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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cm헌터-33화 (33/200)

33화. 갈등

강백현은 부동자세였다.

녀석이 명령하면 그대로 따라했다.

“꿇어!”

“바닥에 머리 박아!”

녀석의 명령에 박진석도 강백현도 같은 자세로 바닥에 머리를 내리찍었다.

얼굴이 뭉개질 정도의 충격.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두 사람.

명령이 정확하게 이행되는 것을 확인하며 최면 능력자는 안심한 채, 동료를 바라보았다.

초음파 능력자인 여성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아서, 손에 얼음을 든 채로 푹 쓰러진 남자를 흔들었다.

“현웅아! 죽었어? 정말 죽은 거야? 일어나! 나랑 끝까지 함께한다고 했잖아.”

“한소라, 약한 소리하지 마. 그러니까 처음부터 남자친구랑 같이 있겠다고 주장하지 말았어야지! 추적 능력밖에 없으면서 뭘 같이 있겠다고! 내가 말했잖아. 능력을 고려해볼 때, 너랑 내가 맞는다고. 강철인간인 철웅이 형은 현웅이랑 잘 맞고. 내가 말한 대로 붙어 다녔으면 누가 와도 다 이길 수 있었어.”

“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흑흑, 하지 말란 말이야!”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우는 초음파 능력자 한소라.

그녀를 향해 굵은 목소리의 남성이 말했다.

“한소라! 적당히 해. 다 네 잘못이야.”

“흑흑, 어쩌라고! 빨리 현웅이 살려내! 살려내란 말이야!”

한소라의 말에 최면 능력자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애는 못 살려. 대신 네 남자친구 죽인 애는 너한테 줄게.”

최면 능력자가 그 말과 함께 박진석을 죽이러 걸어가기 시작했다.

강백현은 자신이 한 번에 녀석을 죽일 수 있을지 가늠해보았다.

그런데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 아무래도 실패할 것 같았다.

‘제발, 제발! 나한테 가까이 와! 가까이 오라고!’

얇게 친 보호막을 걷어내면 틀림없이 최면에 걸린다.

그래서 반드시 한 번에 성공해야 했다.

그가 박진석에게 걸었던 최면의 범위를 고려했을 때, 적어도 1m 안쪽은 녀석의 사정범위 내에 있었다.

실로 무서운 능력이었다.

반경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니.

‘안쪽으로 들어와라! 나한테 접근해! 접근하라고!’

강백현은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채, 녀석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살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점점 의지가 약해진다.

보호막을 펼 수 있는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기회를 엿봐야 하나. 선택의 기로에 선 그때, 한소라가 소리쳤다.

“왜 이렇게 매정해? 넌 현웅이가 죽은 게 아무렇지도 않아? 친구잖아! 최태섭! 최태섭!”

“난 죽은 놈이랑은 친구 아니야. 어차피 이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 거야. 영악한 놈이 살아남는 거고. 마지막 기회 준다! 그놈 죽여서 네 포인트라도 올려. 그래야 현웅이 목숨 값이라도 벌지 않겠어?”

“난 사람 못 죽여!”

“네 남자친구를 죽인 사람이라도?”

“그래도 난…….”

“죽이라니까!”

최면 능력자가 다시 방향을 돌려 박진석에게 다가갔다.

강백현은 결심했다. 도망치자고.

이대로는 자신도 죽겠다고.

그런데 한소라란 여자가 동료 최태섭한테 소리쳤다.

“다가오지 마! 다가오지 마!”

최태섭은 낄낄 대며 한참을 웃었다. 그러더니 눈을 부릅뜨며 한소라를 바라보았다.

“야! 한소라! 내가 무섭냐? 왜? 너 덮치기라도 할까봐?”

녀석의 말에 한소라가 눈을 가리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런데 손이 얼굴 위까지 올라갔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곧 이어 흐리멍덩해지는 눈동자.

그것을 보며 강백현은 알았다.

일정범위 안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게 그가 최면을 거는 방식이라고.

최태섭이 최면이 걸린 한소라를 보며 비웃었다.

“이제 너 지켜 줄 현웅이도 없잖아? 별것도 아닌 게 뭘 자꾸 대들어?”

낄낄대며 접근하는 최태섭의 야릇한 눈이 한소라를 향했다.

그걸 보며 강백현은 안심했다.

기회가 왔다고.

녀석의 욕정 때문에 모두가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녀석이 접근한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알았다. 이제 자신의 사정범위에 녀석이 들어왔다는 것을.

강백현은 보호막을 풀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하면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

다행이었다.

성공이었다.

‘더 접근해! 더 접근해!’

그런데 최태섭이 한소라가 아닌 박진석이 있는 방향을 향해 말했다.

“일어나!”

녀석의 말에 윤수 아빠가 일어났다.

“따라와!”

녀석의 명령에 박진석이 따라온다.

백현은 그 이유를 금세 파악했다.

일정범위 안에 두어서 최면이 깨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

긴장감이 몰려왔다.

아직은 거리가 멀었다.

한 번에 죽일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좀 더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최태섭이 말한 것이다.

“너도 일어나!”

강백현은 녀석의 명령에 서서히 일어났다.

강백현은 제발 녀석이 자신의 눈을 보지 않기를 바랬다.

자신이 보호막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겨우 5초 남짓.

처음에 얼음 능력자를 죽이려고 보호막을 너무 남발한 나머지 체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그때, 녀석이 한소라를 향해 말했다.

“한소라! 사람 죽이기 싫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네 손으로 직접 죽이게 해줄게.”

녀석의 명령에 한소라가 날카로운 얼음 파편을 들었다.

얼음 파편 때문일까? 한소라의 손에서도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최면 때문인지 자신의 손에서 출혈이 계속되는데도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강백현이 속으로 빌었다.

좀만 더 접근하라고! 접근하면 최면술사를 죽이겠다고.

지금 이 여자를 죽이면 자신이 최면에 걸린다.

그러면 자신이 죽는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최태섭의 명령이 떨어졌다.

“죽여!”

그의 말에 한소라가 얼음 파편으로 강백현의 머리를 찍었다.

하지만 얼음파편은 강백현을 찍지 못했다.

강백현이 달려나갔기 때문이었다.

강백현은 보호막을 펼치며 눈을 떴다.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녀석이 가까이 있다.

“뭐지? 이 새끼! 어떻게 된 거야?”

최태섭이 당황했다. 그러더니 뒤쪽으로 도망치며 박진석에게 명령을 내렸다.

“죽여! 죽여!”

하지만 강백현은 승리를 직감했다.

녀석이 뒤돌아서서 뛰어가기에 서로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보호막을 조각 단위로 나눠 녀석에게 정확히 날릴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강백현은 자신의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녀석의 등이 핏물로 물들어갔다.

슈트를 뚫은 보호막 파편이 최태섭의 폐, 심장, 신장, 대장, 소장. 모든 장기를 아작내버렸다.

“아……. 어떻게 된 거지?”

박진석이 정신을 차렸다. 붉게 물든 시야.

머리에서 나오는 출혈.

땅에 머리를 박아서 생긴 상처.

“진석이 형, 가만히 있어요. 움직이다가 출혈 심해지면 죽을지도 몰라요.”

“아니, 저 여자는 죽여야지.”

그리고 정신을 차린 또 다른 여자.

그녀의 손에 들린 얼음 파편.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혈흔.

남자친구의 주검, 그리고 그 친구인 최태섭의 주검.

두 남자의 죽음을 목격한 한소라를 향해 피투성이가 된 박진석이 이동했다.

그는 먼저 한소라의 죽은 남자친구를 일으켰다.

그 다음은 장기가 망가진 최태섭을 일으켰다.

“진석이 형…….”

“기다려. 금방 죽일 테니까.”

박진석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최태섭을 이용해 여자의 움직임을 묶었다.

그리고 파바바박!

움직이지 못하는 여자를 향해 무수히 많은 얼음파편을 날렸고, 그 장면을 본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뒤돌아섰다.

* * *

같은 시각.

윤수의 레벨 2 치료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었다.

“아저씨, 마음대로 싸워도 돼. 5분 동안 계속 상처가 회복될 거야.”

안 그래도 몸이 단단한 김만철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김만철은 한 마리의 늑대인간과도 같았다.

강철로 된 인간과 무식하게 싸우고 또 싸웠다.

강철의 날카로운 단면인 손날과 부딪혀도 신체강화 능력 덕분인지 그저 찢어지는 선에서 그친다.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출혈.

하지만 출혈은 윤수의 능력으로 곧장 멎고, 놀랍게도 상처도 수복되어 원상태로 바뀌어 버린다.

“아저씨, 좀 센데?”

강철인간 한철웅이 웃으면서 말했다.

“…….”

하지만 김만철은 묵묵부답.

“아저씨, 그러지 말고! 제대로 붙어 보자! 누가 이기나 한번 제대로 싸워보자고!”

김만철은 강백현의 말을 기억했다.

시간을 끌어달라고. 그러면 자신이 꼭 이겨서 도와주러 오겠다고.

상성이 나빴다.

그러나 이길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선희 씨와 윤수, 그리고 자신의 힘이라면 녀석을 제압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깡깡!

강철 인간의 몸은 확실히 단단했다.

강화된 주먹으로 열심히 녀석의 몸을 타격해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

김만철은 자신의 슈트의 성능을 최대한 끌어올릴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접었다.

‘백현이를 믿자. 믿자! 믿는 거야!’

그 믿음이 소극적인 대치구도를 만들어 냈다.

그러자 강철인간이 비웃으며 말했다.

“뭐야? 설마 시간이라도 끌려는 거야? 너희 동료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다면?”

“크크크,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했어. 그쪽엔 최면술을 쓰는 괴물이 있다고! 걔한테는 나도 무서워서 접근을 못한다니까!”

그때 강미나가 위쪽에서 뛰어내려왔다.

“미나야!”

“아저씨! 우리 오빠! 우리 오빠!”

오빠의 생각이 들리지 않자 구조요청을 하러 내려온 미나.

하지만 이곳의 상황은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윤수와 정선희가 서로 부둥켜안고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숨어 있었고, 김만철이 한철웅과 대치하는 중.

도저히 누굴 도와줄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것 봐! 너희들이 나눠진 시점에서 이미 끝난 거라니까?”

한철웅은 처음부터 녀석들이 시간 끄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반겼다.

어차피 이기니까.

최태섭 근처에만 가면 누구나 다 그 녀석의 꼭두각시가 되니까.

그런데 당황했던 미나의 표정이 싹 변했다.

“뭐야? 이 학생, 독기 품은 거 봐. 내가 틀린 말 했어? 걔 죽었어. 이미 뒈졌을 거야. 너도 곧 죽을 거고.”

하지만 강미나는 녀석의 협박에 오히려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말 후회할 거야!”

“기다려! 너도 곧 내 칼날로 찢어 죽여 버릴 테니까.”

그때,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태섭아! 왔어? 왜 이렇게 늦었어? 금방 끝낼 줄 알았는데!”

그런데 자신이 알고 있는 태섭의 몸이 엉망으로 난도질 당한 상태다.

“태섭아?”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최면? 태섭이가 나를?’

그리고 잠시 후, 최면이 깨어났다.

그런데 자신의 온몸이 얼어붙은 상태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왜!’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되살아났던 게 생각났다.

분명히 제대로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움직였었지.

‘사체를 움직이는 녀석이 있다고?’

한철웅 앞에 3명의 망자가 서 있다.

모두가 자신이 아는 얼굴.

자신의 동생 현웅이, 그리고 녀석의 여자친구 한소라, 거기에 현웅이 친구이자 최면술사인 태섭이까지…….

“아, 벌써 끝났나? 출혈 때문에 더 움직이질 않네.”

박진석이 고개를 저으며 한탄을 늘어놓았다.

‘설마…… 설마! 다 죽은 거야? 너희들이 다 죽인 거야?’

말을 하고 싶어도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추위 때문에 입술이 얼어붙었기 때문.

온몸을 강철로 변화시켜도 내부는 변화시킬 수 없었다.

강철인간은 피부 표면만 강철로 강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으니까.

가까이서 보니까 그런 약점들이 다 파악된다.

박진석이 아내를 향해 말했다.

“선희야. 네가 죽여. 죽여서 그 점수로 증폭을 2레벨로 올려. 그래야 윤수도 치료 레벨3을 쓸 수 있고 나도 사령술 레벨 3을 쓸 수 있을 테니까. 네가 강해져야 모두가 강해져.”

“오빠…….”

“녀석들이 한 짓을 똑같이 돌려주는 것뿐이야. 이제 우리는 돌이킬 수 없어.”

남편의 말에 정선희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왜 죽여야 하는 걸까?

왜 이런 상황이 왔을까?

하지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다.

백현이도, 미나도, 만철 씨도, 남편도, 심지어 윤수까지도.

정선희가 남편을 향해 부탁했다.

“오빠, 윤수 좀 안 보이는 곳으로 데려가줄래?”

“그래.”

윤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정선희가 얼음파편을 가지고 녀석의 눈을 찍었다.

하지만 강철 인간의 얼굴 위 숫자가 아직도 100대를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귓구멍을 찍었다.

귀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한철웅은 알았다.

이제 진짜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그는 스스로 강철로 된 피부를 풀었다.

그리고 말하려고 했다.

너희들 언젠가는 천벌 받을 거라고. 내가 지옥에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얼어붙은 입술은 뗄 수 없었으니까.

빠각! 빠각!

잔인하지만 그는 자신의 동생이 만들어놓은 얼음파편에 찍혀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띠링.

정선희 머리 위 숫자가 순식간에 152점으로 향상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모두에게 떠오르는 홀로그램 메시지.

[축하! 축하! 정선희 사용자가 4성 강철의 왕자, 한철웅을 죽이고, 4성 능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뜨는 정선희의 홀로그램.

얼굴, 키, 몸무게, 신체에 능력까지 모든 게 나온다.

거기에 퀘스트도 떴다.

[히든 퀘스트가 열렸습니다.]

[4성 능력자를 죽여 4등급으로 승급하세요.]

[시간제한 : 없음.]

[보상 : 4성 등급으로 승급]

[전달 : 지금부터 4성 등급으로 승급한 사용자에게는 축하메시지가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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