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35화 (35/200)

35화. 새로운 페이즈

빛의 기둥을 통과한 백현과 미나를 반긴 것은 수면 가스였다.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시 뒤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상처가 말끔히 치료된다.

깨어난 백현은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모든 상처가 치료되어 있다.

거기에 복장은 신기하게도 처음 입었던 초보자용 바지와 옷.

작아졌을 때 입었던 그 복장 그대로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사람들이 있다.

아직 수면가스로부터 깨어나지 않은 선희 누나.

그리고 상처가 회복된 채 곤히 자고 있는 미나도 있다.

‘다행이다. 살아남았어. 죽지 않았어.’

빛의 기둥을 통과하기 전만 해도 숨을 쉬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였던 미나.

‘윤수가 기절하면서까지 치료하지 않았으면 미나는 죽었을 거야.’

강백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이 무사하니까 그걸로 된 거다.

그런데 어떤 여성의 목소리가 백현의 이름을 불렀다.

선희 누나도 아니었고, 미나도 아니었다.

“강백현.”

백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

자신과 헤어졌던 그녀가 멀쩡한 상태로 서 있었다.

먹혔던 팔까지 완벽하게 복원된 상태.

그런데 변한 게 있다.

길었던 헤어스타일이 지금은 짧은 단발.

하지만 백현은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친구의 이름을 쉽게 부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약속을 못 지켰기 때문에.

“……아……람아.”

그녀가 백현에게 어려운 말을 건넸다.

“그동안 뭐했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못 구했다고? 가보니까 만나지 못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아니다.

최선은커녕, 아람이의 집 앞에도 가지 않았다.

그게 팩트.

그럼 해줄 말은 딱 하나.

“미안.”

“왜 아무것도 못했어? 우리 엄마, 동생 죽을 동안 어디서 뭐 했어!”

아람이는 자신의 가족이 죽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디서? 언제? 어떻게?

그때 뒤에서 최형우가 나왔다.

“백현아. 무사했니?”

“아저씨…….”

“그래. 백현아, 잠시 뒤로 가 있어.”

강백현을 아람이로부터 떼어낸 최형우가 아람이한테 가서 말했다.

“아람아! 백현이한테 화내서 뭐가 되겠니?”

“하지만…….”

김아람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람아…….”

강백현의 머릿속에 아람이의 절규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밝은 웃음을 짓던 사람들도 다들 어두운 표정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갇힌 유리사육장은 상당히 컸다.

혼자만 가둔 것도 아니고 상당히 많은 사람들을 가뒀다.

김만철 아저씨가 자고 있는 윤수를 업고 나타났다.

“아저씨…….”

“백현아. 미나는?”

김만철은 미나부터 걱정해주었다.

“괜찮아요. 다 나았어요.”

“그래?”

김만철이 안도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만철을 향해 강백현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진석이 형은…….”

그러나 김만철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박진석의 죽음을 알렸다.

빛의 기둥은 대피소.

대피소로 오면 어떤 생명체든 살릴 수 있다.

그렇지 못했다는 것은…… 누군가가 죽였다는 것.

김만철 머리 위의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

선희 누나도, 미나도. 모두의 숫자가 보이질 않는다.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갔다.

최형우와 김아람.

김만철과 박윤수, 정선희.

그리고 강미나와 강백현.

그리고 모르는 사람 셋.

10명이 모이자 나타나는 홀로그램.

또 그 녀석! 찰스다.

“페이즈 2, 선착순 10명에 드신 여러분! 축하합니다!”

그리고 떠오르는 메시지.

[메인퀘스트 : 페이즈 2를 통과하였습니다.]

[생존조건 1, 2를 모두 달성하였습니다.]

[페이즈 2, 선착순 10명에 포함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엑스트라 페이즈의 도전기회가 추가됩니다.]

“엑스트라 페이즈?”

찰스 녀석이 입방정을 떨기 시작했다.

같은 인간인데,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건 바로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홀로그램 자막을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백현의 시선을 끌었다.

“엑스트라 퀘스트에서 우승하면 이미 죽은 동료를 되살릴 수 있습니다. 각 페이즈 선착순 10명에게만 주어지는 절호의 기회죠.”

엑스트라 퀘스트의 무대인 전장이 보였다.

홀로그램에 뜬 전장은 섬이었다.

자막은 데스 아일랜드.

해석하면 죽음의 섬.

그리고 떠오르는 퀘스트.

[엑스트라 퀘스트 : 엑스트라 페이즈. 국가대항 서바이벌]

아시아 지역의 생존자가 모여 즐기는 페스티발! 서로 죽고 죽여 최후의 생존팀이 되어보세요. 마지막까지 생존한 팀의 죽은 참가자는 서비스로 살려드려요. 희생 플레이도 가능하겠죠?!

[생존조건 1 : 다른 팀(국가)의 참가자를 모두 죽일 것.]

[생존조건 2 : 다른 팀(국가)보다 통합 Point가 많을 것.]

[Tip : 6시간 동안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가장 낮은 통합 Point를 가진 팀의 슈트는 자동 폭발합니다.]

[보상 : 영혼의 돌 (페이즈 1, 페이즈 2에서 죽은 사람의 목숨을 되살릴 수 있다.)]

룰은 간단했다.

1. 참가하면 섬으로 이동한다.

2. 각 국가의 참가자들과 데스 서바이벌 경기를 펼친다.

3. 2등부터 꼴찌까지 속한 팀은 죽고, 마지막까지 생존한 팀은 죽은 자도 되살아난다.

4. 생존한 팀은 서로 의논 하에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

“모두 참가할 필요는 없답니다. 참가하고 싶은 사용자만 참가하면 돼요. 굳이 목숨 걸라고 안 할게요. 남은 페이즈는 많으니까! 지금부터 죽는 건 싫거든요.”

찰스한테 왜 이질감이 들었는지 확실히 알겠다.

언어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녀석은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유희의 대상.

단순히 시간을 때우고, 즐기기 위한 여흥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것.

아무튼 찰스의 말에 모두가 술렁거렸다.

백현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미나가 살아있으니까.

곁에 있으니까.

미나도 같은 생각.

“오빠, 고마워.”

“뭐가…….”

“오빠가 나 살려줬잖아.”

“됐어. 고마운 건 윤수한테 고마워해.”

“응. 나중에, 지금은 그냥…… 오빠랑 이렇게 있고 싶어.”

등을 마주대고 기대는 두 사람.

남매 사이.

서로를 위하는 두 사람의 마음이 연결됐다.

미나의 마음이 콩닥거렸다.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

그건 바로 오빠가 있기 때문에.

강백현 또한 그러한 이유.

이제 오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 더욱 더 가깝게 느껴졌다.

정선희와 윤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엄마…….”

“그래. 윤수야. 여기 남자.”

“응.”

누가 봐도 합리적인 결정.

아시아 국가 대항전.

과연 몇 개의 국가가 참전하는 걸까?

10개 국가가 참전하면 생존율은 10%.

20개 국가가 참전하면 생존율은 5%로 떨어진다.

물론 아예 참전하지 않는 국가도 있을 테니 확실치는 않지만, 아무튼 생존율이 너무나 낮아 참가하는 것 자체가 죽으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아무도 참가 안 하는 게 맞는데…….

처음 보는 세 명의 남자들은 좀 다른 것 같았다.

“야! 태철이 안 살릴 거야?”

“미친 새끼야! 죽으러 가는 거잖아.”

“송기영, 너 진짜 너무한다. 너 살리려다가 태철이 죽은 거 기억 안 나? 너 대신 여우한테 물려간 거 생각 안 나냐고!”

“그건 그 새끼가 뚱뚱해서 잡혀간 거지. 나는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어.”

그런데 그때, 한 여성이 손을 들었다.

“찰스, 참가할게.”

“네! 첫 번째 참가자가 나왔네요. 김아람 참가자, 접수했습니다.”

그녀의 참가 의사에 최형우가 머뭇거렸다.

“아람아……. 미안하다.”

“괜찮아요.”

케이블카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아람이.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만나야 할 가족이 있기에.

아직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있기에.

무턱대고 죽음의 전장에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아람의 참가에 세 명의 친구들이 서로 언성을 높였다.

“야! 여자도 가는데, 진짜 태철이 구하러 안 가냐?”

“아! 졸라 위험해 보인다니까!”

“송기영 이 새끼, 진짜 더러운 새끼네. 제이피, 우리끼리 가자.”

“그래!”

마른 사내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찰스가 웃으면서 접수했다.

“사용자 이진기, 참가 접수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동조하던, 제이피라 불리던 한 남성도 손을 들었다.

“사용자 김종필, 참가 접수 완료했습니다.”

둘이 손을 들자, 키 크고 깡마른 남자가 고개를 젓는다.

‘아, 미친 새끼, 누가 봐도 죽으러 가는 건데…….’

하지만 두 친구의 죽음을 지켜볼 자신이 없다. 그래서 또 손을 들었다.

“사용자 송기영, 참가 접수 완료했습니다.”

이제 참가자는 넷.

남은 사람은 여섯.

강미나와 강백현, 박윤수, 정선희, 최형우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

미나가 백현의 손을 꼭 잡았다.

“오빠, 언니한테 미안해하지 마. 오빠가 잘못한 거 아니잖아.”

“응.”

미나는 오빠의 생각이 자꾸 아람 언니한테 쏠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의 엄마나 동생이 죽은 게 오빠 책임이 아닌데, 오빠는 죄책감 때문에 미안해하고 있었다.

“참가자는 이 4명뿐인가요? 그럼 접수를 마감하겠습니다.”

찰스의 말에 김만철이 손을 들었다.

“잠깐!”

강백현은 깜짝 놀라 김만철을 쳐다보았다.

“저도 참가하겠습니다.”

“사용자 김만철, 접수했습니다. 앞으로 나오세요.”

김만철은 앞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괜찮아. 살아 돌아올게.”

“아저씨……. 가면 죽어요. 지금이라도 취소하세요.”

하지만 김만철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굳은 결심을 토해냈다.

“난 형님하고 아버지 때문에라도 가야 할 것 같다. 살아 돌아올게.”

그의 말에 강백현이 동생 미나의 주변에 보호막을 둘렀다.

그러자 강미나가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오빠의 생각이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반투명 방벽을 두드리며 말했다.

“오빠! 오빠!”

“미안. 미나야. 다녀올게.”

“안 돼! 안 돼! 안 돼!”

동생을 보호막에 가둔 백현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찰스가 웃으며 말했다.

“강백현 사용자도 참가하시는군요. 접수 완료했습니다. 이상이십니까?”

그때 강미나가 손을 들려 했다.

그런데…… 보호막이 줄어들며 미나의 움직임을 차단한다.

미나는 손을 들 수 없었다. 그녀가 비명을 내지르지만, 좁은 범위로 좁아진 보호막 벽 밖으로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미나야. 미안, 너까지 위험해질 필요는 없어.’

“후후, 강백현 사용자, 참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그럼 6명으로 접수 완료했습니다. 전장 진입 전 잔여포인트로 장비나 능력을 구입해주세요. 생존포인트를 지금 바로 지급해드리겠습니다! 너무 많이 쓰시면 참가자 통합점수 때문에 위험해지는 거 아시죠? 일정 점수는 남겨두시길! 그럼 포탈을 열어드리겠습니다.”

포탈이 열렸다.

백현이 홀로그램 화면을 통해 자신의 획득 점수를 확인했다.

[생존 포인트 200]

[킬 포인트는 이미 점수에 반영되었습니다.]

[포인트 200이 추가되었습니다.]

능력을 구입하거나, 레벨 업하고, 슈트를 업그레이드하는 시간.

각자가 서로의 동료를 살리기 위해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그때 김만철이 백현을 불렀다.

“강백현……. 넌 왜 와?”

“왜긴요. 이제 아저씨 가족 살려야죠. 갈까요?”

강백현이 상점에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구입한 후 먼저 포탈을 통과하자, 김만철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따라나섰다.

‘녀석……. 괜히 감동시키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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