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살해현장
김아람의 살해현장.
하지만 아무도 막을 순 없었다.
절대적인 힘 앞에서 침묵뿐.
케이블카는 정말 빨랐다. 속도가 엄청 빨라서 빛의 기둥까지 5분만 더 이동하면 도착할 것 같았다.
정상까지 이동시간 겨우 9분.
그중에서 4분이 흐른 것이다.
김아람의 살인이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안도했다.
자신이 죽은 건 아니었으니까.
조금만 있으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엄마. 나 저 언니 무서워.”
“괜찮아. 조금만 있으면 도착할 거야.”
“응. 안아줘.”
“그래. 그러니까 아무 말하지 말아야 해. 눈 감고 도착하기만 기다리자. 응?”
김아람 곁에서 슬슬 물러나는 사람들.
결국 그 옆에는 최형우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왜 사람들이 절 저런 시선으로 보는 거죠?”
“아람아. 진정해.”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요? 나 죽을 뻔했다고요.”
“그래. 알아. 알아.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두 사람의 실랑이.
거대화 능력과 염력 능력.
두 사람의 충돌이 이어지면 케이블카에 있는 사람들도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싸움이 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콰르르릉.
흔들리는 진동.
그리고 멈추는 케이블카.
“와! 씨발! 어떻게 된 거지?”
“어떻게 해요?”
“엄마! 엄마!”
“으아아아악!”
좌우로 흔들리는 와중에 케이블카의 열린 문으로 사람들이 미끄러져 땅에 떨어진다.
최형우가 몸을 거대화하며 떨어지는 사람들을 최대한 잡았다.
하지만 기울어진 문으로 떨어진 사람만 무려 50여 명…….
그는 겨우 6명의 목숨만 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작아지며 축 늘어진 몸.
최형우는 알았다. 이제 더 이상 거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슈트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한계였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철컹.
케이블카를 고정하던 2개의 줄 중 하나가 선로를 이탈했다.
그러더니 기울어진 케이블카가 한쪽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 소모해서 이제 움직이지 않는 케이블카.
아니, 조금씩 뒤로 밀리는 케이블카.
김아람이 최형우한테 말했다.
“아저씨. 나랑 같이 갈래요?”
“어?”
“여기 있는 사람 다 데려갈 순 없어요. 아저씨, 나랑 같이 갈 거예요? 말 거예요?”
대답하지 않는 최형우를 향해 김아람이 말했다.
“내 목숨 살려준 값은 할게요. 이걸로 비긴 거니까 다음부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요.”
“…….”
케이블카가 미끄러지기 시작하더니,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출발지점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형우와 김아람은 예외였다.
왜? 하늘을 나니까.
둥둥 떠 있는 그 둘을 빼고는 케이블카가 바닥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쾅!
케이블카가 완전히 망가진 순간이었다.
* * *
강백현은 구토를 했다.
“백현아……. 왜? 뭘 봤는데?”
“케이블카가 떨어졌어요.”
“뭐?”
“안에 있던 천 명이 넘는 사람 대부분이 죽었어요.”
“아람이는?”
강백현이 미니맵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아람이와 그 옆에 있는 사람.
그건 최형우 아저씨.
“아람이는 살았어요. 최형우 아저씨랑 같이 있어요.”
“어떻게?”
“글쎄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아요. 아마 아람이의 능력이겠죠. 걔는 사람을 공중으로 띄울 수 있었으니까.”
백현의 말에 미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람 언니, 그런 사람 아니야.”
“응?”
“아람이 언니가 사람 죽일 리가 없잖아.”
“알았어. 알았어.”
‘하지만, 미니맵으로 봐 버렸는걸.’
이럴 땐 동생이 밉다. 생각을 읽는다는 것.
어떻게 보면 치사하다.
“미나야.”
“어?”
“너도 한 가지 약속하자.”
“뭐?”
“오빠 생각 이제 그만 읽기.”
“…….”
“그거 반칙이야. 알았어?”
“응.”
슈트가 멀쩡해졌다.
다시 걷는 세 사람.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그건 당연히 잔여 Point 때문.
포인트가 줄면, 목숨을 잃는다.
“아저씨, 그만!”
“어?”
“우리 풀숲으로 들어가요.”
“왜? 거긴 위험하잖아.”
김만철은 그 말을 내뱉고 아차 싶었다.
강미나의 숫자가 이제 2가 되었던 것.
강백현의 머리 위에도 숫자가 5.
생존 가능 시간이 미나는 2시간. 백현은 5시간.
강백현은 풀숲으로 들어가며 동생에게 말했다.
“뭐라도 죽이자. 숫자 있는 것들은 사람 빼곤 다 죽여야 해.”
“응.”
심장의 고동소리가 커진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주변에는 0점짜리뿐이다.
신의 장난일까?
죽여도 소용없는 것들.
생존에 도움 안 되는 것들.
아까 개구리라도 잡았어야 하는데…….
바보 같이 시간을 날려버렸다.
저 앞 등산로가 보였다.
백현은 생각했다.
‘매복해서라도 사람을 죽일까?’
때마침 미니맵에 포착되는 인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올라오는 사람.
그 사람은 혼자 있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슈트.
죽이기 최적의 조건.
사람은 얍삽하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나가 오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람 안 죽인다고 했잖아.”
“하지만…….”
“안 죽여! 그런 거 안 해. 안 할 거니까, 빨리 다른 동물이나 찾아. 살인은 안 해.”
“응.”
그래도 운이 좋았다.
다람쥐가 보인다.
다람쥐 위의 숫자는 다름 아닌 2.
2시간짜리다.
“아저씨. 저거 잡죠.”
“그래.”
김만철은 목숨을 걸고 다람쥐를 쫒았다.
순식간에 다가가는 김만철.
만철의 펀치가 다람쥐에 닿으려는데, 녀석이 갑자기 손에 들었던 도토리를 놓은 채 순식간에 나무로 올랐다.
다람쥐는 재빨랐다.
세 명의 일행 중 누구도 잡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아니에요. 기회가 또 오겠죠. 이 근처 1점이라도 있는 생물을 추적해 봐요.”
“그래.”
미니맵에 보이는 많은 생물체들.
그런데 하필이면 0점짜리들뿐이다.
백현은 수색범위를 넓혔다.
그런데 그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30분이란 제약시간.
미니맵이 사라진다.
더 이상 주변을 볼 수 없다.
“……젠장.”
그런데 김만철이 신이 난 듯 말했다.
“걸렸어!”
“네?”
“오소리! 오소리!”
오소리. 흰색 줄무늬와 검은색 털을 가진 포유류.
생긴 건 귀엽지만 뱀도 사냥해서 잡아먹을 정도로 잔인한 동물.
녀석의 머리 위 점수는 무려 12포인트.
“대박!”
“그래. 저거 우리가 죽이자.”
“네. 아저씨, 제가 서포트 할게요.”
그때 미나가 말했다.
“저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공격방향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
오소리가 덮쳤다.
가장 먼저 노린 것은 당연하게도 가장 약해보이는 강미나였다.
하지만 녀석의 발톱이 미나에게 닿을 리 없었다.
보호막 레벨 2.
그 강도는 녀석이 뚫어볼 만한 게 아니다.
백현은 여동생을 지키며 김만철을 주시했다.
언제라도 그에게 보호막을 펼쳐주기 위해서였다.
김만철은 녀석의 꼬리를 타고 올라갔다.
위험천만해 보였지만, 그의 놀라운 신체능력은 유연한 동작을 가능케 했다.
꼬리에서 척추, 척추에서 머리까지 이동하는 아저씨의 재빠른 움직임.
그 다음 행동은 강화된 주먹으로 둔부를 강하게 때리는 것.
몸을 바들바들 떨며 오소리가 김만철을 떨어뜨리려고 하지만, 좌우로 흔드는 동작을 김만철이 악력으로 버텼다.
오소리는 땅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앞발로는 자신의 머리 방향에 있는 김만철을 잡아뜯기 위해 이리저리 휘저었다.
하지만 앞발은 짧았고, 땅에 쓸리고 부딪히면서도 김만철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오히려 움직임이 느려지면 어김없이 둔부를 강력하게 타격하며 자신에게 데미지를 줬다.
오소리는 생각했다.
자신이 있는 힘껏 나무에 부딪혀서 녀석을 떨어뜨려야겠다고.
일단은 그래야겠다고.
그래서 실행에 옮겼다.
백현은 위험한 것을 알아차리고 김만철의 몸에 보호막을 걸쳐주었다.
김만철의 단단한 신체 위에 반투명 막이 씌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김만철의 강력한 공격 그 자체였다.
그의 공격이 세 차례나 계속되자 버티지 못한 오소리가 죽어버린 것이다.
신체 강화 레벨 2.
그의 능력은 최상위 능력 중 하나였다.
대인전에서 그를 이길 상대는 얼마 없었다.
김만철의 머리 위 숫자가 33에서 45로 늘어나고 오소리 머리의 숫자가 12에서 0으로 줄어들었다.
김만철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백현이 말했다.
“괜찮아요. 아저씨, 또 잡으면 되죠. 아무래도 게임처럼 막타를 쳐야 점수가 올라가나 봐요.”
“그래. 미안하다. 하나 더 잡아보자.”
하지만 한 시간이 흘러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람이의 숫자는 이제 1.
백현의 숫자는 4.
생존시간 각자 1시간, 4시간.
절망이 몰려왔다.
백현이가 생각했다.
‘나를 죽이면 미나가 4시간은 더 살 수 있어. 그 시간이면 충분히 아저씨가 또 다시 오소리 같은 녀석을 잡을 수 있을 거야.’
백현의 생각이 거침없이 들려온다.
여동생 미나는 오빠의 생각을 읽는 게 싫었다.
그런데 죽기도 싫었다.
그래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살고 싶었다.
오빠랑 같이 있어 보니까 알았다.
이렇게라도 사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같이 움직이고, 같이 이동하고, 같이 대화하는 게 너무 소중한 시간이라고.
그런데 오빠가 자신을 죽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래서 먼저 행동에 옮겼다.
짝!
백현의 뺨에 미나의 손바닥 자국이 새겨졌다.
“미나야?”
“멍청한 생각하지 마. 나 안 죽어! 오빠도 안 죽여!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
강백현은 동생의 기습으로 들고 있던 뾰족한 나뭇가지를 놓쳤다.
김만철은 알았다.
강백현이 동생을 위해 죽으려 했단 것을.
“강백현! 강백현! 이 미친 놈! 네가 목숨을 왜 버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최선은 무슨 최선이야!”
미나가 짜증냈다.
오빠의 생각을 혼자 읽는 게 고통스러워서였다.
“미나가 죽으면 모두가 죽어요. 그게 룰이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 멍청한 놈아! 죽어도 내가 죽어야지. 네가 왜 죽냐고!”
“아저씨…….”
“차라리 나한테 죽으라고 해. 내가 오소리를 실수로 죽이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상황이 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 당연히 나를 탓해야지.”
미나가 펑펑 울었다.
“아니야. 이거 아니야. 왕자는 이렇게 공주 안 구한단 말이야.”
그런데 터벅터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나 말이 맞아.”
‘어?’
그들의 시야에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갈기털 바짝 선 위협적인 존재.
인간들 앞에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
우리 실생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종족.
고양이 등에서 내린 익숙한 꼬마 녀석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누나.”
“응?”
“이거 죽여.”
박윤수는 해맑게 웃으며 고양이 입에 물려진 쥐를 가리켰다.
출혈로 기절해버린 쥐.
그 머리 위에 그려져 있는 숫자는 4.
강백현이 반가운 얼굴로 윤수에게 말했다.
“윤수야!”
“엉아! 내가 말했지? 또 만날 거라고. 엉아 구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