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22화 (22/200)

22화. 흑막

미나가 아니었다.

인간처럼 옷을 입고 백현의 집을 돌아다니던 녀석의 정체는…… 불명.

얼굴이 보인다.

백여 개의 이빨을 가진 녀석.

비늘 같은 갑주로 된 피부.

날카로운 발톱.

파충류와 같은 노랗고 길게 찢어진 동공.

뱀과 생선 특유의 고얀 냄새를 동시에 풍기는 동물.

‘악어 인간?’

충격적이었다.

악어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다니.

인간처럼 두 다리로 버티고 서서 앞발을 인간의 손처럼 활용하고 있다.

금방이라도 다른 생물체를 도륙할 것 같은 이것의 정체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백현은 신발장 모서리에 모습을 숨기고 동생의 위치를 찾았다.

녀석이 되돌아봤다.

다행이었다.

놈의 커다란 몸집은 백현을 발견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다.

악어가 거실에서 주방으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이족보행? 두 다리로 걷다니!

‘절대적인 공포가 이런 건가?’

실제 사람만한 크기의 변종생물이 지나가니 공포감이 밀려온다.

하지만 여기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

도망가서는 안 된다.

목적을 이뤄야 한다.

처음부터 동생을 찾으러 온 게 아닌가!

백현이 관찰을 계속했다.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냉장고 문을 여는 소리.

냉장고를 연다고? 분명 녀석은 지능이 있었다.

냉장고를 열고 닫을 정도의 지적 능력.

만만하지 않아! 위험해! 위험해! 이건 동물 수준을 넘어섰잖아!

확실해졌다.

녀석의 뭉뚝한 앞발이 냉장고에서 생선을 꺼내 거실로 가져왔다.

녀석이 거실에서 TV를 켠다.

‘와……. 씨발! 씨발! 씨발!’

정정한다.

동물 수준이 아니다. 인간…… 최소 인간 수준의 지능이다.

포악하고 영리하기까지 한 고등생물이다.

잘못 걸리면 그냥 죽을 것이다.

백현은 이제 알았다.

김만철 아저씨가 한 말이 무엇인지를.

분명 저 악어인간한테 밟혀죽는 장면을 보았겠지.

씨발씨발…….

녀석이 채널을 돌려본다.

버튼까지 누를 줄 안다.

그리고 말까지 한다.

“닌간…… 닌간…… 인간…….”

위험해도 너무 위험한 상황.

백현이 미니맵을 열었다.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 저렇게 큰 생명체를 왜?

미니맵에 나오질 않는다.

악어인간이 추적되질 않는다.

‘발견 못하는 생물이 있었다고?’

만능이었던 미니맵.

100% 믿었던 능력.

이제는 신뢰할 수 없다.

이유를 찾아야 했다.

왜?

그러고 보니 녀석의 옷차림이 특이하다.

금속으로 된 갑주.

‘잠깐! 미니맵에 안 보이는 일은 전에도 있었잖아. 거대화 능력을 가진 최형우 아저씨도 금고 안에 들어가 있을 땐 안 보였어.’

금고 안에 들어가 있었을 땐 보이지 않았던 그의 모습.

그래! 금속이야. 금속. 저 금속 갑주 때문이야.

조금씩 능력의 의문점이 풀려간다.

백현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악어인간이 TV가 있는 거실 대신 안방으로 들어갔다.

시야가 벽으로 인해 보이질 않는다.

‘잠깐! 안방에는 미나가 있잖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미나의 생존이 달려 있다.

미나는 숨어 있는 걸까?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한다.

화장실을 기준으로 오른쪽 문이 안방.

좌측은 주방.

거리는 약 3m.

최대한 빨리 뛰면 30초 안에 극복할 수 있다.

백현은 죽음을 무릅쓰고 재빨리 현관에서 화장실 방향으로 뛰었다.

‘제발! 이쪽 쳐다보지 마라! 어?’

한순간에 죽을 수 있는 위기.

하지만 목숨을 걸었다.

녀석의 뒷모습이 보인다.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두꺼운 비늘.

날카로운 이빨.

세상에서 제일 포악한 괴물 녀석!

갑자기 녀석의 이름이 생각났다.

미나의 소설 속 내용에서 나온 포악한 생물.

그래.

넌 오늘부터 크로커다일이다.

백현은 4개의 원형기둥으로 이루어진 식탁의 기둥 뒤에 숨었다.

이곳에 있으면 녀석의 시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백현은 관찰했다.

동생의 위치를.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새장에 갇혀 있잖아!’

* * *

하루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이 작아진 이유는 미나 때문이었다.

그녀의 집에 나타는 미지의 문.

그 안에서 나온 녀석은 놀랍게도 악어 인간이다.

하지만 미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신탁자시여. 저는 페이즈 1, 관리자로 임명된 크로커다일, 그냥 크로커라고 불러주십시오.』

인간과 같은 크기.

압도적인 위압.

악어의 형상을 가진 녀석은 자신을 크로커라고 소개했다.

강미나는 녀석을 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로커.』

『네. 신탁자님.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진행해. 이 망할 세상! 빨리 없애버렸으면 좋겠으니까.』

『킥킥, 역시 우리 관리자들이 가장 눈여겨본 신탁자 중 한 분이 분명하십니다. 다른 분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어떻게든 이걸 막아 보려고 난리를 치던데……. 킥킥킥.』

녀석이 비웃었다.

크로커의 언어.

그것은 인간의 언어와는 달랐다.

그럼에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그분께서 그 언어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강미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녀석의 비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들은 방관자.

게임의 심판 같은 존재.

그분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 장기 말에 불과하다.

크로커의 손에는 버튼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

『당신들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버튼. 당신들의 세계에서는 이걸로 핵폭탄을 사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어 봤습니다. ROK 에어리어에서는 당신밖에 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상징적인 것이니 조금은 정성들여 만들어봤습니다. 나름 많이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미나는 악어 녀석이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다.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오빠만 살아남으면 그뿐.

어차피 망할 세상이었으니까.

오빠 말고는 믿을 인간은 하나도 없으니까,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런데 녀석이 쓸데없는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후후후, 사실 강미나 신탁자는 인간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자신의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죽인 자가 같은 인간이어서 그랬다고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하지 마. 이상한 이야기하지 말고 진행이나 하라고!』

『킥킥킥, 그건 곤란합니다. 당신이 작아지면 서로 대화가 안 되거든요. 당신은 내 말이 들리더라도, 당신 말은 저에게 들리지 않아서요. 서로 같은 크기인 지금이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거죠. 이 기회 놓치면 안 되잖아요? 저는 나름 종족간의 지적 유희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제 즐거움을 방해하진 말아주십시오.』

분명 존댓말이었지만 녀석의 깔보는 뉘앙스를 미나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시간을 끌어서 너희가 좋을 게 뭔데?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데?』

그러자 크로커 녀석의 입가에 조소가 흘러나왔다.

녀석은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킥킥, 이것만은 꼭 말해둬야 할 것 같아서요. 2년 전 사고 당일, 당신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죽은 게 아닙니다.』

『뭐?』

『설명보다는 이 장면을 보시는 게 좋겠군요.』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구슬이었다.

『사실 첫 신탁자는 당신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꿈속에서 본 장면을 소설로 쓰기 시작했죠. 3cm가 되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죠. 직접 보는 게 빠를 겁니다.』

* * *

미나의 엄마가 보였다.

그녀가 실제로 썼던 소설이 출판을 앞두고 있었다.

“정희야. 번역 다했어. 이제 전 세계 동시 발매할 거야.”

“윤정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내가 한 게 뭐 있니? 나는 그냥 아는 인맥 가지고 번역해서 해외 동시 출간하는 것밖에 없는데…… 출간되면 밥이나 사.”

“그래! 다음 주에 출간하는 거지?”

“응. 제목은 『스몰 헌터』로 출간할 예정이야. 영문명으로 통일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제목은 바꿨어. 대박나길 기원하자.”

“응. 그래야지.”

그녀의 엄마의 얼굴은 매우 슬퍼보였다.

미나는 알았다.

자신과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지…….

엄마도 미래를 알고 있었다니.

그런데 영상이 꺼지고. 갑자기 크로커가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국만이 아닌 전 세계 번역하려 했을 줄이야.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럼 재미가 없잖아요. 쉽게 대처하면 안 되잖아요?』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크로커! 크로커!』

『후후, 다음 장면을 보시죠.』

미나의 엄마가 미나와 함께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있다.

차량은 해안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미나는 알았다. 이날이 엄마와 함께 하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교통사고가 난 그날이란 것을.

엄마가 자신에게 묻고 있다.

“미나야. 표정이 왜 그래?”

“오빠도 같이 오면 좋았잖아.”

“오빠는 고등학생이잖니. 공부하느라 바빠서 못 간다고, 미안하다고 했잖니.”

“칫! 엄마는 오빠만 좋아해. 분명 같이 오기 싫어서 그런 거야. 오늘 친구들하고 볼링장 간다고 들었단 말이야.”

“미나야! 오빠가 거짓말할 사람이니?”

그러자 미나의 아빠가 입을 열었다.

“후후, 당신은 항상 백현이 편이더라. 미나 말이 맞아. 오기 싫었겠지. 백현이 너무 감싸지 말고 미나 편도 들어주고 그래.”

“아니~ 여보! 당신은 맨날 딸 자랑만 하면서, 나는 아들 좋아하면 안 돼?”

“당신이 백현이를 더 좋아하니까, 내가 미나를 더 신경 써야지. 안 그래. 미나야?”

“됐어! 난 아빠보다 엄마가 더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해도 아빠는 미나가 더 좋아.”

그 어느 가족보다 화목하고 즐거운 집안이었다.

사업하시는 아버지는 어딘가 근심 걱정 많은 어머니를 항상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려고 노력했고, 그 결실은 가정의 분위기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미나는 그때를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앞에 운전하는 차가 이상했다. 중앙선을 넘고 있다.

“아빠! 앞에 차! 차! 차!”

“어? 어? 아-아…… 으으으으악!”

“안 돼! 미나야! 미나야!”

교통사고는 순식간이었다.

엄마는 미나를 감싸며 미나의 쿠션 역할을 했고, 그건 죽음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싫어! 그만 해! 이걸 왜 보여주는 거야! 기억하기 싫다고!』

『아직 중요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신탁자께서는 꼭 보셔야 하는 장면입니다.』

사고 난 현장.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바깥으로 나온다.

멍한 얼굴이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놔두고 차량도 버리고 산속으로 도망친다.

궁금했다.

왜 경찰들은 그를 잡지 못했을까?

그 결말이 여기 있었다.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 앞에…… 악어인간이 있다.

악어 인간은 조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앞발톱을 세우더니!

촤---악!

교통사고를 낸 인간을 잔혹하게 살육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낸 구슬.

그 구슬을 던지자 살해된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풀리지 않았던 의문.

단순히 뺑소니 사고라고 생각했던 부모님 죽음의 배후에는 녀석이 있었다.

강미나가 식탁에 있는 식칼을 들어 악어인간 크로커에게 달려들었다.

그런데 녀석이 강미나의 눈을 쳐다본다.

그러자 강미나의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몸이 움직이질 않아?’

『칼을 내려놓으시지요.』

그의 명령에 거부할 수 없이 따르게 되는 미나.

『네가! 네가 죽인 거야?』

『킥킥킥킥, 입도 다무시고요. 인간들은 높은 주파수의 음성도 자유자재로 낼 수 있군요.』

말이 나오지 않는다.

강미나는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것은 녀석 때문이었다.

단순한 뺑소니 사고라고 생각해 왔는데…….

『인간에 대한 증오, 맘에 들었는데 이 표정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좋습니다. 그 표정! 그 말투! 너무나 좋습니다. 딱 제 스타일이군요. 킥킥킥킥』

미나는 격렬히 저항하고 싶었다.

그러나 움직일 수도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게 관리자.

녀석이 자신의 눈을 노려보는 동안은 단 한 발자국의 움직임도 허락되질 않는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그 사고 이후 며칠이 지났습니다. 신탁자인 당신의 어머니가 계획대로 죽자, 그분께서는 새로 신탁자를 뽑으려 하시더군요. 물론 크로커 때문에 죽은지는 전혀 모르셨죠.』

그때 녀석이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막혔던 말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크로커는 너잖아! 네가 죽였잖아! 왜 다른 사람처럼 부르는데! 네가 죽인 거잖아!』

『킥킥, 크로커는 크로커를 크로커라고 부른답니다. 크로커다일 종족에는 인간처럼 우리라는 개념이 없으니까요.』

미나가 소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 라고. 그런데 녀석이 눈을 다시 부릅뜨자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완벽하게 미나를 통제한 상태였다.

『큭큭큭, 살아남은 당신을 관찰하니 상황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인간을 살리려고 어떻게든 노력하는데, 당신은 인간을 경멸하고 증오하며 다 죽여버리고 싶어하다니, 이 상황 너무나 재밌지 않습니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냐고!’

미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악어 녀석의 언어를 이해하는 자신이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녀석의 말은 계속되었고, 그것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신탁자로 당신을 추천했습니다. 당신이라면 같은 인간도 죽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역시나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녀석이 다시 한 번 눈을 깜박였다. 그러자 말문이 트인다.

『나…… 죽을 거야. 지금 죽으면 네 계획은 물거품이 되겠지. 신탁자를 또 뽑아야 할 테니까.』

미나가 바닥에 떨어진 식칼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크로커가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이런~ 그럼 얼른 버튼을 눌러야겠네요. 죽는 건 버튼을 누른 다음에 죽으세요. 그때는 당신이 죽으면 게임오버니까요. 그럼 시작하죠. 『3cm 헌터』, 인간의 종말이란 게임을.』

크로커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미나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강미나는 알았다.

그분의 예언처럼 이제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무조건 꼭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그 이유는 바로 오빠를 살리기 위해.

오빠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녀가 작아졌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상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작은 세상에 입장하였습니다.]

[초보자용 장구류가 지급되었습니다.]

[사용자 정보가 잠금 해제되었습니다.]

[사용자 정보를 열람합니다.]

《사용자 정보》

○ 직업 : 공주 (Princess)

○ 나이 : 16세

○ 키 : 3.12cm

○ 몸무게 : 26g

○ 고유능력 : 마인드 리딩 Lv1

[새로운 메인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페이즈 1에 돌입하였습니다. 탈출하거나, 시련을 이겨내세요.]

[달성조건 1 : 크로커다일(★★★★★) 처치]

[달성조건 2 : 빛의 기둥으로 대피]

※ Tip : 페이즈 1에서 크로커다일은 당신을 죽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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