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갈등
아공간이 무너지자, 이진기가 숨을 헐떡거렸다.
그걸 보며 송기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내 옆에 기대.”
“아, 싫은데.”
이진기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송기영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싫어도 어쩔 수 없어. 언제 또 네 능력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아…… 진짜! 네 능력은 왜 그따구냐!”
“싫으면 치료 받지 말든가.”
둘이 티격태격 대자, 김종필이 이진기한테 눈치를 주었다.
“기영이 대신 내가 복제해서 해줄까?”
“너나 송기영이나! 아, 왜 스킨십을 해야 되는 건데!”
그때, 송기영이 이진기의 뺨을 만졌다.
그러자 뺨을 만진 송기영의 손이 젤리처럼 녹더니, 이진기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액체 형태의 젤리가 몸 안을 파고든다.
묘한 기분, 어린이들이 자주 만지는 액체괴물과 같은 느낌.
“느낌 진짜…… 더럽다!”
“꼭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해야겠어? 이쪽도 네 몸 만지고 싶지 않거든?”
송기영의 손이었던 젤리는 액체상태로 이진기의 몸에 흡수되어 사라지고, 이진기는 더러운 기분 뒤에 오는 회복효과에 한숨을 내쉬었다.
“꼭 이렇게 구석구석 만져야 해?”
“치료 되는 순간부터 난 감각 없어. 이미 내 손 아닌 상탠데 뭐. 네가 과민 반응하는 거야.”
“아무튼 네 손인 건 맞잖아.”
기력을 회복시켜주는 능력을 가진 송기영의 액체 젤리 손.
그의 팔이 제 역할을 다한 후 이진기의 몸에 흡수되고, 액체에서 마른 부분은 바닥으로 떨어져 나간 상태.
그래서 지금 송기영의 몸은 양 손바닥에서 팔목부분까지 액체가 되어 사라졌다.
그런데 잠시 후 뭉클뭉클.
떨어진 팔목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액체 젤리로 돋아난 부분은 곧 정상적인 신체로 돌아왔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능력.
“와, 존나 징그럽네.”
“어쩌라고! 치료해준 사람한테…….”
그 두 사람이 티격거리자, 김종필이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거기까지 하고, 주변 경계 좀 봐줘. 만철이 형님하고 백현이는 벌써 주변부터 살피고 있잖아.”
그때, 홀로그램이 또 한 번 나타났다.
이번에도 찰스.
“뭐지? 얜 또 왜 나와?”
“아~ 불안한데! 또 위치 알려주는 거 아니야?”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섬 전역을 돌아다니며, 참가자들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다행히 위치를 알려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녀석의 입 모양 밑에 자막이 떴다.
[몽골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중간 성적을 발표합니다.]
이어지는 성적표.
1위 : [대한민국 : 511Point]
2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456Point]
3위 : [러시아 : 455Point]
4위 : [중국 : 356Point]
5위 : [필리핀 : 335Point]
6위 : [베트남 : 331Point]
7위 : [일본 : 315Point]
8위 : [이란 : 300Point]
9위 : [미얀마 : 244Point]
10위 : [파키스탄 : 199Point]
11위 : [몰디브 : 155Point]
12위 : [요르단 : 97Point]
13위 : [몽골 : 0Point] / 탈락.
순위가 발표되자, 백현 일행의 얼굴에 승리의 기쁨이 떠올랐다.
특히 송기영의 표정이 압권.
“대박! 대박! 이대로 도망만 다니면 이기는 거 아니야?”
“내가 뭐랬냐? 태철이 살릴 수 있다고 했지?”
송기영과 이진기의 말에 김만철의 희망 어린 미소가 썩소로 바뀌었다.
‘얘네들도 언젠가는 적이야.’
서로 살리려는 대상이 다르다.
3명의 동료는 자신들의 친구를, 김만철은 자신의 가족을 살리고 싶었다.
그 현실과 마주하게 된 김만철이 강백현을 바라보았다.
강백현은 김종필과 같이 작전 논의 중이었다.
“종필이 형,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네요. 안 그래요?”
“좋은 소식?”
“네. 일단 저희가 종합 1위니까, 6시간 룰에서는 안전해요.”
6시간 룰.
팁 사항으로 나온 사항.
[6시간 동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가장 낮은 통합 Point를 가진 팀의 슈트는 자동 폭발합니다.]
현재 11위와 12위인 요르단 팀과 몰디브 팀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마냥 숨어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공격하기에는 대체적으로 인원이 적다.
“그렇네. 6시간 룰에서 벗어난 것부터가 어떻게 보면 행운이랄까? 그러고 보니 이번 페이즈에서는 포인트가 안 보이잖아.”
“아마 페이즈마다 룰이 다른 것 같아요. 그래도 6명이 평균 80~90 정도 포인트를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었네요.”
사실 강백현의 포인트는 겨우 23.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사용자 정보 하단.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합산 포인트.
그 포인트를 슈트 업그레이드와 능력 개방에 사용했기 때문에 잔여 포인트는 아슬아슬했다.
“나쁜 소식은?”
“하위 팀끼리 연합을 할 수도 있어요. 아마 연합을 하게 된다면 가장 최우선 목표는 가장 점수가 높은 팀이겠죠.”
만약 점수가 발표되지 않았다면 서로 연합할 생각보다는 각자도생으로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순위 발표는 공동의 적을 만들어낸다.
그 적은 당연히 1등.
서로의 목표를 위해 가장 앞서나가는 팀을 연합해서 떨어뜨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빌자.”
“네.”
그런데 또 다시 드론이 백현 일행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어김없이 홀로그램으로 모든 참가자들의 현재 위치를 알려준다.
그걸 보며 아공간을 이용해 전장으로부터 도망쳤던 이진기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와! 개 어이없네.”
“허허……. 할 말이 없다.”
당황한 두 사람과 달리 김종필과 강백현은 여전히 분석적인 태도를 취했다.
“백현아, 드론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위치를 추적할까?”
“종필이 형, 그건 아직 정보가 적어요. 일단 상대방의 위치 파악부터 하고 보죠.”
“그래.”
드론이 여기저기 활보하며 위치를 보여주었다.
깜짝 놀라는 이란과 파키스탄 사람들.
두 팀은 서로 대화를 하다가 드론이 자신을 비추자, 경계하며 서로 산개했다.
“벌써 연합팀이 꾸려졌네요.”
“이란하고 파키스탄은 페르시아어를 공용으로 쓰다 보니, 서로 말이 통할 거야.”
“저희도 북한이랑 연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것도 고려해보자.”
“네. 말이 통한다면, 협상의 여지는 있겠죠.”
여기저기 드론들이 위치를 파악해서 알려준다.
바위 뒤에 숨어도, 물속에 잠수하고 있어도, 화산 지대에 있더라도 드론에 의해 모든 위치가 노출된다.
그래서 모든 팀은 드론의 등장에 스스로의 위치를 노출시키고, 드론이 떠나면 재빨리 자리를 옮겼다.
마지막은 북한이었다.
북한 사람들은 리조트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있는 거라곤 마실 물뿐.
이미 이진기와 송기영이 처리한 터라 음식을 구할 순 없었다.
북한 사람들 4명을 비춘 다음, 그걸로 끝인 줄 알았던 드론이 갑자기 차도로 향했다.
리조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차도, 여성 한 명이 무방비 상태로 있는 게 모든 생존자에게 홀로그램으로 보여졌다.
‘아람아. 역시 단독 행동은 위험하잖아.’
그런데, 이진기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필리핀 애들이 백현이 네 친구한테 달려가는데?”
그의 말에 송기영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송기영의 말에 김종필이 그의 옆구리를 치며 주의를 주었다.
강백현의 걱정스러운 얼굴.
그리고 김만철의 굳은 표정.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송기영.
“미안하다. 백현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강백현도 미니맵으로 김아람의 위치를 확인한 후 정황을 바라보았다.
‘아람아, 정말 괜찮은 거지?’
* * *
김아람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싸며 포위하는 필리핀 참가자들.
그들은 미소를 띠었다.
“왜 혼자 있었을까?”
“버림받은 거 아니야? 아니면 겁탈 당해서 도망친 것일지도 모르겠네.”
“그게 가능성 제일 높아 보이는데?”
아람이의 반반한 얼굴.
단발머리에 마치 아이돌 같은 귀여움까지.
“빨리 죽이자.”
“그래.”
하지만, 그들은 김아람의 미모가 훌륭하다는 이유만으로 봐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보스의 여자를 살리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는다.
보스의 명령으로 참가한 6명의 필리핀 조직원들.
그중 하나가 자신의 능력으로 총을 소환해냈다.
권총 레벨 2.
권총의 이름은 콜트M1921.
0.018mm 최대 6발 자동권총.
장전과 동시에 필리핀 참가자에 의해 발사되는 총알.
하지만 총알이 날아가다 멈췄다.
“뭐지?!”
“다시 쏴 봐!”
필리핀 참가자 중에서도 권총 능력자는 상당한 실력자였다.
혼자 쥐는 물론 고양이와도 접전을 펼칠 정도로 강자.
자신의 능력으로 탄알집을 소환하고, 다시 장전해서 발사한다.
그런데 총알이 가다가 또 공중에서 멈춘다.
그들은 총알이 멈춘 것을 볼 수 없었다.
총알이 너무 작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총 능력자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위험하다는 것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런데 포위하며 접근하는 동료들은 그걸 알지 못했다.
“저것도 못 맞추고 뭐하냐?”
“그러게. 원래 저 친구가 명중률 자체는 별로였잖아.”
“내가 나서야 하나?”
총기 소지 자유 국가 필리핀.
그래서일까?
필리핀 참가자 중에서는 소총 능력자도 있었다.
권총보다 몇 배는 강한 소총.
가늠좌와 조준선.
일명 표적정렬이 용이한 라이플 계열.
빵!
정확히 날아가는 총알.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돌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는 여자.
“뭐야? 맞은 거야?”
“잘 모르겠는데?”
“더 쏴봐! 더! 더!”
라이플에 장착된 탄알집에서 탄이 무지막지하게 발사된다.
하지만 그녀에게 피해는 없었다.
맞은 충격도 없었다.
단지, 그녀 주위에 무언가가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있다.
그녀 주위를 빙글빙글 회전하는 총알.
사람들은 그게 자신에게 다가올 때까지 무엇인지 몰랐다.
회전하는 총알들이 권총과 소총을 사용한 필리핀 참가자들한테 날아갔다.
미간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는 총알들.
그리고 푸슉!
회전력이 더해진 총알이 그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필리핀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용맹했다.
죽은 동료들을 보며 분노에 차올랐다.
“돌격! 돌격!”
하지만 김아람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4명 필리핀 참가자들의 몸이 공중으로 상승한다.
10cm, 30cm, 50cm, 1m까지.
김아람의 손이 하늘 방향에서 땅으로 향하자, 그들의 몸이 빠른 속도로 차도로 추락한다.
4명 중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손에서 장풍을 쏘았다.
거대한 회오리바람이었다.
염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
하지만 회오리바람이 앞으로 나아가질 않는다.
다시 돌아오는 회전에 오히려 동료들이 죽는다.
“이럴 수가…….”
자칭 최강이라던 필리핀 조직 빠따야의 멤버들.
중간 보스였던 보보가 동료들의 죽음을 보며 탄식했다.
하지만 저항할 방법은 없었다.
“샤유랑을 구해야 하는데…….”
데스 아일랜드에는 보스 대신 온 부하들.
보스만 같이 왔어도 이럴 일은 없었을 텐데…….
그들의 충정심이 지금 이 사태를 불렀다.
동료들의 죽음.
그리고 다가올 자신의 죽음.
김아람이 양손을 꽉 쥔 채 비틀었다.
그러자 필리핀 참가자 보보의 몸이 빨랫감처럼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보보의 슈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는 슈트. 그리고 절망.
“보스, 죄송합니다.”
필리핀의 마지막 참가자 보보의 죽음.
필리핀 참가자 전멸.
6킬 0데스.
김아람의 단독 승리.
김아람은 숨을 몰아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 모두의 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필리핀 지역 참가자들이 전원 탈락하였습니다. 중간 성적을 발표합니다.]
이어지는 성적표.
1위 : [대한민국 : 846Point]
2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456Point]
3위 : [러시아 : 455Point]
4위 : [중국 : 356Point]
5위 : [베트남 : 331Point]
6위 : [일본 : 315Point]
7위 : [이란 : 300Point]
8위 : [미얀마 : 244Point]
9위 : [파키스탄 : 199Point]
10위 : [몰디브 : 155Point]
11위 : [요르단 : 97Point]
12위 : [필리핀 : 0Point] / 탈락.
13위 : [몽골 : 0Point] / 탈락.
그리고 이번에는 김아람부터 비추는 드론.
김아람 주변의 시체가 그녀의 강함을 웅변해준다.
김아람은 드론 앞에서 자신의 힘을 보여주었다.
도로 위의 나무가 뽑혀나간다.
오토바이와 차량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그 모든 것들이 드론에게 날아갔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김아람의 능력을 알고 덜덜 떨었다.
드론이 김아람이 던진 물건들을 요격했다.
기관총에 의해 부서지는 잔해들.
그걸 보며 김아람이 선전포고를 시작했다.
“얼마든지 덤벼! 내가 다 상대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