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동생의 예언
백현은 뒤돌아봤다.
아람이가 혼자 개들을 상대하려 하고 있다.
그녀는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왜일까?
어떤 장면과 매치가 된다.
어디서였지?
맞아.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지.
* * *
보호자로 들어간 병실에서, 정신과 진료 의사가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강백현 학생.”
“네. 선생님.”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참 웃기지만, 일단 보호자니까 말할게.”
“네.”
“미나는 정신병동에 입원시켜야 해. 그게 서로를 위해 나아.”
“선생님…….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치료하러 온 거지, 입원 시키려고 온 거 아니잖아요.”
백현의 말에 의사 선생님이 구겨진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뭐예요?”
“열어 봐.”
구겨진 종이를 펴니 안쪽에 부스러기들이 보인다.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이게 뭔데요?”
“죽은 개미하고 파리들.”
“네?”
“미나가 끈끈이에 붙은 파리를 수백 조각으로 분리시킨 거야. 상식적으로 접근해보자. 너라면 개미를 수백 조각으로 분리시킬 수 있어? 파리를 저렇게 몸통, 날개 등을 하나하나를 떼어내는 행동이 정상이라고 생각해? 미나는 24시간 전문적이고 확실한 치료가 필요해. 그리고 학생이 부모님 없이 혼자 감당하기에 이건 너무 힘든 일이야.”
“……미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때문에 충격을 받은 것뿐이에요. 의사 선생님이면 도와주실 생각을 하셔야죠. 어떻게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요?”
“백현 학생! 동생은 환자야! 이상행동이 심해지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험하고 스스로에게도 위험할 수 있어!”
“이제 의사선생님하고 말 안 할래요! 안 할 거예요!”
백현이가 밖으로 나와 미나의 손을 잡았다.
거칠게 그녀를 끌고 가며 말했다.
“다음부터 다른 병원 가자.”
“응? 왜?”
“여기 돌팔이야. 그러니까 집으로 갔다가, 좀 쉬고 더 좋은 병원으로 가자. 알았지?”
“응.”
돌아가는 길.
더 이상 이 병원을 오지 않는다는 말에 미나가 신이 났나 보다.
말이 별로 없던 미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빠!”
“응?”
“오빠는 역시 구세주야.”
“뭐?”
“오빠가 마음에 든대.”
“든대가 뭐야? 왜 넌 다른 사람처럼 이야기해? 든대가 아니고 마음에 들어. 이렇게 말해야지.”
“아니, 그분께서 마음에 든대. 그래서 내 소원을 이루어주겠대.”
“그분이 누군지 진짜 궁금하다. 미나야. 그분이 누군데 자꾸 비밀로 해?”
“그건 말하면 안 돼. 그럼 나 죽어.”
“안 죽어. 오빠는 너 안 죽게 옆에서 항상 지켜줄 테니까.”
“킥킥, 근데 오빠.”
“응?”
“오빠는 나 말고도 지킬 사람 많아.”
“응. 네가 말했던 백성 말하는 거지? 지킬게. 왕자님은 소설 속 내용처럼 백성들을 다 지킬 거야.”
“응. 근데 왕자한테는 소꿉친구가 있어. 그 소꿉친구는 작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야. 그러니까 그 사람은 꼭 지켜. 다소 용감하고 겁이 없어서 오빠가 옆에서 챙겨줘야 할 거야. 처음에는 이상한 행동을 해도, 언젠가는 오빠한테 큰 도움을 줄 거야. 그러니까 꼭 챙겨.”
“뭐?”
“소꿉친구, 소꿉친구, 왕자랑 놀던 소꿉친구! 더 이상 말하면 안 된단 말이야! 그러니까!”
동생이 떼를 쓴다. 화를 낸다.
이럴 땐 달래야 했다.
“응. 소꿉친구 기억할게. 기억할 테니까 화 내지 마.”
“응. 꼭 기억해야 해!”
“그래.”
* * *
불현듯 떠오른 과거의 기억.
소꿉친구. 처음에는 그냥 웃으며 넘겼다.
왕자랑 놀던 소꿉친구라니.
설마 그 소꿉친구가 아람이였어?
작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녀.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아람이가 능력을 사용하며 개와 싸우려 든다.
강력한 중력의 힘이 개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들은 비정상적인 힘을 느끼고 곧바로 몸을 숙이며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러자 그녀가 생성한 중력방향의 힘이 바닥의 먼지만 쓸고 사라져버렸다.
완벽한 실패.
개들은 김아람의 능력을 겪어보고 엄청난 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짖으니 여러 마리가 따로 짖는다.
백현은 알았다. 그게 의사소통이라는 것을.
김아람의 능력이 어떤 것이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것을.
개들이 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김아람의 능력을 감지하면 그 손동작을 보고 바로 자리를 이탈해 피한다.
그렇게 살짝살짝 피하자 그녀가 자신의 염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자꾸 빗나가기만 한다.
백현은 파악했다. 움직이는 물체나 사물에는 염력을 사용하기 굉장히 까다롭다는 것을.
염력은 균형 잡힌 힘을 필요로 한다.
상당히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일까? 김아람의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왜! 왜! 왜 안 통하는 건데!”
개들이 짖으며 다가왔다.
그녀가 360도 모든 방향으로 염력을 내보내며 밀어냈다.
하지만 약했다.
염력은 보호막과 같았다.
작은 범위에 집중할 때 강력해진다.
그러므로 모든 방향으로 뿜어내는 그녀의 능력은 평소의 1/10도 나오지 않았다.
개들이 접근한다. 사방에서 접근한다.
컹컹 짖으며 위압감을 주고, 발을 올려 그녀를 제압하려 든다.
김아람이 염력으로 시츄의 발을 막았다. 그런데 옆에서 포메리안의 발이 밀고 들어온다.
그것도 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비글이 고개를 내밀며 이빨을 들이민다.
침이 줄줄 흘러나오는 비글의 이빨에 김아람이 경악했다.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개들의 이빨 사이에는 인간이 입고 있던 복장이 끼어 있었다.
세라복이 찢어진 채 이빨 사이에 딱 달라붙어 있다.
개들은 어제부터 작아진 인간을 먹었다.
맛있었다.
평소 먹던 사료보다도 맛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작아진 인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새로운 주인을 맞이했다.
그게 세퍼드.
이제 집단으로 활동한다.
김아람의 팔을 세퍼드가 아작 씹었다.
그때 김만철이 소리쳤다.
“도망쳐! 이쪽으로 오라고!”
그러나 김아람은 두려움에 주저앉고 말았다.
무조건 이길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녀는 그걸 극복하지 못했다.
그녀의 팔에서 피분수가 흘러나왔다.
비글과 진돗개 또한 혀를 내민 채, 침을 흘리고 있다.
짖고 있다.
왈! 왈!
컹! 컹!
김아람은 자신의 팔이 떨어져나간 자리를 보며 충격에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그녀에겐 소꿉친구가 있다.
그 남자가 천천히 김아람의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김아람과 같은 동작.
그러나 염력 대신 보호막이 생긴다.
반투명의 막이 개들의 추가적인 접근을 막는다.
시츄의 발바닥이 미지의 막에 가로막혔다.
포메리안의 발톱이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비글의 날카로운 이빨이 부딪혔음에도 보호막은 멀쩡했다.
보호막을 활성화한 강백현이 입을 열었다.
“아저씨! 빨리 데려가요!”
“아! 내가 막으마. 네가 데려가!”
“아저씨는 못 막아요! 그러니까 빨리 안으로 데려가서 지혈해요!”
평소와는 다른 강백현의 목소리.
화가 단단히 난 그가 김만철에게 지시했고, 김만철은 그 목소리에 따랐다.
혼자 남은 강백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미나야. 넌 어디까지 알고 있었던 거니? 이 사태를 다 알고 있었던 거지?’
김아람의 돌발행동, 그리고 위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녀를 구하라는 메시지.
왜 지금에서야 그때의 말이 떠오른 걸까?
그런데 보호막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보호막은 만능이 아니었다.
강도의 한계가 있었다.
강백현이 생각했다.
지금은 보호막을 최소 크기로 만들어야겠다고.
그래야 버티겠다고.
반구 형태의 보호막 형태가 변화한다.
자신의 몸 주변에 두꺼운 막을 씌운 형태로 바뀌었다.
세퍼드가 날카로운 이빨로 강백현을 물었다.
아작아작.
씹는 동작.
그런데 씹히지가 않는다. 오히려 잇몸이 아프다.
마치 돌덩이를 씹는 기분. 세퍼드가 캑캑 거리며 씹다 만 강백현을 뱉었다.
다음은 진돗개였다. 녀석은 앞발로 강백현을 요리조리 굴렸다.
샌드백처럼 굴러가는 강백현의 몸.
하지만 충격은 없었다.
보호막 내부의 탄성은 모든 충격을 거뜬히 흡수했다.
같은 시각, 의식 잃은 김아람을 경비실 안쪽으로 데려간 김만철은 웃통을 벗은 후, 옷을 찢어 그녀의 팔에 감았다.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서였다.
꽝꽝 동여매는 그의 동작은 신속했다.
구급법, 위생병으로 활동하며 군대에서 배웠던 것을 여기서 써먹을 줄이야.
김만철은 안심했다.
다행히 출혈이 멈춘 것이다.
이제 살아남는 것은 그녀에게 달렸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지혈을 하고 나니, 강백현이 신경 쓰인다.
문 바깥쪽 혼자 남아 개들의 시선을 끌었던 그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다행히 개들은 없었다.
그럼 강백현은?
바깥에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 보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강백현.
미동조차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절망을 가져온다.
김만철은 좌절했다.
‘뭐야! 미래 예지에선 이런 장면 없었어! 너는 여기서 죽는 게 아니었다고!’
김만철이 김아람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뛰었다.
죽은 시체라도 수습하려고 했던 것.
헐레벌떡 뛰어가는 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후회가 막심했다.
‘병신! 내가 시선을 끌었어야 하는데…….’
녀석의 얼굴이 보인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반투명의 막도 보인다.
‘뭐지? 저게 뭐야!’
사람 모양의 막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단단한 갑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그의 주위를 둘러싼 보호막이 여전히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강백현!”
김만철의 거친 부름에 그가 응했다.
“네……. 아저씨.”
“너 괜찮아?”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야. 인마! 놀랐잖아.”
놀랍게도 강백현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훌훌 털고 일어난 그가 입을 열었다.
“아람이는 괜찮나요?”
“일단 응급조치는 끝냈어.”
“옷은 왜 벗었어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 그거 물을 때야? 너 때문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내가 너 희생시키면서 살면 기분 좋을 것 같아?”
“죄송해요. 하지만 다 살았잖아요. 그거면 된 거죠.”
“그래. 일단 아람이한테 가자.”
“네.”
두 사람이 초등학교 경비 초소 건물 쪽으로 이동한다.
강백현이 좁은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몸을 숙여 기기 시작한다.
뒤에 있던 김만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살아줘서 고맙다. 난 역시 네가 죽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경비실 초소 안에 들어간 두 남자.
김아람은 여전히 의식 불명.
그런데 강백현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사각사각.
‘뭐지? 우리만 있는 게 아니야?’
미니맵을 열었다. 그런데 보이는 건 공중에 매달려 있는 거미뿐.
“아…….”
대롱대롱 경비실 모서리 위쪽에 거미가 먹이가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래도 괜찮았다.
인간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았다. 저기까지 올라갈 일도 없을 테고.
그런데 미니맵에 잠깐 보이는 점. 그리고 곧바로 사라져 있는 점.
‘보였다 사라진다고?’
미니맵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강백현이 미니맵을 주시했다. 그리고 해당하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금고가 보인다.
그래서 시선을 돌렸다.
금방이라도 위험을 느끼면 보호막을 쓰기 위해 양손을 쥐었다 펴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금고 문이 열리고 사람이 빼꼼 머리를 내민다.
60대 아저씨.
강백현이 그를 알아보고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경비 아저씨?”
“어?”
“아저씨! 저 백현이에요! 강백현, 병현 초등학교 36기 졸업생!”
“백현이? 강진우 사장 아들 백현이?”
“네! 제가 그 백현이에요!”