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어둠
어둠이 깔려왔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지만 주변은 밝았다. 그건 빛의 기둥 때문.
달빛과 함께 빛의 기둥에서 산란된 불빛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다시 합류한 등산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오르고 있었다.
가파른 길이었지만 짧아서 시간적 이점이 있었던 비탈길.
하지만 포인트를 획득하기 위해 허비했던 시간 때문에 수백 명이 백현 일행을 앞질러 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제 곧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일까?
60대 초반의 남성이 백현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보며 말을 걸었다.
말을 건 상대는 당연하게도 가장 노안인 김만철.
“어우~ 어디서 오셨어요? 완전 진흙 밟고 오셨는데?”
슈트에 묻은 진흙.
그걸 포착한 눈썰미.
김만철은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비탈길로 왔습니다.”
“근데 아드님하고 같이 왔나봐? 아드님이 굉장히 잘생겼네.”
“네? 동갑인데요?”
“응? 몇 살이신데?”
“저 서른여섯인데요.”
“정말?! 아무리 봐도 50대인데, 30대였어?”
김만철이 당황한 얼굴로 다시 되물었다.
“제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요?”
“아니! 이 사람아, 고생을 얼마나 한 거야? 나이 서른에 벌써 주름이 한가득하고.”
60대의 남성과 일행인 다른 남성에게 되묻는 김만철.
“아, 진짜 그래 보여요? 여기 이 사람이 제 아들처럼 보이나요?”
“그럼! 아들에 손자인 줄 알았지. 우리 또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먼!”
할아버지는 신기해하면서 김만철 옆 박진석을 바라보며 또 물었다.
“거기 젊은 친구, 둘이 진짜 동갑이야? 사실이야?”
할아버지 두 명은 팀이었다. 등산을 좋아하는 두 할아버지. 그들의 말에 박진석이 흘러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네. 제 친구가 좀 노안이죠?”
“노안이고말고! 폭삭 늙었네.”
두 할아버지는 나이에 비해 체력이 엄청 좋았다.
조금조금씩 앞서가는 사람들.
그 둘이 앞장서서 나아가자, 강백현이 그들에게 따라붙으며 물었다.
“엄청 빨리 올라오셨네요.”
“빠른 것보다 쉬지 않고 올라온 거지. 저 친구랑 나는 산악회 리더하고 부리더를 맡고 있으니까 젊은 친구들에게 비해서 잘 걷지. 안 그러냐?”
“후후, 태백이 너도 참~ 그 나이에 비해서는 체력 좋아!”
“크크, 형복이 너도 마찬가지지 뭐.”
두 노인은 으쌰으쌰 서로를 응원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 보니 태백이라던 할아버지의 손에는 등산용 스틱이 들려있고, 형복이라던 할아버지의 발에는 아이젠이 착용되어 있다.
“젊은 친구들! 정상에서 보자고!”
“네. 아저씨! 먼저 올라가세요.”
속도가 빠른 두 사람이 결국 백현 일행을 앞질러 나갔다.
그 뒤로도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차례차례 등산로에서 백현 일행을 앞질러 갔다.
깡충깡충 토끼처럼 점프를 할 수 있는 사람.
로켓장치 같은 것을 소환해 등 뒤에 장착한 후 날아갈 수 있는 사람.
다리가 고무처럼 늘어나고, 줄어들어서 한 번에 많은 거리를 도약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윤수가 그런 사람들을 보며 보챘다.
“엄마, 야옹이, 야옹이.”
“왜? 또 야옹이가 앞에 있어?”
아들 윤수의 손을 잡고 걷는 정선희.
아들이 미래를 봤던 장면을 떠올리며 말하는 줄 알고 물었다.
그러자 강미나가 윤수의 손을 잡으며 아이를 달랬다.
“윤수야. 야옹이는 이제 못 타. 윤수는 걷는 게 싫구나.”
“응.”
“누나가 업어줄게.”
“응!”
윤수가 방긋 웃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면 누나가 업어줄 줄 알고 있었지롱!]
그리고 그런 윤수의 생각에 미나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윤수야. 누나가 한 번만 속아주는 거야. 잔꾀 부리면 다음부터 안 속아줄 거야.”
“앗, 누나한테 들켰다.”
“후후, 누나 앞에서는 거짓말 못할걸?”
미나는 윤수를 업으며 길을 올랐다.
그러자 정선희가 미안한지 자신이 윤수를 업으려고 그녀에게 말했다.
“미나야. 언니한테 넘겨.”
“아니에요. 언니, 제가 업을게요. 언니는 계속 업고 오신 탓에 허리 아프시잖아요.”
“응? 내가 그랬나?”
“아, 죄송해요. 언니 생각을 제가 읽어버려서.”
“아……아니야. 괜찮아. 나 생각해줘서 고마워.”
여섯 일행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한 시간을 걸었을까?
신기했다.
앞서 간 사람 중 뒤처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다들 빛의 기둥까지 무사히 도착한 걸까?
“백현아. 앞에 뭐 없냐?”
“죄송해요. 미니맵이 안 보여서요. 아까 제한시간 30분을 다 써버렸어요.”
“아니야. 어쩔 수 없지. 아까는 점수 때문에 위험했잖아.”
강백현의 말에 박진석이 되물었다.
“백현 학생, 만철이가 말한 미니맵이 뭐야?”
“아, 저는 제 주변에 있는 생명체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정말? 능력이 2개? 인큐베이터에서 구입한 거야?”
박진석의 말에 김만철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인큐베이터랜다. 아~ 웃겼다. 유리 사육장을 인큐베이터라고도 하는구나.”
“뭐……. 비슷한 거니까. 아무튼 백현 학생은 감지 능력이 있다는 거지?”
“그런 건 아니고,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이에요. 제 직업하고 연관이 되어 있나 봐요.”
“뭐? 직업? 직업이 뭔데?”
1성과 2성, 3성과 4성.
별의 개수에 따라 배울 수 있는 능력 개수가 다르다고 설명을 들어 알고 있는 박진석.
그는 아쉽게도 시작부터 1성짜리 직업이었다.
그래서 인큐베이터 안에 있을 때 생존 포인트와 충분한 킬 포인트가 있는데도…….
[1성 직업은 새로운 능력을 배울 수 없습니다.]
라며 한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우고 싶었던 100Point짜리 자가회복 능력을 눈앞에서 놓쳤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사령술 레벨 2가 아니라 자가회복 레벨 1을 배울 생각이었는데, 자신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페이즈 2가 시작되자마자 폭주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시체를 조종해서 죽인 거였다.
0점짜리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왔기 때문에.
그래서 포인트 때문이 아닌 순전히 살려고 죽였다.
그 때문일까?
운이 좋았다. 1성짜리 직업이 3성짜리를 죽여서 지금은 3성이 된 것이다.
박진석이 자신의 사용자 정보를 열람했다.
<사용자 정보 User Information>
○ 직업 : 네크로멘서 (Necromancer) / ★★★
○ 고유스킬
1. 사령술 Lv 2.
2.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3. 아직 개방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2번과 3번 칸이 없었던 박진석.
3성짜리 인간을 죽인 후, 2칸이 새로 생겼다.
아마도 저 2칸에 새로운 능력을 배울 수 있을 터.
그때, 강백현이 대답했다.
“네. 제 직업은 왕자예요.”
“왕자? 직업이 왕자야?”
“네. 저도 이해가 가진 않는데, 왕자라고 적혀있더라구요.”
왕자면 분명히 높은 등급일 게 분명했다. 3성? 4성?
그래서 박진석이 되물었다.
“몇 성인데?”
“몇 성이요?”
“별 개수가 몇 개냐고.”
“잠시만요. 사용자 정보 좀 볼게요.”
그때 뒤에 있던 미나가 갑자기 백현 대신 대답했다.
“오빠는 2성이에요.”
“그래?”
2성이라는 말에 박진석이 생각했다.
‘왕자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네. 하긴 4성이면 오히려 곤란했을지도……. 아들 앞에서 죽일 수는 없잖아?’
박진석은 빛의 기둥 앞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야 킬 포인트가 모이고, 여차하면 빛의 기둥으로 들어가 다친 상처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킬 포인트를 모으면 새로운 능력을 개방할 수 있다.
새로운 능력을 개방하면 시체가 없을 때의 약점을 커버할 수 있다.
이 지옥같은 상황에서 시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약점은, 두 번째 페이즈에 도착해보니 정말 크게 다가왔다.
한편, 강백현은 낌새를 차렸다.
자신의 앞에서 떳떳하게 거짓말을 하는 미나를 보며 역으로 생각을 전달했다.
‘미나야. 내 뒤로 바짝 붙어.’
미나가 깜짝 놀라면서 오빠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자 백현이 고개를 뒤로 빠르게 젖히며 소리 없는 메시지를 던졌다.
‘뒤로 가서 나한테 붙으라고. 너한테 말한 거 맞아.’
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오빠의 뒤쪽으로 바로 따라붙었다.
이제 둘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강백현은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질문으로 만들어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미나야. 박진석 아저씨, 위험한 사람이야? 위험한 사람이면 내 등을 두 번 누르고, 아니면 한 번만 눌러.’
미나는 오빠의 생각을 듣고 강백현의 등을 두 번 눌렀다.
통각으로 동생의 생각을 알게 된 강백현이 걸으면서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졌다.
‘설마 저 아저씨가 우리를 죽일 생각은 아니지? 맞으면 두 번, 아니면 한 번.’
그러자 미나가 대답하질 않는다. 그래서 다시 선택지를 늘렸다.
‘모르겠으면 세 번!’
강백현의 질문에 미나가 오빠의 등을 세 번 눌렀다.
강백현과 여동생 미나는 둘만의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강백현의 일방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여동생이었지만 백현은 O.X 형식으로 동생의 생각을 확실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 등급은 알아?’
‘내가 부르는 순서대로 내 등을 눌러서 등급을 알려줘. 박진석, 김만철, 박윤수, 정선희, 그리고 너.’
그 다음은 일사천리.
강백현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갔다.
그리고 행동지침을 정했다.
그 행동지침은 생각을 통해 미나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미나야 잘 들어. 지금부터 김만철 아저씨의 생각은 절대 읽지 마. 아저씨 생각 발설도 하지 말고! 김만철 아저씨가 혹시라도 자신이 2등급이라고 박진석한테 얘기하는 순간, 네가 1성이라고 말했던 거짓말이 탄로나게 될 거야. 그러니까 조심해.’
미나가 오빠의 말에 등을 누르며 화답했다.
‘미안하지만 빛의 기둥을 통과할 때까지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마. 잠을 자도 안 되고, 쉬어서도 안 돼. 그리고 미안하다. 오빠가 섣불리 말하는 바람에 직업을 들켰어.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않을게.’
오빠의 생각을 듣고, 미나는 눈물을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오빠. 오빠 잘못 아니야. 내가 생각을 읽는다고 먼저 말했기 때문에…… 이렇게 약점이 잡힌 거잖아.’
하지만 오빠는 미나의 생각을 들을 수 없었다. 오빠의 당부 섞인 생각이 계속해서 미나에게 들려왔다.
‘미나야. 정신 똑바로 붙들어야 돼. 오빠는 항상 네 곁에 있을 거야. 절대 네 곁을 떨어지지 않을 거고, 다시는 네 앞에서 한심한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약속해. 울지 않겠다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겠다고.’
미나가 눈물을 훔치며 오빠의 등을 눌렀다.
그러자 강백현이 다시 한 번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그래. 일단은 그 마음이야. 그 마음만 유지하고, 빛의 기둥까지 가자. 박진석도 지금 당장 시체가 없는 상태에서는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백현의 말에 미나는 말없이 오빠의 등을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