그 녀석이 자신의 힘을 보여주며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놀란 김종필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녀석이 배신하면 어떻게 하지? 이거 맞붙어서 이길 확률이 거의 제론데?’
그런데, 여기 눈치 없는 사내가 있다.
“우와! 백현이 너 엄청 세구나? 대박!”
송기영이 갑자기 강백현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었다.
김종필이 놀랐다.
‘저 바보새끼! 지금 자기가 세다고 과시한 거잖아! 지금 우리 놀리는 거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쟤가 어떻게 나올지 알고 저리 붙어? 죽으려고 환장한 거야?’
그런데 강백현의 반응이 의외.
송기영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그는 그냥 웃으면서 대답했다.
“헤헤, 기영이 형, 괜찮았죠?”
“어! 우와! 대박이더라. 너랑 나랑 잘 맞을지도.”
김종필은 혼란에 빠졌다.
‘뭐지? 싸우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
강백현은 김종필이 머리를 굴리거나 말거나, 송기영과 대화에 삼매경이었다.
“저랑 잘 맞는다고요?”
“응. 혹시 보호막 그릇 형태로 만들 수 있어?”
“그럼요!”
“그럼 만들어 봐.”
송기영의 주문에 강백현이 보호막을 반구 형태로 만들었다.
그러자 송기영이 자신의 손바닥을 반구 형태의 그릇에 담았다.
액체 젤리 상태로 변하는 송기영의 손.
그런데 아까와는 색깔이 다른 액체 젤리.
이번에는 소름끼치는 검은 색이다.
“이제 뚜껑 닫아봐.”
“네.”
송기영의 손이 또 다시 떨어져나갔다. 그러나 괜찮았다.
스스로 재생 가능하니까.
아까와 같은 축구공 형태 안에 검은색의 액체 젤리가 담겨있다.
“백현아, 그거 아까 그 느티나무에 던져 봐.”
“이 액체가 뭔데요?”
“일단 던져 봐.”
“알겠습니다.”
송기영의 주문에 원형으로 된 보호막을 느티나무에 던지는 강백현.
그러자 보호막이 터지며, 그 안에 있던 검은 액체가 주변에 뿌려진다.
솨라라라락!
기분 나쁜 연기와 함께 녹아내리는 나무.
백현이 그걸 보며 물었다.
“산?”
“그래. 염산. 나는 액체 젤리를 두 가지 형태로 바꿀 수 있어. 치유용 젤라틴과 염산으로.”
강백현이 미소를 지었다.
“기영이 형하고 저하고 완전 잘 맞겠는데요?”
“그렇지?”
의외.
김종필 일행의 공격수가 송기영이었다니.
강백현은 웃으며 송기영한테 말했다.
“형! 우리 같이 팀 해요!”
* * *
사상자가 나오지 않자, 하위 팀들은 엄청나게 돌아다녔다.
6시간 룰.
6시간 안에 사상자가 나오지 않으면 최하위 팀은 죽고 만다. 그게 룰.
드론의 패턴은 정형화되고 있었다.
경우의 수가 많으면 패턴 분석은 식은 죽 먹기.
드론이 움직이는 패턴 1.
팀원들이 모두 죽으면 활동한다.
패턴 2.
사상자가 5시간 30분 동안 나오지 않았을 때, 경고 메시지를 주기 위해 움직인다.
찰스의 목소리가 전달되었다.
물론 홀로그램 자막이니까 모두가 이해했다.
[5시간 30분 동안 아무도 죽지 않았어요. 최하위팀! 분발해주세요. 그럼 모두의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해드리겠습니다.]
홀로그램의 등장과 함께 비행하는 드론.
하지만 드론이 아무도 없는 곳을 비추고 있었다.
“뭐지?! 뭐야!”
파키스탄팀은 당황한 채, 이란팀에게 물었다.
“너희 투명 능력자 있어?”
“아니, 우린 그런 능력자 없어.”
“근데 드론이 왜 저길 비춰?!”
화염, 독화살, 얼음, 거기에 RPG-7까지.
파키스탄과 이란 참가자들의 모든 공격이 빈 공간에 쏟아졌다.
그런데 아무 반응 없는 드론.
그때 파키스탄의 실질적인 두목, 압살라가 말했다.
“뭐지? 여기 근처에 있는데?”
“어떻게 알아? 뭐가 어떻게 된 건데?”
“내 허상지도에는 그게 나와! 바로 옆, 여기 있는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어디? 어디?”
강백현과 같은 능력.
그러나 아공간 능력을 파악하지 못한 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
바로 옆에 있다고 나오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름이 뭔데?”
“몰라. 이상한 글씨라서 못 읽어. 한국어니까 한국인이겠지.”
반면 같은 허상지도(미니맵) 능력을 쓸 수 있는 강백현은 미소를 띤 채, 이진기에게 물었다.
“진기 형, 여기 위치 맞죠?”
“응. 천리안으로 보고 있다. 확실해.”
“기영이 형, 좀만 힘내줘요.”
“아…… 응.”
송기영의 양팔이 모두 검은 액체 젤리로 변해 강백현이 만든 보호막 구슬에 담겼다.
천리안과 미니맵으로 정확하게 위치를 잡고, 상대방의 위치에 보호막 구슬을 트랩처럼 놓아 아공간이 깨지길 기다리는 작전.
상대쪽에서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절대 막을 수 없지만, 백현 일행은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아공간 사기네요.”
“네 보호막도 사기야. 미니맵도 사기고.”
“천리안도 마찬가지인데요.”
이진기와 강백현이 서로 칭찬하자, 송기영이 말했다.
“야~ 내 젤리도 칭찬 좀 해줘.”
“아…… 응. 잘했어!”
“뭐야~ 그 반응은……. 시큰둥하잖아.”
그리고 소외된 또 다른 사람.
“백현아, 난 뭐해야 하냐?”
“아저씨는 그냥 혹시 모를 위험에 처하면 그때 저희 지켜주시면 돼요.”
“위험하지 않으면?”
“그게 가장 좋은 거죠. 제 생각대로라면 위험한 일도 없을 거고요.”
김종필은 강백현이 시키는 대로 주변에서 기다렸다.
이진기가 만든 아공간 모래시계가 보인다.
그걸 보며 강백현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진기 형, 다 설치했어요. 천리안으로 상대방 최종위치 다시 한 번 확인해주세요.”
염산 폭탄.
상대방의 몸과 겹치게 염산이 담긴 보호막을 설치한 후, 아공간이 무너지면 상대방의 몸 안에서 염산이 터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변에만 있다면, 보호막이 터지며 염산이 비산되어 끔직한 피해를 유발한다.
그래도 전부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의 틈이라도 보이면 저쪽은 다수여서 위험할 수 있었다.
이게 통하는 건 단 한 번뿐.
상대방이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피할 수 있는 간단한 트랩.
상대방의 수는 많았다.
반격당하면 100프로 죽는다.
하지만 강백현은 그들로부터 빠져나갈 방법도 다 강구해 놓았다.
“모래시계 20초 남았습니다. 종필이 형, 스텐바이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이진기가 만든 아공간 안에 또 다른 아공간을 여는 김종필.
“미치겠다. 어떻게 이걸 생각하냐?”
“복제 능력자인 형이 대단하신 거예요.”
“인마! 네가 대단한 거지. 공간도 겹쳐지는지 확인해보자며! 아공간에서 아공간으로 넘어갈 생각을 어떻게 하냐고!”
강백현은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지금은 실전.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상황.
“시간 됐습니다. 다들 종필이 형이 만든 아공간으로 넘어갑니다.”
강백현의 보호막 최대 사정거리 3m.
그가 만든 원형염산폭탄 보호막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상태.
이진기가 만든 아공간이 깨졌다.
파키스탄과 이란 사람들 앞에 허상지도에서만 보이던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인다.
녀석들은 알았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요상한 능력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녀석들이 이상한 검은 틈으로 도망치고 있다.
후방에서 부하들을 지휘하던 파키스탄 두목과 이란 두목이 외쳤다.
“침입이다! 죽여! 죽여! 죽이라고!”
“총공격!”
그런데 꿀렁꿀렁한 느낌에 당황한 부하들이 비명을 질렀다.
“우웩! 으으으으아아아아아!”
몸에 들어간 주먹만 한 보호막의 이질적인 느낌.
액체가 든 구슬이 주변에 여러 개.
“피해! 다들 도망쳐! 도망치라고!”
강백현은 다른 차원의 아공간에서 현재 설치한 보호막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출렁이는 액체.
속으로 주문을 외치며 주먹을 꽉 쥔다.
‘해제!’
풍선이 터지듯 보호막이 터지고.
미리 담아둔 염산이 각자의 몸 안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터져버린다.
비명이 아까와는 달랐다.
“으아아아악!”
“커어어어엌!”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몸 안에서 터진 자에겐 장기 손상으로 죽음을.
몸 밖에서 터진 자에겐 돌이킬 수 없는 화상을.
피부가 녹아내린다.
죽음이 다가온다.
어느새 다른 아공간으로 사라진 대한민국 참가자들.
비열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종 놈들!
파키스탄의 압살라는 부하들이 처참하게 당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생존자는 겨우 셋, 그것도 얼굴, 팔, 다리 등이 염산에 노출되어 비명을 내지르는 녀석들뿐이다.
뒤쪽에 있던 이란의 하바스도 마찬가지.
죽은 동료가 널려 있고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전투 불능이 된 이들이 도움을 청하고 있다.
“압살라! 압살라! 그쪽은 어떻게 됐나?”
“피해가 심각하다.”
각각 파키스탄과 이란을 통솔하던 두 리더는 강백현의 계략으로 50% 이상의 부하를 잃고 말았고, 그들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르!』
이슬람 경전.
죽은 동료를 보며 알라 신의 축복을 비는 두 국가의 두목들.
그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압살라와 하바스는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
피로 이뤄진 동맹. 파키스탄과 이란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대한민국 녀석들을 죽은 이들의 길동무로 만들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