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권능
김종필의 능력은 부활이었다.
어떤 상처를 입고 죽더라도 살아난다고.
“형은 몇 번 죽으셨어요?”
“한 세 번?”
“세 번이나요?”
“그래.”
“그럼 막 체력 소모 심하고 그런 건 없어요?”
“백현아.”
“네?”
“능력과 권능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
백현은 지금 김종필과의 토론이 매우 즐거웠다.
곧 죽음의 전장이 펼쳐질 예정인데도, 그와 지금의 정보를 나누는 게 유익하다고 느꼈다.
“글쎄요.”
“권능은 체력소모가 없잖아. 안 그래?”
고유능력을 사용하면 확실히 피로해진다.
만철이 아저씨가 지속형이라고 하지만 그도 능력을 오래 쓰면 피곤해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권능은 다르다.
능력을 과다 사용한다고 피곤해지지 않는다.
그냥 비활성화될 뿐이다.
미니맵 또한 그랬다.
심리분석 또한 마찬가지다.
이게 체력을 소모했다면 지금쯤 난 어떻게 됐을까?
백현은 고유권능과 고유능력의 차이를 알게 된 후 미소를 머금었다.
“확실히 종필이 형의 말이 맞네요.”
“그렇지?”
“네. 덕분에 많이 알았어요.”
“그럼 슬슬 준비할까?”
“준비요?”
“일단은 정보부터 얻어야겠지?”
그때, 밖으로 나갔던 이진기와 송기영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 둘을 보며 김종필이 물었다.
“음식물 다 처리했어?”
“어. 보이는 곳에 있는 음식물은 다 옮겼다.”
“접근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정도? 북한 녀석들이 접근하고 있어. 자신들의 쪽수가 많으니까 유리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래? 걔네들 능력은?”
“아직 잘 몰라. 일단은 지켜봐야지. 천리안도 막 쓰면 안 되니까 아공간 내에서 확인할 생각이야.”
“그래. 그럼 일단 숨자. 숨어서 지켜보자고.”
숨다니? 어디로?
계속 해서 의문점을 만드는 세 명의 형들.
김만철은 만반의 준비를 끝낸 참이었다.
일부러 화장실도 다녀오며 싸울 채비를 갖췄는데, 숨는다니?
“싸우는 게 아니라 숨는다고?”
“네. 형님, 일단은 전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진기야. 만들어.”
“오케이. 형님, 일단은 제이피 말을 듣는 게 좋아요. 저 친구 머리 굉장히 좋거든요.”
이진기가 아공간을 만들어냈다.
검은 구체.
그곳은 물리의 법칙,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특별한 곳.
마치 블랙홀처럼 내부가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진기는 안심하라며 일행들을 재촉했다.
“괜찮아. 나 믿고 들어가. 내가 마지막에 들어가야 문을 닫을 수 있어.”
이진기가 만들어 낸 아공간.
그 안으로 들어가자 새하얀 백지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
무수히 높은 하늘에는 거대한 모래시계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고.
아공간에서 이진기가 문을 닫았다.
그러자 모래시계가 180도 뒤집혀지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백현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진기 형, 이곳은 도대체 뭐하는 곳이죠?”
그러자 이진기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같은 위치, 다른 공간.”
“네?”
“아까 우리가 연 곳하고 같은 위치지만,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돼.”
솔직히 잘 이해가지 않았다.
김만철도 이진기가 말한 개념을 어려워하자, 김종필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형님, 평행우주라고 알아요?”
김만철은 고개를 저었지만, 강백현이 대답했다.
“다차원 우주를 말씀하시는 거죠? 시간의 흐름이 같은데, 공간이 다른 미래. 수많은 갈림길. 뫼비우스의 띠와는 다른 이론.”
“맞아. 그런데 이 아공간 능력은 좀 달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인데, 차원만 달라.”
“네?”
“아공간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동시에 서 있을 수 있어.”
백현은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나 36살의 김만철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눈높이에 맞게 김종필이 설명했다.
“스타크래프트 아시죠?”
“알지.”
“시야 공유 안 하고 포토캐논 겹쳐서 깔 수 있죠? 원래는 안 되는데, 시야 가리면 겹쳐서 깔리잖아요.”
“아……. 어. 그런데 그게 무슨?”
“지금이 그 상황이에요. 우리는 저쪽의 상황을 볼 수 없어요. 저쪽도 우리의 상황을 볼 수 없고요. 같은 위치에 같은 공간에 있어도 서로를 의식할 수 없고요. 그게 아공간입니다.”
“아…….”
김만철이 드디어 이해했다.
어려운 공간 개념.
그때, 이진기가 모래시계를 바라보며 김종필에게 말했다.
“45분 정도 남았어.”
“45분? 충분하네. 그럼 절벽으로 이동하자.”
모래시계가 자꾸 흐른다.
45분이란 의미.
무엇일까?
아공간.
하얀 도화지 같은 바닥에 벽도 없고 건물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보이는 거라곤 하늘 위의 모래시계뿐.
그 길을 걷다가, 잠시 주변을 살펴보는 김만철을 향해 이진기가 말했다.
“만철이 형님. 그쪽 방향으로 가면 위험합니다.”
“어? 아무것도 없는데?”
“현실세계에서 그곳은 암벽지대거든요. 모래시계가 다 떨어진 순간 우리는 아공간에서 현실 공간으로 한꺼번에 이동돼요. 그때 형님이 계신 자리가 아까 리조트 옆 절벽이 있던 자리여서, 아공간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절벽 암석에 갇혀 죽을 수도 있어요.”
공간을 공유한다는 개념이 확실히 잡히는 순간.
김만철이 드디어 아공간의 모든 비밀을 알았다.
강백현은 알았다.
이 능력이라면!
유리 사육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유리사육장 바깥.
다른 세계.
인간들을 능욕한 외계 생명체가 사는 곳.
“진기 형, 사육장 바깥으로 나가보셨어요?”
“아니.”
“형 능력이라면 나갈 수 있지 않아요?”
백현의 질문에 갑자기 진지해진 이진기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나가서 어떻게 하게? 그들과 맞서 싸우려고? 아니면? 잘난 정의감에 목숨 걸고 거인들과 싸우라고? 걔네가 우리보다 지능이 높으면? 우리보다 더 똑똑하면?”
역시 그들은 거인을 알고 있었다.
하긴 너무 충격적이었겠지.
백현은 떠올렸다.
처음 유리 사육장에 갇혔을 때, 호기심에 인간을 죽인 아이형 거인을.
그리고 그 아이형 거인과 같이 다니던 여성형 거인을.
참혹스러운 현장임에도 아무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래서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기 형, 전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 이런 죽음의 게임에 놀아날 건가요? 형은 탈출할 능력이 있으시잖아요.”
“능력이 있으면? 사육장을 나가면 뭐가 어떻게 변하는데? 세상이 달라져? 사람들이 원래 크기로 커지고 또 죽은 사람이 돌아오니?”
“하지만!”
“복수심 때문이라면 집어치워. 그들은 우리보다 뛰어나고 더 강인해. 그걸 아직도 인정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는 너의 전제 자체가 우둔하고 어리석어 보인다.”
“…….”
가치관의 차이는 서로 간에 오해를 만들어냈다.
“진기 형, 그럴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어요.”
이진기는 자신의 생각을 확실히 굳혔다.
“그래. 하지만 나한테는 불쾌하게 들렸어. 조심해주라.”
“네. 죄송합니다.”
“백현아, 한 가지만 말할게. 불확실한 정보 획득을 위해 목숨을 버릴 짓을 할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아. 지금은 살아남는 게 먼저야. 그들이 정한 룰 내에서 움직인다. 그게 오래 살아남는 법. 난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야.”
이진기와 강백현의 가치관은 완전히 달랐다.
이진기는 현재 살아남는 것에 충실했고, 강백현은 근본적인 원인을 고치기를 원했다.
하지만, 이진기의 말에는 모순이 있었다.
오래 살기 원했다면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서 목숨을 걸고 있는 지금 상황은 뭐지?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정말 부활이 가능할지 확실하지도 않은 이 엑스트라 페이즈에 목숨을 걸었지 않은가?
강백현이 속으로 읊조렸다.
‘거짓말, 그럴 거면 여기 온 것 자체부터 말이 안 되잖아요.’
두 사람의 대화에 진전이 없자, 김종필이 중재하기 시작했다.
“백현아, 그 얘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우리 목적을 이루는 게 먼저야.”
“네.”
형들의 싸움방식은 단순했다.
전투를 피한다.
다른 참가자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사이 실리를 취한다.
그게 그들이 살아남은 비법.
하얀 백지의 세계에서 그들은 소통했다.
“진기야. 천리안으로 보고 있어?”
“어. 북한 녀석들하고 몽골 애들하고 곧 붙을 것 같아. 몽골 녀석들도 미끼를 물었어.”
“그래? 몽골 녀석들도 리조트를 노렸단 말이지?”
천리안. 아공간 내에서도 현실공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일방적인 정보 확인.
강백현은 아까의 의견 다툼을 잊고 곰곰이 생각했다.
아공간과 천리안의 조합은 절대 들키지 않는 벙커 안에서 CCTV를 쳐다보는 것과 같았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
상대방의 정보와 위치, 현재의 전황을 파악하는 데 이것보다 효과적인 능력은 없었다.
그랬다.
이진기는 계속해서 정보를 알려줬다.
“북한 녀석이 하나 죽었어. 도끼 능력자였어.”
“아, 살아남은 녀석들 능력만 체크해줘.”
“알았어.”
그리고 그 정보를 취합하는 건 김종필.
그들은 생존에 있어서 철저하게 계산적이었다.
어차피 서바이벌.
우승 조건은 최후까지 생존하는 자.
그래서 그런지 싸움은 피하자는 주의다.
강백현이 미니맵을 열었다.
그러자 그의 화면에도 맞붙어 있는 사람들의 정보가 보인다.
‘역시 천리안이 보이면, 미니맵도 안 보일 리가 없잖아!’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한 치의 뒤도 돌아보지 않는 호전 민족들.
북한 사람, 몽골 사람. 양쪽 다 절대 물러서지 않고 대치한다.
강백현이 김종필에게 자신의 정보를 흘렸다.
“살아남은 북한 사람 다섯. 몽골 둘.”
“설마…… 너도 보이는 거야?”
“미니맵으로 간략한 정보는 확인할 수 있어요.”
백현의 말에 이진기가 살짝 흘겨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목표지점을 가리켰다.
“형님, 곧 모래시계가 다할 겁니다. 제가 가리킨 장소에서 대기해 주세요. 너희들도 안전장소로 와.”
천장 위 모래시계의 모래가 전부 바닥에 떨어지자, 하얀 도화지 세상이 종잇장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공간이 무너진 세상.
하얀 도화지가 사라진 장소는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과 마주하고 있었다.
리조트에서 환산거리 2km 정도 떨어진 해안가 절벽.
여행 휴가지로서도 손색이 없는 이곳은 안타깝게도 데스 아일랜드.
죽음의 전장이다.
그래도 이곳은 다른 곳보다 안전했다.
홀로그램을 통해서도, 다른 국가 참가자들에게도 노출되지 않은 곳.
그래서 주변에 백현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진기가 아공간 바깥으로 빠져나오며 천리안으로 본 정보를 말했다.
“북한 승리, 생존자 3명, 30대 남자, 밧줄 능력자. 20대 남자, 투척 능력자, 10대 여자, 능력 아직 모름.”
“몽골 녀석들은?”
“전멸.”
하지만 강백현의 정보는 달랐다.
“정정할게요. 북한 사람 넷, 몽골 사람 하나. 북한 사람 1명이 몽골 사람 추격 중. 리조트 후방 100m 지점, 차도 부근에서 도주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래?!”
서로 다른 정보.
백현의 말에 이진기가 당황한 채 그가 말한 위치를 천리안으로 탐색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진기, 왜?”
“백현이 말이 맞아. 다시 말해줄게. 북한 사람 한 명 추가로 총 4명, 동물 변신 능력자. 퓨마로 변하는 것 확인. 퓨마로 변한 북한 40대 남자에 의해 몽골인 죽음 확인. 상황종료.”
이진기의 말에 강백현이 다시 보탰다.
“저도 몽골인 죽은 거 확인했습니다.”
정보 분석자가 둘.
천리안과 미니맵의 만남에 김종필이 미소를 지었다.
‘저 둘이 함께 있으면 최강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