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종교
[도창훈의 호감도가 68 상승했습니다.]
“도창훈?”
“네. 구원자님, 제 이름 도창훈 맞습니다.”
“아. 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강백현입니다.”
백현은 자신을 구원자라고 부르는 그에게 대답했다.
“역시 구원자님이시군요. 제 이름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아닙니다.”
“제 두 딸을 소개하겠습니다. 큰 애가 도미연, 작은 애가 도미진입니다. 얘들아. 일어나.”
김만철은 그가 꺼낸 그림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지금 상황 그대로가 그려진 그림.
“그림은 이거 한 장뿐인가요?”
“네. 장우석 목사님이 저한테 주신 것은 이거 하나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쯤 신도들을 이끌고 천국의 계단으로 향하고 계실 겁니다. 그곳은 아늑하고 평화로우며 그 어떠한 죽음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라고 들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도창훈은 머리를 맞대고 자고 있는 두 아이를 다시 한 번 깨웠다.
“미진아, 미연아. 일어나라니까.”
“으……으응.”
“목사님이 말씀하신 구원자님 만났어. 자! 봐봐. 그림 그대로지?”
“어? 응. 진짜네.”
“와, 진짜 목사님 말씀이 맞았어.”
“그래. 이제 우리는 천국 가는 거야.”
그때 또 다시 강백현에게만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미연의 호감도가 48 상승했습니다.]
[도미진의 호감도가 89 상승했습니다.]
호감도 상승.
왜 이런 게 뜰까?
아무튼 도움은 된다.
그들이 호감을 가진다는 것은 적어도 적개심은 없다는 뜻이니까.
아이처럼 기뻐하는 아빠. 그리고 그런 아빠와 함께 있는 두 딸.
도창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진아, 미연아! 그 신비한 능력, 구원자님을 위해서 써줄 수 있어?”
“워프포탈?”
“응.”
“여기서는 안 돼. 밖으로 나가야 돼.”
“밖?”
“응. 햇빛을 받아야만 쓸 수 있어.”
까다로운 조건.
그러나 그만큼 유용한 능력.
워프포탈이란 말에 미소를 짓는 사람들.
“그렇답니다. 모두 나가시죠.”
강백현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온 사람들.
그리고 그림으로 미래를 안다는 목사님의 존재.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한 가지 분명한 사실.
세상의 중심에는 분명 자신의 동생인 미나가 있다.
미나가 그린 세계관 그대로 진행이 되어 가고 있다.
‘미나야. 만나러 갈게. 곧 만나러 갈게.’
미니맵을 보니 바깥이 보인다.
들어왔던 입구 주변에는 아직도 참새들에 의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
그럼 반대편은?
보인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위험한 천적도 없으며, 목적지와 가까운 그 출구가.
“안쪽으로 계속 이동하시죠. 저쪽에도 출구가 있습니다.”
“구원자님께서는 이 어둠속에서 길이 보이시는 겁니까?”
그러자 김만철이 방긋 웃었다.
“이 녀석 능력 중엔 미니맵을 보는 능력도 있거든요.”
횃불을 들고 앞장서는 도창훈.
“횃불 제가 들겠습니다.”
“아닙니다. 이 횃불은 신에 대한 제 믿음을 사용하는 거라서, 다른 사람이 들면 바로 꺼지고 맙니다. 그래서 제가 들어야 합니다.”
“믿음?”
“네. 목사님께서는 믿음이 곧 힘으로 발현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고요. 저는 사회생활에 찌들어서 그런지 이런 보잘것없는 능력을 주셨지만, 우리 두 딸에게는 정말 놀랄 만한 능력을 주셨거든요.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죠.”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애매한 상황. 이럴 때는 다른 주제로 바꾸는 게 좋다.
백현은 자신이 궁금했던 상황을 물어보았다.
“혹시 해외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십니까? 일본이나 중국, 미국 기타 다른 국가들이요.”
“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까진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없어서요.”
두 소녀들은 아빠의 뒤를 쫒으면서도 강백현을 바라보는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뭔가 신비하게 보면서도 함부로 말을 걸 수는 없는 듯한 분위기.
그걸 보며 강백현이 웃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아니요. 쳐다본 게 아니라요.”
“구원자라고 해서 나이 많으실 줄 알았는데……. 오빠라서요. 저 근데요. 이거 물어봐도 될지 모르겠는데.”
“응. 물어봐도 돼.”
“옆에 계신 분은 구원자님의 아빠인가요?”
“어?”
“옆에 계신 수염 많은 아저씨요.”
그의 말에 강백현이 웃었다.
“아빠 아니고 그냥 아는 아저씨.”
“아……. 네.”
그런데 김만철은 꼭 거기에 토를 단다.
“아저씨 아니고 오빠.”
강백현이 김만철을 나무랐다.
“그만 좀 하세요. 이제 인정하세요. 아저씨 맞아요.”
“…….”
구원자라 불리는 자신.
그러나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신념을 저버리는 행동이니까.
신념이 꺾이면 어떻게 될까?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게 옳다.
백현은 작아진 시점에 처음 뜬 메시지가 생각났다.
《사용자 정보》
○ 직업 : 왕자 (Prince)
○ 나이 : 19세
○ 키 : 3.44cm
○ 몸무게 : 35g
○ 고유능력 : 보호막 Lv 1.
[새로운 메인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 공주님을 찾으세요.]
내 직업은 왕자.
그들이 자신을 칭하는 말, 구원자, 메시아.
과연 내가 구원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묘한 냄새가 났다.
비린내와 썩은 내가 동시에 풍기기 시작했다.
두 소녀도 그 냄새를 맡았나 보다.
“으으…… 냄새.”
“개구리 냄새 나.”
정답.
파충류는 대부분 비슷한 냄새를 낸다.
항상 습기를 머금고 있어야 하니까 이런 냄새가 나는 것이다.
소녀의 아버지가 말했다.
“조심해서 접근해야 할 것 같은데…….”
“응.”
하지만 백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백현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아니요. 앞에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냥 가시면 됩니다.”
“그렇습니까?”
“네. 계속 가시던 길 가시면 됩니다. 전 다 보입니다.”
1m를 더 지나가서야 그 냄새의 정체를 알았다.
뱀이 벗은 허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는지, 뱀의 허물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백현은 그제야 왜 참새들이 굴 입구에서 발걸음을 돌렸는지 알 수 있었다.
뱀이 만든 굴이었으니까.
자신의 천적이었으니까.
“헐! 뱀 굴이었어? 대박!”
“역시 구원자님은 대단하시군요. 허물만 있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군요.”
뭐든 놀라는 사람들. 이럴 때는 발걸음 속도를 올리는 게 최선이다.
뱀이 만든 굴은 깔끔하다.
뱀이 내뿜는 물질 때문에 굴 자체가 매끈매끈하고, 뱀 자체도 먹이를 삼켜먹다 보니 잔여물이 남지 않는다.
출구가 보였다.
출구 밖.
회전형 운동기구, 그리고 공원 옆 분수.
그 옆에는 3차선 도로.
여전히 제 기능을 유지하는 신호등.
그리고 여기저기 충돌해서 불타 있는 차량들.
밖으로 나온 두 소녀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지금 열어?”
“응. 장소는 알지?”
“응. 어차피 우리 둘이 기억한 장소밖에 못 열어.”
“그래.”
두 소녀가 서로 손을 잡았다.
“언니.”
“응. 알아.”
미진, 미연 자매의 깍지 낀 손이 바닥을 향했다.
바닥에서 빛이 뱅글뱅글 돌기 시작한다.
조그마한 기둥이 올라온다.
폭 3cm, 높이 5cm의 기둥.
빛의 기둥의 축소판.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들어가시면 소망교회가 나올 겁니다.”
“소망교회요?”
소망교회.
알고 있다. 학교를 가기 위해 매번 지나던 거리.
몇 번 가본 적도 있다.
동네 형들이 일요일 날 뭐하냐며 간식 받으러 오라고 해서 간 기억이 난다.
강백현은 무교였다.
그렇다고 종교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교회에 가면 얼굴빛 좋은 사람들이 항상 반갑게 맞아준 기억이 난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자신의 신조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그것을 영이 맑다고 했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동생 미나는 자신과 달리 교회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사람들과 얽히는 걸 싫어했고,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생각해 보면 미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교감을 가지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교회는 어릴 적 몇 번 가고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소망교회는 구원자님이 가시려는 재현 아파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저희는 거기에서 왔습니다.”
“같이 안 가시나요?”
“물론 같이 가야죠. 구원자님이 가시는 길, 저희는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백현은 죽음의 현장을 다시 뒤돌아보았다.
공원에 모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죽임을 당했다.
그래도 몇 명은 살아남을 줄 알았는데…….
그 두 청년들은 어떻게 됐을까? 그 두 명은 살아남을 줄 알았건만.
두 자매가 연 워프포탈이 반대편과 연결되었다.
마치 유리창을 연 것처럼 다른 공간, 장면이 보인다.
그 안으로 먼저 들어간 남자가 손짓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네. 알겠습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보인다.
그걸 보며 안심한 백현 일행이 워프포탈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통과한 공간에는 빨간 카펫이 깔려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공간도 펼쳐져 있다.
경이롭고 성스러운 건물.
천장에는 어떻게 새겨졌는지 모를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는 샹들리에가 반짝거렸다. 이 모든 풍경은 이곳이 얼마나 경건하고 성스러운 곳인지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때 따스한 빛이 반짝거렸다.
강백현의 시선이 그쪽으로 돌아갔다.
반짝임의 원인은 유리창에 붙은 셀로판으로 된 그림 때문이었다.
그 그림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알록달록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바닥에는 천사가 날아다니고, 인간들이 경배한다.
악마가 돌아다니고, 신으로 보이는 절대적 존재가 악마를 막아낸다.
이곳은 바로 교회.
그들이 말하던 장소.
재현 아파트 바로 옆까지 온 것이다.
그때 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셨습니다! 구원자님이 드디어 오셨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셨습니다. 모두 경배하세요!”
“반주를 틀겠습니다.”
음악이 들린다.
자동반주.
사람들은 백현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찬양을 시작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합창. 그리고 열광.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건 바로 목사가 그렸다는 그림.
교회에 걸려 있는 전자시계가 오전 9시 43분을 가리키고 있다.
단상 앞에 깔린 카펫에 나타난 작은 워프포탈에서 나오는 사람들.
그 주변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
이 상황을 정확히 표현한 그림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기뻐하는 사람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자시계가 있다.
그런데 진짜 오전 9시 43분을 가리키고 있다.
워프포탈이 아직 남아 있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만백성 맞아라』
『찬양하여라! 찬양하여라!』
그 그림을 그린 목사는 행복한 얼굴로 강백현을 보며 말했다.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네. 없습니다.”
“오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무사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목사는 백현의 “네?”라는 대답을 “네.”로 알아들었다.
그래서일까? 자신 있는 목소리로 교회 신도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제 구세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