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서바이벌
화려한 리조트 내부.
엔틱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곳곳에 조형물과 모빌 장식, 아라비안나이트에나 나올법한 카펫에 방마다 열대식물이 놓여 있다.
세련된 거실과 바닥재.
편안한 컬러의 침대.
무채색 간접 조명으로 눈을 가볍고 맑게.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여기였다.
백현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김만철을 제외한 새로운 사람들이 모두 밝아서.
다들 너무 친해보여서.
이진기가 통성명을 마친 강백현에게 만두를 건넸다.
“백현이 너, 많이 먹어. 왜소해서 안 되겠다. 키 더 크려면 많이 먹어야지.”
“네? 저 20살인데요.”
“정말?! 나 얘 중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러게.”
다양한 소품들이 놓여 있다.
예쁜 그릇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다.
냉장고 안에 가득 든 음식 중 조리하기 편한 냉동만두를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사람들.
“만두 진짜 맛있네요.”
“응. 오랜만인 것 같아.”
정상적인 음식을 먹는 게 이토록 즐거울 줄은 몰랐다.
작아져보니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먹는 것부터 문제였다.
“송기영 이 새끼, 설악산에서 버섯 먹던 거 생각나네. 제이피, 기억나지?”
“응. 생버섯 먹다가 맛 이상하다고 젤리로 변해가지고 다 토해냈잖아.”
“그런 얘기하지 말자.”
“크크, 하지 말재! 아~ 얘 왜 이렇게 웃기냐!”
이진기는 냉동만두를 다 먹고 아쉬웠는지 다시 냉장고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냉동 돈가스와 과일을 꺼낸 그가 또다시 젤리 능력자 송기영에게 말했다.
“야! 송기영, 요리 좀 해 봐.”
“왜 나야?”
“너 그동안 혼자 살았으니까 요리 많이 해먹을 거 아니야. 빨리 해 와. 여기 돈가스 튀기고, 과일 깎아오고.”
송기영이 못마땅한 얼굴을 했지만 그냥 넘겼다.
항상 있었던 일이니까.
그때 김만철이 일어났다.
“아……. 형님은 앉아계세요. 기영이가 할 거예요.”
그러나 김만철 성격상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나, 이런 건 잘해. 자취 경력 16년이거든.”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있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주방이 있는 리조트라서 없는 게 없다.
각종 향신료에 냉동식품, 생고기에 과일에 채소까지. 다 구비되어 있다.
김만철이 식용유를 듬뿍 넣어 돈가스를 튀기는 동안, 옆에서 과일을 깎기 시작하는 강백현.
“어? 백현아, 너 과일 좀 깎네?”
“네. 동생하고 같이 있을 때 요리 담당은 저였거든요.”
“그래?”
김만철이 만든 돈가스와 오므라이스.
그리고 강백현이 깎은 과일로 배를 채우고 나니, 공허함이 밀려온다.
폭풍 전야.
이제 곧 이쪽으로 참가자들이 몰려올 것은 자명할 터.
그 이유는 바로 음식.
“우리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송기영이 이진기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이진기가 대답하기 전에 김만철이 먼저 대답했다.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유로운 김만철과 강백현.
그게 궁금한 송기영이 물었다.
“왜요?”
“백현이가 지켜보고 있거든.”
“지켜봐요? 혹시 천리안?”
“천리안이 뭔가요?”
김종필은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강백현의 생각이 들리기 때문에.
[다행히 주변에는 위험요소가 없어. 아람이가 걱정이네. 혼자 백사장 쪽으로 간 건가?]
그의 생각을 읽은 김종필이 분석에 들어갔다. 하지만 잘 파악되지가 않는다.
‘뭐지? 보호막 말고 다른 능력도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러면 내 복제 능력에 이미 떴어야 해. 단순한 예감인가? 혹시 얘도 4성이야?’
그때 또 들리는 백현의 생각.
[다행이다. 2시간은 괜찮겠어. 미니맵 Off!]
‘미니맵?’
그가 의문의 단어를 듣고 골똘히 생각하다, 결국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말을 꺼냈다.
“백현아, 미니맵이 뭐야?”
“네?”
“미니맵 능력, 뭐냐고. 네가 속으로 미니맵 Off라고 했잖아.”
“아, 형, 제 생각 또 듣고 있었어요?”
“미안, 이거 생각보다 체력 소모도 덜하고 괜찮은 능력이라서, 나도 모르게 계속 쓰고 있었네. 그나저나 미니맵이 뭔데?”
“음……. 그냥 저한테만 발현된 특별한 능력 같아요.”
강백현은 솔직히 왜 이게 능력으로 잡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호감도 능력도 그렇고.
미니맵 능력도 그렇고.
그런데 그 정답은 김종필이 알고 있었다.
“혹시 너 4성이야? 4등급?”
“네?”
“맞지? 너도 별 4개지? 너도 그 작아진 세상의 이야기를 미리 알고 있었던 거지?!”
김종필의 말에 김만철이 고개를 돌려 되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작아진 세상의 이야기라니?”
“몇 년 전부터 외국에서 작아진 세상의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일본, 중국 등등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팔려나갔죠.”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나는 게 있었던 김만철이 강백현에게 물었다.
“백현아, 그거 아람이랑 얘기하던 거 아니야?”
“네. 맞아요.”
“백현이는 우리들이 작아지기 전부터 그 내용을 알고 있었던 거지?”
“아……. 어느 정도는요.”
강백현의 대답에 김종필이 의문이 풀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네.”
“어떤 생각이요?”
“4등급 별 4개로 시작하는 조건은 바로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느냐였어. 그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시작점을 가지게 되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그럼…… 형도 4성이에요?”
“그래. 네 미니맵이라는 능력도 그중 하나일 거야. 직업이 별 4개인 사람들의 특권. 너도 그 직업창을 누르면 고유권능 알 수 있잖아.”
“고유권능? 고유능력이 아니고요?”
“얘 진짜 몰랐네. 1에서 3성과 4성은 달라.”
“그렇다는 건 형도 고유권능이라는 게 있는 거네요.”
“그래. 일단 직업창부터 눌러 봐.”
백현이 자신의 홀로그램 사용자 정보창에서 직업창을 눌렀다.
몰랐던 기능. 놀랍게도 직업창이 열린다.
직업창은 백현이 왜 미니맵 기능을 쓸 수 있는지 자세히 알려주었다.
○ 고유권능
1. 미니맵
2. 심리분석
○ 미니맵
하루에 30분, 허상지도를 열어 주변의 위치와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특정 금속은 허상지도의 감시 기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 심리분석
상대방의 호감도를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감도 수치 10 이상의 변화만 감지할 수 있으며, 비전투시에만 능력이 발동됩니다.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된 백현이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감사합니다.”
“아니야. 나도 백현이 네 덕분에 추리할 수 있었어. 너도 그 이야기를 읽은 거 맞지? 확실하지?”
“네. 읽었습니다.”
솔직한 강백현의 대답에 김종필이 의문이 풀린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김종필의 호감도가 35 상승했습니다.]
그리고 송기영도 마찬가지.
“뭐야? 쟤도 4성이야? 번역본 어지간히 돌려 봤나 보네.”
“왜 부럽냐? 하긴 대한민국에서 외국 소설 보는 사람이 한두 명이었겠어? 여기 4성만 3명이다. 3명.”
김종필, 거기에 이진기까지 4성이 무려 셋.
강백현은 그걸 계기로 김아람도 4성이란 것을 알아냈다.
‘아람이는 원래부터 이 소설 내용을 알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미나도 왜 4성인지 이해가 갔다.
소설 내용을 알고 있으면 다 4성 등급부터 시작한다.
게임을 시작할 때 사전 예약 코드를 입력하면 아이템을 주듯, 소설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혜택이 있었던 것.
강백현은 미니맵과 호감도.
미나에게도 어떤 능력이 있었을까?
그러고 보니…….
[그분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알 수 없는 혼잣말.
그리고 대화. 아마도 커뮤니케이션 관련 능력일 거라는 짐작이 어렴풋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강백현은 동생의 비밀을 떠올리다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김종필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내 생각을 읽고 있을까? 확인코자 한 행동이었다.
동생이 쓴 소설이란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나올까?
눈치 채면 어떻게 말해야 되지?
동생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
불행 중 다행.
김종필은 지금 자신의 생각을 읽지 않았다.
만약 읽었다면 동생에 대해서 엄청 물었겠지.
그러고 보니 그가 말한 한 시간이 다된 것 같았다.
‘조심하자. 조심해.’
송기영이 부러운 듯 말했다.
“미니맵 기능 진짜 편리하겠네. 누가 오는지 다 알 거 아니야. 미리 대처할 수 있고.”
“그렇죠. 대신 시간제한이 있어요.”
“하루 종일 미니맵만 보고 살 것도 아니니까, 껐다 켰다 하면 30분이면 넉넉할 것 같은데?”
“그렇죠.”
그때 이진기가 말했다.
“송기영! 가자!”
“지금?”
“어. 얘들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래? 보여?”
“아직도 의심하냐? 빨리 이동해.”
“네가 있어야 문을 딸 거 아니야?”
“응. 알았어.”
송기영과 이진기가 팀을 이뤄 밖으로 나갔다. 그걸 보며 김종필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역시 3명의 멤버의 브레인은 김종필이었다.
그의 생각이 궁금한 강백현이 되물었다.
“진기 형이랑 기영이 형은 어디 가는 건가요?”
그러자 김종필이 씩 웃었다.
“아마, 음식 다 처리하러 갔을걸?”
“음식을 처리해요?”
“그래. 어차피 이 게임은 시간 싸움이니까. 시간 싸움은 보급품 싸움이라고 볼 수도 있지. 가장 중요한 보급품은 아무래도 식량이고.”
강백현이 미니맵을 켰다.
3층 6번째 방을 둘이 뒤지고 있다.
“3층에 계시네요.”
“그래. 이제 너도 알겠지만, 이진기도 소설의 내용을 알고 있었어. 걔도 4등급이고.”
“그럼 그 진기 형의 능력은 뭔데요?”
“진기의 능력은 아공간. 아공간 안에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어.”
“아니……. 고유 권능이요.”
“말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아니다, 툭 까놓고 다 말할게. 진기의 고유권능은 천리안이야.”
“천리안(千里眼)이요?”
“그래. 걔는 눈을 감으면 하루에 30분, 얼마나 먼 곳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장소를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요?”
“그래.”
충격적이었다. 미니맵의 상위 호환.
어디든 볼 수 있는 천리안 능력.
“그래서 사실 너하고 만철 형님 정보도 대강은 알고 있었어. 지금은 북한 녀석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것을 알고 미리 대처하는 거고.”
강백현이 미니맵을 확대했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점들의 움직임이 확실히 보인다.
김종필이 말한 10명의 집단이 멀리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저희는 어떻게…… 아셨어요?”
“너희가 페이즈 2부터는 선두 중에 가장 선두였잖아. 그 혼자 떠난 여자애는 빛의 기둥 1등 통과자고.”
세상에는 무서운 능력들이 많이 있었다.
복제 능력에 천리안까지.
같은 편이기에 망정이지. 다른 편이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도 같은 편.
이제는 마지막 남은 4성인 그의 능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종필이 형.”
“어?”
“근데 형은 무슨 권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의 말에 김종필이 씩 웃었다.
“부활.”
“네?!”
“죽어도 다시 살아나.”
김종필의 능력을 들은 강백현은 처음 그를 보며 떠올렸던 안도감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너무나 사기적인 권능.
미니맵과 심리 분석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되살아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