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21화 (21/200)

21화. 구세주

구세주라니.

이건 너무 나갔잖아!

강백현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이 역력했다.

자칭 신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며 말을 걸고 있다.

자신을 신처럼 떠받드는 사람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맹목적인 믿음으로 자신을 인도하길 바라는 표정.

‘이건 아니잖아!’

그런데 목사는 대답 없는 강백현에게 다시 한 번 호소하기 시작했다.

『구세주시여! 부디 사악한 영혼으로부터 저희를 거두어주십시오.』

목사의 말을 따라 읊기 시작하는 신도들.

“거두어주십시오!”

“거두어주시옵소서!”

정말 이런 상황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백현은 뱀굴에서의 선택을 후회했다.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구원자가 아니라고 했어야 하는데.

백현이 시선을 돌렸다.

교회 유리문 앞, 놀랍게도 빛의 기둥이 바로 앞에 놓여 있다.

“빛의 기둥이 바로 앞에 있군요.”

“네. 맞습니다. 저희를 인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때, 워프포탈에서 빠져나온 두 소녀가 백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백현을 보며 생각했다.

‘구원자님…….’

백현의 입장에서나 김만철의 입장에서는 진짜 어이가 없었다.

모두가 주변에 모이자, 강백현이 성스러운 존재라도 된 듯, 아까보다 더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백현은 생각했다.

이게 다 망할 목사 덕분이라고.

꽤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서 사람을 현혹하고, 조종한다.

그런데 악의가 없으니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백현이 목사에게 물었다.

“능력이 어떻게 되시죠?”

“저는 미래에 일어날 장면을 그림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정 대상을 볼 수 있는 게 아니군요?”

“특정대상?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정보파악.

왜 저 그림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질문.

그러나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다.

왜 자신이 그림으로 그려져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알아챈 것도 있다.

최복자 할머니와는 확연히 다른 능력이다.

최복자 할머니의 점술은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건 특정 상황만 그림으로 알 수 있기에, 최복자 할머니에 비해서는 활용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

목사는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여주며 강백현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도사님, 아까 그 그림들 가져와 주세요.”

“네. 목사님.”

목사님의 말에 전도사 한 분이 그림들을 하나하나 보여주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사람을 구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도 있고.

회전문에서 모두를 구하기 위해 방벽을 세우는 그림도 있다.

그림 중 약 40%가 자신과 관계된 그림.

‘이건 너무 심하잖아?! 진짜야? 나 맞잖아.’

“저희는 구원자님이 이쪽으로 오실 줄 알았습니다. 저희를 이끌고 천국으로 이끌 거라 믿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제가 그린 마지막 그림을!”

강백현의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올 뻔했다.

‘젠장! 뭐야? 진짜야?’

불과 1분 전 자신이 했던 포즈까지도 그림에 똑같이 그려져 있다.

이건 돌이킬 수 없어 보인다.

100여명의 신도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백현이 고심했다.

내가 구원자가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솔직히 예상되지 않는다.

그래서 목사를 따로 불렀다.

둘만의 대화가 필요했다.

“잠시만요. 목사님. 따로 좀 말씀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붉은 카펫 뒤.

백현과 목사가 단둘이 남았다.

백현은 혹시 몰라 자신의 주변에 보호막을 쳤다.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방음처리가 완벽하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으니 치는 것이다.

보호막 안.

“목사님. 저는 동생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동생이요?”

“네. 재현 아파트에 있거든요.”

“그럼 저희도 같이 가겠습니다.”

“100명이 넘는데요?”

“다 동참할 겁니다. 이미 구원자님의 활약은 저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생활을 하셨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그런 영광을 주신 겁니다. 제 한 몸 구원자님을 위해 바치겠습니다. 같이 가겠습니다.”

최악. 최악 중 최악.

100여 명을 끌고 아파트로 가라고?

안전한 대피소, 빛의 기둥이 앞에 있는데?

그러다 사람이 죽으면? 누가 책임지는데?

이 목사는 정신이 나갔다.

나가도 완전히 나갔다.

자기가 무슨 예수의 제자라도 된 모양이다.

둘만 있기에 백현은 솔직히 말했다.

“저 구원자 아닙니다.”

“아니시라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 진짜 아니에요. 그러니까 착각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제가 그린 15장의 그림 중 무려 7장의 그림에서 구원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그림을 제가 직접 그려서 압니다. 아직 어리시지만 구원자님은 구원자님이십니다.”

진짜 단단히 미쳤다.

어떻게 해야 설득할 수 있을까?

멀리서 김만철이 곤란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시가 바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고,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할 말도 없다.

백현은 고민했다.

지금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이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다.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다.

퀘스트가 말해주고 있다.

[메인 퀘스트 : 공주님을 찾으세요.]

단순 명료한 명령.

동생을 찾으라는 메시지.

백현이 말했다.

“목사님.”

“네. 구원자님.”

“사실은 구원자는 제가 아니라…….”

백현의 대답을 듣고 고민에 빠진 목사.

그리고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악수를 건네는 녀석.

백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네! 조력자님! 조심히 가십시오.”

“네. 저희 구원자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김만철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강백현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느라 곤란해하고 있었다.

“구원자님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아저씨는 구원자님하고 어떻게 만나게 되셨어요?”

“아! 그림하고 똑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나요? 대단하셨네요. 고생하셨어요.”

자신의 아버지가 형수님과 같이 죽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앞에서 보호막을 펼치는 백현과 좌절하는 자신이 그려진 그림.

그걸 보며 눈물을 흘리는 김만철.

“네. 백현이가 절 구했죠.”

“그러셨군요. 아저씨는 구원자님과 처음부터 함께하셨군요.”

그때, 백현과 대화를 하러 이동했던 목사가 혼자 걸어온다.

그걸 보며 김만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백현을 찾기 위해서였다.

‘분명 목사님이랑 같이 갔었는데? 이 자식 어딜 간 거야?’

그런데 목사가 이상한 이야기를 꺼낸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그림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습니다. 아까 그 학생은 구원자가 아니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니였다고요? 목사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분명 구원자님이 이곳으로 오실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자~자! 흥분하지 마시고, 그 학생이 구원자가 아니었다는 거지, 구세주께서 안 오셨다는 게 아닙니다. 바로 여기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의 구세주, 구원자께서 말입니다!』

목사가 흥분한 목소리로 김만철을 가리켰다.

김만철은 당황한 얼굴로 목사를 쳐다보았다.

그림이 보인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백현과 함께 사람들을 구출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

강백현이 기둥을 세워 회전문을 멈추고 있을 때도, 구석진 곳에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는 자신이 조그맣게 등장한다.

백현이 뒤에서 그물형 보호막을 세우고 있을 때, 제일 앞에 나서서 개미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자신.

뱀의 굴에서 도창훈 씨와 횃불을 켜고 대화할 때는 뒷모습으로 그려진 자신의 모습까지.

목사가 강백현을 그린 거의 모든 그림에 김만철이 들어가 있다.

목사가 말했다.

『구원자시여!』

그러자 신도들이 따라서 말했다.

“구원자시여!”

『저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옵소서!』

“저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옵소서!”

『만물에게 영생과 축복을. 저희에게도 나눠주시옵소서!』

“만물에게 영생과 축복을. 저희에게도 나눠주시옵소서!”

순식간에 김만철 주변으로 모이는 신도들.

초롱초롱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들.

강백현! 이 자식이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게 틀림없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와! 씨발, 나 어떻게 하냐!’

* * *

같은 시각.

강백현은 온 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교회는 좋은 게 문이 여러 개다.

즉 출구가 많다.

백현은 곤란해하는 김만철 아저씨를 보며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걸로 된 거예요. 아저씨는 아저씨 갈 길을 가세요. 저는 제 갈 길을 갈게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따라오는 김만철 아저씨.

하지만 그것이 내키지 않는 강백현의 결단.

어떻게 보면 일석이조.

어차피 언젠가는 헤어졌어야 하는 사람.

작별인사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는 게 미안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둥,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둥의 말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기에 지금의 결단을 내렸다.

이제 김만철 아저씨는 목사들과 신도들 때문에라도 빛의 기둥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아예 다른 차원으로 간다고 알고 있다.

에덴의 동산. 행복의 낙원. 죽는 일 없이 행복한 곳.

‘그래. 잘 된 거야.’

교회를 나오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시멘트 바닥이라 그런지 벌레도 거의 없고, 위험이 될 것도 없다.

상가 지역과 달리 아파트 주변은 위험할 것이 없어 보인다.

백현이 자신의 아파트까지 최선을 다해 달렸다. 있는 힘껏 달렸다.

자신의 아파트가 보인다.

재현아파트 103동 102호

아파트 입구 경비실을 지나 50m만 더 걸어가면 그만이다.

‘환산하면 2.5km인가?’

이제 걸어서 30분. 뛰면 15분.

죽을힘을 다해 가는 거다.

103동에 도착했다.

아파트의 현관 계단 높이는 계단과 계단의 높이가 약 25cm 정도다.

환산하면 12.5m다.

보통이라면 오를 수 없는 높이다.

때마침 보호막도 레벨 1로 하락해서 기둥처럼 늘리고 줄이기도 힘들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파트 현관은 자전거나 유모차가 이동할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어 두었으니까.

길게 늘어진 경사로를 통해 현관을 올라가는 강백현.

이제 만 하루가 지났다.

동생이 좋아하던 마약 떡볶이를 사러 갔다가 겪은 이야기.

‘강미나. 너 나 만나면 진짜 죽었어!’

해줄 이야기가 많다. 들어야 할 이야기도 많고.

미니맵을 활성화했다.

보인다. 동생의 모습이.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강미나의 위치가!

강백현이 철제문 아래를 보며 몸을 낮췄다.

포복 자세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몸을 낮춰 한 걸음, 한 걸음 몸을 끼워 넣어 개미나 겨우 통과할 만한 현관문을 넘어선 강백현.

그런데 이상했다.

빌딩 한 채 건물 크기만 한 존재가 자신의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

두 다리와 두 팔을 가진 녀석.

인간과 같이 옷을 입은 녀석.

녀석이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지축이 흔들리고, 몸에 진동이 전해져온다.

그래서 넘어졌다.

백현이 생각했다.

‘미나는 작아지지 않았던 거야?’

넘어진 그가 고개를 들어 그 거대한 존재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넌 도대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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