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절규
“으악! 으아아……아악!”
남자의 절규가 주변에 퍼졌다.
하지만 미나는 사람을 죽이지 못했다.
주저앉았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했다.
“못 죽여. 못 죽이겠어.”
강백현은 동생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다.
동생이 했던 투정.
모두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
그게 본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지금 자신의 행동으로 증명했으니까.
“김만철 아저씨, 이 사람 구해드리죠.”
“가망 없어. 그냥 죽여.”
“일단은 돌무덤에서 꺼내는 게 좋겠어요.”
“후회할 텐데…….”
“어차피 저희는 사람 못 죽여요. 그러니까 꺼내줘요.”
백현이 보호막을 만들고 키우며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을 통해 김만철이 남성을 끌어낸다.
남자는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이미 짓물러진 하체.
회복할 기회는 없어 보인다.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저희 중에 회복 능력자는 없거든요.”
“아닙니다. 고맙습니다. 만약 살게 되면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부디 생존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을 살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에 눈물을 흘렸다.
백현과 미나를 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김만철에게는 마지막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자신을 죽이라던 그에게는 도저히 말을 건넬 자신이 없었다.
* * *
세 사람이 떠나고, 30분이 지났다.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왔다.
그 남자는 절규했다.
그들의 머리 위 숫자는 전부 0.
자신을 죽일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0이라고 적힌 사람들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흐느적흐느적.
마치 좀비 같은 움직임.
그런데 그 좀비들은 락앤락 통을 들고 있었고, 그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아빠! 저 아저씨 죽어가.”
“그래? 윤수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음……. 저 아저씨는 살려야 해. 나중에 우리 편 될 거야.”
“그래?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박진석은 아들의 말에 아내에게 의견을 물었다.
“윤수 말에 일단 따르자. 윤수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응.”
윤수가 망자들이 들고 있는 락앤락 통에서 내렸다.
그리고 죽어가는 남성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아…….”
“능력이 뭐예요?”
“투명인간.”
그의 말을 듣고 윤수가 씩 웃었다.
“맞아. 이 아저씨, 내가 꿈속에서 봤던 아저씨 맞아.”
“응?”
“나 이 아저씨 구하는 꿈 꿨어. 엄마가 나 도와줘야 해.”
“응.”
정선희 또한 락앤락 통에서 내린 후 아들 윤수에게 증폭 능력을 사용했다.
그러자 윤수의 치료 레벨이 1에서 2로 상승했다.
증폭 레벨 1.
레벨 1 능력을 2로 상승시켜줄 수 있는 능력.
그녀에 의해 향상된 능력이 남자의 상처를 치료한다.
레벨 2.
단순한 치료가 아니다. 기력도 회복하고, 짓눌린 피부조차 원래대로 복구시킨다.
그야말로 전지전능.
죽지만 않으면 전부 회복시킬 수 있는 능력.
윤수 아빠 박진석이 놀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완전 사기잖아.”
그러자 아들이 대답했다.
“사기 아니야. 질병은 못 고쳐. 그래서 레벨 더 올려야 해.”
그리고 죽다 살아난 남성.
그는 복원된 다리를 확인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그대로 계세요. 슈트가 부글부글거리니까요. 시간 지나면 안정화될 거예요. 자동 복원도 될 거고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정상에서 뵙시다.”
“네.”
윤수는 시체들이 들고 있는 락앤락 통에 탄 채, 미소를 지었다.
‘엉아, 곧 따라갈게.’
“갈까?”
“응.”
윤수네 가족.
아빠의 사령술을 통해 땅을 밟지 않고 정상을 향해 또 한 걸음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숲속은 확실히 무서웠다.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새들 지저귀는 소리.
개울가에는 개구리나 두꺼비가 우는 소리.
거기에 나방, 벌레, 모기 등이 연신 하늘을 날아다니고, 포식자 사마귀, 왱왱 우는 매미와 귀뚜라미, 땅강아지. 그것 외에도 수많은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이제 오후 4시 남짓.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잘 가던 길 앞. 세 명의 일행을 막는 건 바로 계곡.
앞을 막아서는 계곡은 겨우 폭 50cm였지만, 물살이 세서 수영으로는 극복할 수 없어보였다.
김만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까 소나기 때문에 생긴 것 같아.”
“오빠? 어떻게 해? 돌아가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아? 풀숲을 헤쳐서 등산로로 가야 되는데…… 무서워.”
미나의 걱정은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것이었다.
지금 풀숲을 헤치면서 가자고?
3cm의 크기로?
평범한 인간 크기로도 풀숲을 헤치면서 가는 건 엄청난 위험을 동반한다.
그런데 겨우 손톱만 한 크기인 자신들이 저 풀숲을 극복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면 엄청난 시간 낭비다.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9시간, 돌아가는데도 비슷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손해.
강백현은 결심했다.
“다 극복할 수 있어.”
“백현아?”
“저 계곡 건널 수 있어요. 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
크기는 작아졌지만, 지금의 인간은 초인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해주는 슈트.
그리고 고유능력들.
아저씨의 신체강화 능력과 자신의 보호막 능력.
그리고 동생의 능력.
강백현이 외쳤다.
“아저씨.”
“응?”
“나 업을 수 있죠?”
“설마…… 너.”
“네. 한계까지 능력 써 봐야죠. 죽진 않을 거예요. 장담해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특별히 능력을 많이 쓴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컨디션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계속 퀭하던 눈도 정상이고.
여동생 앞에서 좋은 오빠 노릇도 하고 싶고.
“다들 제 옆으로 붙으시죠. 미나 너도 나 꼭 잡아.”
서로 밀착하는 세 사람.
백현이 손을 아래에서 위로 올렸다.
그러자 보호막 기둥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다.
백현은 보호막을 하나 더 만들었다.
양 손을 태극무늬처럼 휘젓자 만들어지는 롤링.
마치 워터파크의 미끄럼틀 모양처럼 보호막이 형태를 변화한다.
“읔……. 짧았나…….”
50cm를 극복하기에는 기둥의 높이가 낮았다.
백현은 다시 한번 자신이 만든 기둥의 높이를 올렸다.
무려 2m 높이.
그러자 그의 얼굴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오빠…….”
“괜찮아. 지켜 봐.”
그리고 다시 만드는 원통형 미끄럼틀.
‘가라! 끝까지 닿아야 해! 가! 가라고!’
마치 조각사. 조형술의 극치.
백현은 자신이 원하는 모양 그대로 미끄럼틀을 만들어냈다.
“얼른 타요!”
“그래!”
백현이 숨을 헐떡거리며 세 사람과 함께 미끄럼틀 안으로 몸을 던졌다.
그 순간 자신이 밟고 있던 기둥이 와르르 무너지며 형체를 잃어버린다.
미끄럼틀도 마찬가지였다.
빠지지직.
부서지기 시작한다.
‘버텨야 해! 좀 더! 좀 더!’
백현이 식은땀을 흘리는 동시에 슈트 또한 부글부글 거리기 시작했다.
신체 과부하.
능력 과다 사용.
그래도 다행인 점은 백현이 정신을 잃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는 점.
그래서 계곡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반대편에 내려온 백현은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살았다. 살았어.”
“응. 오빠 덕분에…….”
“백현아, 수고했다.”
자칫 잘못했으면 이제까지 거친 모든 시간을 날릴 뻔했던 세 사람.
백현이 숨을 헐떡이며 미니맵을 바라보았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에 등산로로 합류하는 지점이 보였다.
지름길로 왔기에, 자신들의 앞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다행이었다. 옳은 선택이었다.
“아저씨, 옳은 선택이었어요. 맞죠?”
“그래. 우리 희망을 갖자. 그런데 백현아.”
“네?”
“아람이는 뭐하고 있을까?”
“아…….”
“아람 언니? 오빠 첫사랑?”
“미나야! 아니야.”
“오빠 첫사랑 맞잖아.”
“아니거든요?”
김아람.
한쪽 팔을 잘리고 나서 최형우 아저씨가 빛의 기둥까지 데려간 것까지는 확인했는데, 그 이후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찾았다.
미니맵.
김아람의 이름을 속으로 말하고 그녀의 위치를 찾으면 된다.
보였다.
‘뭐야? 케이블카로 갔잖아.’
그런데 속으로 말하는 것을 미나가 알아듣는다.
“아람이 언니, 케이블카에 있어?”
“응. 그런데 가족이랑은 같이 안 있는 것 같아.”
“가족? 그때 아저씨가 구했다고 안 했어?”
미나는 모르는 척 김만철에게 책임을 돌렸다.
‘미안해요. 아저씨.’
강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면을 향해 말했다.
“빨리 정상으로 가자. 갈 길 멀다.”
“아저씨? 왜 말을 돌려요? 구하신 거 아니에요?”
“너도 알잖아. 이름 알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다며.”
강백현이 다시 한 번 미니맵 기능을 통해 아람이네 엄마와 남동생을 서치했다.
그런데 나오지 않는다.
보이질 않는다.
“아저씨……. 설마…….”
“그래. 이미 집 안에 갔을 때는 없었어. 네 미니맵에 나오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네 스스로가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아람이는 아빠는 물론, 엄마, 동생까지 잃었다.
구해준다고 했는데, 분명 구해준다고 약속했는데…….
만나면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강백현이 미니맵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아람이를 걱정할 때, 아람의 위치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어?”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것 같아요.”
“뭐?!”
* * *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
전기는 끊긴 상황.
그런데 비상용 발전기가 구비되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해결책이 보인다.
최형우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경비원이었던 그는 다재다능했다.
커다란 몸집으로 사람들을 케이블카로 옮겨 태웠다.
그의 거대화 능력은 이제 신체를 50cm까지 늘릴 수 있었다.
슈트가 찢어질 듯 부글부글 비명을 질러댔지만 10분 정도는 거대화 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태운 사람. 약 1,500명.
그리고 관제실에 남아 케이블카를 운전하는 사람들.
최형우가 작아지며 마지막으로 케이블카에 탑승하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최형우는 고맙다는 말들을 뒤로하고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괜찮을 거야. 살아 계실 거야.”
“아니요. 아저씨, 저희 엄마랑 동생은 죽었어요. 목격자가 있었단 말이에요.”
“아람아. 그러면 안 돼. 희망을 가져야지. 살아야지.”
“네. 살 거예요. 엄마, 아빠, 동생 몫까지, 끝까지 살 거예요.”
“그래.”
최형우는 일단 안심했다.
불안했던 정신상태.
조금은 안정된 걸까?
김아람은 사장님의 아들이었던 백현이가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친구.
다행히 시간 내에 기둥으로 들어와서 목숨은 건졌지만…….
동네 사람들이 아람이 엄마와 동생이 죽은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애가 불안해졌다.
공격적인 말투.
공격적인 언행.
그리고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그녀의 강력한 힘.
그리고 그녀의 머리 위의 숫자는 무려 121.
그걸 보며 접근하는 사람이 없으면 좋으련만, 또 누군가 그녀를 건들게 된다.
40대 중반의 뚱뚱한 남성이 방긋 웃으며 접근했다.
“아가씨. 머리 위에 숫자 왜 이렇게 높아?”
“네?”
“그 포인트 어떻게 모았어? 아가씨 살인마야? 무슨 능력을 가졌길래? 응?”
그 남자가 팔을 길게 늘렸다.
그러자 길어진 팔이 김아람의 목덜미를 낚아챈다.
그러자 최형우가 거대해져서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현격한 힘의 차이.
“좋은 말로 할 때 놓으시게나, 젊은이.”
“아……. 놓으면 되잖아요.”
“켁켁…….”
김아람의 목덜미를 잡았던 손이 풀어졌다. 그러자 김아람이 자신의 목덜미를 잡던 놈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최형우는 불안했다.
“아람아, 화내지 마.”
불안은 곧 현실이 될 것 같았다.
“…….”
말려야 했다.
“아람아……. 아람아!”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손을 늘이던 그 남자가 비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가 젊은 여자한테 관심이 많네. 우와! 슈발! 변태잖아. 능력 얻고 아주 살판났구만?”
“……아람아. 저런 말 신경 쓰지 마. 신경 쓰면 안 돼.”
경비원 최형우는 김아람의 『폭주』를 말릴 수 없었다.
그녀의 긴 머릿결이 사방으로 뻗쳐나갔다.
그녀의 몸이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자신도 강한 편이지만, 아람이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김아람! 아람아! 안 돼!”
염력, 최강의 능력.
손을 늘이던 남자가 마찬가지로 치솟아 올랐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케이블카 바깥으로 내던져졌다.
“으아아아악!”
남자의 비명이 한없이 멀어져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케이블카 바닥으로 내려온 김아람의 머리 위 숫자가 121에서 135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