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숲 속
어느 숲 속.
가스에 취해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주변엔 엄청난 높이의 나무숲이 있고, 바로 옆에 시멘트 길이 보인다.
주차장이 보이고 매표소가 보이고 등산로도 보이고,
거기에 케이블카도 보인다.
기분 나쁜 소리도 들렸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날리는 소리.
예전 같으면 평화롭다고 생각했을 소리가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런데 모든 게 너무나 컸다.
인간에게 언제나 위대했던 자연.
그러나 3cm가 되어 보니 더욱 더 웅장하고 광활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초월적인 존재 앞에 선 기분이었다.
강백현은 자신의 능력, 미니맵을 확인해보았다.
지도를 보니 대충 어디인지 감이 온다.
강원도 내에 존재하고 있는 설악산 국립공원.
속초와 강원도 인제 근처다.
축소해서 살펴보니 이곳은 바닷가와 가깝다.
그렇다면 행정구역상 속초에 있을 것이다.
이제 시선은 다시 주변.
이제는 하늘 방향이 아니라 수평방향으로 돌렸다.
사람들이 많았다.
설악산 주변으로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전송된 것 같았다.
‘설마 모두가 여기로 온 거야?’
미니맵과 같이 비교해보니 생존자 수가 600만 정도라고 한 것 같은데, 진짜 600만은 있어 보인다.
다양한 말투가 흘러나온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전국 각지에서 다 이곳으로 전송되었다는 것을.
강원도 사투리, 충청도 사투리,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 제주도 방언까지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든 언어가 주변에서 들려왔다.
백현은 찰스가 보여준 홀로그램 내용을 상기해냈다.
1. 포인트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하거나, 개방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배울 수 있습니다.
2. 초보자용 슈트가 지급됩니다.
3. 슈트는 포인트를 사용하여 더 강력하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슈트를 강화하여, 부족한 전투능력을 향상시키세요.
“백현아!”
“아저씨.”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김만철 아저씨. 그리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동생 미나.
모두 같은 복장.
몸에 딱 달라붙는 복장.
라텍스 재질과 흡사한 복장. 바로 슈트다.
거기에 머리 위로 숫자가 보인다.
김만철 아저씨 머리 위에는 43이라고 쓰여 있고, 미나의 머리 위에는 12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아마도 그 숫자는 생존 포인트, 킬 포인트에서 슈트를 지급한 점수와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고 남은 점수를 차감한 점수.
그래서 그럴까?
김만철 아저씨의 43이란 점수가 대단해보인다.
김만철은 걱정스러운 말투로 백현에게 대화를 걸었다.
“다 괜찮아진 거지? 이제 아프지 않은 거지?”
“네. 멀쩡해졌어요. 감사해요.”
“그래. 그 한마디면 돼. 다행이다. 네가 살아줘서.”
김만철이 강백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걸 보며 강미나도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저희 오빠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정말 감사해요.”
“백현이 네가 뭘 감사해. 우리 아버지도 너 때문에 한 번 살았잖아. 우리 사이에 감사하다는 말 하는 거 아니다. 알았니?”
“네.”
고마웠다. 아저씨는 항상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돌려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각자 몸의 면역구조에 차이가 있듯 지금에서야 수면 가스로부터 깨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먼저 깨어낸 채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고, 현실에 순응하여 사람들을 경계하고 주변을 살피는 사람들도 있다.
백현은 생각했다.
이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접근을 경계해야겠다고.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 생존은 어렵겠다고.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이 혼란스럽다.
온몸에 가시가 돋아나는 남성.
슈트를 뚫고 나온 가시가 주변 사람들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거대한 방패를 소환해 막아낸 청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능력실험을 왜 여기서 해! 나까지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네가 다치겠냐? 절대방어라며!”
“어느 정도 기척은 내야지. 갑자기 가시를 던지면 어떡하라고!”
“킥킥, 레벨 2 업그레이드했으니까 시험해보려고 했지. 업그레이드하고 시험해 보려는데 갑자기 수면가스 나오잖아. 시간이 있었어야지. 어라? 너도 방패 좀 커진 것 같은데?”
“응. 이제 레벨 2라 자유자재로 커지게 만들 수 있어.”
가시를 뿜어낸 남성의 슈트는 찢어진 후, 바로 복원되기 시작했다.
“오! 대박!”
“그러네. 형상기억합금하고 비슷한 것 같은데?”
저절로 복원되는 슈트.
사람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각자의 강화된 능력이나 슈트의 성능을 하나하나 시험해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면 주어진 상황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최소 20시간에서 최대 70시간 동안 작아진 채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과학적, 기술적인 사항을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살아남길 원했다.
“구원자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 사람은 구원자가 아닙니다! 사기꾼입니다. 사기꾼이란 말입니다.”
신도들은 분열되고 목사 또한 망연자실한 채, 자신의 능력을 써서 소환한 도화지와 물감, 붓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내기 시작한다.
5분이 흘렀을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각자의 눈앞에 외계인 녀석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녀석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자막이 있어 해석이 가능했다.
[페이즈 2가 시작되었다.]
[페이즈의 목적은 퀘스트로 전달하겠다.]
그리고 띠링!
머리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퀘스트가 떠오른다.
[메인퀘스트 : 페이즈 2. 설악산 등반]
페이즈 1은 튜토리얼에 불과했다. 설악산에 있는 빛의 기둥에 도착하여 페이즈 3에 도전하라.
[생존조건 1 : 제한시간 내 빛의 기둥까지 도착]
[생존조건 2 : 1Point 이상 유지]
[제한시간 : 144시간]
[Tip : 1시간마다 1Point씩 차감되니, 0Point가 되지 않도록 주의할 것.]
퀘스트를 바라보는 사람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 나 포인트 다 써버렸는데…….”
“난 원래부터 0Point였어.”
“난 마이너스인데?”
슈트 지급에 따른 50점 차감.
생존점수를 50점 이상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으므로 마이너스 점수도 있었다.
그래서 모두가 서로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그 상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 아! 이거 왜 이래? 왜 이래?”
“으아아아악! 몸이 이상해! 이상해! 느낌 완전 이상해!”
수많은 사람들의 검은 슈트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더니, 그 당사자들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백현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전부 알았다.
그게 다 점수 탓이라는 것을.
마이너스 점수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점수가 아예 처음부터 0이었던 사람들. 그들이 입은 슈트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
“으아아아악! 으아아아악!”
사람들이 비명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명과 절규.
“괜찮아요? 괜찮으세요? 슈트를 벗으세요! 슈트를 벗읍시다.”
점수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돕고자 슈트를 벗겨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겨우 1분.
1분 만에 사람이 죽어버렸다.
그런데 0점인데도 안 죽은 사람이 있다.
왜?
한 남자가 창을 소환해 옆 사람을 찔렀다.
그러자 0점이었던 사내의 머리 위 숫자가 옆 사람의 숫자였던 13으로 변했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0점 사내의 슈트가 갑자기 진정되며 몸에 딱 맞는 원래 형상으로 돌아온다.
그걸 보자 0점인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사람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찾아다니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슈트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고 1분이란 시간 내에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자신이 죽고 만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했다.
0점 이하인 이들을 도와주려던 사람들이 경악하며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머리위의 숫자 0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절반 이상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외계인들.
나쁜 놈들. 절대적 존재.
그들의 입맛대로 놀아나는 인간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여러분들! 뭘 고민하십니까? 슈트를 벗으세요! 슈트를 벗으면 해결됩니다. 이대로 죽으시겠습니까? 전 차라리 알몸을 택하겠습니다!”
한 남성이 선동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 쉽지 않은 일이다.
차라리 누드가 되는 게 더 쉬워보였다.
그를 동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하나, 둘 슈트를 벗기 시작한다.
그런데 지퍼를 내리고 슈트를 무릎 밑까지 내리는 순간, 검은 슈트가 빨간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슈트에서 주전자 끓는 소리가 나며 미친 듯한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벗던 사람들은 놀랐다.
그리고 빠른 의사 결정을 했다.
슈트를 벗거나 다시 입거나.
그리고 그 두 가지 결정으로 인해 운명이 결정된다.
슈트를 벗은 사람.
벗은 슈트는 폭발하며 반경 30cm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버렸다.
반구 형태로 푹 파인 진흙.
반구 형태로 푹 깎인 주춧돌.
그게 얼마나 단단하든 아니든, 흔적도 없이 깔끔하게 깎여 사라진다.
엄청난 폭발력.
옷을 벗던 사람들은 또 그렇게 절반이 희생되었다.
“흑흑…….”
미나가 눈물을 흘렸다. 강백현은 말없이 동생을 보듬어 주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지금은 생존해야 할 때.
‘괜찮아. 미나야. 오빠는 네 곁에서 떨어지지 않을 거야.’
그때 째깍째깍.
홀로그램에서 머릿속으로 시계바늘 소리가 전달되었고, 제한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설악산 꼭대기에 하늘에서 빛의 기둥이 내려온다.
사람들은 알았다. 지금 당장 빛의 기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것을.
“백현아.”
“네. 아저씨.”
“가자. 이번에는 너랑 무조건 같이 간다.”
“괜찮겠어요? 아저씨는 이제 신도들도 따르잖아요.”
“따른다고? 나를 따른다고? 주변을 봐. 저 사람들이 지금 나를 따르겠어?”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높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가장 쉬운 목표는 혼자 있는 여자아이, 노인, 그리고 여성.
순식간에 살육현장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귓속말로 미나가 백현에게 말했다.
“오빠, 이 아저씨 진심이야.”
“그래?”
“응. 난 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
“그래서?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오빠 마음은 이미 결정된 거 아니야?”
강미나는 이미 백현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 알았어.”
강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저씨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
“응.”
“이제 우린 한편이에요. 한 가족이고요. 제 동생을 만났으니, 이제 아저씨도 제가 구해드릴 겁니다.”
20살, 강백현의 당돌한 말에 김만철이 웃었다.
“야! 말은 똑바로 하자. 너는 내가 구한다. 알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