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26화 (26/200)

26화. 목적지

일단은 목표지점까지 가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설악산 최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세 군데였다.

첫째,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

이 길은 평평하며 첫 구간은 아스팔트, 좀 지나다 보면 시멘트 구간이 이어져 오르기가 쉽다. 그리고 표지판과 안내도도 일정구간마다 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단, 거리가 상대적으로 많이 길어, 시간 여유가 충분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길.

잔여 포인트가 얼마나 남았느냐가 중요했다.

둘째,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방법.

일단 가장 편하고 가장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방법.

사람들끼리 협력만 한다면 살아남기 좋은 최고의 방법.

하지만 협력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는 아래 남아서 조작해야 하고, 누군가는 케이블카에 탈 수 있도록 사람들을 케이블카 높이까지 올려줘야 하며, 누군가는 도착지점에 도달하면 바닥에 내려올 수 있도록 받아주어야 한다.

인간들의 사회적 협동심을 발휘해야만 오를 수 있는 장소.

포인트가 없는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셋째, 비등산로, 비탈길을 오르는 방법.

마을 주민이 자주 다니는 길.

등산로로 정비된 길이 아니고, 짐승이 다니던 길을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해서 만들어진 길.

그래서 아는 사람이 적고, 가장 험준하지만 빠른 길.

케이블카보다는 느리지만, 등산로보다 빠른 길.

야생동물이 나타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등산로와 비교해볼 때 시간을 절반까지 단축시킬 수 있는 길.

그래서일까?

김만철이 말했다.

“난 세 번째를 추천한다.”

그러자 그걸 듣고 있던 미나가 말했다.

“케이블카가 낫지 않을까요?”

미나의 말에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미나야. 케이블카 주변에는 0점에 가까운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 그 사람들한테는 선택지가 없으니까. 지금은 동물보다 그런 사람들이 더 위험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할 테니까.”

오빠의 말에 강미나가 동의했다.

분명 그랬으니까.

0점이 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난리가 났었으니까.

실제로 목격했으니 할 말이 없다.

“응. 그럼 3번으로 가자.”

사실 위험한 것이 0점자들뿐이라면 강백현은 케이블카 쪽으로 가자고 했을 것이다.

포인트가 많다고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30점짜리도, 50점짜리도, 100점짜리 사람도 위험할 수 있다.

포인트를 많이 모았다는 것은 킬 포인트가 많았다는 이야기니까.

그건 즉 살인을 많이 했거나, 곤충, 동물들을 많이 죽였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니, 포인트가 많다고 해서 안전한 사람이란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제 포인트가 모든 것을 좌우했다.

포인트로 인해 강해지고, 포인트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

우정, 사랑, 연민?

그것보단 생존이 먼저다.

물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도 나올 거다.

그러나 그건 소수다. 절대적 소수.

그래서 위험요소인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는 피해야 한다.

“결정됐네요. 아저씨 말대로 3번 길로 가죠.”

“그래. 출발하자.”

다행이었다. 김만철 아저씨는 등산 경험이 많았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돼.”

상가와 상가 사이.

짧은 소로길이 펼쳐졌다.

케이블카가 있는 방향과 등산로가 초반에는 동일했으므로 95%의 사람들은 같은 방향으로 직진, 5%의 사람들은 소로길 주변으로 향한다.

우왕좌왕.

하지만 사람들은 다수의 결정과 소수의 결정을 보면, 대부분 다수의 결정에 따른다.

그래서 고민하다가도 등산로를 통해 걷는다.

미나가 말했다.

“저희 뭐라도 먹고 올라가요.”

“그래요. 배고파 죽겠어요.”

사실 강백현도 배고팠다.

유리 사육장에 있던 건초는 인간이 먹기에는 고역스러웠고, 식수는 단 한 번도 갈아주지 않아 냄새가 고약했다.

그래도 생존하기 위해 먹고 또 먹었다.

설사를 하며 고생한 이후에는 먹는 양을 최소한으로 줄였는데, 사실 좀 허기지다보니 올라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 챙기자.”

일행은 근처의 건물로 들어갔다.

막걸리집.

냉장고 안에 막걸리를 비롯해 사이다, 콜라, 소주, 물까지.

“백현아, 레벨 올렸냐?”

“네. 저 다시 보호막 레벨 2예요.”

“그래. 나도 신체 강화 레벨 2다. 그럼 합동하면 열 수 있겠네.”

“그렇죠. 냉장고를 한번 털어볼까요?”

냉장고 주변에 물이 흥건하다.

그건 서리가 녹아서 생긴 물.

그러고 보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오빠, 여기 전기 안 들어와. 전기가 아예 다 끊겼나 봐.”

충격.

그래서 내린 결론.

케이블카는 탈 수 없다.

전기로 움직이는 케이블카는 움직이지 않는다.

“케이블카를 타러 간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질 거야. 2~3시간은 낭비할 테니까.”

“응.”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던 세 사람은 이내 먹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호막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강백현.

계단을 만들어 냉장고에 올라가고, 같이 올라간 김만철이 강력한 힘으로 냉장고를 열어 물과 음료수를 꺼냈다.

“막걸리도 마실까?”

“미친 거 아니죠? 지금 사람들 죽어나가는데 술 먹자고요?”

“힘들어서 그렇지.”

“아저씨가 힘들면 어떻게 해요. 제 동생 아직 미성년자거든요?”

사실 김만철도 온전한 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미쳐서 사람들을 죽여 나가는데, 사실 제정신인 사람이 신기한 상황.

그래서일까? 백현, 미나 남매가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아저씨, 두부과자, 저건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아…… 그래. 저거 뜯자.”

막걸리집답게 미리 부쳐놓은 전과 동그랑땡 등이 소쿠리 위에 올라있었는데, 이미 상했는지 시큼한 냄새가 역하게 올라왔다.

그러나 다행히 앞에는 한 개 2000원에 파는 두부과자가 있다.

중소기업인지, 현지 기업인지 처음 보는 업체가 만든 두부과자.

그런데 먹어보면 진심 꿀맛.

건초와 비위생적인 물을 먹다가 과자를 먹으니 뇌 속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배부르게 먹었을 때, 기분 나쁜 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째깍째깍.

그리고 각자의 머리 위의 숫자가 모두 1씩 차감 되었다.

백현의 머리 위의 숫자는 15에서 14로.

미나의 머리 위의 숫자는 12에서 11로.

만철의 머리 위 숫자는 43에서 42로 변했다.

“이제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

김만철은 숫자를 보며 고민했다.

‘내가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4시간이 걸렸어. 이 몸으로 능력을 안 쓰고 올라가면 200시간. 능력을 쓰면서 올라가면 40시간 안에 충분히 올라갈 수 있을 거야. 나 혼자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저 애들은…….’

고민하는 김만철을 보며 강백현이 말했다.

“아저씨, 뭘 그렇게 고민해요? 올라가야죠.”

“그래. 가자.”

한편 강미나는 김만철의 생각을 엿듣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오빠의 뒤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 * *

비탈길.

생각보다 경사가 높다.

약 30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발 디디는 곳이 시멘트가 아닌 흙이라서 폭신폭신하다는 점.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

아무리 걸어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백현아, 뭐 봐?”

“잠시 케이블카 쪽 동향 살피고 있었어요.”

“그래?”

“네. 예상대로 케이블카는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아요. 미니맵 상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올라가는 모습은 없었어요. 케이블카가 연결된 정상 부분에도 사람이 없고요.”

“그렇겠지.”

한 시간이 흘렀을까?

점수는 점점 줄어들어갔다.

그래서일까? 조금씩 초조해지는 마음.

그래서 사람이 아닌 주변에 돌아다니는 곤충들을 바라보았다.

개미 0점.

나비 0점.

잠자리 0점.

개구리 1점.

1점?

강백현의 생각이 미나에게는 다 전달되었다.

그래서 미나가 먼저 물었다.

“오빠……. 개구리 잡으려고?”

“아니. 일단은 올라가자. 한 시간에 3마리 이상 잡는 거 아니면 손해야.”

한 시간의 가치는 세 사람이므로 3포인트다. 거기에 먹고 자고 쉬는 시간을 고려하면 50%의 가중치는 더 해야 한다.

적어도 한 시간에 4.5포인트는 얻을 수 있어야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제한시간 144시간.

144시간 안에 빛의 기둥까지 가지 못하면 죽고 만다.

시간제한.

그래서 시간은 금.

김만철은 부담감을 느꼈다.

등산이라면 지겨울 정도로 해봤지만, 몸이 작아지고 나니 알았다.

이 길은 너무 길다고.

평균 신장 1.7m일 때와 3.6cm일 때의 차이는 너무 크다고.

그런데 이상했다.

오르막길은 계속 됐고, 사람이라면 자고로 지쳐야만 했다.

평소 단련된 신체를 가진 자신이라면 몰라도, 백현이나 특히 여성인 미나는 벌써 지쳤어야 한다.

원래라면 지쳐 쓰러졌어야 하는데 미나도 백현이도 멀쩡하다.

오히려 웃으면서, 서로를 응원하며 비탈길을 계속 오르고 있다.

‘왜지? 쟤네 체력이 원래 저렇게 좋았나?’

그때 미나가 말했다.

“아저씨, 이 슈트 때문인 것 같아요.”

“뭐?”

“이 슈트가 지치지 않게 도와주는 것 같다고요.”

불가능해보였던 목표.

하지만 생존의 길이 보인다.

슈트를 입으면 체력 손실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좀 더 빠른 페이스로 가도 되지 않을까?

“백현아.”

“네.”

“우리 뛰어가자.”

“뛰자고요?”

“그래. 네 동생은 내가 업을게.”

그러자 강미나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자 뛸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뛰자.”

슈트를 입은 일행이 뛰기 시작했다.

비탈길을 오르는데도 거침이 없다.

두둥, 두둥, 두둥, 두둥.

자신의 한계 능력까지 발휘할 수 있는 슈트.

김만철은 생각했다.

40시간, 너무 길게 잡았다고.

12시간, 잘 하면 12시간 이내에 목표지점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다고, 당초의 목표를 수정했다.

* * *

같은 시각.

윤수는 정선희와 함께 아빠를 찾았다.

“아빠! 아빠!”

“어? 윤수야! 여보! 여보!”

박진석은 반가운 얼굴로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향해 달려갔다.

“진석 오빠, 나 너무 힘들었어.”

“그래. 괜찮아. 이제 이렇게 다시 만났잖아.”

가족의 상봉.

이렇게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모른다.

특히 정선희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죄책감의 원인은 다름 아닌 아들.

윤수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사람들의 희생을 선택했다.

맨홀 뚜껑 근처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했다.

그럼에도 아직 어린애답게 해맑게 웃고 있다.

그래서 느낀 죄책감. 이제는 털어놓고 싶다.

“많은 일들이 있었어.”

“그래. 고생했지? 같이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아니야. 오빠가 왜 미안해. 괜찮아. 이렇게 만났잖아.”

슈트를 입은 가족이 서로를 껴안았다.

그러나 지금도 주변에서 살인은 계속되고 있다.

“장인어른은? 장모님은?”

“아직…… 몰라. 당신 부모님은?”

“나도 아직 못 찾았어.”

그런데 그 둘의 대화를 듣고 아들 윤수가 말했다.

“일단 엉아 찾아야 돼.”

“엉아?”

“응. 백현 엉아.”

“그게 누군데?”

박진석은 아들에게 되물으며, 자기 가족의 점수를 바라보았다.

윤수의 포인트는 무려 50점.

아내의 포인트도 무려 50점.

그에 반해 자신의 점수는 겨우 3점.

그래서 아내에게 질문.

“레벨 안 올렸니?”

“응……. 올릴 점수가 없었어. 올리려면 100점이 필요했으니까.”

“잘했다. 잘했어.”

여기서 아내나 아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3시간 이내에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장난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자신 있었다.

살아남을 자신이…… 아내와 아들을 지켜낼 자신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은 이제 레벨 2로 올라갔으니까.

그리고 여기 이 장소는 자신의 세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때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응?”

“저거 일으켜.”

“어?”

“죽은 사람들 빨리 일으켜.”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 건가?

어떻게 알았지?

아들의 말에 정선희가 자신의 남편을 보며 되물었다.

“오빠, 능력이 혹시 부활이야?”

그러자 박진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럼?”

“사령술 레벨 2. 죽은 시체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

그의 대답에 회복 능력을 가진 박윤수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아빠!”

“어?”

“이제 아빠가 최강이야. 그러니까 빨리 엉아 구하러 가자.”

“엉아?”

“응. 아까 말했잖아. 백현 엉아, 그 엉아 만나러 가야 돼! 그 엉아라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위치를 알 수 있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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