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선전포고
김아람의 선전포고를 중계한 드론이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북한,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 기타 생존한 모든 국가의 참가자들을 한 번씩 비춰준다.
3번의 목격으로 강백현은 자신이 분석한 결과를 김종필에게 전했다.
“종필이 형, 드론에 패턴이 있어요.”
“그래?”
“네. 한 팀이 전멸할 때마다 각 팀의 위치를 알려줘요.”
시간만 들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발상.
하지만 불과 20초 만에 판단을 하고 그 분석 결과를 말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처음에는 보호막 능력만 있는 단순한 어린애라고 치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신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분석력.
거기에 처음 만난 자신들에게 깍듯이 대하며, 자신들의 능력을 하나하나 스스로 토해내게 하는 친화력까지.
솔직히 조금은 무서웠다.
아직 사회 경험도 많이 없을 텐데.
두뇌도 좋고, 친화력도 좋은 데다가, 능력까지 비범하다.
“드론의 다른 패턴은?”
“아직까지는 모르겠습니다. 경우의 수가 적어서요. 다만 예상한 것은 좀 있습니다.”
“예상?”
“네. 일정시간마다 관찰한다든지, 아니면 날짜가 바뀔 때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정찰하는 등의 패턴을 상정했었죠.”
김종필은 생각했다.
역시 백현이는 분석가 기질이 있다고.
녀석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뱉어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을 때는 아닌 것 같아요. 팀원이 전멸했을 때, 이게 올바른 분석이겠죠.”
역시 이 녀석은 두뇌파였다.
그럼 여기서 의문.
“백현아. 형이 하나만 묻자.”
“네. 말씀하세요.”
“넌 너 자신이 위험에 빠지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니?”
실제 전투에서 전력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그런데 그건 옆에 있던 이진기가 답변해줬다.
“내가 그건 설악산에서 알려줬잖아. 백현이 일행 다섯 명 중에서 꼬마랑 여자애 빼고는 다 사람 죽여 봤다고. 그 아줌마가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을 죽였을 때는 충격이었다니까!”
역시 후방에서 천리안으로 지켜보던 이진기.
그런데 김종필은 처음 듣는 소리다.
“진기야. 너 그 얘기는 나한테 안 했는데?”
그때 송기영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한테 말했었어.”
“어. 내가 앞에 먼저 가고 있는 제이피한테 전달하라고 했잖아. 내가 천리안으로 본 거 제이피한테 전달 안 했어?”
이진기가 답답한 듯 송기영을 나무랐다.
그러자 머리를 긁적거리며 실수를 인정하는 송기영.
“생각해보니까 얘기하는 것 까먹었었네.”
“병신 새끼, 어휴! 송기영, 기형아! 짜증나! 넌 어떻게 제대로 하는 게 없냐?”
“미안.”
백현은 자신이 사람을 죽여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종필을 향해 말로 의지를 보여주었다.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
질문 하나에 자신의 진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20살 청년.
거기에 당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다루기 힘든 타입.
“기분 나빴다면 미안하다. 그래도 너랑 나는 만난 지 3시간도 안 된 거잖아. 확인할 필요가 있었어.”
“네. 알고 있습니다. 근데 종필이 형?”
“어?”
“이번에는 제가 되물어볼게요. 형은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요?”
역시! 만만치 않다. 사람을 죽였냐고 자신에게 되묻다니.
김종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 하나로 그의 굳은 눈빛, 결의가 백현에게 전해졌다.
강백현은 이제 알았다. 대충대충 장난은 없다는 것을.
지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대한민국 팀 내에서도 피 튀기는 탐색전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김종필은 유사시 백현이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 했던 것이었다.
그건 곧 우승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
우승했을 때,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되살리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은 얘깃거리가 없지만, 만약 그때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여 살리려는 사람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같은 팀인 자신과 김만철을 죽여서라도 친구를 되살리겠다는 대답을 이렇게 돌려 말한 것이다.
“그 대답,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았습니다. 그래도 종필이 형. 저희 우승할 때까지는 동맹이에요. 아시죠?”
“그래. 우승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제법 무거워졌다.
서로 상대방을 분석하던 둘의 냉랭한 분위기를 읽은 주변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
그때, 김만철이 백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떨어지자. 쟤네들 위험해. 별도 행동하는 게 좋겠어.”
“아저씨, 떨어져서 이야기해요. 다 들리잖아요.”
“별도로 행동하자. 그게 맞아.”
“아저씨!”
김만철을 끌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강백현.
그가 김만철에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다.
“아저씨 저 믿죠?”
“너는 믿지만…….”
“그럼 종필이 형도 믿으세요. 적어도 아직까진 괜찮아요. 위험하면 제가 신호 줄게요.”
“위험한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전 알아요. 알 수 있어요. 그러니까…….”
아직 공개하지 않은 능력.
[심리분석]
강백현은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말한 것이었다.
백현에게만 보이는 홀로그램 자막.
[김종필의 호감도가 33 상승했습니다.]
자신이 적대적으로 나왔는데도 호감도 상승?
그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
두뇌파이기에 느낄 수 있는 묘한 동질감.
그것을 심리분석 결과가 다시 한 번 증명해준다.
김만철은 잠시 고민하다가 강백현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동생, 사리분별 잘하고, 가끔은 무모하지만, 악의는 없는 녀석.
그래서일까? 그에게 찾아온 변화.
고집불통, 한번 정하면 절대 바꾸지 않을 결정을 그가 스스로 철회해버렸다.
“그래. 알았다. 네 말대로 하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됐어. 너는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잖아. 난 널 믿는다.”
[김만철의 호감도가 22 상승했습니다.]
백현과 김만철,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김종필 일행도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송기영은 솔직했다. 그래서 직설적이었다.
“제이피, 분위기가 왜 그래?”
“그냥 알아본 거야.”
“뭘 알아봐?”
“강백현, 저 녀석의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싶었어.”
김종필의 말에 송기영이 답답한 듯,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에이, 꼬마한테 넌 너무 신경 쓴다. 어차피 다수결로 해서 살릴 거 아니야? 우리는 셋이고, 저쪽은 둘이니까 다수의견으로 우리가 태철이 살리면 되는 거잖아.”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이진기는 답답한 듯 송기영을 나무랐다.
“야! 송기영! 기형아! 다수결이 왜 나와?”
“그럼 뭘로 할 건데? 가위바위보? 아니면 제비뽑기?”
“이 병신아! 어휴! 그러니까 네가 기형아 소리 듣는 거야. 머리가 굳었냐? 사람 목숨이 장난이냐? 생명을 살리는데 다수결이 왜 나와? 장난하냐?”
이진기 또한 분위기를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지금 팀이 어그러질 수도 있다고.
서로 죽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진기가 팀내 브레인을 담당하는 김종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그 형님 분위기 묘하던데! 지금 싸울 거야?”
“아니, 일단 지켜봐야지.”
“뭘 지켜봐?”
“꼬맹이가 어떻게 나올지…… 봐야 한다고. 별도 행동할지, 아니면 우리랑 같이 행동할지.”
체격이 작은 강백현의 생각을 김종필은 가늠할 수 없었다.
사실 강백현이 아닌 김만철의 이상한 분위기는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아공간을 나온 후 태철이를 살리겠다는 말을 들은 후부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탓에, 팀이 오래가진 못할 거라는 점은 어렴풋이 예상했다.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주변에서 머뭇거리는 행동까지.
알아채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
하지만 강백현은 달랐다.
이놈의 심리가 궁금했다.
지금 김만철과 무슨 작당을 꾸미고 있지?
우리를 죽이려고 할까?
아니면 도망칠까?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 거야?
그래서일까?
심리적으로 불안해진 김종필.
그가 이진기에게 자신의 전투력을 물었다.
“진기야. 내가 만철이 형님하고 싸우면 이길 것 같냐? 질 것 같냐?”
“아마 네가 질걸?”
“왜?”
“넌 능력 복제해도 레벨 1까지밖에 복제 못하잖아. 신체강화 능력은 스펙 차이일 텐데, 네가 정면으로 붙어서 이길 수 있을까?”
이진기의 대답에 김종필은 입술을 깨물며, 초조함을 달랬다.
자신의 복제 능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한 시간 동안 타인의 능력을 복제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
다만, 복제한 능력은 최대 레벨 1까지밖에 성능이 나오지 않고, 오리지널능력에 비해 체력소모값도 더 크다.
그러므로 정면승부는 힘들었다.
아공간 능력이야 전투 능력이 아니고, 젤리 능력은 느려서 공격용으로는 상당히 부적합하다.
그래서 높게 잡은 승률이 50대 50.
“일단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자고.”
한편, 강백현은 김만철과 돌아온 후, 분위기가 싸해진 것을 느꼈다.
[이진기의 적개심이 33 상승했습니다.]
[송기영의 적개심이 44 상승했습니다.]
[김종필의 호감도가 56 하락했습니다.]
김만철 아저씨가 김종필 앞에서 이상한 소리만 안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괜히 분위기만 흐려놓았다.
‘어휴! 진짜~ 아저씨는 다 좋은데, 생각이 없어.’
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법도 생각해 놓은 강백현이 김종필과 마주하며 협상을 시작했다.
“종필이 형?”
“어?”
“형도 싸우는 거 싫어하죠?”
“글쎄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김종필은 틀어진 관계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충돌도 없었지만, 사실 처음부터 합쳐질 수 없는 관계.
김만철의 행동이 그것을 깨우쳐주었기에.
이제 서로 각자도생이냐, 아니면 여기서 싸우느냐. 둘 중 하나.
그런데 이 어린 녀석이 협상을 시작한다?
“저희 이것 하나만 약속해요.”
“뭐가?”
“서로 절대로 싸우지 않겠다고요.”
“싸우지 않으면?”
“우승해요. 우승하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가위바위보로 살릴 사람 정하는 걸로 해요.”
강백현의 눈.
분석적이고 표리적인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초롱초롱한 얼굴로 애원의 눈빛을 보냈다.
웃겼다.
대단한 심리 싸움이나 결투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둘이 상의한 게 겨우 그거였어? 가위바위보였다고?
“진심이야?”
“그럼요. 만철이 아저씨, 제가 혼내고 왔어요. 아저씨가 형님 살리려는 것만큼, 형들도 형들 친구 살리고 싶은 마음은 같은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서로 같은 편이라고 믿고 가자고요.”
강백현의 마지막 말에 송기영이 웃음을 터트렸다.
“야! 제이피! 이진기! 내 말이 맞지? 가위바위보 아니면 제비뽑기, 이런 게 가장 좋다고 했잖아!”
“뭐냐? 기형아 새끼, 하나 맞추고 존나 웃네.”
“…….”
김종필이 굳은 표정을 짓다가, 스스로도 입 안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는지, 호탕한 웃음을 뱉어냈다.
“흐흐흐, 하하하.”
그리고 그걸 보며 송기영이 욕을 했다.
“뭐야, 저 미친 놈 왜 웃냐?”
이진기는 알았다.
이제 동료라는 것을.
강백현도 김만철도 자신과 같이 싸울 동료로써 자신의 생각을 밝힌 거라고.
김종필이 웃으며 김만철과 강백현을 향해 말했다.
“형님! 일단 가실까요?”
“어디로?”
“안전한 곳으로 가셔야죠. 음료수부터 드실래요?”
“음료수?”
김종필이 씩 웃으며 이진기의 허리를 툭 쳤다.
그러자 이진기가 귀찮은 듯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아공간이 열리고.
그 안에서 꺼내는 음료수.
그걸 보며 김종필이 씩 웃었다.
“사실! 진기는 아공간 레벨 2라서 두 개의 다른 공간을 다룰 수 있어요. 시간흐름이 있는 넓은 아공간과, 시간흐름이 없는 매우 좁은 아공간이요.”
그리고 이진기가 말을 보탰다.
“이건 시간 흐름이 없는 아공간에 먹을 것을 담아둔 거랍니다. 아공간을 열어 둘 수 있는 제한시간은 5분. 그동안 아공간 내에 물건을 집어넣거나 빼낼 수 있어요.”
사이다, 콜라, 양주에 생수.
거기에 각종 음식까지.
절벽 위에서의 파티가 막 시작되고.
강백현은 김종필의 옆에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종필이 형.”
“어?”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우리 꼭 우승하자.”
“넵! 그래야죠!”
강백현은 대화로 풀린 긴장감에 미소를 지었다.
[이진기의 적개심이 사라졌습니다.]
[이진기의 호감도가 36 상승했습니다.]
[송기영의 적개심이 사라졌습니다.]
[송기영의 호감도가 66 상승했습니다.]
[김종필의 호감도가 88 상승했습니다.]
[김만철의 호감도가 56 상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