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유대
백현 일행과 달리 유리 사육장 안에 남은 동료들.
최형우가 오빠를 떠나보내고 울고 있는 미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백현이는 괜찮을 거야. 그만 울어. 아저씨 믿지? 아저씨는 거짓말 안 하잖아.”
“아저씨, 우리 오빠! 우리 오빠 정말 살아올 수 있을까요? 제가 같이 갔어야 했는데! 오빠가! 오빠가 절 막았어요.”
“백현이 입장에서는 널 위험에 빠트리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미나, 널 위해서 목숨도 걸었던 건 너도 잘 알잖니? 잘된다고 생각해. 살아온다고 생각해. 네 스스로 자책감을 가져서는 안 될 일이야. 백현이 스스로 선택한 일이잖니.”
“네. 그래도…….”
‘사장님, 이 자리에 계셨어야 하는데……. 어린 친구들한테는 이런 시련이 너무나 가혹하네요. 제가 가족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자녀분들은 옆에서 지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제 도리겠죠?’
최형우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미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런데 미나를 걱정하는 건 최형우뿐만이 아니었다.
꼬마 녀석이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미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누나.”
“응?”
“울지 않아도 돼. 엉아가 이겨.”
“뭐?”
“백현 엉아, 안 죽는다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아이의 말에 미나의 마음이 조금은 풀어졌다.
“정말이지?”
“응. 누나는 내 마음 읽을 줄 아니까, 거짓말 아니란 거 알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응.”
* * *
페이즈 2를 통과한 생존자들이 하나둘 유리 사육장에서 깨어났다.
이번 사육장은 도착한 순서대로 10명씩 끊어서 같은 사육장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아는 얼굴들이 많다.
“다들 괜찮아요?”
“우와! 우리 통과했어요! 맞죠? 우리 살아 있는 거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뒷분은 어떻게 되셨나요? 같이 오신 거 아니셨나요?”
“포인트 부족 때문에 중도 포기하셨어요. 숲속에서 동물 잡아서 포인트 올리고 따라오시겠다고 하셨는데…… 큰 폭발음이 들려서……. 아마도, 흑흑……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러셨구나. 울지 말아요.”
슬픔의 장이 열렸다.
생존율은 누가 봐도 역대 최저.
600만 명의 생존자 중 남은 생존자는 얼마나 될까?
일단 어린 아이와 노인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정상적인 크기여도 설악산 등반은 어려운데, 작아진 크기로 정상에 오른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기적.
아무리 능력을 주고 전용 슈트를 준다 하더라도, 사흘 밤낮을 걸어도 도착하기 힘든 거리.
젊은 사람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현재의 생존에 감사할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소리가 들려온다.
외계어.
홀로그램 찰스가 하는 말이었다.
“엑스트라 페이즈가 열렸습니다. 전장은 데스 아일랜드, 죽음의 섬이죠.”
데스 아일랜드의 지도가 모두에게 보여진다.
찰스는 말을 이어갔다.
“살아 돌아온 한 팀에게는 죽은 동료를 부활시켜주는 엄청난 특혜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지역이 좁아 선착순 10명에게만 참가 기회를 드렸어요.”
그런데 한국인 말고 다른 외국인도 보인다.
그걸 보며 놀라는 사람들.
“네. 맞습니다. 아시아 국가 대항전입니다. 정확히 보셨군요.”
드론이 촬영한 영상.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많은 사람들.
그들이 목숨을 걸고, 동료를 부활시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들이 죽는 장면 앞에서 찰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착순에 못 든 분들께는 특별한 기회를 드릴까 합니다. 우승팀을 맞춰보세요. 맞추시면 특별한 혜택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찰스의 말을 흘려듣고 있었다.
죽음의 전장이 자신을 피해갔다는 안도감으로 긴장이 풀린 데다, 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뺏긴 것이다.
그때, 전장을 비추던 홀로그램 옆에 새로운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페이즈를 처음 시작할 때의 미션과 같은 활자.
퀘스트가 뜬 것이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엑스트라 퀘스트 : 엑스트라 페이즈의 최종 우승팀을 맞춰라.]
- 총 10개의 팀 중 3팀을 골라보세요. 3팀 중에 우승팀이 있다면 100포인트 지급 및 다음 페이즈로 직행, 그게 아니라면 포인트 몰수, 불참도 포인트 몰수합니다! 꼭 3팀을 고르세요.
[성공조건 : 선택한 3팀 중 우승팀이 있을 때.]
[성공보상 : 100포인트]
[실패조건 : 선택한 3팀 중 우승팀이 없거나, 선택하지 않았을 때.]
[실패패널티 : 포인트 몰수]
“포인트 몰수면…….”
“죽으라는 거잖아.”
“찰스! 이게 뭐야? 포인트 몰수라니! 죽으라는 거야?”
잔인하고 너무나 잔인한 방식.
그러나 처음부터 너무나 일관했던 방향.
“맞습니다. 포인트 몰수, 못 맞추면 죽음입니다. 대신 맞추면 100포인트를 드리잖아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입니다.”
찰스의 말에 생존자들의 얼굴에 나타났던 안도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절망만이 가득한 곳.
그래서일까?
일부 사람들이 극단적인 결단을 내렸다.
뾰족한 송곳을 소환하고.
그곳에 뛰어드는 남자.
슈트가 없는 지금으로선 그 정도 공격으로도 치명상.
“으아아아아악!”
10명이 들어가 있는 유리 사육장에서 한 명이 자살을 하니, 다른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될까?
여기저기서 그 해답이 보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구석에 처박혀 울고 있는 사람.
동물원에 갇혀 사육장 내를 뱅글뱅글 돌거나 벽에 머리를 박는 등 동물처럼 정형행동을 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며, 죽이겠다고 난리 치는 사람.
인간과 동물의 다른 점을 적어도 이곳에선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생존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한 사람의 인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순히 게임의 장기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한 찰스는 야속하게도 진행을 계속했다.
“현재 생존팀은 11팀! 생존팀이 10팀 되는 순간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최후의 생존팀을 맞춰, 다음 페이즈로 갈 수 있도록 여러분을 응원하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생존하려면 찰스의 말대로 해야 한다.
홀로그램이 제공하는 영상을 바탕으로 우승팀을 예측하고, 알아 맞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모두가 현재까지의 영상을 보며 대한민국 팀이 우승팀이라고 예상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뛰어난 회피기를 가진 이진기의 아공간 능력.
장애물을 통과하고 능력의 횟수를 늘려주기까지 하는 송기영의 젤리 능력.
거기에 절대 강자, 김아람의 염력 능력까지.
대한민국이 지는 게 말이 안 될 정도.
윤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엉아가 이겨. 백현 엉아 팀에 투표해.”
“윤수는 본 거지?”
“응. 엉아가 살아 돌아올 거야. 최종 승리자는 백현 엉아야.”
윤수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미나와 최형우도 안심이 된다.
정선희는 윤수를 품에 안은 채, 홀로그램이 보여주는 영상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충격적인 장면이 잡힌다.
“뭐지? 뭐가 일어난 거지?”
절대적인 우승팀 후보자.
바로 염력 능력자 김아람의 모습 때문.
홀로그램 화면 내에서 그 김아람이 힘을 못 쓰고 있다.
그녀가 소리질렀다.
“왜! 왜! 왜!”
김아람이 한 여성으로부터 무차별적인 채찍질을 당하고 있었다.
슈트를 입었다지만, 자동 수복 능력이 있는 슈트가 찢어지고 메워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그녀의 살점이 찢어지며 붉은 피를 토해냈다.
김아람은 자신의 염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을 보며 당황했다.
“왜 안 되는 건데?”
그때, 요르단의 미하엘이 자신의 연인인 율리아에게 말했다.
“능력 무효화 시켰어. 얼른 죽여.”
“응.”
범위 50cm 이내의 능력자 하나를 무효화시킬 수 있는 능력.
동물들에게는 전혀 쓸모없지만, 대인전에서만은 최강.
제 아무리 염력을 다뤄도, 초능력을 다뤄도, 요르단의 미하엘 앞에서는 무용지물.
김아람이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치려 뒤돌아섰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미하엘이 뛰어들며 김아람과 50cm 이내가 되도록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김아람은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한 것을 알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녀의 뜻대로 거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미하엘도 필사적이었다.
그녀를 여기서 놓치면 염력에 의해 죽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저 여자를 여기서 처리해야만 했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끌어올려 무효화 능력의 범위를 늘렸다.
그러자 무효화 능력의 범위가 주변 2m까지 늘어났다.
능력 과다 사용으로 숨을 헐떡이는 미하엘.
그를 보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채찍을 휘둘러 김아람의 움직임을 묶는 율리아.
율리아의 채찍이 김아람의 다리를 휘감고.
그녀를 옭아매는 데 성공한 율리아의 채찍이 다시 풀어지며 그녀의 얼굴을 세차게 때린다.
“꺄아아악!”
김아람의 비명에도 율리아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채찍. 능력 중 최약에 해당하지만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 김아람을 죽이려 했다.
김아람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너덜너덜.
이제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이 된 김아람.
얼굴도, 피부도 모두 채찍에 의해 난도질당한 채로 쓰러지고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벌어지는 다른 지역의 전장.
사육장에서는 실시간으로 전장을 볼 수 있었다.
유리사육장에 있는 사람들은 둘로 나뉜 전장을 홀로그램 분할 화면으로 지켜보며, 어디에 투표해야 할지 큰 혼란에 빠졌다.
또 다른 화면에서는 파키스탄과 이란이 맺은 동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페르시아어라는 공통 언어로 대동단결한 그들이 몰디브의 세 참가자를 해안가로 몰아넣고 공략하는 데 성공한 것.
그와 동시에 떠오르는 메시지.
[몰디브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중간 성적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성적표.
1위 : [요르단 : 497Point]
2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456Point]
3위 : [러시아 : 455Point]
4위 : [대한민국 : 446Point]
5위 : [중국 : 356Point]
6위 : [이란 : 355Point]
7위 : [베트남 : 331Point]
8위 : [일본 : 315Point]
9위 : [파키스탄 : 299Point]
10위 : [미얀마 : 244Point]
11위 : [몰디브 : 0Point] / 탈락
12위 : [필리핀 : 0Point] / 탈락
13위 : [몽골 : 0Point] / 탈락
김아람의 죽음으로 꼴찌였던 요르단이 단숨에 1위가 되고.
1위였던 대한민국이 4위로 추락했다.
“요르단이 1위라고?!”
홀로그램에 의한 결과가 모두에게 공지되고 백현 일행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여자, 죽은 것 같은데? 천리안으로 확인해봤어?”
“응. 죽었어. 요르단 여자는 채찍을 다루고, 남자는 아람이의 능력을 봉인시킬 수 있었나 봐. 대응도 못하고 도망치다가 죽었네.”
이진기의 말에 김종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강백현의 굳은 표정을 확인했다.
“백현아, 괜찮냐?”
“…….”
“강백현, 괜찮아?”
“아……. 조금 충격 받은 것 같아요. 죄송해요.”
떨리는 목소리.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방심하더니…… 결국 또 그렇게…….’
소꿉친구가 죽어버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하더니.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방해되지 말라고 할 때는 언제고.
그녀가 죽은 것은 죽은 것.
살아있는 자신까지 동요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냉정하게 분석해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할 때.
최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고 왔으니까.
1등 해서 만철이 아저씨의 가족을 살리러 왔으니까.
마음을 굳게 먹은 강백현이 말했다.
“종필이 형, 일단 드론부터 보내고, 아공간에 들어가죠.”
“정말 괜찮은 거지?”
“네. 일단 이란과 파키스탄 세력을 약화시킬 작전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하지. 아공간은 왜?”
“청음 능력자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마음을 읽는 능력자가 있는데, 먼 곳에서 소리를 듣는 능력자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우리말은 못 알아들을걸?”
“아니요. 한류 열풍 때문에, 한국말 알아듣는 외국인 생각보다 많아요. 그리고 우리와 싸워야 할 상대팀엔 북한 팀도 있으니까, 지금은 모든 상황에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백현의 말에 김종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기야.”
“어?”
“백현이 뜻이 그러하단다. 아공간 좀 열어줘라.”
“네가 복제해서 열어.”
“나는 지속시간 짧은데?”
“피곤해 죽겠다. 왜 너만 체력 아끼는데? 너도 아공간 쓸 수 있잖아.”
“오케이! 알았다.”
이진기의 말에 김종필이 이진기의 능력을 복제하여 아공간을 열었고, 그 안에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좁은 크기.
그리고 작은 모래시계.
김종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속시간은 10분, 그 안에 백현이 네가 세운 작전을 말해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