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승급
정선희의 4성 등급 승급 소식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은 박진석이 아내에게 건넨 말투.
“선희야. 너 그 남자 4성인 거 알고 있었지? 그래서 그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 쳐다본 거지?”
“오빠! 갑자기 왜 그래? 나 지금 엄청 불안하단 말이야.”
별 4개에 대한 집착.
자신의 아내한테까지 몰아붙이는 그의 비정상적인 행동이 백현으로 하여금 쓴웃음을 머금게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에 윤수가 울음을 터트렸다.
“으아아아앙!”
그러자 정선희가 윤수를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윤수는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죽이려 할 거라는 것을.
그때 엄마를 살리면 아빠가 죽고, 아빠를 말리지 않으면 엄마가 죽는다.
‘싫어. 아빠 죽는 것도 싫고, 엄마 죽는 것도 싫어!’
수백 개의 미래를 본 윤수.
아빠와 함께하는 미래도 있고 엄마와 함께하는 미래도 있다.
그런데 둘 다 같이 공존하는 미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없었다.
아빠도 좋고, 엄마도 좋다. 그러나 누군가를 살릴지 결정해야 한다.
언젠가는 아빠가 엄마를 죽일 테니까.
윤수의 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꼬마 녀석의 팔이 엄마를 붙잡았다.
“엄마, 죽으면 안 돼. 엄마 죽는 거 윤수는 싫어.”
“엄마 안 죽어. 윤수야. 엄마는 윤수 곁에 계속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정선희와 윤수의 말에도 박진석은 입술을 꽉 깨물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내가 죽였어야 하는데! 내가 그 강철인간을 죽였어야 하는데!’
강미나는 미래를 알고 있는 윤수의 생각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어린애가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 거야?’
상대방의 생각을 읽으며 그때그때 대처하는 자신도 이렇게 괴로운데, 꼬마 윤수는 비극적인 미래를 알면서도 그동안 웃으며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왜? 아닐 거라고 믿었던 거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때가 되어서야 현실을 인식한 아이, 윤수가 엄마의 품에 안긴 채 말했다.
“엄마, 빨리 들어가. 대피소로 도망쳐야 해.”
강백현도 마찬가지 의견이었다.
“일단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4등급이 되서 모두에게 신상정보가 알려진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 사람을 죽이면 자신이 모두의 타겟이 되는 것과 같아요. 사람들이 그 위험을 무릅쓰고 섣불리 선희 누나를 공격하려 들지는 않을 거예요.”
예리한 분석.
윤수 또한 그 사실은 알았다.
하지만 적은 내부에 있다.
그놈이 말을 걸었다.
“윤수야. 울지 말고 아빠한테 와. 엄마는 아빠가 지켜줄게.”
친 핏줄.
부자 사이.
하지만!
“싫어! 아빠랑 이제 같이 안 다녀! 아빠랑 같이 안 다닐 거야.”
윤수는 아빠와 엄마 중 엄마를 택했다. 이렇게 해야 엄마와 끝까지 함께할 수 있다.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엄마와 함께하려면, 아빠랑 여기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만철은 윤수를 타이르듯 말했다.
“윤수야. 아빠한테 그러면 못써.”
그런데 윤수는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저씨도 미래 봐서 윤수가 왜 이러는지 알 거야. 윤수는 거짓말 안 해. 아빠가 엄마 죽이려고 해. 그러니까 아빠랑 이제 안 놀 거야.”
고작 5살 꼬마의 말.
하지만 김만철도, 정선희도 그 의미를 알고 있다.
최복자 할머니의 미래 예지 능력.
윤수는 이미 박진석이 어떻게 나올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를 감싸고 뒷걸음질 치는 정선희.
그걸 보며 분노하는 박진석!
“여보! 선희야! 왜 그래? 나 못 믿어? 너랑 나랑 부부야! 내가 왜 널 죽여? 여보! 자기야! 선희야! 오빠 얼굴 봐. 오빠 그렇게 잔인한 사람 아니야. 응?”
박진석의 말에 정선희가 눈물을 흘렸다.
남편을 무척이나 사랑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한 후 남편은 확실히 변했다.
그 강철로 된 남자를 죽이라며 강요하는 것부터, 그 남자가 4성으로 밝혀지자 자신을 탓하며 소리지르는 것.
거기에 윤수가 본 미래.
모든 정황이 남편을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다.
거기에…….
강미나의 증언.
“선희 언니, 믿으면 안 돼요. 진석 오빠는 제가 마음을 읽는 것을 알고 계속해서 경계했어요. 저희를 죽이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러자 정선희는 미나가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저도 진석 오빠처럼 약점이 있어요. 저보다 높은 등급은 생각을 못 읽거든요. 그래서 1성 직업만 읽을 수 있어요.』
“미나야……. 너 등급 높은 사람은 못 본다고 하지 않았어?”
선희의 말에 미나가 말했다.
“사실은…….”
그런데 윤수가 미나의 결정적인 비밀을 터트렸다.
“엄마, 미나 누나도 엄마랑 같은 4등급! 그래서 윤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정선희는 윤수의 말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미나는 자신의 능력을 속였고, 윤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남편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하고 있다.
이때 미나에게, 윤수의 말에 머리를 굴리는 박진석의 생각이 들려왔다.
[잠깐! 쟤도 4성이었어? 그럼 이야기가 빠르잖아!]
자신을 죽이려고 함정을 파려는 박진석의 검은 속셈. 그것이 여과 없이 미나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미나가 뒷걸음질 쳤다.
“으……. 싫어! 싫어!”
그런 동생을 지키기 위해 백현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내 뒤로.”
“응.”
박진석은 조소를 머금었다.
[낄낄, 이거 완전 정당방위잖아! 지금 저년을 죽이면 나도 4성이고, 선희도 4성이야. 완전 횡재잖아!]
박진석은 생각을 굳혔다.
여기서 강미나를 죽이자고. 그리고 그 일당도 다 죽이자고.
그래서 궤변을 늘어놓았다.
“선희야! 윤수는 쟤들한테 당하고 있는 거야. 날 믿어! 윤수 데리고 나한테 와.”
“진석 오빠…… 믿어도 되는 거지?”
“그래. 윤수 데리고 나한테 와. 쟤들 믿지 말고.”
하지만 윤수는 절대 아빠한테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가면 엉아도 죽고, 미나 이모도 죽고, 엄마도 엉아 살리려다가 죽어. 그러니까…… 가면 안 돼. 절대 가면 안 돼!’
윤수가 엄마의 슈트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자 박진석이 시체를 일으켰다.
“미나야! 숨어!”
“응.”
강백현은 동생을 숨겼다. 그러나…….
초음파 능력자 최소라에 의해 위치가 들통 나고 말았다.
지금 상황에서 박진석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최소라를 이용해 강미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얼음능력자 한현웅을 이용해 강미나를 공격한다.
얼음파편에 스친 강미나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미나야!”
강백현은 스스로 얼음능력자에게 접근, 보호막을 펼쳐 미나로 향하는 파편을 막았다.
하지만 그도 체력이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보호막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정선희가 당황한 채, 박진석을 막으려 이동했다.
“진석 오빠! 뭐하는 거야!”
하지만 정선희는 강철능력자 한철웅의 날치기공격 단 한 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선희야. 나 미워하지 마라. 다 너하고 윤수를 위한 거야. 4등급이 되면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잠자코 지켜봐.”
“엄마…… 엄마!”
윤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자신의 모든 능력을 사용해 엄마를 치료했다.
하지만 조종당하는 한철웅은 그런 윤수조차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강백현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끌어내 윤수에게 향하는 강철주먹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걸로 한계.
강백현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그의 슈트도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며 기능을 정지했다.
머리가 반쯤 아작 난 한철웅이 강백현에게 달려왔다.
강백현은 자신의 목숨이 끝난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한철웅은 강백현의 바로 앞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그 이유는 박진석이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윤수가 울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죽어가는 박진석을 살리진 않았다.
아빠를 살리면 모두를 죽이니까.
“크읍…….”
김만철이 씁쓸한 얼굴로 척추가 부러진 박진석에게 말했다.
“친구야, 미안하다.”
“내가…… 왜…….”
“너의 약점은 너 그 자체니까. 나를 의식하지 않은 시점에서 넌 진 거야.”
김만철이 윤수를 향해 말했다.
“윤수야. 아빠 치료해.”
“싫어! 치료 안 해!”
“치료해!”
“아빠를 치료하면 미나 누나나 엄마 둘 중 하나가 죽어. 난 아빠 치료 안 할 거야.”
윤수는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슈트도 기포가 보글보글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만철은 알았다.
윤수도 한계라는 것을.
하긴 오늘 윤수가 치료한 것만 5번이 넘는다.
윤수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선택으로 엄마나 아빠 둘 중 하나가 여기서 죽는다는 것을.
그래도 아빠를 마지막까지 믿었다.
자신이 본 미래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아빠를 좋아했다.
하지만 박진석은 욕망에 물들었다.
강해지는 것에 이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윤수가 정선희를 치료한 후, 미나 이모가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미 기포가 보글보글. 한계였지만, 윤수는 자신을 더욱 몰아붙였다.
강미나의 얼굴이 성한 곳이 없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몰골.
하지만 윤수는 그래도 살릴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되돌리지는 못하지만, 빛의 기둥까지 갈 동안 미나의 생명을 유지하게 만들 능력은 있었다.
그러다 자신이 기절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윤수는 한계까지 능력을 사용하며 미나의 생명을 되돌렸다.
기절한 윤수와 의식을 잃은 채 생사를 헤매는 미나.
그리고 그런 미나를 등에 업고 빛의 기둥으로 걸어가는 백현.
“미나야. 조금만 참아. 낫게 해줄게. 그러니까 오빠 믿고 살 생각만 해. 알았지?”
듣고 있는 건지 아닌지 모를 동생을 위해 강백현은 혼잣말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그에게 아무도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정선희는 기절한 윤수와 생사를 오가는 미나를 보며 상황을 파악했다.
“크읍……. 선희야! 나를 대피소로! 빛의 기둥으로 데려가. 으아아아아악!”
척추가 부러진 박진석이 아내를 향해 살려달라고 빌었다.
자신을 부축해 빛의 기둥까지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정선희는 이미 자신의 마음을 굳혔다.
얼음 파편이 박진석의 얼굴을 찍었다.
남편이 한철웅을 죽이라고 했을 때 그랬듯이 자기 남편의 얼굴을 칼날로 찍었다.
눈, 코, 입. 구멍이라는 구멍은 다 찍어 남편의 입에서 한마디도 나오지 않게 만들었다.
남편이 원한 자신의 모습.
그건 바로 잔인한 살인귀.
그녀는 묵묵히 남편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래. 진석 오빠, 오빠 말대로 이 세상은 아무나 믿을 수 없어. 그게 남편인 오빠여도…….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어.’
그녀가 자신의 힘으로 큰 바위를 들었다.
바위가 박진석의 머리 위에서 멈췄다.
정선희의 한계를 넘은 슈트가 부글부글 끓으며 이제 한계라고 비명을 질렀다.
정선희는 알았다.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남편 박진석이 아닌 윤수, 미나, 백현, 만철이라고.
바위가 박진석의 머리를 그대로 내려찍었다.
빠직!
바위에 묻은 혈흔.
그리고 0으로 바뀐 숫자.
잠시 후, 정선희의 머리 위 숫자가 늘어났다.
김만철은 그 장면을 전부 지켜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모두에게 따뜻했고, 남을 위해 선행을 베풀고, 조용한 가운데에서도 항상 버팀목이 되었던 정선희의 변화를 보며, 김만철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선희 씨…….”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김만철을 잠시 응시하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 짧은 말을 남겼다.
“아무 말 하지 말아요.”
“선희…… 씨.”
“정상으로 가요.”
그 말이 왜 이렇게 슬피 들렸을까?
김만철은 기절한 윤수를 등에 업고 산을 오르는 그녀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빛의 기둥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