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cm헌터-18화 (18/200)

18화. 마지막

빛의 기둥의 등장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미니맵 상에 보이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백현은 빛의 기둥의 위치를 전부 확인했다.

다행이다.

아파트 근처에 빛의 기둥이 있다.

그리고 지나왔던 길에도 있다.

횡단보도.

텔레포트 능력자와 구청장을 만났던 그 위치에도 빛의 기둥이 생성되어 있다.

약 1km 반경마다 나타난 대피소.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목적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확인하는 것.

백현은 여동생의 움직임을 체크했다.

그러나 미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제자리에만 있다.

아직 메시지를 못 본 걸까?

무슨 행동을 하는지까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능력.

하루 30분 제한이 있는 미니맵 기능.

강백현이 그 시간 조율을 위해 조용히 속으로 외쳤다.

‘미니맵 Off.’

김만철 또한 빛의 기둥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백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동생한테 갈 생각입니다.”

“여동생 움직임은 확인했어?”

“네. 자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큰 움직임은 없어요.”

“그래. 그럼 같이 가자.”

“아니요. 아저씨는 아람이를 데리고 대피소로 이동해주세요. 거기서 몸이 회복될 동안 옆에서 보살펴주세요.”

“저 기둥 안을 말하는 거지?”

“네. 그곳으로 가면 어떤 상처도 회복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탁드릴게요.”

“너는?”

“동생 만나러 가야죠. 가는 길에 아줌마도 데려올 거예요.”

“아줌마?”

“네. 아람이 어머니요. 그러니까 아람이 데리고 빛의 기둥으로 먼저 대피해주세요. 위치는 바로 초등학교 운동장이에요.”

바로 옆에 생긴 빛의 기둥.

김만철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여동생을 구하러 가는 강백현을 따라가야, 그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할 수 있다. 미래예지에서 본 장면. 말할까? 말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난 네가 죽는 장면을 봤어.”

“네?”

“최복자 할머니가 나한테 능력 써줬잖아. 아~ 넌 그때 자느라 못 봤구나. 아무튼 그때 네가 죽는 장면을 봤다고. 백현이 넌 사람한테 밟혀 죽었어. 난 그 뒤에 죽었고.”

“사람한테 밟혀죽어요? 작아지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요?”

“자세히는 못 봤어. 너무 컸으니까. 아무튼 거인이었어. 그게 널 죽였고 곧바로 나도 죽였지.”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걸 아시면서 왜 절 따라오셨어요? 죽는 장면을 보았다면서요! 아저씨도 죽을지 몰라요.”

“난 죽는다고 생각 안 해. 그건 예지일 뿐, 미래는 당연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네가 에스컬레이터와 회전문에서 모두를 구했듯이, 나도 널 구할 생각이야.”

김만철의 말에 강백현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 마음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우리 흔들리지 말고 같이 가자.”

“아니요. 그럼 더 확실해졌어요. 아저씨랑 저는 이제 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저랑 같이 다니면 아저씨도 죽을 테니까요. 그때는 에스컬레이터와 회전문을 극복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 상황이었어요. 실제로 대형마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다 죽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이건 선택의 문제잖아요. 일부러 죽음의 길을 자초할 필요는 없어요. 아저씨는 아람이를 데리고 빛의 기둥으로 가시면 돼요.”

“그럼 넌? 너도 여동생을 만나러 가지 않으면 죽지 않을 수도 있어. 여동생 스스로 빛의 기둥으로 갈 수도 있잖아.”

“아니요. 다 죽어요. 여동생은 제가 지켜야 한다고요.”

“하-아, 진짜! 야! 강백현! 이 고집불통아! 솔직히 네가 혼자 뭘 한다고 그래? 공격 능력도 없으면서! 개미 한 마리 못 이기면서!”

“하지만 아람이는 어쩌고요. 지금 의식도 없잖아요. 지켜줄 사람, 대피소에서 회복될 때까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이기적인 새끼! 같이 데려가면 되잖아. 너도 같이 가면 되잖아.”

“전 여동생을 만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미안해요 아저씨, 아저씨한테 아람이는 부탁할게요.”

백현의 말에 김만철이 화를 내며 돌아섰다.

강백현은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동생이 남겼던 메시지가 자신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다 죽어. 오빠가 나 지켜야 해.』

공주가 죽으면 정말 다 죽는 걸까?

자신의 직업, ‘왕자’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지?

지금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보호막을 쓰는 자신도, 염력을 쓰는 아람이도 지금의 상식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미나가 한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죽을 수도 있다.

대한민국 사람만 다 죽을 수도 있다.

아니면 한 명도 안 죽을 수도 있고.

어쨌든 미나를 만나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야만 그 말의 뜻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최형우가 나섰다.

“백현아. 네 사정은 알았다. 미나를 만나러 가는 거지?”

“네.”

“그렇다면 이 아가씨는 내가 도와주마. 내가 저 기둥 안에서 돌봐주마.”

“네?”

“그 기둥에서 이 아가씨가 회복될 때까지 옆에서 봐주면 되는 거잖아. 그럼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

“아저씨……도 가족 찾으셔야죠.”

“클클, 난 글렀어. 내 마누라는 지금 충남 부여에 살아. 이 작은 몸으로 부여까지 어떻게 가? 살아있기를 빌어야지. 사장님께 받은 은혜도 있고, 그쪽이 가장 가까운 대피소라면 나도 그쪽으로 이동하는 편이 좋겠어. 어차피 가는 길에 데려가는 거니까 너도 부담가질 필요 없고. 넌 여동생을 만나고 싶은 거잖아. 미니맵인가 뭔가로 여동생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거고.”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래. 알아. 네가 부담 갖는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나도 네 덕분에, 이제 내 몸은 내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봐! 이 커진 몸을. 네가 알려줘서 생긴 능력이잖니? 이 정보를 알려준 대가라고 생각하자. 그럼 됐지?”

최형우 아저씨가 배꼽을 만지더니 자신의 몸을 다시 불려간다.

강백현이 그의 말에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니, 너도 네 목숨 생각했으면 여동생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대피소로 이동했겠지. 내가 볼 때 항상 넌 미나를 챙겼어. 미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한테 친절했지. 항상 조숙한 행동 때문에 사장님을 보는 것만 같았다니까.”

“아저씨…….”

“백현이 넌 모르겠지만, 사장님은 내 딸아이의 심장병 수술비도 다 내주시고, 아내가 암이 걸렸을 때는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병문안도 직접 와주셨단다. 내가 항암치료 기간 동안 아내를 돌보느라 5개월 동안 출근을 못했는데도 해고는커녕 오히려 월급도 꼬박꼬박 주시면서 아무 걱정 말라고 하셨던 분이셨지. 이제 그 은혜를 갚을 때가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는 책임지고 대피소에서 회복될 때까지 보살필 테니, 너는 동생을 만나러 가렴.”

“감사합니다.”

강백현은 항상 도움만 받는 자신이 병신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운 상황.

그걸 알아챈 김만철이 말했다.

“강백현.”

“네.”

“너 또 혼자 속으로 자신을 탓하고 있지?”

“…….”

“그게 참 바보 같은 거야. 지금 네 동생은 너를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네가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어. 그것만 생각하자.”

“알겠습니다. 마음 단단히 잡겠습니다.”

“그럼 나도 같이 간다. 이건 내 결정이야. 무슨 일이 생겨도 너한테 원망 안 할 거니까 내 행동에 왈가불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최형우가 몸을 거대화시킨 후 주저앉았다.

의식을 잃은 아람이를 최형우의 등에 올린 후 붕대로 고정시키는 사람들.

“아저씨!”

“응?”

“무사하세요.”

“당연하지. 약속했잖아. 이 아가씨 대피소까지 데려가준다고.”

“나중에 또 만나요.”

“그래. 이제 각자의 방향으로 이동하자.”

“네. 알겠습니다.”

최형우가 김아람을 업고 일행들이 지나왔던 길로 이동한다.

앞쪽에 빛의 기둥이 보인다.

걸어서 5분 거리.

하지만 최형우는 빨랐다.

거인이라 발걸음이 컸다. 그래서 걷기만 해도 뛰는 속도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불과 1분 만에 빛의 기둥에 다다른다. 그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사라진다.

미니맵에서 사라진 두 사람.

강백현은 그렇게 최형우 아저씨와 김아람에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남은 두 사람, 강백현과 김만철은 재현 아파트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남자 둘.

이제는 지체할 수 없다.

144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러간다.

이 시간이 지나면 상황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러니 방심하지 말고 최대한 빨리 아파트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두 사람이 뛰었다.

정해진 거리를 최대한 빠른 속도로 주파하기 위해서.

평균 시속 0.2km.

한 시간에 200m를 가는 속도.

이대로라면 오늘 내로 도착할 수 있다.

그들은 목적지인 재현 아파트를 향해 쉬지 않고 뛰었다.

* * *

한 시간 즈음이 지나고 공원 근처에 도달했다.

빛의 기둥 때문인지 사람들이 초등학교 인근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대피소가 저 방향입니까?”

“네. 저 기둥으로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이래요? 저희 꿈 아니죠?”

“꿈이면 좋겠습니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엄마, 아빠.

서로의 생사를 묻고 확인하는 동네 주민들.

아웃사이더처럼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사람의 접근을 경계하는 청년.

기타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온다.

특이한 능력자들이 많았다.

곤충처럼 등에 날개가 달린 사람도 있고, 팔이 6개가 된 사람도 있다.

눈에서 빛을 뿜으며 주변을 밝게 비추는 사람도 있고,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길게 늘렸다가 줄이는 능력자도 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능력 발휘를 어떻게 하는지 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으아아악!”

길게 늘린 손톱으로 누군가의 복부를 찔러 죽이는 사람까지…….

“미친! 사람을 죽였다! 저 사람이 사람을 죽였어요!”

“클클, 꿈이 왜 이렇게 리얼하냐? 대박! 현민아, 그렇지 않냐?”

“크크크, 미친! 망령 새끼! 대사까지 꼭 빼닮았네. 크크 너 죽일까?”

“그러기 전에 네가 먼저 죽을걸?”

“클클, 그 자신감도 여전하네.”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아 아직도 방황하는 사람들까지.

그때, 어둠이 깔렸던 도심의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도심지의 밤이 끝나고 아침이 다가오는 시간이다.

가로등의 불빛은 꺼지고, 자동으로 조절되는 네온사인의 불도 꺼지며 도심의 활기가 사라진다.

따스한 태양빛이 내려쬐는 가운데 자고 있던 새들이 깨어나 지저귀기 시작한다.

짹짹짹짹.

분주한 날갯짓.

삼삼오오 모여서 단체로 이 나무, 저 나무를 왔다 갔다 하는 조류들.

조류들의 활공이 시작된다.

한 마리가 내려오니 여러 마리가 함께 저공비행을 하며 공원에 있는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내려온다.

조현민이 말했다.

“클클, 오! 참새 대박!”

“킥킥, 그러다 너 죽는다?”

“클클클, 그러면 꿈에서 깨려나?”

손톱을 길게 늘리는 조현민.

그러나 참새의 부리에 단숨에 목덜미를 물리는 녀석.

참새가 조현민을 들어올린다. 그러고는 몸을 좌우로 틀며 부리로 낚아챈 녀석의 몸을 흔들어 입 안으로 집어넣는다.

꿀꺽.

불룩해진 배. 참새가 짹짹되며 다른 동료들에게 말했다.

이것들 맛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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