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예지
윤수 가족의 상봉.
그것을 멀리서 지켜보는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의 이름은 최복자.
그녀의 능력. 미래예지 레벨 2.
윤수에게 미래예지를 보여준 사람.
그녀는 새로운 일행과 합류해 있었다.
“어머님, 불편한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괜찮아.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챙겨주는데, 내가 불편할 게 뭐가 있어.”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저희 형님께서 어머님 불편한 점 없도록 해드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부담 갖지 말고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후후, 그러면 좀 업어줬으면 좋겠구만.”
“아, 그럴까요? 얘들아! 뭐하냐? 어머님 모셔라.”
“넵! 형님.”
20여명의 조직.
양복을 입었는데도 목, 얼굴 부위에 문신이 보이고 있다.
그들은 놀랍게도 조폭 일당들.
“이름이 태철이지?”
“네. 형님의 오른팔을 맡고 있습니다.”
“오래 살 겨.”
“아! 그렇습니까? 여기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태철이는 순하니께, 오래오래 살 거여. 항상 새 조심하고.”
“새요?”
“응. 날아다니는 새. 그것만 조심하면 돼. 걱정 말어. 내가 그 새가 올 때가 되면 알려줄 터이니.”
“네! 알겠습니다. 업히시지요.”
젊은 남성들에게 번갈아가며 업힌 채 정상을 공략하는 최복자 할머니.
그가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윤수 가족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언젠가 만날 그날을 기약하는 최복자.
하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다.
‘그래. 윤수야. 나중에 네가 이 할미 살려야 한다. 네가 살아남아야 이 할미가 사는 거야.’
그 생각과 동시에 몸이 반응한다.
쿨럭, 쿨럭.
입 안에서 밖으로 쏟아지는 피.
“괜찮으세요? 어머님! 어머님!”
“괜찮아. 괜찮아.”
“얘들아! 뭐하냐? 피 닦을 거 준비해라. 퍼뜩퍼뜩 찾아온나!”
“네. 형님!”
조폭들조차 할머니의 능력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는 3cm로 작아지기 전, 폐암 2기였던 자신의 상태를 떠올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윤수가 얼른 레벨 3이 되어야 될 터인데…….’
* * *
한편, 백현 일행은 비탈길을 거침없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빠!”
“어.”
“천천히 가자. 나 옷이 이상해.”
기포가 생기기 시작하는 슈트.
그걸 보며 깜짝 놀란 백현이 미나에게 소리쳤다.
“가만히 있어. 오빠가 갈게.”
그런데 백현은 자신의 슈트에서도 기포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슈트가 한계에 도달한 건가?’
30분. 비탈길을 오른 시간.
그게 아마도 슈트 능력의 한계.
그렇다면 아저씨도 그러할 게 분명할 터.
“아저씨! 슈트 확인하세요!”
“뭐?”
“슈트 확인하시라고요!”
김만철의 복장 또한 마찬가지다.
무리한 움직임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슈트의 힘이지만, 한계 또한 정해져 있나 보다.
김만철은 비탈길을 오르다 말고 쉬고 있는 두 남매를 향해 말했다.
“슈트 업그레이드, 능력을 올리지 말고 그걸 올렸어야 하는데…….”
유리 사육장 안에서 홀로그램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슈트 업그레이드.
[슈트를 업그레이드 하면 내구성과 지속성이 더 좋아집니다. 업그레이드 비용은 단돈 50Point!]
[내구성 Up!]
[지속성 Up!]
만약 더 좋은 등급의 슈트를 선택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은 없었을 터.
포인트로 인한 부익부 빈인빅.
불행 중 다행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걸까?
부글부글대던 슈트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한계가 오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되는 슈트.
마치 생명체 같은…….
“혹시 슈트 이거 생명체로 만든 건 아닐까?”
“설마!”
“아니, 진짜 그럴 수도 있잖아.”
백현의 의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김만철과 달리, 미나는 내심 공감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으니까.
비탈길 오르막길 끝.
이제 잠시나마 내리막이 이어진다.
오르막길 끝에서 쉬는 것은 꽤 합리적인 결정.
세 일행이 달리는 것을 멈추자, 뒤쪽에서 추월하는 사람이 생긴다.
추월하는 2명의 건장한 남자. 그들이 물었다.
“괜찮으세요?”
“네. 조금 쉬었다 가려고요.”
“네. 벌써 3시간이나 지났네요. 빨리빨리 이동하세요. 날씨가 심상치 않네요.”
“날씨요?”
“네. 이제 곧 비가 올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도 살짝살짝 훑는 눈길.
그건 바로 머리 위의 숫자.
그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28, 32라는 꽤나 안정적인 숫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미나는 그 둘을 보며 생각했다.
‘부러워.’
강백현은 자신을 추월한 두 일행의 조언을 듣고 고민했다.
비가 온다면?
이 길은 최악의 선택이 될 수가 있었다.
차라리 시멘트 발린 등산로를 걷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왜?
이곳은 진흙탕이 될 테니까.
진흙탕에서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이건 대책 회의가 필요했다.
“아저씨.”
“아…….”
“방법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뭐?”
“일단 포인트를 모으죠.”
너무 서두른 게 화근이었다.
콰과과광!
천둥이 치고, 30초도 되지 않아 소나기가 엄청나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 사람들.
비 한 방울 맞을 때마다 넘어지고, 쓰러진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주변.
김만철이 말했다.
“일단 나무 밑으로 피신하자.”
“네.”
나무 밑에서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썩은 나뭇잎 사이로 고개를 든 버섯들.
그 특유의 냄새가 사람에게 졸음을 불러온다.
미나는 피곤했나 보다.
오빠의 무릎 위에서 곧바로 눈을 감았고 곧 잠에 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였으면 좋았으련만.
하늘은 무심하게도 돌풍을 동반한 강력한 빗줄기를 선사해주셨다.
“아저씨.”
“응?”
“우리는 살 수 있을까요?”
“뭐야? 왜 또 약한 소리 해? 너 3시간 전만 해도 형 구해준다고 했잖아.”
“그러게요. 왜 그런 자신감이 생겼던 걸까요? 지금은 좀 그래요. 사람들이 죽고, 서로를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계속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아이러니하지.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생명체라 자부했던 인간이 이렇게 실험체처럼 시험 받고, 죽이고, 유희용으로 전락한 거.”
김만철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그는 과연 사람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강백현은 궁금했다.
“아저씨는 어때요? 이제 신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있다면 왜 저희를 죽이려 들까요?”
“글쎄다. 간단하지 않을까?”
“뭐가요?”
“너는 생명체 한 번도 죽인 적 없어? 개미나 사마귀, 또는 모기, 파리. 그런 것들.”
“있죠. 많죠. 저희한테는 해충이니까.”
“신한테도 인간은 해충이 아니었을까? 해충을 죽이는 데 이유가 필요했을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김만철 아저씨가 말한 대로 아무렇지 않았을 것 같다.
그냥 신들의 입장에서는 인간은 거추장스러운 존재니까.
해충이니까.
“그렇겠네요. 만약 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전 좀 더 꿈틀거려야 할 것 같아요.”
“꿈틀거린다? 왜?”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고 하잖아요. 저는 살 겁니다. 미나하고 오래오래 살아남아서, 예전의 행복한 삶을 꼭 쟁취하고 말겠어요.”
강백현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굳은 결심.
그걸 보며 김만철이 눈을 감았다.
“자라. 조금이라도 체력 보존해야지.”
“네.”
3시간이 또 흘렀다.
해가 어느새 중천에 떠 있다.
지금 시간은 대략 12시.
6시간이 지났다.
소나기로 인한 피해는 극심했다.
물에 쓸리거나 대피하지 못해 산등성이에서 밀려오는 흙더미에 깔려죽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가 적당히 내렸다는 것이다.
굳어진 땅이 물렁해질 만큼 많이 내리진 않았다는 것.
그래서 계속해서 걸을 수 있었다.
미나의 머리 위 숫자는 6.
백현의 머리 위 숫자는 9.
그게 그들의 생존가능시간.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지는 가운데, 앞에 생존자가 소리를 지른다.
“살려주세요!”
“구해주세요! 제발! 제발!”
아까 자신들에게 소나기가 올 것 같다고 경고해주었던 그 두 남자였다.
“괜찮으세요?”
“다리에 감각이…… 감각이 없어요.”
굴러내려온 돌에 허리까지 박힌 남성.
그리고 한 명은…… 머리가 짓눌린 상태.
아마도 이미 죽어버린 듯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심장이 떨려왔다.
김만철은 알았다. 이 사람 가망성이 없다고.
허리 밑이 거의 회생불능 수준이다.
살아 있는 게 거의 기적.
그런데 미나가 그 남자의 마음을 읽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미나야. 왜?”
강백현은 걱정했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미나.
“왜? 뭘 읽었는데…….”
미나는 울면서 생존자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이 두 사람 서로 싸웠어. 점수 때문에 서로를 죽이려고 했던 거야.”
“뭐?!”
생존 포인트가 30이상 남아있던 두 사람이 서로의 포인트를 두고 다투기에 이르렀다.
천둥과 소나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도 서로의 다툼은 그치지 않았고, 둘 다 약해졌을 때 위에서 바위가 굴러왔다.
바위에 죽은 동료. 그리고 아직 생존한 동료.
그런데 생존자의 포인트는 늘어나지 않았다.
그건 왜?
직접 죽이지 않아서?
생존자는 부들부들 떨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죽이지 마세요. 절 버리지 마세요.”
그의 말에 강미나가 치를 떨며 말했다.
“아저씨는 저 사람을 죽였어요. 그러면서 살고 싶으세요?”
“안 그러면 태훈이가 먼저 절 죽였을 거예요. 살기가 느껴졌다고요.”
“아니잖아요. 전 아저씨 속마음을 다 읽었어요. 아저씬 후회했어요. 아저씨가 먼저 살기를 드러냈던 걸, 그래서 친구 태훈이가 죽은 걸 지금도 후회하고 있잖아요.”
“흑흑, 30점 가지고는 정상까지 못 올라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나약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바위에서 꺼내주세요. 은혜 꼭 갚겠습니다. 살려만 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백현은 생각했다.
‘미나야. 진짜 죽이고 싶은 거니?’
미나는 항상 인간 따윈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곤 했다.
그래서 미나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건지, 아니면 변한 건지.
더구나 지금은 그녀의 생존시간도 고작 6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김만철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미나에게 건네는 김만철.
“죽여. 그래야 네가 살아.”
“…….”
“죄책감 드는 건 알아. 그래도 죽여야 해. 그래야 넌 30시간을 더 살 수 있어.”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동생 미나를 쳐다보았다.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죽이라고?
차마 그 말은 못했다.
강백현은 사람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 하는 상황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지는 상상도 못했다.
알고 보면 이 남자는 나쁜 놈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친구를 죽이려던 놈이다.
김만철이 재촉했다.
“나뭇가지로 목 부분을 찌르면 금방 죽을 거야.”
미나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 오빠를 쳐다보았다.
‘오빠는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
마치 이렇게 되묻는 것 같았다.
강백현은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미나가 스스로 결정하길 기다렸다.
왜? 난 죽일 자신 없으니까.
그 속마음을 들은 미나가 나뭇가지를 높게 쳐들었다.
아랫방향을 향해 내리찍는 동작.
그 동작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