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9화 (19/200)

19화. 먹이

조류는 보통 먹이를 집어삼킨다.

그래서일까? 불룩해진 배에서 인간 형상이 드러났다.

조현민의 친구, 정호영이 낄낄 거렸다.

“병신 새끼, 먹혔네! 먹혔어. 클클, 이럴 때는 내가 구해줘야 하나?”

정호영이 자신의 능력을 사용했다.

“무기 소환!”

그의 능력은 무기를 소환하는 것.

무기 소환 레벨 1.

그의 능력에 0.75cm 크기의 식칼이 응답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앞에 보였다.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 날카롭게 갈려 있는 그의 검은 충분히 위협적.

그가 친구를 먹은 참새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차르륵 소리와 함께 하늘 방향으로 치솟는 피분수.

그 안에서 녹색과 검은 색의 소화액을 뒤집어 쓴 채 정신을 잃은 조현민.

정호영이 식칼의 칼등 방향으로 조현민의 몸을 밀어내며 말했다.

“킥킥, 병신 새끼 죽었냐?”

죽은 듯 가만히 있던 시체가 콜록콜록 거리는 기침과 함께 움직였다.

“컥컥, 으아아아아.”

소화액에 노출된 그의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걸 보며 정호영이 또 낄낄대며 웃는다.

“으악! 씨발 진짜 리얼! 존나 드러워.”

“쳐 웃지 마. 냄새 존나 독해.”

“킥킥, 와! 이거 진짜였으면 졸라 재밌겠네. 대유잼! 대유잼!”

10대들의 장난스런 행동.

그래도 그걸 보며 김만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참새 몸에 조금만 더 오래 있었으면 무조건 죽는 건데……. 저건 친구가 살렸네.’

아직은 목소리가 닿지 않는 곳.

좀 더 가야하는데, 새들은 절대 인간들을 봐주지 않는다.

그나마 이 친구들은 다행이었다. 자신들의 몸을 지킬 능력은 있었으니까.

비록 아직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도,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킬 수는 있었으니까.

아이랑 같이 나온 4명의 가족이 참새들한테 포착되었다.

두 아이는 엄마, 아빠와 함께 도망치는 중.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푹 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부자연스러운 신체.

머리 부분만 사라진 엄마의 몸이 앞에 보인다.

“아아아악! 엄--마!”

아이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반면 남자는 아내의 죽음에도 겉으로는 침착해보였다.

‘미안해, 여보.’

모든 게 자신의 잘못.

나오자고 한 것 자체가 잘못.

아내는 교회 안에 있자고 했지만, 남편은 대피소라는 소리에 나가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아이의 비명을 신경 쓰지 않는 참새.

부리로 톡톡.

엄마의 머리를 깨 버리고, 가장 맛있다는 골수만을 파먹기 시작했다.

아이의 아빠가 엄마의 모습에 비명을 지르는 두 딸아이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죽기 살기로 달렸다.

“울지 말고 뛰어! 뛰어! 뛰어!”

“으아아아앙!”

하지만 엄마의 머리를 다 파먹은 그 조류는 만족하지 않았다.

고작 인간의 골수 따위로 배가 부를 리가 없었다.

녀석은 쓰러진 여자의 남은 몸을 바라보았다.

이미 동료들이 부리를 이용해 갈기갈기 찢은 후다.

녀석들은 벌레 하나에 다섯 마리씩 붙어 몸뚱아리를 부리로 찢어 입 안에 넣고 있었다.

뺏는다고 해서 뺏길 녀석도 아니었고.

그래서 이미 죽은 먹이 말고 살아남은 세 명의 가족을 노렸다.

아주 손쉬운 먹이였다.

참새는 날개를 펄럭이며 멀어진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하지만 방해꾼이 있었다.

쾅!

반투명한 벽에 부딪혀서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그곳에 자신의 모습이 반사되어 보인다.

참새가 참새를 보는 형국.

참새는 난생 처음 보는 자신의 모습을 경쟁자라고 여겼다.

그래서 부리로 찍었다.

그러자 반사되어 보이는 녀석도 자신을 부리로 찍었다.

부리끼리 부딪치자 통증이 전해온다.

수컷끼리의 먹이경쟁.

조류의 세계에서는 너무나 흔한 것.

그런데 보통 이렇게 대놓고 앞을 가로막진 않는다.

참새는 자기 앞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고 똑같이 행동하는 녀석과 싸우기 시작했다.

반투명 벽 뒤에 있는 김만철이 외쳤다.

“이쪽입니다. 이 굴로 들어오세요. 멈추지 마요! 멈추지 말라고요!”

강백현이 미리 파악했던 15m 길이의 넓은 굴.

누가 판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그 굴 안에 위협적인 생명체는 없다.

쥐인지, 다람쥐인지, 청솔모인지 분간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 당장 조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굴이 있는데 뭐가 두렵겠는가?

남자는 두 딸아이를 데리고 간신히 굴로 도망쳤다.

그때 자신을 이쪽으로 인도했던 김만철 옆 청년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크으…….”

반투명한 벽을 무리하게 만들어 버티다가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더구나 하필이면…….

“젠장!”

보호막 증폭 효과가 사라졌다.

이제 레벨은 2에서 1로 다운되었다.

이제는 자유자재로 보호막의 모양을 변화시킬 수 없다. 단순한 반구형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강도도 약해졌다.

그건 강백현뿐만이 아니었다.

“백현아……. 혹시 너도?”

“네. 증폭 효과가 떨어졌어요.”

“젠장! 못 막아. 안쪽으로 들어가! 더 들어가!”

반투명 벽의 반사된 면이 부리에 의해 깨졌다.

참새는 알았다.

경쟁자 수컷을 자신이 이겼다고.

이제 먹이쟁탈전의 승리자는 자신이라고.

참새가 날았다.

그런데 보이지가 않는다.

‘내 먹이는 어디에?’

그런데 요상한 냄새가 난다.

조류라면 무조건 피할 수밖에 없는 그 냄새가 난다.

‘여긴 들어가면 안 돼.’

웬만하면 먼저 포기할 리 없는 참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굴 안에 들어간 먹이를 포기했다.

같은 시각.

참새가 다행히 굴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김만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조류들도 마찬가지였다. 굴이 있는 방향 대신 공원에 널려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렸다.

“굴 안쪽은 안전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쉽게 포기하네.”

“다행이네요.”

15m 길이의 굴 안.

생각보다 바닥이 매끈매끈하다.

진흙이 되었다가 수분이 날아가서 그런가, 모래처럼 흘러내리지 않아 걷는 게 안정적이었다.

숨을 몰아 찬 가족의 가장이 두 딸을 바라보았다.

입을 막고 울고 있는 자식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핏줄에게 그가 말했다.

“이제 소리 내서 울어도 돼.”

그러자 두 딸이 아빠를 부둥켜안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아빠! 이거 꿈이지? 꿈 맞지?”

“엄마는 언제 와? 꿈 깨면 엄마 만날 수 있지?”

두 아이의 아버지가 펑펑 우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미진아, 미연아.”

“응.”

“아빠도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우리 꿈에서 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기독교 신자들.

“하나님, 빨리 꿈에서 깨게 해주세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가 말했어요. 무서운 꿈을 꾸면 좋은 일 일어난다고요.”

두 아이의 기도가 끝나자, 아이들의 아빠가 울고 지친 아이들을 어두운 굴 속에서 잠재운다.

아빠의 능력은 놀랍게도 횃불이었다.

그가 소환한 몽둥이.

그 끝에는 심지가 붙어 있고, 별다른 행동 없이 의지만으로 몽둥이 끝 심지에 붙이 붙으며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

안 그래도 추웠던 주변이 횃불에 의해 따뜻해지고.

두 아이는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김만철이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

“안타깝게도 이건 꿈이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두 따님에게 빠른 시일 내에 진실을 알려야합니다.”

그의 말에 남자가 말했다.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꿈이 이렇게 길고 생생하진 않죠. 들은 이야기도 있어서,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고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강백현이 또렷한 눈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아는 것은 아닐까?

그는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지금은 물어야 할 때였다.

“알고 계셨다고요?”

“세상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죠.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가 미지수였는데, 이런 식으로 될 줄이야……. 역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 대해 노하셨던 걸까요? 우리의 믿음을 저버리신 것일까요?”

“…….”

강백현이 허무한 듯 고개를 저었다.

종교적 신념이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만든다.

성경, 바이블, 예언, 종말, 파멸, 혼돈.

그가 말하는 것들은 수 세기 전부터 전해져오던 것들.

종말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각종 신학적 이론과 무분별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종교들의 교리가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혼란을 가져온다.

정보의 비대칭, 3cm 관련 소설을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의 차이.

모든 게 최후의 심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진리에 도달하는 귀납의 추론에서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시련.

지금 여기서 그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누구를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그들 자체도 삶에 대한 의지는 충분했기에, 지금은 그저 참새와 여타 조류들이 이 근처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괜찮으십니까? 아내분이…….”

김만철의 질문에 그 남자가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아내는 천국으로 갔을 겁니다. 먼저 도착해 있겠죠. 저도 곧 따라갈 겁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종교적 신념을 믿는 그의 의지.

어떻게 보면 그 신념이 최악의 상황은 면한 터.

그때, 그 남자가 강백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가십니까?”

“재현 아파트로 갑니다.”

“재현 아파트요?”

“네. 그 쪽에 대피소가 있거든요. 빛의 기둥이라고 메시지로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실제로 보신 적도 있으실 테고요.”

“하나님이 만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말하는군요. 그 기둥 안에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계단이요?”

“네. 장우석 목사님께서 항상 말씀하셨죠.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존재하고 있다고, 그 길을 걷기 위해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거라고요. 제가 제대로 찾아왔군요.”

그래. 그렇게 해석했겠지.

그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그나저나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군요. 비록 아내가 먼저 갔지만 후회하진 않습니다. 모두의 뜻을 이루었으니까요.”

“네?”

“제 딸아이가 깨어나면 아파트 인근으로 보내드릴 수 있도록 말해보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 딸아이의 능력은 워프포탈입니다. 당신은 구원자가 아니신가요?”

그가 백현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을 얻은 것과 같은 표정.

강백현이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셨답니다. 메시아를 만나면 제가 길을 인도해야 된다고요. 제게 그 사명을 주셨다고요.”

두 딸 아이의 아빠가 행복한 듯 미소를 지었다.

강백현은 그런 그를 보며 다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한 번 여쭈어 봐도 될까요? 제가 이해가 안 되어서요.”

“저희 교회 목사님은 예언 능력을 부여받으셨습니다. 그림을 통해 미래에 벌어질 장면을 보실 수 있으시죠. 이 그림을 보세요. 굴에서 제 딸아이들이 자고 있고, 저랑 구원자님께서 서로 대화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가슴에서 꺼낸 그림.

어두컴컴한 굴 안.

횃불 하나를 두고 두 명의 소녀가 자고 있고, 세 명의 남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확하게 지금 이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림으로 미래를 맞춘다고?’

강백현이 그가 제시한 투박한 그림을 보며 그 남자에게 되물었다.

“제가 구원자라고요?”

“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구원자님의 성함을 여쭈어 봐도 될까요?”

그때 오랜만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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